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87)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86화(187/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86화
“지은 씨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지상에 던전의 기운이 범람하지 못하도록 수호 결계가 상시 발동되는 마나석으로 국토를 촘촘하게 뒤덮는 대 균열 결계.
상시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균열에서의 완전한 해방을 가져다주는 그 완전 방위 계획이 만약 반대로 실행되어 던전의 기운이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지상엔 그야말로 파멸만이 남을 것이 분명했다.
한정된 공간이던 균열이 아닌, 지하의 던전 그 자체의 모습과 특징을 간직한 채 끊임없이 생성되는 몬스터들을 과연 얼마나 오래 막을 수 있을까. 대답을 갈구하는 듯한 지은의 표정을 보며 남운이 말했다.
“한그루의 완전 방위 계획은 단 한 번 성공했습니다.”
“성공의 대가가 혹시 뭐였나요?”
“완전한 희생.”
“완전한 희생이라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서 한그루는 깨달았던 겁니다. 그 말도 안 되는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마나석이나 광물 같은 걸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요.”
“설마…….”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 남운의 모습을 보며 지은은 인과율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과율은 과거의 시간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재로 끌고 오는 것을 작정하고 막는 것처럼, 과거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밝히려는 순간 남운을 옥죄어 왔다.
“한그루가 그 계획을 성공한 것은 1회 차입니다.”
고통스러운 듯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렇게 말한 남운이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틀어막았다. 울컥 쏟아지는 피를 아무렇지 않게 닦아 내며 끝까지 남운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지은 씨와 마찬가지로, 단 한 번도 다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사라졌던 한그루가 9회 차의 자신과 함께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에 생각이 많아진 지은이 입술을 깨물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남운이 무언가를 결정한 듯 주먹을 꽈악 쥐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지은 씨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네?”
“사실 지은 씨에 대한 기억을 처음 다시 떠올렸을 때부터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저에 대한 기억이라뇨?”
“이전까지의 저는 9회 차까지의 세계를 반복하는 동안 지은 씨에 대해서 완전히 잊은 상태였습니다. 그건 제 형벌이기도 했고요.”
“형벌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지은 씨를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동안 몇 번을 회귀하며 같은 사람들을 마주쳐 왔지만, 그들이 먼저 저에게 다가온 적은 없었거든요.”
“…….”
“그런데 지은 씨는 아니더군요. 단 한 번도 같은 자리에 뭉친 적 없었던 사람들이 지은 씨의 곁에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모습을 보고 나니, 점점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기억이 돌아왔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지은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남운이 하려는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사실 회귀의 주체는 제가 아니라 지은 씨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더군요.”
“네?”
“저를 비롯해 지금 지은 씨의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1회 차에 지은 씨를 중심으로 뭉쳤던 결사대였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남운 씨?”
“이미 어렴풋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회 차의 지은 씨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
“지은 씨는 그저 견디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당신을 지키다 쓰러져 간 사람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걸 견디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두는.”
“아…….”
“지은 씨를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1회 차부터 9회 차인 지금까지.”
“…….”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위치에서 오직 지은 씨,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야기 해 준 적 없었던 남운의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1회 차의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다는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1회 차의 자신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그런 줄만 알았다. 신의 정신 지배에 시달려 제정신이 아니었던 1회 차의 자신은 스스로 항상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건 지금의 지은이 보기에도 정말로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고통스러워서,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1회 차의 자신의 심정을 느꼈으니까. 지은은 너무나 절절하게 고통을 호소하던 1회 차의 자신을 측은하게 여겼다. 그래서 혼자가 아닌 지금의 모습을 간절히 바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과율의 고통을 참아 가면서 계속해서 자신을 보며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남운의 모습을 인식한 순간, 지은은 깨달았다. 1회 차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1회 차의 지은은 절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가 삶을 포기하는 것을 바라지 않던 주혁과 까망이가 있었고, 그런 그녀의 뜻을 어떻게든 이뤄 주려 했던 남운이 있었고, 신의 대리자이면서 그녀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이태서가 있었다. 당장 1회 차의 기억을 엿보았을 때 등장한 사람들만 해도 벌써 3명이었다.
그리고 이번 회차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공략하려 했던 신이 보여 준 절망스러운 꿈속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유라, 성진, 나운, 새봄, 수영. 그밖에도 길드에 출근할 때마다 자신을 반겨 주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들.
“……1회 차부터 바뀐 건 없었던 거였어요?”
“네, 바뀐 건 없었습니다.”
“모두가 1회 차부터 내 곁에 있었던 거였어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건 지은 씨가 등장하지 않았던 그 모든 시간을 겪어 온 제가 장담할 수 있습니다.”
“…….”
“지은 씨는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창조의 정령 또한 그걸 지은 씨가 언젠가 알아주길 바랐던 거겠죠. 제게 내려진 형벌은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아…….”
“그때의 저는 지은 씨가 정말로 편해지길 바랐을 뿐이라며 거짓말을 했습니다. 창조의 정령은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지은 씨가, 정말로 자신이 이 세상에 혼자라는 거짓된 절망을 안고 그렇게 떠났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겁니다.”
남운의 말에 왈칵 눈물이 차오른 지은이 급하게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1회 차부터 맺어졌던 인연이 계속해서 자신이 없는 세계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피폐해진 정신으로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자신의 주위에 이렇게 많은 인연들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었을 받았을 자신을 떠올리자 지은은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을 느꼈다.
“1회 차의 너도 혼자가 아니었대…….”
“인과율도 이겨 낼 만하군요.”
손을 떨면서도 울고 있는 지은에게 웃어 보인 남운이 속 시원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제 지은 씨도 그걸 알게 되었다면, 제 형벌도 끝이 난 셈이나 마찬가지겠죠. 이제 와서 늦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때의 전 정말로 비겁했습니다.”
<그렇다.>
어느새 지은의 품에 등장한 까망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스스로 알아채 주길 바랐지만, 이런 방법도 나쁘진 않구나. 회귀자 네놈도 염치는 있는 것 같고.>
“……저는 그저 지은 씨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 줄 사람이 저이길 바랐던 치졸한 놈이었을 뿐입니다.”
<주인은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다. 한 번 맺어진 인연의 끈은 계속 반복되는 법이니까.>
“…….”
“힘들어하는 지은 씨의 곁에 그렇게라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 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랐던 비겁한 저를 용서해 주시길.”
그렇게 말한 남운이 지은에게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망가진 지은에게 자신이 유일한 안식처라 인식되길 바랐던 1회 차의 남운은, 지은이 남기고 간 의지를 회차를 거듭하면서 그도 모르는 사이에 알게 되었다.
그녀가 없어도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항상 행복하길 바랐던 지은의 마지막 소원을 그만이 모르고 있었다.
그랬으니 지은이 없는 세계에서 겉돌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이 지은의 첫 번째가 되길 소망했던 그였기에 모두의 분노를 샀다.
지은을 편하게 해 주겠다는 시덥잖은 이유로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있던 모두를 배신한 비겁한 배신자는 바로 남운이었다.
“항상 용서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
“이제 와서 제 죄를 고백합니다. 저는 당신의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당신까지 배신한 못난 사람입니다.”
인과율의 선을 넘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신이 감히 지은의 마지막 기억을 소유하고 싶어 했다고 고해성사 하듯 말하는 남운을 까망이가 도끼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남운 씨의 말대로라면, 1회 차의 저를 남운 씨가 속인 거네요.”
“……그렇습니다.”
“수많은 인연들로 가득했던 세상을 거짓된 절망 속에 빠져 등지게 떠밀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불쌍하네요, 1회 차의 저는.”
“…….”
차가운 목소리로 읊조리는 지은의 모습에 남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 그에게 주어진 형벌은 끝이 아닐 터였다. 까망이의 말대로 정말로 지은이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기회인 지금에서조차 그 당시의 지은에게 사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은의 모습에 남운이 씁쓸한 표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거의 일을 현재에 끌어온 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직접 자신의 입으로 과거를 입에 담은 지금의 행동은 충분히 인과율의 심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1회 차의 유일한 악역은 이제 퇴장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모두를 배신하면서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지은을 부추기고, 자신만이 곁에 남아 있을 거라 약속하던 그 당시의 추한 마음조차 1회 차의 지은에게 닿았을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차라리 용서받지 못하길.’
지은 역시 그의 죄를 알고 난 뒤 남운과 눈을 마주치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1회 차에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두 번 연속으로 뒤통수를 맞고도 지은이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기에 남운이 그대로 방을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1회 차 때부터 내 주변은 바뀐 적이 없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한그루 씨도 제 주위의 사람이었나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9회 차인 지금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었지만, 1회 차의 지은 씨 곁을 지키던 사람들 중 한 명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건 남운 씨도 마찬가지였겠죠?”
지은의 말에 방문을 나서려던 남운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지은이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남운의 팔을 와락 잡아 이끌며 말했다.
“어디 가요?”
“저는 지은 씨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죄인…….”
“그건 1회 차의 저와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겠죠.”
말끝을 흐리는 남운의 말을 단호하게 자르며 지은이 말했다.
“지금은 9회 차니까요. 과거는 과거예요.”
“…….”
“하물며 그 과거가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과거에 얽매여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요?”
“그 말씀은…….”
“한그루 씨도 제 주변의 사람이었다면서요. 1회 차와 변한 건 없다고 했잖아요. 그럼 짐작 가는 게 있는데, 이건 남운 씨밖에 알지 못할 정보라서요.”
“…….”
“한그루 씨가 자신을 희생한 곳이 어디였죠? 대답해 주세요. 전 1회 차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남운 씨가 필요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