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14
곧 다시 만나자 레오
“반갑습니다. 크로이프 선생님.”
나도 모르게 90도로 인사했다.
크로이프는 깜짝 놀라더니 내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선생님은 무슨. 그냥 요한이라고 불러요.”
“아닙니다. 선생님.”
“하하하! 역시 동양 친구라 예의가 바르구만. 내가 관리하는 선수들이 다 저러면 참 다루기 편할 텐데.”
미노 라이올란이 껄껄대며 웃었다.
저 자식이 진짜.
“건우 군. 편하게 생각해요. 요한은 불필요한 격식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자리에는 크로이프와 라이올란 말고도 한 남자가 더 있었다.
딱 봐도 얼굴에 정치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소개가 늦었네요. 난 주앙 라포타라고 합니다. 바르셀로나에 온 걸 환영합니다. 건우 군.”
“아. 예. 반갑습니다.”
나는 그 남자와 얼떨결에 악수했다.
주앙 라포타.
그는 본인이 바르셀로나 시장이라도 되는 양 행동했다.
어쩌면 그래서 훗날 성공한 걸지도.
라포타는 얼마 후 FC바르셀로나 회장으로 선출되어 10여 년간 찬란한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딩요의 영입이나 젊은 펨 과르디올리를 감독으로 임명한 것도 전부 이 사람 작품이다.
그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마치 [나와 함께 갈 사람인가 아닌가] 판단하는 것처럼.
“좋습니다. 요한. 그렇게 부르죠. 뭐.”
“하하하! 그래야지.”
크로이프와 나는 나란히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한국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나의 축구 철학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신기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축구관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일장 연설을 해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처럼 자신이 모르는 낯선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한국 같은 변방의 축구에 왜 관심을 가지세요?”
“항상 새로운 건 변방에서 탄생하는 법이거든. 우리가 74년도에 토털풋볼로 혁명을 일으켰을 때도 네덜란드는 유럽 축구의 변방이었어. 전통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껏 상상하고 실험할 수 있었지.”
“그렇군요.”
“잉글랜드를 봐봐. 축구 종주국이라는 과도한 자부심 때문에 낡은 전술만 고집하다가 한동안 진짜 못하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네요.”
“그러다가 이제는 EPL을 새롭게 런칭해서 유럽 어느 리그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축구를 흡수하고 있잖아. 몇 년 있으면 EPL이 유럽 최고의 리그가 될 거야. 뒤처지지 않으려면 다른 리그도 계속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분발해야 해. 물론 바르사도 마찬가지고.”
크로이프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남자에게 더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어떤 편견도 없이 오직 [축구]만 보았다.
레전드인데도 누구보다 새로운 축구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높았다.
그런데.
그런 순수하고 아름다운 축구 이야기를 깨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요한도 알잖아요. 지금 바르사는 병들었어요. 이대로 더 놔두면 당신이 바르사에 만들어놓은 모든 성취가 무너져 내릴 거에요.”
라포타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리고 현 바르사의 문제점을 한참 떠들어댔다.
“가스파르는 회장을 할 그릇이 못 돼요. 평생 남 뒤치다꺼리나 하던 천한 녀석이 쯧쯧. 판힐 감독도 마찬가지에요. 바르사는 그가 이끌던 아약스가 아닙니다. 지금 같은 지도력으로는 절대.”
“주앙. 그만해. 지금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여기서 이러면 건우 입장이 불편해 진다구.”
“아. 미안 미안.”
크로이프는 라포타를 닥치게 만들었다.
그는 내 입장을 배려할 줄도 알았다.
우리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축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그는 본인이 직접 관람했던 내가 뛰었던 바이언전 90분을 통째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하나하나 물어보며 흡족해했다.
“역시. 건우는 축구를 볼 줄 아는구나.”
라이올란이 몇 번이나 시간이 늦었다며 재촉해서 아쉽게도 우리의 만남은 끝이 났다.
“멋진 시즌을 보내길 바래. 건우. 내가 경기장에 직접 가지는 못하지만 응원할게.”
“고마워요. 요한.”
크로이프는 그렇게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이 만남이 나의 회귀 인생에서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날 집에 어떻게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보통 인류 최고의 축구선수를 뽑으면 펠레, 마라도나 그다음으로 크로이프가 뽑힌다.
하지만 인류 최고의 축구선수가 아니라 [축구인]을 뽑는다면 어떨까?
나는 단연코 1등은 요한 크로이프라고 생각한다.
그는 선수로서도 최고였고 감독으로도 최고였으며 축구 사상가로서도 최고였다.
[크로이프이즘]자신의 이름을 딴 사상을 세상에 남긴 축구인이 몇이나 되는가.
“오빠. 괜찮아요?”
“으응. 왜?”
“표정이…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아요.”
“응. 맞아. 나 정신 나갔어. 근데 기분 최고야.”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크로이프가 나에게 했던 말들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그 말들이 나의 축구 철학을 키우는 소중한 씨앗이 되었다.
***
다음 날 아침.
바르사 훈련장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일이 터졌음을 느꼈다.
나를 둘러싼 불온한 공기가 감지됐다.
“쳇. 쥐새끼 같은 놈들.”
드레싱룸에 들어가니 떡하니 오늘 조간신문 1면에 나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크로이프의 비밀회동! 바르사 쿠데타 모임일까!?]나와 크로이프, 미노 라이올란, 주앙 라포타 넷이 호텔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기자가 대화 내용을 듣지는 못했을 텐데 놀랍게도 추측성 기사의 대부분이 그럴듯했다.
그만큼 바르사 구단의 문제를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요약하면 주앙 라포타가 바르사 회장을 차지하기 위해 레전드 크로이프와 거물 에이전트 라이올란을 앞세워 역적 모임을 했다는 거다.
[이 모임에 참석한 김건은 과연 어떤 역할을 맡았을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다.]니들이 궁금한 거겠지.
나는 신문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런다고 나를 둘러싼 의혹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코치들과 직원들은 내가 흑사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피했다.
어디까지나 지금 주앙 라포타는 성 밖에 있는 사람이었고 성안의 주인은 가스파르 회장과 그 일당들이었다.
괜히 나랑 친한 척했다가 바로 해고되는 수가 있었다.
“역시 정치란 건 짜증 나. 특히 민주주의는 극혐이야.”
바르사는 구단주가 마음대로 독재할 수 있는 일반 프로팀들과 구조가 다르다.
바르사는 조합원들이 낸 돈으로 운영되는 협동조합이다.
회장은 있어도 구단주는 없다.
조합원들이 투표로 회장을 뽑는 구조라서 회장 혼자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조합원들은 여러 파벌을 만들어 서로를 음해하며 계속 다툼을 이어 간다.
회장은 팀의 발전과 승리가 아니라 자기 지위와 파벌의 유지를 위해 더 애썼다.
회장 선거 전에 싸웠더라도 끝나면 바르사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건만.
오히려 적보다 더 미워하면서 끝없이 모략과 비방을 이어갔다.
결론 내리자면 바르사 구단은 내부 정치 싸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도대체 크로이프와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축구 이야기.”
“훗. 그랬겠지. 어쨌든 너 큰일 났어.”
“응. 알고 있어.”
주장 엔리켈이 나를 걱정해줬다.
네덜란드 선수들과 판힐 감독은 그날 이후.
나에게 어떤 말도 걸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고 추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완벽하게 무시했다.
마치 내가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단단히 삐쳤군.”
나는 판힐 감독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른 셈이다.
나를 직접 영입한 가스파르 회장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바르사와 기업 비즈니스를 진행하던 최재성이 전화를 걸어 투덜거렸다.
“얘들 왜 이래? 갑자기 졸라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짜증 나 죽겠어.”
“잘 해봐요. 그게 형님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왜 그 타이밍에 크로이프를 만나고 난리야!”
“형이라면 안 만나겠어요? 그 타이밍에? 바로 걸어서 5분 거리에 크로이프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데 거절해요?”
“… 그건 못 참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차근차근 진행하세요. 어차피 리그 시작되면 나를 쓸 수밖에 없을 테니까.”
“정말. 자신 있어?”
“당연하죠.”
겨우 형을 달래서 일을 시키고 나는 담담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
개막전을 하루 앞둔 날 오후.
나는 바르사 후베닐 연습장에 나와 있었다.
내가 유소년 훈련장에 등장하자 유소년 코치들이 흠칫 놀라며 피했다.
나의 흑사병 소식이 여기까지 소문난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피치 가까이에 서서 유소년 선수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천재 소년들이 하나의 피치 안에서 열심히 볼을 차며 뛰었다.
바르셀로나 특유의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고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코를 간지럽히는 정말 공차기 좋은 오후였다.
“여기! 여기! 빨리 처리해! 야! 뭐 하는 거야!?”
한 조그만 소년이 동료와 코치들의 꾸중에도 개의치 않고 혼자 공을 몰고 달렸다.
지금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축구의 신만이 그를 멈출 수 있었다.
“레오! 인마! 빨리 공을 처리하라고!”
“…”
혼자 밀집 수비를 뚫으려다가 볼을 빼앗긴 아르헨티나 소년 리오네 메쉬는 벌떡 일어나 분하다는 표정으로 볼을 다시 쫓았다.
“훗. 그래. 그래야지.”
메쉬는 기어이 빼앗긴 볼을 되찾아 다시 단독 드리블을 시도했다.
누구도 그를 멈출 수 없었다.
축구의 신 말고는 누구도.
툭- 투욱- 툭- !
사이드로 튕겨 나온 볼을 내가 오른발로 툭 차올려 손에 들었다.
소년 메쉬가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몸은 온통 땀으로 젖었고 작은 몸을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이 소년이 우리가 아는 ‘그’가 되려면 아직도 많은 날이 필요했다.
“공 주세요! 헉. 헉.”
“레오.”
“저를 아세요? 헉. 헉.”
“알지. 당연히.”
나는 공을 건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곧 다시 만나자. 레오.”
나는 그렇게 유소년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기분 최고였다.
앞으로 닥칠 어떤 일도 웃어넘길 만큼.
***
“김건. 넌 선발 명단 제외야.”
라리가 02-03시즌 9월 2일 바르셀로나 홈구장 [캄 노우]에서 열린 개막전에서 나는 출전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심지어 후보 명단에도 오르지 못해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판힐. 이 양반 독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