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80)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79화(80/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79화
텅텅 비어 버린 냉장고를 보며 집에 오는 길에 장을 봐 왔어야 했다고 중얼거리는 지은에게 주혁이 말했다.
“저는 시켜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맛있는 거 해 드린다고 집에 초대했는데, 그럴 수는 없죠!”
“지은 씨도 피곤하실 텐데요.”
주혁의 말대로였다. 한 달 가까이 뒤바뀐 던전의 낮과 밤에 적응했던 몸은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시차 적응을 새롭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에 얼마나 피곤했는지 택시 안에서도 솔솔 잠이 오는 것을 애써 참았던 지은이었다.
“그래도 제가 직접 해 드리고 싶어서요.”
“으음…….”
택시 안에서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꾸벅꾸벅 졸던 지은을 생각하면 그냥 편하게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제가 해 드리는 것보다 배달 음식이 더 먹고 싶으신 거라면…….”
“아뇨! 그건 정말 아닙니다!”
한 달 남짓이었지만, 지은이 매일같이 해 주는 음식들은 놀라울 정도로 주혁의 입맛에 딱 맞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는 50명에게 해 주던 음식이 아닌 온전히 주혁 자신만을 위한 요리라는 놓칠 수 없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걸 배달 음식으로 대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배달 음식이 더 먹고 싶은 거냐고 물어보는 자신의 말에 주혁이 강하게 부정하자 지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저는 아무거나 상관없긴 합니다.”
“으음…… 일단 국은 김치찌개가 좋아요, 된장찌개가 좋아요?”
“정말 고르기 어렵군요.”
지은의 음식이라면 뭐든 상관없었지만 한국인의 소울 푸드 중 하나인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니 굉장히 어려웠다.
결국 주혁의 선택은 된장찌개였다.
차돌박이를 넣고 칼칼하게 끓인 고깃집 된장찌개 생각에 주혁은 급하게 배가 고파 오는 것이 느껴졌다. 냉장고 문을 다시 열어서 텅 빈 내부를 환하게 공개한 지은이 말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재료가 아무것도 없어서 일단 장을 봐야 할 거 같아요.”
“아, 그럼 제가…….”
“집에서 조금 기다리고 계실래요? 금방 다녀올게요.”
“지은 씨가요?”
집주인도 없는데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으라는 지은의 말에 주혁은 손을 내저으며 한사코 본인이 가겠다고 나섰지만, 된장찌개 재료는 알고 있냐는 지은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피곤하실 텐데 씻고 한숨 주무시고 계셔도 괜찮아요.”
“네?”
“저는 정말 상관없는데요?”
아무렇지 않게 방 안을 가리키고는 두 손을 볼에 모으고 잠을 자는 제스처를 취해 보이는 지은의 모습에 당황한 주혁이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지은 씨가 쉬고 계시는 게 좋겠군요.”
“재료를 모르시잖아요. 그럼 같이 갈까요?”
“아뇨, 절대 안 됩니다.”
주혁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침착하게 생각해야 했다. 오늘 토벌에서 복귀하자마자 지은을 빼돌리느라 던전 앞에 몰려든 사람들에게서 거의 도망치다시피 했던 주혁이 지은과 함께 한가롭게 장을 본다면?
[던전에서 복귀한 송주혁의 행보 : 곁에 있는 여자는 누구?] [던전에서 돌아오자마자 연인과 함께 장을 보고 있는 송주혁?] [기자 회견도 마다하고 송주혁이 함께하려 했던 여자!]말도 안 되는 온갖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질 것은 당연했다.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지은을 바라보며 주혁이 말했다.
“장을 봐 올 재료를 적어 주시면 그대로 사 오겠습니다.”
* * *
“저거 송주혁 아니야?”
“에이, 설마. 오늘 복귀했다고 들었는데?”
분홍색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야채 코너에서 진지한 얼굴로 애호박을 손에 든 채 고민하고 있는 주혁의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스크까지 쓰고 얼굴을 가리긴 했지만 숨겨지지 않는 존재감 덕분에 대형 마트에 온 손님들의 시선이 주혁에게 집중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 주혁은 한 손에 애호박을, 다른 한 손에는 지은이 적어 준 요리 재료 목록을 든 채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된장찌개 재료]– 애호박 1개
– 감자 2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거!)
– 양파 (마트에 가면 손질된 양파 2개짜리 있어요. 꼭 껍질 벗겨진 걸로 사 와요!)
– 무 1개 (작은 거로 사 와 주세요!)
– 두부 1모
– 홍고추, 청양고추 1묶음
– 대파 1단
– 다진 마늘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서 팔아요.)
– 차돌박이 200g
이미 카트 안에 가득한 된장찌개 재료를 보며 판매원이 말했다.
“된장찌개 해 드실 건가 봐요? 애호박은 오늘 들어온 거라 싱싱하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근데 송주혁 씨 맞죠? 직접 요리도 해서 드세요?”
애호박을 비닐봉지에 담고 익숙하게 가격표를 붙인 판매원 아주머니의 말에 주혁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는 지은이 재료를 적어 준 종이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고등어는 어디로 가서 사야 합니까?”
* * *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서 있는 주혁에게 지은이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장을 보다 보니 배가 고파지더군요, 그래서 빨리 왔습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는 주혁의 손에서 비닐봉지를 건네받으려던 지은에게 미소를 띠며 주혁이 장을 봐 온 재료들을 식탁에 올렸다.
“저건 뭡니까?”
거실에 나와 있는 하얀색 화이트보드.
무언가를 그리던 도중이었는지, 보드 마커의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는 것까지 확인한 주혁이 선선히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그림도 그리십니까?”
“그런 건 아닌데, 제가 오늘 주혁 씨를 집에 초대한 이유이기도 해요.”
“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주혁을 바라보며 지은이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말했다.
“그래도 일 끝나고 왔는데 일 이야기를 바로 하기는 좀 그런데, 우리 밥부터 먹어요.”
5층 토벌을 다녀온 사이 부쩍 차가워진 바람 덕분인지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참이었다.
주혁이 사 온 재료들 중 먼저 애호박을 집어 든 지은이 포장을 벗겨 내고 물에 애호박을 깨끗하게 씻기 시작했다.
잘 씻어 낸 애호박의 물기를 제거하고 도마 위에 올린 뒤 큼직큼직하게 썰어 내기 시작하자 그런 지은을 바라보던 주혁이 재료들을 봉지에서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깐 양파로 사 오셨네요?”
“적어 주신 대로 사 왔습니다. 전 요리는 젬병이니까요.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야채들을 모두 씻어 내는 주혁의 얼굴이 제법 진지했다. 이참에 옆에서 보면서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마스터하겠다는 주혁의 말이 떠올랐다.
무는 3분의 1 정도를 잘라 채 썰어 주고, 홍고추와 청양고추는 빠르게 어슷썰기 한다. 도마 위에 정갈하게 잘린 재료들을 보며 된장찌개를 끓일 뚝배기를 꺼낸 지은이 키친타월로 눌러 핏기를 빼 준 차돌박이를 와르르 쏟아 넣었다.
차돌박이는 붉은색이 없어질 때까지 볶아 주어야 했다. 얇고 기름이 많은 부위이기 때문에 따로 기름을 넣을 필요는 없었다. 어느 정도 볶은 뒤 고춧가루와 설탕, 간장을 휘휘 뿌려 달달 섞어 주자 매콤한 냄새가 훅 피어올랐다.
거기에 채 썰어 놓은 무와 된장을 넣고 한 번 더 뒤적거리며 볶아 주고 물을 부었다. 무와 차돌박이가 충분히 잠길 만큼 물을 부은 뒤 곧바로 감자를 넣은 지은이 말했다.
“국을 끓일 때는 가장 늦게 익는 것부터 넣어야 해요.”
옆에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 주혁에게 감자와 양파, 두부를 가리키며 지은이 말했다.
“여기 있는 것 중엔 감자가 제일 안 익거든요. 아! 혹시 아삭아삭한 감자 좋아해요?”
아삭아삭한 식감을 좋아하면, 조금 늦게 넣어야 하긴 하는데…… 하며 중얼거리는 지은과 팔팔 끓고 있는 찌개를 번갈아 바라보던 주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 반찬 투정 같은 거 안 합니다.”
“반찬 투정이 아니라요! 그래도 이왕 해 드리는 건데 기호에 맞춰서 먹으면 좋겠다는 거죠!”
“이미 지은 씨의 실력은 검증된 상태 아닙니까? 정말 놀랍도록 모두의 입맛에 맞아서 길드원들이 매우 행복해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소리처럼 따뜻한 말을 해 주는 주혁을 보며 지은이 활짝 웃어 보였다.
지은의 손에서 금방금방 완성되는 음식들.
애호박은 물론이고 재료들을 아낌없이 넣어 색감도 좋은 된장찌개와 보기만 해도 부들부들한 식감이 떠오르는 계란찜, 거기에 김치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썰어 낸 배추김치와 파김치, 김. 거기에 갓 구워 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등어구이까지.
“집에 있는 게 얼마 없어서 조금 초라하죠?”
“그럴 리가요.”
갓 지은 밥까지 가득 담아 식탁에 내려놓자 지은의 차린 건 얼마 없다는 말과는 다르게 정갈한 한 상이 완성되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급격히 배가 고파 오는 것을 느낀 주혁이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가득 떠 입으로 가져갔다.
구수한 된장찌개 국물과 살캉살캉 씹히는 애호박의 식감.
부드러운 두부와 함께 씹는 맛을 더욱 살려 주는 차돌박이의 조합은 최고였다.
저도 모르게 숟가락을 바쁘게 놀려 이어서 갓 지은 흰 쌀밥을 입에 넣은 주혁의 표정이 만족스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주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은이 피식 웃음 짓고는 말했다.
“맛있어요?”
“아쉽습니다.”
“네? 어떤 게 아쉬워요?”
주혁의 입에서 아쉽다는 소리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지은은 화들짝 놀라 숟가락을 들어 찌개를 입에 가져가고는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저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동안 먹방이나 예능을 보면 맛 표현을 왜 저렇게 길게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제가 표현이 부족해서 맛있다고밖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주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순간적으로 알아듣지 못한 지은이 이어지는 주혁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걸 미미(美味)라고 하는 거군요. 아름다운 맛입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네요.”
“세상에…….”
주혁의 주책에 지은은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가려야 했다. 그런 지은을 보며 주혁도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기분이 들어 지은도 식욕이 도는 것을 느꼈다.
한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파김치를 올리고, 그 위에 김을 덮어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계란찜을 듬뿍 떠 호호 불어 가며 조심스럽게 식혀 먹기도 하면서 지은은 얼마 만에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게 귀찮지 않고 즐겁다는 생각이 드는지 생각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정말 잘 드시네요.”
즐겁게 먹긴 했지만 한 공기를 다 비우진 못한 자신과는 달리, 고봉밥이었음에도 두 공기나 깔끔하게 비운 주혁이 만족스럽다는 듯 배를 두드리는 것을 보며 지은이 중얼거렸다.
“진짜 밥에 진심인 사람…….”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과 뚝배기를 보며 설거지하긴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그릇들을 주섬주섬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설거지를 자청하는 주혁에게 고개를 끄덕인 지은이 시선을 돌린 곳은 거실이었다.
후식으로 먹을 과일은 주혁의 선택에 맡긴다는 지은의 말대로 주혁이 사 온 과일은 사과와 포도였다.
둘이서 먹을 양만 사 왔으면 됐는데, 비닐봉지가 아니라 아예 박스째로 사 온 주혁의 스케일 덕분에 거실 한편에 놓인 포도 박스와 사과 박스를 가리키며 지은이 말했다.
“그럼 저는 후식으로 먹을 과일 좀 준비할게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주혁이 이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보며 거실에 놓아둔 화이트보드를 잠깐 바라보던 지은이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과일 먹으면서 드릴 말씀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