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88)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87화(188/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87화
지은의 말에 남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를 그냥 과거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지은의 말에 그제야 남운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다.
“과거에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지금에 충실하자고요, 우리. 누구 말마따나 단 한 번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지금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지은이 씨익 웃어 보였다. 지은의 환한 웃음에 놀란 눈을 하고 있던 남운이 선선히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한그루가 자신을 희생한 곳은 천제단입니다.”
“천제단이요?”
“물론 태백산 정상의 천제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 성자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성지이자, 이제는 성역이 되어 버린 곳입니다.”
“성역…….”
남운의 설명을 들은 지은이 뭔가 알 수 없는 위기가 닥쳐올 것 같은 기분에 꺼림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1회 차의 모든 사람들이 회귀를 반복했지만, 오직 자신과 한그루만이 1회 차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남운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1회 차의 한그루가 그의 몸을 제물로 바친 성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 분명하리란 안 좋은 예감이 온몸을 강타했다.
“쿨럭!”
“아아악! 남운 씨!”
그리고 지은의 안 좋은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1회 차의 남운의 마지막 발자취를 물어본 것은 지은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회차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성역’이니 ‘성지’니 하는 비밀을 발설하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을 비롯해 많은 영산을 거점으로, 한그루가…….”
크게 피를 토하면서도 계속해서 한그루의 계획에 대해 발설하려는 남운을 결국 뜯어말리며 지은이 소리쳤다.
“그 입 좀 다물어요! 알겠어요! 일단 천제단인지 어딘지 빨리 가자고요, 우리!”
* * *
“갑자기 등산이라니!”
민족의 영산 태백산.
신의 기운이 서린 산이라는 수식어답게 온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틈에서 첫 토벌전 당시 풀세트로 맞췄던 등산복과 등산 스틱까지 두 손에 든 지은이 숨을 몰아쉬며 아직 한참이나 남은 정상을 바라보았다.
너무 하지 않냐고 말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쳐 눈으로 뒤덮인 산길에 눈보라를 만들어 낸다.
작년,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태백산 꼭대기에는 차곡차곡 눈이 쌓였을 터였다. 온몸에 새하얀 가운을 입은 것처럼 나무들이 눈에 파묻혀 있는 풍경은 가히 절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허억…… 아, 진짜 산 타는 건 적응이 안 돼…….”
“……공간 이동을 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만.”
“그러다가 남운 씨 피 토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또 보라고요?”
인과율이 허락하는 한계치에 임박했던 남운이 피를 왈칵 쏟아 냈을 땐 정말로 초상 치르는 줄 알았다. 한정식집 방 안이 피로 흥건하게 물드는 최악의 사태까지는 간신히 막아 낸 지은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늘어나선 안 된다는 입장을 취했다.
물론 그동안 착실히 레벨 업을 했기에 기력은 처음과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였지만, 본래 몸이 따라 준다 한들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더욱 힘든 법이었다. 정상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 건만, 지은은 눈밭에 푹푹 빠지는 발을 간신히 옮기다가 이내 등산 세 시간 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하자며 넓은 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이렇게 눈이 가득 쌓여 있을 줄은 몰랐네요.”
“본래 사람이 가는 곳에 길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이쪽 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같은데요.”
뿌연 한숨이 허공에 흩어져 사라져 간다. 지은이 아직 한참이나 올라야 할 길을 바라보며 내쉰 한숨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문자 그대로의 의미뿐만이 아닌, 수차례의 회귀에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성자.
모든 것을 안고 떠났던 그였기에, 아무도 그가 떠난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처음의 마음가짐 그대로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으로 언제 만들어졌는지조차 알 길이 없고, 오래되었다고만 알려져 있는 성스러움이 가득한 곳. 옛 사람들이 태백산을 하늘에 제사를 지낼 영산으로 여긴 것이 분명한 그 흔적이 바로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가려 하는 곳은 정상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천제단이 아니라 잊힌 성역이었다. 끊임없이 재생되는 최고위 힐러의 마나. 그 마나를 모두 품고 숨어 버린 잊힌 성역.
자신을 봉인하는 것으로 완전 방위 계획의 방점을 찍은 한그루의 흔적을 지금부터 찾아가야 했다.
“빨리 가죠.”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터는 지은을 보며 남운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조금 더 쉬었다 가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뇨, 빨리 가야죠. 느낌이 영 좋지 않아서요.”
1회 차의 한그루가 그 성역에 봉인되어 있다면, 지금 나와 있는 9회 차의 한그루는 과연 어떤 존재란 말인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한 몸을 바쳤던 그는, 반복되는 회귀 속에서 계속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유일한 회귀자 남운의 인도 아래 잊힌 길을 따라 오르는 고난의 길.
마치 이곳에 발을 디디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듯 평범한 등산로와 다를 것이 없었던 길이 점점 미로처럼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갈림길 앞에서도 남운은 단 한 번의 망설임 없이 앞장서 길을 뚫었다.
그런 남운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착각이 일 정도로 높은 고지에 도착했다. 수많은 마나가 용솟음치듯 솟아나고 있는 공간은 어느새 모습을 바꾸어 새로운 장소로 남운과 지은을 인도했다.
“끔찍하네요.”
“그렇습니다.”
검을 뽑아 든 남운이 주변에 끊임없이 재생되는 수많은 몬스터들에게서 지은을 보호하듯 막아섰다. 한그루가 세워 둔 완전 방위 계획이 어떤 식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은 공간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재생되는 것들은 이미 몬스터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언데드…….”
번쩍!
드넓은 설원 위에 발 디딜 틈 없이 솟아난 언데드들에게 내리치는 거대한 번개.
언데드 한정 특화 마법이자, 전투 힐러인 한그루의 주특기인 정화 마법이었다. 힐러 클래스의 성력이 담긴 정화 마법이 필드 전체에 끊임없이 솟아나며 언데드들을 빠짐없이 감쌌다.
그어어어어!
단 한 번의 번쩍임으로 수많은 언데드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갔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그 가루에서 솟아나는 언데드들.
계속해서 모양을 바꾸어 몇 가지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정화 마법이 필드 전체에 끝없이 솟아나 언데드들을 계속해서 줄여 나가고 있는 이곳.
[시스템 알림 : 의지를 담아 만들어진 공간에 입장했습니다!] [퀘스트 발생!] [퀘스트 알림 : ‘지켜질 리 없는 맹약’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저기 있군요.”
남운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지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수많은 몬스터의 잔해 속에서 마치 땅에 뿌리를 내린 듯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남자.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도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주변의 언데드들에게 온몸에 새겨 둔 정화 마법을 무표정한 모습으로 몰아치고 있는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삿된 것들을 몰아내는 그의 이명은 성자. 로컬 랭킹 3위이자 아리아 길드의 2대 길드장.
“한그루…….”
그녀가 한그루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과 동시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마지막 정화 마법을 사용한 한그루가 고개를 돌려 남운과 지은 쪽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세 사람 중 먼저 입을 뗀 것은 한그루였다.
“민지은 씨?”
“…….”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 * *
“앉으시죠.”
방금 전까지 드넓은 설원이었던 필드가 어느새 온기가 가득한 작은 방 안으로 바뀌었다. 별다른 말없이 한그루가 권유하는 대로 푹신한 의자에 앉은 지은의 앞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놓였다. 남운 몫의 의자는 없는 듯했다. 남운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결국 주위를 둘러보다 털썩 방바닥에 앉았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봤을 때, 정말 민지은 씨가 맞군요.”
“그런 기운도 느낄 줄 아시나요?”
“적어도 이 공간은 당신의 권능을 빗대어 창조된 공간이니까요.”
이 필드 전체가 어떤 이유로 창조되었다는 한그루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휙휙 바뀌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은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설명하지만, 저는 당신이 기억하는 그 사람은 아닐 거예요.”
“…….”
“이 시간대에서 당신이 기억하던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이곳에 갇혀서 지금까지 쭉 존재하고 있던 한그루 씨와는 다르게.”
“그렇다면 바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1회 차의 자신은 이미 사라진 세계. 대리자를 잃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남운이 말했던 대로 한그루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이 공간에 봉인해 조국의 땅 위에 일어나는 균열이라도 막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이미 1회 차의 세계는 한 번 멸망했다.
한 번도 아니었다. 무려 9번째의 새로운 세계에서도 1회 차에 새로이 창조해 낸 공간 속에 봉인된 한그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은의 말에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음에도, 애써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애쓰던 한그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것은 남운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이미 사라져야 할 내가 여기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뭡니까?”
“그건…….”
한그루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미 1회 차의 세계가 진작에 막을 내린지 오래이지만, 자신은 어째서 이 장소에 계속해서 남아 있던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는 한그루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은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한그루 씨가 스스로를 봉인한 이유가 뭐였죠?”
“저 하나를 희생해서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한그루의 얼굴에선 단 하나의 흔들림도 찾을 수 없었다. 남운 역시 한그루의 완전 방위 계획은 단 한 번 성공했다고 말했고, 실제로 한국에서는 한그루의 희생 덕분에 균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은은 그런 한그루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거짓말.”
“…….”
“정말로 우리나라에만 균열이 발생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잖아요.”
“적어도 시간은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
“거짓말하지 말아요, 한그루 씨. 여긴 당신이 창조해 낸 공간이 아니잖아요!”
다그치듯 소리를 높이는 지은의 모습에 남운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지은에게 한그루가 이곳에 왜 봉인되어 있는지 설명을 했지만, 지은은 애초에 남운의 설명을 믿은 적 없다는 얼굴을 하고 한그루를 다그치고 있었다.
“그래요, 좋아요. 여기에 얼마나 오래 있었나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구와 계약을 한 거죠?”
“……!”
“한그루 씨 당신을 이 공간으로 빼돌린 대상이 누구냐는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지은의 눈이 한순간 반짝였다. 자신의 질문을 들은 한그루의 표정이 왈칵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지은이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한그루 씨, 당신 속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