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53)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52화(53/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52화
“1층에 있는 비석에도 이런 그림이 있습니다. 땅을 상징하는 듯한 그림이죠.”
“1층엔 땅, 4층엔 태양…… 다른 층에는 없었나요?”
“네, 2층과 3층엔 이런 모양을 한 비석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비석에 대해 캐묻는 지은의 말에 하나하나 대답하며 주혁이 비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렇게 만져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요.”
“그래도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든지 그런 건 없나요?”
“지금까지 분석한 두 비석에 대한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이름이 [타락한]으로 시작한다는 거죠.”
이곳 4층의 던전 이름은 [타락한 신전].
비석이 있는 1층의 던전 이름은 [타락한 풍요의 대지]였다.
주혁의 설명을 들은 지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은이 가 보았던 수많은 던전 중에서도 이름이 [타락한]으로 시작하는 던전이 있었다.
“[타락한 불의 정령왕의 안식처]……!”
“네, 똑같이 ‘타락한’으로 시작하는 이름의 5층 던전. 지은 씨가 다녀온 곳이죠.”
“그렇다면 거기에도 이런 비석이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5층에서 비석을 찾아보는 게 이번 저희 토벌대의 임무 중 하나입니다.”
20년 전, 던전이 갑자기 생겨나고 평범한 일상은 사라졌다.
던전과 함께 나타난 특수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
마치 던전에 맞서 싸우라는 듯 던전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비현실적인 능력으로 몬스터를 잡고 던전을 개척해 나간 지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던전을 계속해서 탐색하면서 헌터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이 던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던전이 생기고 헌터들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인가?
수많은 헌터들과 과학자들, 저명한 학자들이 던전과 각성의 관계를 두고 고민해 왔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던전을 탐사하며 그 영역을 4층까지 넓힌 지금에도 아직 던전과 각성에 대해서 제대로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던전을 토벌하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소모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모전이요?”
“각성한 헌터들이 던전에서 목숨을 잃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비슷한 능력이나 같은 능력을 가지고 누군가 새롭게 각성을 합니다.”
“……그건 정말 끔찍하네요.”
소모전이라는 주혁의 말대로, 던전에서 희생된 헌터들의 능력은 다른 누군가가 새롭게 물려받는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몬스터와 계속해서 탄생하는 새로운 헌터들.
“던전의 어디까지 들어가야 이 지긋지긋한 소모전을 끝낼 수 있는가. 그게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아무리 강한 헌터라고 해도 이 목숨을 건 소모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
던전 밖으로 벗어난 헌터들은 능력이 폭주해 죽거나, 던전 안으로 홀린 듯 들어가서 죽는다.
마치 정해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듯, 지금까지 던전은 운명에서 도망친 헌터들을 다시 잔혹하게 끌어들였다.
“도대체 이 던전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
“그걸 밝혀내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20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똑같은 매일이 반복될 겁니다.”
비석을 쓸어내리던 주혁의 손이 멈췄다. 커다란 태양의 정중앙을 응시하던 지은은 갑자기 까망이가 자신의 어깨에서 사라진 것을 느끼고는 허전해진 어깨를 바라보았다.
던전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했던 까망이는 그때 이후로 말을 하는 법을 잊은 것처럼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도 눈을 감고 그저 지은의 어깨에 올라가 있다가 비석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또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린 까망이 때문에 속상해진 지은이였다. 직접 교감도 시도해 보고 직접 말을 걸어 봐도 까망이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까망이가 모습을 감춘 것을 주혁도 눈치챈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지은이 이어서 주혁에게 말했다.
“비석 말고 더 발견된 건 없었어요?”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요?”
주혁이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다 낡은 양피지였다.
둥글게 말린 양피지를 펼치자, 도통 뭐라고 쓰여 있는지 모를 이상한 문자와 함께 태양을 품고 있는 무언가가 그려진 그림이 보였다.
“이곳 4층의 비석 아래에서 발견된 양피지입니다.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까지 해석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1층의 비석에서도 이런 양피지가 발견되었나요?”
“네, 땅 위의 생물이 그려져 있는 거대한 그림이었습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 땅을 밟고 살아가는 수많은 개체가 그려져 있는 거대한 그림이 1층의 비석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이곳 4층의 던전 이름도 지금은 [타락한 신전]이지만, 원래는 아니었죠.”
“네? 던전의 이름이 바뀌기도 한다는 건가요?”
“보스틀 클리어하기 전, 첫 토벌대가 발견했던 이름은 [타락한 빛의 신전]이었습니다.”
1층은 대지, 4층은 빛.
1층에서 발견되었다는 땅을 형상화하고 그 땅 위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가 새겨진 그림. 그리고 빛의 신전에서 발견되었다는 빛을 품고 있는 무언가가 형상화된 양피지.
그리고 지금 주혁의 말대로라면 또 다른 비석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5층의 던전 속성은 불이었다.
“땅, 빛, 불…….”
“하늘, 어둠, 물도 어딘가에 있겠죠.”
지은의 혼잣말에 대답하듯 주혁이 덧붙여 말한 것을 들으니 문득 머릿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주혁 씨는 혹시 이 비석들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내신 건가요?”
“지금은 확신할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 5층에서 정말로 불의 비석이 발견된다면, 유력한 가설이 생깁니다.”
가설이라고 말을 꺼냈지만, 그렇게 말하는 주혁의 눈에 담겨 있는 건 강한 확신이었다.
“이 던전은 어쩌면 타락한 어떤 존재들의 공간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주혁이 시선을 둔 곳은 지은의 어깨 위였다.
방금까지 까망이가 자리하고 있던 지은의 어깨 위를 차분하게 응시하던 주혁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각성한 헌터들이 가진 능력 중, 속성별 특징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능력은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요?”
“먼저 마법이 있죠.”
속성별로 한 개에서 두 개, 많게는 세 개의 속성까지 중첩해서 사용이 가능한 속성 마법사들의 능력은 땅, 불, 물, 바람, 빛, 어둠으로 비석이 가리키는 속성과 의미가 일치했다.
“그러면 남은 하나는…….”
거기까지 깨닫고 말을 하려던 지은의 입이 천천히 닫힌다.
자신이 답을 꺼내 놨음에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존재.
“정령.”
주혁의 말에 지은은 열었던 입을 채 닫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었다. 지금 던전 안에서 나타난 비석들이 가리키는 것은 정말로 정령들의 속성과도 일치했다.
그리고 거기까지 떠올린 지은은 까망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몸을 흠칫 떨었다.
‘<던전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다냥.>’
던전은 살아 있는 공간이며, 어떤 존재가 특정한 이유에 의해 만들어 낸 공간이고,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공간이다.
까망이도 분명 자신을 ‘정령’이라고 했지만 어떤 정령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런 하급 존재와 나는 비교 할 수 없는 존재다냥.>’
‘설마…….’
지은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까망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흘러갔다.
“까망이 너, 그러면 중급 정령들보다 등급이 높아?”
‘<내 밑으로 집합시키면 정령계가 마비가 되서 안 될 정도다냥.>’
수많은 정령사들 중에서 아직까지 상급 정령이나 그 이상의 정령과 계약한 정령사는 없었다는 것까지 떠올린 지은은 가까이 다가온 주혁의 얼굴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감추는 것이 많은 정령입니다.”
“…….”
“제가 내린 가설이지만, 만약에 이번 5층 토벌전에서 불을 형상화한 비석이 또 발견된다면.”
“…….”
“까망이와 깊은 대화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아…….”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그렇게 말한 주혁이 펼친 양피지를 천천히 말면서 덧붙인 말에 지은은 몸을 흠칫 떨어야 했다.
“우리의 편인지, 아닌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 * *
생각지도 못한 까망이의 정체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 지은은 어떻게 주혁을 바라봐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
항상 자신을 도와주는 까망이가 던전에 관련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더는 말해 주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 지은이였다.
‘지은 씨도 까망이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게 있으시겠죠.’
‘……네.’
그런데 대답해 드릴 순 없어요. 하고 입을 열려던 지은의 말을 가로막은 것은 주혁의 손이었다.
혼란스러워하는 지은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 주혁은 이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지은을 향해 웃어 보였다.
‘제가 지은 씨에게 했던 말 기억 안 나십니까?’
‘그게 무슨…….’
‘그 누구에게도 지은 씨의 비밀을 털어놓지 말라고 했던 말.’
‘…….’
‘그 상대가 저라고 해도, 비밀은 비밀일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괜한 소리를 해서 심란하게 해 드린 거 같아 죄송합니다.’
아까 했던 이야기는 말 그대로 가설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한 주혁이 표정을 풀라며 미소를 지어 보인 덕에 지금 지은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채 주혁과 함께 걸어가는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타이밍에 가만히 있던 까망이가 마치 도망이라도 친 것처럼 사라진 게 이상했다.
4층에서는 항상 달라붙어 있겠다던 까망이는 그렇게 사라지고 나서 꽤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아…….”
지은이 내쉰 한숨 소리에 주혁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아직도 신경 쓰고 계십니까?”
“그런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이겠어요.”
기본적으로 까망이는 뭔가 숨기는 게 있고, 제약이 걸려 있다는 말을 하며 의뭉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 주긴 했지만, 지은과는 계약 관계로 묶인 각성자와 정령이었다.
갑작스럽게 각성하게 된 뒤,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온전한 자신의 편이며,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쭉 혼자였던 지은을 외롭지 않게 해준 소중한 정령.
그런 까망이의 모습을 되새기며 지은이 입을 열었다.
“까망이가 다시 나오면 그땐 멱살이라도 잡고 물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