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00
이제 한 가지만 해결하면 되나?
“제 사생활입니다.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제가 알려드려야 할 의무는 없는 거 같은데요?”
“짜식이 선배들은 파티장 가서 고생했는데 혼자 빠지고 외박을 해!?”
“부러우면 선배님도 파티 가지 말고 외박하지 그러셨어요. 누가 억지로 끌고 간 건 아니잖아요? 제가 집합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
나를 갈구던 선배도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했다.
그들이 파티에 참가한 이유는 축협 간부들을 너무 존경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한국 축구계에서 밥 먹고 살려면 지금부터 인맥을 만들고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딴 놈들에게 밥 빌어먹을 일이 없기 때문에 매사 당당할 수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하이팅크 감독도 파티에 참석해 사진만 찍고 10분 만에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왜 그딴 걸 해서 여럿 피곤하게 하냐구!
우리는 그날 저녁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 환영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간단한 기자회견을 하고 파주로 돌아가 해단식을 했다.
참으로 기나긴 월드컵 일정이었다.
불과 4년 전에는 딱 3경기 하고 감독도 없이 해산했는데 이번에는 토너먼트 끝까지 갔다.
경기 결과에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 상대한 브라질이 너무 강했다는 걸 알기에 다들 패배를 받아들였다.
나 역시도.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건우야…”
“왜요?”
“신문 봤어?”
“신문? 왜요?”
오전만 해도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준우승을 찬양하는 기사가 모든 신문 1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석간으로 나온 [제일 스포츠] 1면은 분위기가 확 달랐다.
[단독! 월드컵 스타의 눈살 찌푸려지는 일탈 행위!]놀랍게도 나와 케이코가 손잡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었다.
내가 감히 축협이 주최한 축하 파티에 아프다고 불참하고는 몰래 숙소를 이탈해서 일본 여자와 술을 마시고 외박을 했다는 기사 내용이다.
나의 평소 건방진 태도를 들먹이며 나 때문에 이길 뻔한 결승전을 망쳤다는 노골적인 비난 기사였다.
“야~~ 이걸 어떻게 찍었지? 앵글이 죽이네~”
“인마! 지금 감탄할 때야!?”
“뭐가 문제에요? 내가 형처럼 유부남도 아닌데.”
“원래 여론은 이런 때에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씌울 욕받이를 찾는다구. 걸리면 한동안 엄청 괴롭힐 거야.”
“설마 월드컵 골든볼을 받은 저를 까겠어요? 바보들도 아니고?”
“이 녀석이 외국에 오래 있더니 한국 분위기를 모르네.”
“됐구요. 다들 3일 후에 사무실로나 오세요.”
나는 걱정하는 선배들을 오히려 안심시키고 집으로 돌아갔다.
케빈 킴과 최재성은 현재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선수들과 계약을 준비 중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기회로 최대한 많은 선수를 유럽으로 진출시킨다는 목표다.
이는 2006년 월드컵 우승을 위한 첫 번째 단추다.
“아들~!! 힘들지! 몸 괜찮아!?”
“당연히 괜찮죠. 누구 아들인데.”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니 엄마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나를 반겼다.
돈이 지위를 만든다고 하던가.
울 엄마도 이젠 제법 부잣집 사모님 느낌이 났다.
“뭘 이런 걸 다 차렸어요? 대충 먹지.”
“오늘은 엄마가 솜씨 발휘를 했으니까 잠자코 다 먹어.”
“알겠어요.”
부모님한테는 미안했지만 나는 그냥 신사동 내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며칠 푹 자고 싶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심지어 뭘 먹는 것도 귀찮았다.
하지만 아들 된 도리로 오늘 초대는 거절할 수 없었다.
자기 아들이 티비에 나와 얻어맞고 다치는 걸 실시간으로 보셨을 텐데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아팠겠는가.
“갈비가 진짜 맛있네.”
“맛있지!?”
“예. 입에서 살살 녹네요.”
사실은 짰다.
우리 엄마의 간은 원래 짰는데 외국에서 간이 안 된 건강식만 먹다 보니 짠맛에 더 민감해졌다.
어쨌든 나는 소갈비찜, 전복 버터구이, 나물 4종 세트, 조기구이, 김치찌개 등을 모두 싹싹 먹어치웠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엄마가 차린 요리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지혜의 표정을 보니 한기룡과의 일도 깨끗하게 끝난 모양이다.
아버지도 모처럼 아들이 와서 기뻐했는데 표정이 살짝 뭔가 좀…
“그렇구나.”
신문보급소를 하는 아버지가 나의 스캔들을 다룬 석간신문을 못 봤을 리가 없다.
엄마와 지혜는 모르는 분위기고 아버지만 아는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머. 내 정신 좀 봐. [보고픈 당신] 할 시간이네.”
“아이구! 이 여편네야! 간만에 가족이 모두 모였는데 그 한심한 드라마를 지금 꼭 봐야겠어! 이리 줘!”
아버지가 엄마의 손에서 티비 리모컨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봤다.
역시 알고 계셨구나.
티비를 틀었다간 나의 뉴스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걸 알기에 아버지는 나름 순발력을 발휘한 거다.
“이 양반이 미쳤나!? 갑자기 뭐 하는 짓이에욧!”
“그냥 좀 있어!”
“아버지. 그냥 티비 켜세요.”
“어… 괜찮을까?”
“그럼요. 나중에 저 없을 때 아는 것보다 지금 빨리 아시는 게 좋아요. 제가 설명할 수 있잖아요.”
“그래…”
“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나는 아버지에게 리모컨을 받아 티비를 켠 다음 뉴스 채널로 돌렸다.
[월드컵이 끝난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팀의 에이스 김건우 선수가 축협 공식 행사를 빠지고 숙소를 무단이탈해 성매매 여성을 만난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고새 진도가 많이 나갔네.
한국 언론은 한나절 만에 케이코를 창녀로 만들어버렸다.
엄마, 아빠, 여동생이 일제히 나를 보았다.
티비에서 뉴스 앵커가 점잖게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인성 논란, 폭행 시비 등 과거 일들을 쭉 들먹이며 본인은 도덕의 신이라도 되는 양 떠들었다.
지금 떠들고 있는 뉴스 앵커는 10년 후쯤 지하철에서 여자 치마 속 몰카를 찍다가 걸려서 실형을 받고 방송가에서 쫓겨난다.
“훗. 병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좀 멍했는데 덕분에 한 가지 진실을 다시 깨달았다.
인생은 라이브라는 거.
“저거 다 개소리인 거 아시죠?”
“그치! 건우야! 뉴스에서 헛소리하는 거지!?”
“당연하죠.”
부모님은 당연히 나를 믿어주셨다.
티비에서는 계속 나와 케이코의 사진을 확대해서 보여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근데… 저 여자애는 누구니…?”
부모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니까 언론이나 방송도 기본적 사실 확인 없이 일단 지르고 보는 거다.
시민의 양심인 척 거드름을 피우지만 사실 조회수로 먹고 사는 가련한 인종들이니까.
***
다음 날 오후.
나는 공식 기자회견을 잡았다.
공식도 싫고 기자도 싫고 회견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다들 바쁘실 텐데 많이 찾아와 주셨네요.”
기자들의 분위기는 묘했다.
그동안 취재에 응하지 않던 내가 자빠지는 걸 보고 싶어서 왔는데 내가 너무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바쁜 기자님들을 이렇게 모신 건 어제 보도된 뉴스에 대한 진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기자들과 나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일단 듣는 시늉을 했다.
나는 알고 있다.
저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질문으로 나를 골탕 먹일까 하는 생각뿐이라는 걸.
“저만의 일이라면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언론에 오해를 받은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 건은 다릅니다. 어제 기사는 저뿐 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있던 여성을 모욕한 심각한 범죄 행위입니다. 어제 보도는 국제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기자가 나의 말을 끊고 지멋대로 질문을 했다.
너 잘 걸렸다.
“그럼. 사진 속의 여성이 직업적 성매매자, 즉 창녀가 아니라는 겁니까? 그걸 증명하실 수 있어요?”
“기자님.”
“예?”
“한 번 만 더. 내 앞에서 그 단어를 들먹이면 진짜 처맞습니다. 조심하세요. 이번 한 번만 봐 드릴게요.”
“뭐라구요!?”
“지금 대놓고 기자를 협박하는 겁니까!?”
기자들이 경악했다.
다들 숨겨두었던 악의를 드러내며 단체로 난리를 쳤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것들이.
“조용! 조용히 하세요!”
나는 기자들을 진정시키고 살짝 뜸을 들이며 주위를 집중시켰다.
이 한방으로 게임을 뒤집어야 한다.
“사진 속의 여성은 제 약혼녀입니다. 이름은 마츠다 케이코. 우리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로 교제 중입니다. 기자님의 약혼녀를 누가 창녀라고 부르면 기자님도 그 새끼 아가리를 찢어놓지 않겠습니까? 어떠세요? 제가 오바했나요? 오바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저는 기자님 같은 인격자는 못 되거든요. 저는 누가 내 가족을 대놓고 모욕하면 꼭지가 돌아버립니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날아가죠.”
“…”
기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여기서 반론을 제기하면 파렴치범을 옹호하는 편에 선다는 걸 다들 알기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케이코는 하카타 블루샤크 구단 직원으로 저와 오래 만나온 사이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대회가 모두 끝나고 단둘이 데이트를 즐긴 게 그렇게 잘못된 겁니까? 파티에 참석 안했다구요? 대한민국이 무슨 북한인가요? 그걸 사진으로 몰래 찍어서 어떤 사실 확인도 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게 언론입니까? 양아치입니까? 이게 대한민국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죠? 제 약혼녀의 마음과 가족들 마음은 생각해 보셨나요?”
“…”
기자회견장이 장례식장처럼 조용해졌다.
여기서 피니시.
“변호사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뒤에 서 있던 최재성을 불렀다.
그가 오늘의 마무리 투수다.
그는 평소와 달리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두툼한 서류 뭉치를 들고 앞으로 나와 내 옆에 앉았다.
괜히 대한민국 최고 로펌에 다녔던 게 아니다.
그냥 옆에 앉은 것만으로 후광이 생겼다.
나는 그에게 서류 뭉치를 받아 기자들을 향해 흔들었다.
“이건 이번에 기사를 낸 신문사와 그걸 받아쓴 언론, 방송사들에 대한 고소장입니다.”
“…”
기자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늘 모인 기자 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기사를 받아쓴 인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 로펌 [박앤최]에서 소송에 관한 모든 걸 전담해 주시기로 했습니다. 알다시피 제 명예는 꽤 비쌉니다. 월드컵 최우수 선수니까요. 그런 저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그에 대한 천문학적인 피해 보상비를 토해내야 할 겁니다. 그럼.”
나는 개운하게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여론이 뒤바뀌는 데는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을 타고 기자회견 내용이 전파되었고 밤새 나를 비난하던 인간들은 땅속으로 숨어버렸다.
“이제 한 가지만 해결하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