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26
복수의 날이 찾아왔다
“하여튼 기레기들이 문제라니까…”
나는 지금 FC바르셀로나 구단 전세기에 타고 있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토리노.
세리에A 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챔피언스리그 전통의 강호 유벤투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다.
“이러다 내일 경기에서 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가 입을 모아 욕을 하겠지.”
바르셀로나 언론은 최근 얀티치 감독을 구세주로 모시며 숭배하고 있었다.
물론 얀티치를 띄우기 위해 불태우는 재물은 루이 판힐이다.
[판힐을 더 빨리 짤랐으면 바르사는 지금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을 거다.]언론의 호들갑을 요약하면 이랬다.
나도 판힐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까일 사람은 아닌데 좀 너무 했다.
판힐은 급하게 팀을 맡아서 본인이 원하는 선수들도 없는 상태에서 나름 이기려고 노력했다.
그가 문제 삼으며 보드진에 보강을 요청했던 왼쪽 수비가 바르사의 약점이 맞았다.
그가 원했던 레프트백 파블로 소렌이 뒤늦게 임대로 들어오고 내가 왼쪽을 맡으며 올 시즌 바르사를 괴롭히던 왼쪽 수비 문제가 해결되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자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불쾌했다.
“그나저나… 문제군.”
팀의 왼쪽 수비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이젠 나에게 문제가 생겨버렸다.
“아프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고…”
걱정스럽게 양쪽 무릎을 만져보았다.
관절이 부어 있는 게 느껴졌다.
얀티치 감독이 들어온 후 나는 경기당 평균 13킬로 이상을 뛰어다녔다.
보통 선수가 10킬로 전후로 뛰니까 진짜 엄청 뛴 거다.
왼쪽에서 공수를 모두 커버하고 나를 중심으로 빌드업이 이루어져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다.
라리가 경기와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한주에 열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모든 경기에 90분 풀타임으로 뛰었다.
“그동안 내가 체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얀티치 감독의 허락을 받고 팀 훈련을 쉬며 컨디션 조절에 집중했다.
그래도 리그 후반으로 갈수록 급격히 떨어지는 나의 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컨디션이 바닥을 쳤는데 하필 이런 때에 가장 만나기 싫은 팀을 만나고 말았다.
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이번 챔스에서 유벤투스는 8강에서 바르사를 꺾고 결승까지 올라가 AC밀란에게 패배하고 준우승을 차지했을 거다.
“역사의 관성이 또 등장하시겠군…”
원래 역사를 크게 바꾸어야 하는 경우라 분명히 어려운 경기가 될 거다.
자리에서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을 펼쳤다.
당연히 온통 챔피언스리그 이야기로 도배다.
“어라. 내 얼굴이 나왔네.”
이탈리아 신문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기사 내용이 궁금해서 이탈리아 출신 모타에게 물어보았다.
“신문에 뭐라고 적힌 거야?”
“건… 그게… 말이야…”
모타가 굳은 얼굴로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봐.”
“… 복수의 날이 찾아왔다.”
“뭐!?”
[복수의 날이 찾아왔다.]이탈리아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에서 나에게 당했던 일을 절대 잊지 않았다.
참으로 정성스럽게 내가 비에라와 토틴에게 했던 일을 주절주절 써놓고 반드시 복수를 해야한다고 부추기는 기사였다.
지들이 먼저 우리 선수들 다치게 만든 건 쏙 빼놓고.
“건… 토리노에 도착하면 호텔에만 있는 게 좋겠어. 토리노는 안전한 도시이지만…. 축구에 죽고 사는 또라이들이 조금 있어. 걔들한테 걸리면 위험해. 분명히 너를 찾으러 호텔 주변을 서성거릴 거야.”
“그건 안 되겠는데. 벌써 미슐렝 3스타 식당을 예약해 놨거든. 미식의 고장 이탈리아에 왔는데 밥은 먹어야지.”
“…”
모타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토리노 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를 향한 갈굼은 입국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건?”
공항 직원들이 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무슨 간첩 보듯 인상을 썼다.
“왜요? 사인해 줘요?”
그런 일에 쪼는 내가 아니다.
나는 더 뻔뻔하고 여유 있게 행동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는데도 몇몇 놈들이 튀어나와 나에게 “중국놈아! 꺼져라!”고 외쳤다.
경찰들이 막지 않았으면 난투극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애들이 왜 이렇게 미개해?”
토리노 시내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선수들 대부분은 쇼핑하러 밖으로 나갔다.
이탈리아 명품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좋아했으니까.
나는 이니에타와 함께 예약해 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살짝 긴장했는데 호텔 주변을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 수상해 보이는 놈들은 없었다.
[마라빈]은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곳인데 이탈리안을 기반으로 한 이노베이티브 창작 요리를 내왔다.먼저 이 식당을 가자고 한 사람은 놀랍게도 앙드레 이니에타였다.
“니가 미식가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제가 생각해도 좀 안 어울려요. 하하.”
이니에타의 순박한 얼굴과 미식은 정말 이상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가 와이너리를 하거든요.”
“아! 맞다!”
이제야 퍼뜩 떠올랐다.
앙드레 이니에타는 은퇴 후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본인 이름을 건 이니에타 와인을 전 세계에 판매했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그랬구나. 대단하네.”
“아버지는 원래 포도를 키워서 납품하는 일을 하셨는데 몇 년 전부터 직접 와인 회사를 설립해서 판매하고 계셔요. 우리 집안의 일이 된 거죠. 아주 나중 일이지만 저도 은퇴하면 와인 사업에 집중하고 싶어요. 제가 와인에도 축구만큼 진지하거든요.”
“훌륭한 계획이야.”
이니에타는 이제보니 와인과 미식에 관해 빠삭했다.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 직원들과 전문적인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8가지 요리가 나왔는데 관자, 송아지 고기, 치즈, 버섯 등 재료도 좋았지만 각 요리에 맞춘 8가지 와인이 대단했다.
“음~~ 음식과 와인의 조합이 진짜 끝내주네.”
“유럽에서 식사와 와인은 함께 가는 사이니까요. 마리아주를 제대로 맞추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정말 맛있죠.”
“맛있는 걸 먹으니 행복해지네. 나중에 케이랑 같이 와야지.”
“꼭 그러세요.”
이탈리아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니에타 덕분에 팔자에 없던 미식에 급관심이 생겼다.
그동안 오직 운동 능력 향상만을 위해 식사를 해왔는데 이런 예술품 같은 요리를 먹으니 멋진 미술작품을 감상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뭔가… 영감을 주는 맛이랄까?”
“맞아요. 우리 같은 축구선수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하잖아요.”
“그렇지. 피치 안에서 언제나 상대가 예상 못 한 플레이를 펼쳐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캡틴 날개] 작가님은 진짜 천재 같아요. 어떻게 그런 필살기를 생각해 냈는지… 하아~ 정말 너무 끝내줘요.”
이니에타는 잘 나가다가 갑자기 캡틴 날개 이야기로 빠지더니 한참 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잘 먹고 나오는데 살벌하게 잘생긴 이탈리아 웨이터가 다가왔다.
“한국의 김건 선수죠?”
“예. 그런데요.”
순간 시비라도 거는 줄 알고 긴장했다.
순둥이 이니에타도 흠칫 놀랐다.
“내일 경기 꼭 이기세요. 응원할게요. 유벤투스 따위 박살 내버려요.”
“예?”
뭐지 이 녀석은.
이 동네 사람이 아닌가.
“아~ 오해는 마세요. 전 토리노FC 팬이거든요.”
“… 그렇군요.”
이탈리아에서도 같은 동네 앙숙의 법칙은 통했다.
바르셀로나와 에스파뇰 팬들이 앙숙이듯 유벤투스와 토리노 팬들도 서로 미워하나 보다.
“물론이죠. 완전히 박살 내 버릴 거니까. 꼭 보세요.”
나는 그 잘생긴 토리노 친구의 하얀 와이셔츠에 사인을 해주고 호텔로 돌아갔다.
***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이 벌어지는 델레 알피 스타디움입니다. 시작 전부터 유벤투스 팬들의 함성이 뜨겁습니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 중에 특이한 게 있네요.]“복수! 복수! 복수! 중국놈의 목을 따 버리자!”
[바르사에도 유벤투스에도 중국 선수는 없는데요?]유벤투스 일부 과격파 울트라들이 나에 대한 구호를 주도했다.
일반인들은 아직 따라 하지 않았지만 점점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호응을 유도했다.
인종차별 구호 금지 안내 방송도 나가고 경찰들이 제지하는 시늉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이탈리아 해설진들도 쌤통이라는 식으로 웃고 떠들었다.
“모든 게 최악이군.”
지금 나는 원정팀 라커룸에 있었다.
그들의 성난 외침이 그대로 들렸다.
위에서 하도 발을 굴러서 낡은 라커룸 천장이 흔들렸다.
“이러다 무너지는 거 아니야?”
최악은 또 있었다.
바로 잔디 상태.
오래된 경기장은 배수 시설이 원활하지 않아 피치가 진창이었다.
“이건 백프로 일부러 그런 거야.”
“당연하지. 그 늙은 여우가 어떤 인간인데.”
바르사 코치들이 투덜거렸다.
현 유벤투스 감독 마르첼 라피는 그라운드의 여우라고 불리는 명장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었다.
바르사 특유의 패스플레이를 방해하려고 일부러 잔디 상태를 나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원정 경기는 어려운 거야. 그래도 나는 승리를 원한다. 너희들도 그렇지?”
“예!”
“그럼. 가서 승리를 가져와라.”
“가자!!”
얀티치 감독의 연설은 언제나처럼 짧았다.
코치들처럼 피치 상태를 보고 투덜거리지도 않았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았고 판힐처럼 복잡한 전술을 주절주절 떠들지도 않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연승 행진을 이끌었다.
“참 재밌는 분이야.”
나는 얀티치를 보며 또 다른 유형의 리더십을 공부하고 있었다.
[드디어 양 팀 선수들이 피치에 등장합니다! 아! 정말 열띤 반응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두 선수는 바로 바르사의 김건 선수와 유벤투스의 네드베트 선수입니다.] [물론 두 선수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혀 다르죠.] [그렇습니다. 과연 김건이 이런 분위기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대단한 활약을 보여주겠죠~~ 월드컵 골든볼의 사나이니까요~~]이탈리아 중계진이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네.”
나는 푹푹 빠지는 피치에 서서 유벤투스 진영을 보았다.
유럽 최고의 골키퍼 푸폰.
프랑스산 철의 수비수 튀랭.
이탈리아산 만능 선수 잠브로티, 페라라.
폭주 기관차 네드베트와 다비즈.
거기에 판타지스타 델 피에르까지.
“도저히 빈틈이 보이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히는 선수 구성이었다.
대부분 화려함보다는 투지와 노련함, 초인적인 활동량으로 유명한 선수들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화려한 팀이라면 유벤투스는 단단한 팀이었다.
“꺼져라! 중국 놈!!”
“나가 뒈져! 눈 찢어진 놈아!”
관중석에서 양 눈을 찢으며 나를 놀리는 놈들이 잔뜩 있었다.
경찰들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건… 괜찮아?”
위험할 정도로 격양된 분위기에 동료 선수들도 걱정이 되는지 모여들었다.
“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