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2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정말이요? 고마워요. 건우 씨.”
마빈 형이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때는 몰랐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제가 한참 동생이니까 이제는 좀 편하게 부르세요.”
“노노. 당신은 프로 선수가 될 사람이에요. 리스펙트 합니다.”
나는 마빈 코치를 겨우 달래고 회복 운동을 시작했다.
이 남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인체와 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력이다.
마빈은 자신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펑셔널 트레이닝] [기능 훈련]이라고 불렀다.
“머리로 판단하면 늦어요. 몸이 알아서 반응해야 해요. 축구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해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밸런스를 유지하며 자유자재로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축구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마빈의 개인 지도에 따라 매일 조금씩 다른 운동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한 다리 플레이트 로테이션, 힙락, 랜드마인 힙락, 박스 스피드 풀, 탑 클린, 버피 박스 점프, 아쿠아볼, 케틀벨 스윙, 사이드스텝 볼 푸쉬 등등.
운동하는 사람이 지겹지 않게 다양한 운동을 그날 목적에 맞게 섞어서 운용했다.
운동 첫날부터 믿음이 있었지만 실전 경기를 치르고 나니 이젠 확신이 생겼다.
“헉헉. 졸라 힘드네~”
“나이스 퍼포먼스! 건우 선수.”
강남에서 기분 좋게 운동을 끝내고 은평구 집으로 돌아왔더니 부모님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아들. 너 지금까지 어디 다녀온 거니?”
“왜요?”
“어디 다녀온 거냐고 아버지가 묻잖아!”
“두 분 다 진정하세요.”
나는 안방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두 분의 표정을 보고 바로 알았다.
교장과 지영만이 고새 침을 발라놨다는 사실을.
“교장이랑 지영만이 뭐라고 했어요?”
“뭐… 교장? 지영만? 그분들이 니 친구야!?”
“제 친구냐구요? 당연히 아니죠. 아버지. 설마 그 두 사기꾼이 아직도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녀석이… 감히 어른한테 말버릇 하고는…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냐!? 여보! 가서 몽둥이 가져와!”
아버지가 난리를 치는데도 내가 평온하게 있자 엄마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망설였다.
두 분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짠했다.
이렇게 어리숙하니까 나쁜 놈들한테 평생 휘둘리며 살았지.
“아버지. 진정하세요.”
“지금 진정하게 됐어!? 내 아들이! 엉!? 내 아들이 지금!”
“지금. 뭐요?”
“…”
아버지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댔다.
“교장이랑 지영만이 아버지한테 도대체 뭔데요? 그 사람들이 대통령이라도 돼요? 아니면 그 사람들한테 월급 받으세요?”
“건우야… 말을 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지영만이 학부모들과 대학교 사이에서 제 이름을 팔며 돈을 뜯어내고 있다구요. 그런데도 그 사람을 믿어요?”
“누가… 믿는다고 그래!?”
“지영만이 슈킹한 돈을 교장한테 상납하고 있는 건 아세요?”
“… 정말이야!?”
“하아~~”
아버지가 너무 한심해서 버럭 화를 낼 뻔했다.
전에 교장이 몇 번 아버지를 불러내 고급 일식집에서 식사와 술을 대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놈을 덜컥 믿어버린 모양이다.
“교장이랑 지영만이 정말 제 앞길을 걱정해서 아버지를 찾아온 거라고 생각하세요?”
“…”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두 놈은 사기꾼이에요. 제발 좀! 어리숙하게 휘둘리지 마시라구요! 제가 누구 연락도 받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찾아왔었다.”
“그래서요?”
“지금 니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몇 번이나 부탁했다. 제발 너 학교만 나오게 해달라고.”
아버지의 말이 가라앉았다. 역시 내 충격 요법이 통했다.
“그래서요?”
“… 알겠다고 했지. 학생이 학교를 가야지! 아무리 운동선수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아버지가 필요한 건 고교 졸업장인가요? 제가 그것만 갖다 드리면 되죠?”
“너… 도대체… 뭘 어쩌려고.”
“오늘 저는 강남에서 J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을 만났어요. 좋은 분위기에서 호의적인 만남을 가졌고 곧 정식 계약서를 보내올 거에요. 그럼 진짜 협상이 시작되겠죠.”
“J리그? 일본 말하는 거냐?”
“예.”
“왜 하필 일본이야?”
“한국에선 큰돈을 벌 수 없거든요. 구단들이 IMF 핑계를 대면서 선수들 계약금과 연봉을 대폭 삭감했어요. 지금 시점에서는 J리그로 가는 게 환율이나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고 제 축구 경력에도 좋아요. 우선 1년 계약만 하고 1년 후에 빅딜을 해서 큰돈을 땡길 거에요.”
부모님은 내가 외계인 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 어리둥절했다.
사기꾼들 입장에서는 둘이 얼마나 입맛 도는 먹잇감이었을까.
“계약서는 박앤최 로펌 변호사가 검토해 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
“그럼. 걱정은 하시고 참견은 하지 마세요. 저 이제 취침시간이라 들어가 잡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정확한 취침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나의 수면시간은 밤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다.
운동선수에게 충분한 수면시간만큼 좋은 보약은 없다.
나는 회귀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 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부모님에 대해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꿀잠이 들어버렸다.
열심히 하루를 산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명성고로 향했다.
그냥 앞으로의 학교 일 처리는 전화나 서류로 하고 싶었지만 두 여우가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고 하니 직접 끝을 내기로 했다.
학교에 들어가자 남녀 모든 학생이 나를 반겼다.
사인해달라는 애들, 소리 지르는 여자애들을 지나서 겨우 축구부실로 갔다.
“건우야. 너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 거냐?”
지영만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 살짝 놀랐다.
여기서 밤을 지새웠는지 얼굴이 퀭했다.
“뭐가요?”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교장 선생님한테 말했다며. 그거 진짜야?”
“예. 왜요?”
“…”
지영만은 눈을 껌뻑이며 경우의 수를 굴려 보았다.
나와의 절망적인 협상에서 어떻게든 본인의 이득을 더 얻기 위해.
그가 원하는 분위기가 전혀 조성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준비해온 썰을 풀었다.
“선진대학교 축구부에서 엄청난 제안이 왔다.”
“어떤 제안이요?”
“우리 3학년 전체를 받아주겠다는구나.”
“잘됐네요.”
전생에서 나 + 5명을 받아준 것보다 더 파격적인 영입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니가 입학한다는 조건으로.”
“아~~”
“건우야!!”
내가 몸을 돌리자 지영만이 내 손을 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이번엔 나도 놀랐다.
“왜 이러세요? 감독님?”
“건우. 넌 의리의 사나이잖아. 니가 조금만 희생해주면 3년 동안 함께 고생한 동기들을 전부 대학에 보낼 수 있어. 얼마나 대단한 일이니!? 그리고 선진대에 가면 넌 4년 내내 주전 예약이야. 너를 중심으로 선진대 팀을 짜기로 감독님과 다 얘기 끝내놨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지?”
“… 싫은데요.”
“뭐?”
“싫다구요. 저 대학 안 가요. 선진대 같은 3류 대학은 더더군다나 갈 일 없습니다.”
“너… 혹시 K리그 쪽에서 제안 받았어? 어느 구단이야? 엉!? 어떤 조건을 약속했는데? 너 그거 불법인 거 알지!?”
K리그는 당시 신인을 드래프트 제도로 뽑았기 때문에 이전에 선수와 개별 접촉하는 건 템퍼링으로 간주 되어 불법이었다.
하지만 몰래 뒤로는 다 했다.
이건 구단만의 잘못은 아니고 선수와 선수의 부모도 책임이 있다.
왜 굳이 불법적으로 뒷거래를 하겠는가?
다 돈 때문이지.
“건우야… 나 정말 실망했다. 감독인 나는 쏙 빼두고… 혼자서 지 마음대로…”
지영만이 열 받은 이유는 자기만 빼놓고 돈이 오고 갔을까 봐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의 얄팍함에 코웃음이 났다.
“김건우! 너 이렇게 이기적인 놈이었어? 넌 의리도 없냐!? 너 때문에 니 동기들 전부 대학 못 갔으면 좋겠어!? 애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 감독님.”
내가 축구부실을 나서다가 멈추자 놈은 자기 설득이 먹힌 줄 알고 다시 희망의 끈을 붙잡았다.
병신.
“지금까지 학부형들한테 돈 먹은 거 경찰에 신고했어요. 감옥 갈 준비나 하세요.”
“뭐라구!? 야! 건우야! 무슨 소리야!? 그건 오해야! 그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
경찰에 신고했다는 건 뻥이다.
어차피 내가 학교를 떠나면 지금까지 돈을 준 학부모들이 지영만에게 돈을 받아내려 할 거다.
놈은 지금까지 받아먹은 돈을 토해내느라 고생 좀 할 거다.
어쩌면 깜빵에 가는 것보다 더 괴롭겠지.
놈은 허둥지둥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렇게 약한 놈이었다니… 어이가 없군.”
지난 생에서 나는 끝내 지영만에게 아무것도 못 했다.
나중에 진상을 알았을 때도 딱히 뭔가 복수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놈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긴다 해도 합의금 걱정부터 먼저 했을 것이다.
나는 곧 싸늘하게 그를 지나쳤다.
창문에 허망하게 나를 쳐다보는 지영만의 모습이 비쳐났다.
교실로 돌아가 마지막 짐을 싸려는데 이번에는 3학년 동기들이 쳐들어왔다.
“야! 김건우! 너 진짜 자퇴하는 거야!?”
“우리 버리고 혼자 K리그 가면 좋냐? 이 이기적인 새끼야!”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까 지영만이 일러바친 모양이다.
이 새끼 진짜…
마지막까지 지저분하게 구네.
“너! 학교 관둔다는 거 진짜야!?”
“보면 몰라.”
“다 같이 선진대 가는 걸 니가 거부했다며!”
“그런데? 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같이 3년 동안 고생했잖아! 넌 의리도 없냐!?”
의리. 의리. 의리.
전생에서 내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 하나.
평소에 의리를 나불대는 인간치고 진짜 의리 있는 인간은 없다.
내 목을 걸고 장담한다.
지금 내 앞에서 침을 튀기며 지껄이고 있는 이놈.
김영수도 내가 부상으로 몰락하고 축협에도 찍히자 바로 안면을 바꿨다.
일명 “누구세요?” 모드.
“내 덕에 3류 대학 진학하면 그다음에는 뭐 할래? 솔직히 니들 중에 프로 갈만한 재능 가진 놈 단 한 명이라도 있어?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길 찾는 게 너희들 인생에 좋아. 그럼. 나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