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05
오늘 밤이 싱글로 보내는 마지막 밤이야?
“나와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차범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는 한국의 축구인 중에서 나의 지금 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의 유럽 진출 길을 그가 처음 닦아놓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저는 선배님이 [차범진 축구재단]을 설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차범진 축구 교실이라면 지금도 하고 있는데…”
“알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위대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주 영세하게 하고 계시죠.”
“그. 그건.”
차범진이 움찔했다.
평생 독일에서 축구만 했기 때문에 사업이나 한국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던 그는 한국에서 단체를 운영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나는 전생에 그의 자서전을 읽고 알았다.
“영세한 단체라… 미안하군.”
차범진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독일에 귀화했으면 평생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떵떵거리고 살았을 그는 모든 회유를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축협의 정치판에 끼지 않고 가장 춥고 낮은 곳을 찾아갔다.
유소년 축구.
당시 한국의 유소년 축구문화는 구타와 폭력, 뇌물과 담합이 일상적인 곳이었다.
차범진은 그런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 지금까지 애써왔다.
하지만 한국 축구 핵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힘은 너무 강했고 차범진 개인의 힘은 너무 약했다.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차범진의 명성이면 엄청난 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축구판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차범진은 대부분의 경력을 독일에서 쌓았기 때문에 한국에는 인맥이나 세력이 없었다.
그리고 워낙 청렴하고 깨끗한 성격이라 끈끈하게 뭉쳐서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 한국 축구판에서는 사람이 모여들지 않았다.
그런 고립된 상황에서도 열심히 유소년들을 위해 애써왔는데 내가 “영세하다.”고 했으니 화가 날만 하다.
“제 표현이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지금까지 재능있는 유소년 선수에게 차범진 상도 수여하고 차범진 축구교실도 운영하며 한국 축구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오셨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이 한국 축구 기득권들의 견제에 밀려 역부족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건우. 자네 여기 와서 나를 모욕하고 싶은 건가?”
“아닙니다. 선배님.”
나는 바로 무릎을 꿇었다.
어째 요즘 무릎 꿇을 일이 많아지네.
“뭐 하는 거야!? 일어나게.”
“선배님. 저는 차범진 축구재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축구 단체가 되길 바랍니다. 제 진심을 전하는 뜻에서 이번에 월드컵 보너스로 받은 6억을 전부 기부하겠습니다. 제가 감히 차범진 축구재단의 첫 번째 기부자가 되도 되겠습니까?”
“… 기부를!? 6억이나?”
“그냥 6억이 아닙니다. 그 6억이 60억이 되고 600억이 되도록 만들어 줄 사람도 데려왔습니다.”
“지금 무. 무슨.”
“안녕하십니까. 미래자산운용 주영광이라고 합니다.”
나는 주영광과 함께 차범진에게 사업 설명을 시작했다.
“[차범진 축구재단]이 새롭게 태어나려면 우선 수익과 지출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재단 기부금을 펀드로 운용하면 원금은 계속 불리면서 동시에 수익금으로만 운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당연히 가능하죠. 처음에 원금을 바짝 모아서 규모의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 시간이 갈수록 재단의 자금은 복리로 늘어날 겁니다. 투자 포트폴리오는 미국 주식과 채권, 한국의 부동산 등 다양하게 짜서 위험을 분산시킬 것이구요. 외부의 어떤 도움 없이도 스스로 확장이 가능한 재단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
차범진은 주영광의 설명을 듣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본인의 가장 큰 고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미심쩍은 점이 있는 표정이다.
“돈 문제는 앞으로 주영광 대표와 상의하시면 되구요. 저는 사업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
“저는 차범진 재단에서 재능있는 한국인 유소년 선수를 직접 발탁해서 관리하고 훈련시켜 유럽구단으로 진출시키는 사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발탁-> 관리-> 훈련-> 입단까지 모든 과정을 재단에서 직접 하는 거죠.”
“재단에서 직접?”
“예. 그동안 해오셨던 여러 유소년 축구 사업들을 좀 더 직접적이고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전문성을 갖춘 최고의 직원들도 영입해야죠. 그동안 혼자 너무 많은 일을 하셔야 했습니다. 이제 실무는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시고 진짜 중요한 대표의 일만 하시면 됩니다.”
“…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래서 주 대표 같은 돈 전문가를 데려온 겁니다.”
아직도 차범진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그리고 차범진 재단에서 관리하는 유소년 선수들은 전부 무료로 서비스를 받게 하는 겁니다.”
“무료로?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운영이 가능할까?”
“예. 대신 나중에 프로선수가 되어 첫 계약을 할 때 계약금의 10%를 재단에 기부하도록 하는 겁니다. 10명의 천재를 발굴해도 1명이 성공하기 힘든 게 프로 스포츠니까 보험을 드는 거죠. 성공한 1명의 선수가 나머지 9명의 선수의 비용을 보전하는 겁니다.”
“…”
차범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때로는 냉정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있어서 주영광과 박준표는 바짝 긴장했다.
반면 나는 느긋했다.
전생에서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의 가슴 속 순수한 열망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 한국 축구밖에 모르는 바보다.
권력욕, 명예욕, 재물욕 같은 게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이런 삶을 살 리가 없다.
그는 나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내가 제시한 길이 바로 한국 축구를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좋아. 제안을 받아들이지.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
“… 뭐죠?”
“건우. 네가 우리 재단의 이사가 되어줘야겠어.”
살짝 긴장했던 나는 씩 웃고 말았다.
“저 같은 놈으로 괜찮다면 기꺼이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사장님.”
이렇게 나는 원하는 걸 얻어냈다.
그와 나의 관계는 선후배에서 이사와 이사장으로 바뀌었다.
이후 우리는 사모님이 차려주신 독일식 과자와 차를 먹으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범진 이사장의 동의를 얻어 나와 차범진의 대화는 박준표에 의해 녹음되었다.
주제는 당연히 [한국 축구의 미래]다.
나와 차범진의 대화는 내일 스포츠 고려 신문을 통해 독점 보도될 거다.
[차범진과 김건우. 두 축구 영웅의 만남]1면부터 4면에 걸쳐 나와 차범진의 대화가 대담 형식으로 실린다.
지면에는 한국 축구의 본질적인 문제점부터 시작해서 해결 방안, 앞으로의 비전이 나온다.
내가 이런 기사를 기획한 이유는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 여론을 만드는 이유도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기부금]바로 거물 기업인들의 기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아직 월드컵 준우승의 흥분이 남아있었고 차범진 재단에 기부하는 건 한국 축구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었기에 초반에 짭짤하게 거액을 땡길 수 있을 거다.
지금 최대한 목돈을 확보해야 오히려 앞으로 재단을 운영하는데 남의 눈치를 안 볼 수 있다.
이게 자본의 역설이다.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사장님!”
“김건우 이사. 잠깐만 이리로.”
“예?”
저녁 식사에 독일 와인까지 얻어먹고 다들 얼큰하게 취해 돌아가는데 차범진이 슬쩍 나만 불렀다.
“축구만 야무지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사업도 아주 얄밉게 잘하는구나! 으하하!”
“아악! 이사장님! 저 재활 중인 선수입니다!”
“얄미워 죽겠어!”
차범진이 어깨동무를 하다가 살짝 헤드록을 걸었는데 힘이 현역 프로레슬러 같았다.
아직 살아있구나.
차범진이 헤드록을 풀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다 써. 나는 그걸로 족해.”
“명심하겠습니다. 이사장님.”
나는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기부 문제는 해결되었다.
앞으로 나는 모든 기부를 차범진 재단을 통해서 할 거다.
괜히 뭐 하는지도 모를 인간들에게 돈을 버릴 일이 없었다.
좀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차범진이 흔쾌히 허락해 준 덕분에 나는 졸지에 재단 이사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
다음 날.
스포츠 고려 1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렸다.
박준표 기자는 5시간에 걸친 우리의 잡담을 멋지게 편집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차범진과 김건우. 대한민국 축구 영웅들의 대화.] [한국 축구의 미래와 차범진 축구재단의 비전]일반인들에게는 그저 월드컵 스타가 과거 한국 레전드를 찾아가 덕담을 나눈 훈훈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축협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들에게는 위협적인 쿠데타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담은 차범진과 내가 축협 기득권에게 던지는 선전포고였다.
“건우야. 너무 빨리 칼을 뺀 거 아니냐? 좀 더 일을 진행시키고 나서 이런 기사를 내보내는 게…”
CK 에이전시를 갔더니 케빈 킴이 신문을 보며 걱정을 했다.
둘은 월드컵 끝나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수많은 계약을 진행했다.
“과거였으면 형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어요. 이제 인터넷 시대가 열렸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론을 발 빠르게 이용해서 힘을 키워야 해요. 월드컵 빨이라는 게 언제까지 계속되는 게 아니니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내친 김에 배팅한 도박이었다.
결과는 좋았지만.
“… 그렇구나.”
“물론 여론만 끌어들이려는 건 아니에요.”
“그래?”
“자본도 끌어들여야 해요. 아무리 멋진 기획도 자본이 없으면 불가능하니까요. 저와 차범진 선배의 투샷이 꽤 그림이 나오잖아요? 대한민국 기업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을 거에요. 재성이 형.”
“왜?”
“형이 다리 놔 주실 거죠?”
“당연하지.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글로벌 기업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겠냐.”
“저 자만심…”
최재성의 말은 얄미웠지만 일처리는 확실했다.
어제 환경미화원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딸에게 직접 전화해서 일을 처리했다.
본인이 알고 있는 최고의 손해배상 소송 전문 변호사를 붙여준 거다.
가명훈 집안은 이제 집안 기둥뿌리까지 다 뽑힐 거다.
“사과? 반성? 다 필요 없고. 그런 새끼는 집안 재산을 탈탈 털어서 알거지로 만들어야 돼.”
최재성은 보기보다 정의감도 투철한 사람이다.
나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짜 바쁜 하루였어.”
재활원에서 나오고 정신없이 일했다.
프로선수는 단순히 운동만 잘해서는 안 된다.
일의 절반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신사동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져 누웠다가 순간 벌떡 일어났다.
“내일 케이코가 오는 날이잖아!?”
어찌나 정신없었는지 내일 케이코가 한국에 입국한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오늘 밤이 싱글로 보내는 마지막 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