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9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91화(92/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91화
“흐음. 향기가 이국적이네. 나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이미 다 식어서 차가워진 커피 향기를 눈을 감은 채 느끼던 시스템이 이내 컵을 기울여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천천히 커피 맛을 느끼던 시스템이 눈을 번쩍 뜨고는 말했다.
“달콤하면서도 쌉싸래한 것이 아주 맛이 좋은데?”
“다 드셔도 돼요.”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지은이 남은 커피를 다 마셔도 좋다고 허락하자마자 시스템이 활짝 웃어 보이고는 연신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나 때는 이런 차 종류는 양반들만 먹는 거였는데, 시대가 변하긴 변했군.”
“양반이라니…… 조선 시대에서 오셨나요?”
“그래, 조선. 확실히 그런 이름이었지.”
“조선 시대에도 활동을 했다고요?”
“그 시절에 꽤 유명한 양반으로 살기도 했는데,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러면 차를 얻어 마신 대가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규칙 위반이긴 한데, 이왕 한 거 조금 더 하지 뭐.”
조선 시대를 입에 담는 시스템의 과거도 매우 궁금했지만, 일단 지은은 지금 시스템이 직접 개입해 자신을 구해 준 이유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중립을 유지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면서 저를 왜 구해 주셨죠?”
“너의 존재 자체가 중립을 유지하는 가장 큰 조건이기 때문이지.”
“제 존재요?”
“잘 생각해 봐. 인간계는 원래 어느 쪽의 소관이라고 했지? 신인가 정령인가?”
“정령이었죠.”
“그럼 인간계에 ‘던전’이라는 이상 현상을 발생시킨 신의 개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
시스템의 말대로 인간계는 정령의 소관.
그런 인간계에 신이 개입해 나타난 것이 바로 던전이다.
던전을 통해 정령들을 모두 없애고, 창조의 권능을 손에 얻어 인간계를 재창조하려는 신의 의지는 바꿔 말해 정복 전쟁이나 다를 것 없는 행동이었다.
“너희가 말하는 던전과 균열은 정령들의 입장에선 명백한 신의 전쟁 선포나 다름없어. 내가 중립을 유지한다는 뜻에는 한쪽의 불필요한 세력 확장을 막는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거든.”
“그래서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각성한 인간들을 돕는 거군요.”
“그래, 신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럼 제 존재가 중립을 유지하는 가장 큰 조건이란 건 무슨 뜻인가요?”
“넌 지금 창조의 정령에게 선택받은 유일한 ‘히든’ 클래스 각성자야. 신이 먼저 일으킨 전쟁에 맞서 창조의 정령이 직접 인간계에 개입한 특별한 존재지.”
“그렇지만…….”
지은은 미묘하지만, 같은 설명으로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는 시스템의 말을 계속 곱씹어 보았다.
지은 자신은 창조의 정령과 계약한 존재이니 정령들의 편. 정확하게는 시스템이 인간계라고 부르는 이곳에 속한 존재다.
그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시스템이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계속해서 고민하던 지은의 시선이 무릎을 꿇은 채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태서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설마…….’
자신이 창조의 정령과 계약을 했는데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을 터였다. 틀림없이 태서의 온몸을 휘감고 있었던 검은 기운은 신이 직접 개입해 정령들을 타락시켰던 바로 그 기운이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시스템은 지은의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물끄러미 바라보다 지은의 표정 변화를 확인하고는 여유롭게 마시던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눈치챘어?”
“……설마.”
“엄밀히 말하면 내가 직접 이야기해 준 것이 아니어서 더 이상의 규칙 위반은 아니게 됐으니 다행이군.”
“던전 밖에도 정말 타락의 기운이…… 어떻게 인간에게 직접…….”
“하지만 지금 네가 뱉은 말은 명백한 중립 의무 위반이야.”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지은을 바라보던 시스템이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꺼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촤르륵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두루마리에 쓰인 여러 글자 중 해당 항목을 찾아낸 시스템이 지은의 앞에서 그것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우주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따라서 나의 판단하에 행동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으니, 직접 개입한 행동에 책임을 지려 한다.”
“무슨 소리예요! 지금 던전 밖에도 신이 인간을 타락시키며 개입했잖아요!”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려는 상황에 다급해진 지은이 시스템을 저지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만, 그런 지은의 말을 시스템이 차갑게 자르며 말을 이었다.
“신의 계획을 직접 개입해 저지했으며 신의 계획을 뜻하지 않게 정령 쪽에게 알리게 되었으니 ‘대리자’의 목숨을 구해 낸 것을 최선으로 삼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 그 대가로 ‘대리자’들의 해당 기억을 모두…….”
목숨을 구해 낸 대리자가 지칭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눈치챈 지은이 다급하게 손을 뻗어 시스템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를 잡으려 했지만, 이내 이어진 시스템의 말에 지은은 몸에 힘이 탁, 하고 풀리는 것을 느꼈다.
“삭제한다.”
“그게 무슨!”
“대리자들의 기억을 모두 삭제하는 것과 함께 해당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양쪽 진영에 통보한다. 통보를 받은 양쪽 진영은 해당 사건에 대해 비밀을 함구하는 것으로 중립을 지킬 의무를 지니며 해당 의무를 거부할 시, 거부한 진영에 중립위원회가 직접 개입할 자격을 지닌다.”
시스템의 선언과 함께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리던 지은의 앞에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시스템창이 등장했다.
[직접 개입을 통한 대가로 지불하기로 결정된 해당 기억이 모두 삭제됩니다.]“안 돼…….”
[대가로 지불된 대상의 기억을 모두 삭제합니다.]눈에 아무리 힘을 주려고 해도 감기는 눈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두루마리를 접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스템의 얼굴이 점차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완전히 눈을 감은 지은의 귓가에 시스템창의 알림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시스템이 설정한 시간대로 대상이 이동됩니다.]“그래도 이번엔 지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시간의 재구축. 막대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환하게 점멸하는 공간 속에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시스템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 * *
“으으으…….”
깜짝 이벤트로 진행했던 크리스마스 당일 판매가 의도와는 다르게 너무나 대놓고 [시작의 던전]에서 이뤄진 덕에 예상했던 판매량을 아득히 넘어서 프리미엄 결제 금액의 몇 배를 회수할 수 있었다.
그것 말고도 정체를 꽁꽁 감추고 있던 지은이 짠하고 등장한 크리스마스 이벤트 덕분에 헌터 게시판은 며칠 내내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미디어에 직접적으로 얼굴을 노출하진 않았지만,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푸드 트럭과 함께 지은의 실물을 직접 확인했기에 그 인기는 더욱 치솟고 있었다.
[사장님이 진짜 친절하던데] [거기에 음식도 진짜 맛있었음.]“이러다 사람들이 던전 밖에서도 알아보는 거 아니야?”
자고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으로 헌터 게시판을 확인하고 있는 지은을 보며 옆에 누워 있던 까망이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정신 차려라, 주인. 한정 퀘스트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으, 또 잔소리하네.”
<가장 중요한 한정 퀘스트는 뒷전이고 매일 핸드폰만 그렇게 보고 있으니 하는 말이 아니냐!>
“그러지 말고 이거 봐봐.”
<네 칭찬 글이라면 이미 나도 수없이 많이 봤다!>
“오…… 언제 찾아봤어? 아무튼 지금 이거 좀 봐봐.”
지은의 말에 까망이가 지은이 내민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고는 이내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
<……대균열에 대해선 왜 찾아보고 있는 거냐?>
“이태백 헌터와 이태서 헌터의 가장 끔찍한 기억일 테니까.”
<…….>
“해결 방법을 찾으려면, 원인부터 내가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어서 대균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찾아본 거야.”
그렇게 말하며 검색창을 내리고 있는 지은을 잠시 바라보던 까망이가 앞발을 들어 지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고는 말했다.
<너에게도 그렇게 좋은 기억이 아닐 텐데 뭐 하러 계속 보고 있는 거냐! 일단 일어나서 좀 씻어라!>
“왜 그래? 내 폰 돌려줘!”
<내일이면 새해다! 인간들에게 새해가 얼마나 중요한 의식인지 나도 아는데, 새해에도 유일한 각성자가 이렇게 빈둥대는 꼴은 못 본다!>
까망이의 말에 지은이 책상 위의 달력을 확인했다. 12월 31일.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까망이의 말 덕분에 지은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약속을 떠올리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야 했다.
“맞다! 해돋이 보러 가기로 했었지!”
길드원들과 함께 새해맞이 해돋이를 보러가기로 했던 약속을 잊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오늘 저녁엔 송년회도 하기로 했는데!’라며 부리나케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는 지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까망이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한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 지은의 목숨이 위험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정령계의 복구에 힘을 쓰고 있던 까망이는 갑작스러운 시스템의 개입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중립을 유지해야 할 시스템이 갑작스럽게 개입했고, 시스템이 개입한 이유가 지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일련의 사실을 모두 확인한 까망이는 지은이 지금 자신의 앞에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했다.
칫솔을 물고 다가온 지은이 자신에게서 핸드폰을 다시 가져가 자고 있던 사이 온 연락들에 답장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까망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또 바보같이 잃을 뻔했구나.>
“어?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주인, 턱에 치약이 흐르고 있다.>
까망이의 지적에 턱 아래 손을 급히 댄 지은이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까망이는 자신의 의도대로 오늘 지은이 태서를 만나지 않도록 막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은이 직접 알아채지 않는 이상 태서가 신의 의도대로 타락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말할 순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로 신 역시 같은 방법으로는 지은의 목숨을 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시스템의 개입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을 테니, 적어도 신이 던전 밖에서 태서를 이용해 지은의 목숨을 노릴 걱정은 없을 터였다.
당분간은 정령계의 복구보단 지은의 안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정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에 태서를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었기에 까망이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주인을 믿을 수밖에 없나.>
급한 불은 일단 남의 손을 빌려 꺼 놨으니, 이제는 다시 불이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자신의 소관일 터였다. 시스템이 직접 개입해 시간을 움직인 시간대가 지은이 태서를 만나기 전이라는 것을 봤을 때, 지은이 태서에게 가지고 있는 의문은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까망이의 생각대로 화장실에서 나온 지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태서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태서 헌터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이유가 뭘까?”
<거짓말이라니?>
“이태서 헌터는 대균열로 가족을 잃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거든. 뭔가 수상하지 않아?”
<…….>
“그래서 송년회에 가기 전에 한 번 직접 만나 보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까망아?”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물어 오는 지은의 말에 까망이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말했다.
<나는 반대다아아아아아아아! 절대 안 된다!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