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11
저런 드리블은 처음 봐
“차비… 앙드레…”
차비 에르난과 앙드레 이니에타가 선배들 눈치를 보며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
오늘 훈련에서 실수를 많이 하던데 그게 민망했던 모양이다.
드레싱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파악했다.
숫자가 제일 많은 네덜란드 선수들은 한쪽에 모여 있었는데 나를 둘러싼 소동에도 냉담한 표정이었다.
만능 미드필더 필립 코쿰, 수비수 프랑키 디 부르, 총알 탄 사나이 오베마스, 전설의 라이트백 레이지거 등등 완전 오렌지 천지였다.
그중에서도 스트라이커 파드릭 클루이베르는 뭔가 얼이 빠져 있었다.
어제 늦게까지 술이라도 퍼마셨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기 상황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모든 건 피치에서 결정 난다.
인사성 밝다고 주전 되는 거 아니다.
프로 선수는 본인 가치를 피치에서 서로에게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훈련 세션을 시작합니다!”
내가 훈련에 참여하자 네덜란드 녀석들이 바로 송곳니를 드러냈다.
내가 유니폼 팔이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겠다는 듯 거칠게 밀어붙였다.
월드컵 골든볼까지 받은 나에게 이런 대우는 좀 억울했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긴 월드컵도 아니고 한국도 일본도 아닌 유럽.
축구의 본고장이다.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 코치, 감독, 단장, 심지어 직원까지 모두 자기가 세계 축구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들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변방에서 벌어진 그들만의 월드컵이었을 뿐이다.
특히 유럽팀이 대부분 광탈하고 비유럽 팀들이 선전하다가 남미 팀이 우승했기 때문에 더더욱 인정하기 싫어했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4개국의 축구부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삑- 삑- 삑- 삑- !
어떤 실전 경기보다 더 긴장되었다.
바르사의 모든 사람들이 피치로 들어서는 나를 지켜보았다.
멀리서 스포츠 기자들이 망원 카메라로 나를 찍어댔다.
한국에서 온 동양놈이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런 분위기가 연습장에 가득 찼다.
“그렇다면 보여주지.”
나는 7대7 미니 게임에서 월드컵 이후 마빈 트레이너와 개발한 새로운 드리블 기술을 선보였다.
파바밧- 파밧- 팟- 파밧-
“저런 드리블은 처음 봐.”
나의 신무기에 선수들이 당황했다.
나는 속도와 폭발력에서 로나우도 같은 선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마빈 코치의 땅강아지 트레이닝을 받아들였다.
자동차 레이싱으로 비유하면 엔진 성능을 키우는 대신 접지력에 올인한 셈이다.
새로운 드리블은 방향 전환력을 극대화한 보법으로 짧고 빠른 스텝을 불규칙하게 밟으며 계속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다.
이걸 해내려면 초인적인 코어 힘이 필요하고 무게 중심을 최대한 낮춰야 하며 부드럽고 질긴 근육이 필요했다.
나는 여름 내내 마빈 코치와 땀을 흘리며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왔다.
극단적으로 빠른 방향 전환에 나를 마크하던 선수들이 나가떨어졌다.
훈련의 첫 성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어쩌면 내가 바르사의 암흑기를 바꿔 놓을 지도.
삐이이익- ! 삑- !
미니 게임을 지켜보던 판힐 감독이 호각을 불며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예?”
“왜 본인 포지션을 지키지 않지!?”
판힐의 시뻘건 얼굴을 보고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느꼈다.
“처음이라 제가 실수했나 봅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여기는 남미 뒷골목이 아니야. 항상 자신의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움직여.”
“예!”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나의 새 드리블 스킬을 쓰지 않았다.
대신 판힐 감독이 원하는 정확한 포지셔닝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가 정확하게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첫날이라 그런가.
나의 플레이는 곧 위축되었다.
그의 지도법은 하이팅크와 확연히 달랐다.
한국에서는 하이팅크의 지도법도 깐깐하고 세심하다고 투덜댔는데 판힐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수비와 조직적 압박을 철저하게 훈련하고 대신 공격은 공격수들의 자율에 맡겨 두었던 하이팅크와 달리.
판힐은 공격진도 수비진처럼 완벽하게 약속된 플레이를 하길 원했다.
11명이 포지션을 철저히 유지하며 한 몸처럼 움직이는 팀이 판힐의 목표 같았다.
근데 그게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없잖아?
삑- 삑- 삑- !
“사비! 드리블이 너무 길어! 바로 처리하란 말이야!”
판힐은 신경질적으로 호각을 불며 에이스 사비올란을 혼냈다.
공격수의 본능으로 수비수를 제치려던 건데 그것조차 저지를 당하니 짜증이 난 사비올란은 잔디를 차며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다.
“뭐. 이런. 훈련이 다 있어.”
이런 분위기에서도 네덜란드 선수들은 묵묵히 감독의 지시를 따랐다.
판힐이 그들에게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네덜란드 선수들은 어떤 감정적 반응도 하지 않았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클론 병사들 같았다.
“오… 저걸 원하는 건가?”
그 와중에 눈에 띄는 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스트라이커 파드릭.
그는 중앙에서 어슬렁대다가 볼이 오면 순간 눈에 불이 켜지며 육식동물처럼 날렵하게 움직였다.
원터치 패스, 해딩 패스도 날카롭고 등을 지고 서서 버티며 동료가 침투할 시간을 벌어주는 플레이도 대단했다.
거기에 스스로 피니시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췄으니 이상적인 포스트 플레이어였다.
전생에서 하이라이트 골 영상을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경기 중에 보여주는 번뜩이는 연계능력은 엄청났다.
시청자보다 함께 뛰는 동료들이 더 인정하게 되는 선수랄까.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선수들을 하나하나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개막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반드시 판힐의 마음을 빼앗아서 주전을 차지할 거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생각도 기다릴 생각도 없다.
내가 내 힘으로 차지할 거다.
***
훈련을 마치고 나는 바로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갔다.
유찬이가 런던에서 나를 찾아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입국장에서 거칠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짜식이! 영국물 좀 먹더니 분위기가 요상해졌다?”
“일 때문에 정신없어서 그렇지. 뭐.”
유찬이는 이제 혼자 런던 본사를 지킬 정도로 성장했다.
한일 월드컵 전후로 케빈과 최재성이 한국에서 영업을 뛰는 동안 유찬이는 런던에서 현지 직원들을 부리며 사무실을 운영했다.
두 형의 우려와는 달리 문제없이 잘 해냈다.
월드컵 기간동안 실력이 급성장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유찬이는 고급 맞춤 슈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를 했다.
“짜식이 완전 명품병 걸린 된장남이 됐네? 너 돈 많냐?”
“다 비즈니스 때문이야.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구. 여긴 그런 세계야.”
“허허~ 짜식 멘트치는 거 보게나.”
한때는 부부처럼 매일 붙어살았는데 못 본 사이에 꼭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낯설었다.
유찬이가 바르셀로나까지 온 이유는 집 때문이었다.
“바닷가, 운동할 수 있는 정원, 넓은 주방, 채광이 좋은 거실, 완벽한 보안까지. 니가 원한 모든 조건이 들어있는 집이야.”
“흠… 괜찮네. 바로 계약하자. 벌써 호텔 생활이 지겨워 죽겠어.”
나의 바르셀로나행이 결정되자마자 유찬이는 지역 부동산 사무실을 뒤져 내가 요구한 집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200만 유로(한화 28억)에 나온 저택이 있어 냉큼 예약금을 냈다.
나는 부동산업자와 그 집에 가서 실사를 마치고 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바르셀로나에 집 가진 사람이 된 거다.
크림색 2층 저택은 외관도 훌륭했고 내부도 고급스럽고 널찍했다.
전 주인이 고급 스페인산 수제 가구를 놓고 가서 귀찮게 따로 살 필요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놀란 건 유찬이의 스페인어 실력이다.
부동산업자들과 농담도 자연스럽게 하고 꽤 어려운 법률용어도 막힘 없이 술술 이야기했다.
“짜식이 언제 스페인어가 이렇게 늘었어? 완전 현지인 같은데.”
“런던 사무실에도 히스패닉이 많거든. 매일 쓰니까. 금방 늘더라. 너는 월드컵 준우승도 하는데 고작 외국어 하나에 버벅거려서야 되겠냐?”
“오~~ 이 거만함!”
나는 오랜만에 유찬이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유치한 장난을 치며 놀았다.
내가 살게 된 저택은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좀 안으로 들어온 낮은 언덕에 있었다.
고급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자체 경비원들이 있었고 외부인은 출입 금지였다.
저택 발코니에서 보면 해안선이 그림처럼 쫙 펼쳐졌다.
“와~~ 이거 완전 술 땡 기는 풍경이네.”
바다를 한참 보고 있자니 입가에 짭짤한 소금기가 감돌았다.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유찬이가 알아서 스페인어로 주문을 하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두 시간 동안 계속 요리와 와인이 나오는 디너 코스를 시켜놓고 케이코를 기다렸다.
그녀는 오늘 혼자 시내로 가서 어학원에 등록하고 대학교 입학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스포츠 마케팅을 배우려고 했는데 언어도 함께 해야 해서 앞으로 고생길이 열렸다.
“오빠~!!”
케이코가 식당으로 들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바다가 보이는 내부 풍경에 살짝 놀랐다.
이 동네는 관광지인 시내와는 달리 은밀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는 내 친구 유찬이. 인사해.”
“안녕하세요. 케이코에요. 오빠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저는 이유찬이라고 해요. 건우가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겁나네요.”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어요. 죽을 때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 그 뭐더라… 부…. 부… 불… 아알.”
“케이. 그만. 됐어.”
“왜요? 어렵게 배운 아주 재밌는 단어인데.”
“그만해. 다 알아들었으니까.”
유찬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순진한 놈.
우리 셋은 느긋하게 요리를 먹으며 스페인 와인을 마셨다.
최고급 이베리코 하몽과 멜론으로 시작해서 새우, 조개, 문어, 대구, 송아지고기 등 다양한 요리들이 계속 나왔다.
각 요리에 마리아주를 맞춰서 나오는 와인의 조합은 환상적이었다.
상큼한 스페인 샴페인 카바로 시작해서 점점 진한 포도주를 실컷 마신 우리는 흠뻑 취하고 말았다.
나와 유찬이는 옛날이야기를 하며 한참 웃었다.
케이코도 내 어린 시절이 궁금했는지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다 우리가 코치나 선배에게 맞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하니까 흠칫 놀랐다.
너무나 폭력적인 한국의 학원 축구 문화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그거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유찬이 자식이 ‘그놈’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가명훈은 좀 안됐더라.”
유찬이의 말에 잘 마신 술이 확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