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27
나는 델 피에르의 말에 동의한 적 없다
“별거 아니야.”
유럽에서 원정을 다니며 비슷한 일은 일상적으로 겪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관중 대다수가 적의를 대놓고 드러내는 경우는 없었다.
역사에 남은 축구장 대참사가 벌어지기 직전의 상황 같은 느낌이랄까.
그때였다.
“뭐야. 저 녀석. 이쪽으로 오는데?”
델 피에르가 중앙선을 넘어 나에게 다가왔다.
유벤투스 응원단이 환호성을 질렀다.
둘이 맞짱이라도 뜰 줄 알았나 보지?
그가 씩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거참. 잘 생겼네.
“김건. 우리 오늘 페어플레이하자.”
“물론이죠.”
“나는 네가 축구 하는 방식을 좋아해.”
“나도요.”
내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델 피에르가 어깨동무하며 관중석을 향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축구를 해야 합니다! 축구와 상관없는 헛소리는 당장 멈추세요!”
델 피에르가 외치자 유벤투스 응원단에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 너도 꺼져! 알레!”
“알레! 중국놈한테 뇌물이라도 받았냐!?”
‘알레’ 는 델 피에르의 애칭이다.
과격파들이 델 피에르까지 욕했다.
그러자 다수의 정상인들이 그들에게 따졌다.
“알레! 당신 말이 맞아요!”
“우린 너의 말에 동의한다. 어서 축구를 보자! 다들 좀 진정하라구!”
델 피에르의 재치 덕분에 유벤투스 관중석이 겨우 냉정을 되찾았다.
소수의 돌아이들은 계속 떠들었지만 다수의 일반인들은 이성을 되찾았다.
“고마워요. 알레.”
“별말씀을.”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이길 거에요.”
“훗! 그건 절대 안 되지.”
델 피에르가 씩 웃으며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직접 이야기를 해보니 매력이 뚝뚝 떨어지는 진짜 멋진 남자다.
그는 앞으로 몇 년 후 칼초폴리 사건으로 유벤투스가 강등된 후에도 팀에 남는 의리남이다.
[신사는 숙녀가 원할 때 떠나지 않는 법이야.]이런 졸라게 멋진 말을 남긴 진정한 유벤투스맨이다.
다른 빅클럽에서 천억 단위의 돈으로 유혹했지만 그는 숙녀와의 의리를 지켰다.
“저 멍청한 놈들은 유벤투스 구단에게도 암적인 존재들이야.”
나는 여전히 유벤투스 저지를 입고 델 피에르를 욕하고 있는 놈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것들은 팬이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일 뿐이다.
삐이이이익- !!
어수선한 상황에서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왼쪽 사이드를 달리자 발이 푹푹 빠졌다.
벌써 이 정도 상태면 앞으로 더 심해질 일만 남았다.
90분을 뛰고 나면 경기장이 땅을 갈아엎은 것처럼 될 거다.
라피 감독의 교활한 작전은 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앗!”
[차비! 어이없는 패스 실수!] [이니에타! 볼 터치 실수로 공을 빼앗깁니다!]“당장! 복귀해!”
중원에서 실수가 계속 발생했다.
차비와 이니에타 사이를 오고 가던 매끄러운 패스가 막혔다.
유벤투스 전사들은 무섭게 역습을 감행했다.
[네드베트! 볼을 빼앗아 왼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듭니다!]“막아!”
네드베트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역습해 들어왔다.
그의 드리블은 얼핏 보면 투박해 보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지금 피치 상태에 최적화된 드리블 기술이다.
뻐어어어어엉- !!
네드베트가 중거리슛을 때렸는데 볼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도대체 발목 힘이 얼마나 강하길래 저런 소리가 나는 건지.
도끼로 축구공을 내리찍는 느낌.
[네드베트의 슛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갑니다!]그의 플레이에 바르사 선수들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오늘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느낀 거다.
“이리 줘!”
중앙이 어렵다면 왼쪽 사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밑으로 내려와 볼을 받아 천천히 전진했다.
피치 상황에 맞게 나의 볼 감각을 수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김건! 순식간에 포위당합니다!]다비즈와 잠브로티가 양쪽에서 나를 압박했다.
둘 다 수비 능력이 월드클래스급이라 압박감이 상당했다.
나는 스쿱턴으로 방향을 틀어 순간 사이드로 돌파해 들어갔다.
역동작에 걸린 잠브로티를 제쳤는데 오른쪽 발뒤꿈치가 뜨끔했다.
삐이이익- !!
“아악!”
나는 발목을 붙잡고 진창을 굴렀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유니폼이 엉망이 됐다.
백태클을 하고도 카드 없이 경고만 받은 잠브로티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델 피에르의 말에 동의한 적 없다.”
잠브로티는 나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왼쪽에서 잠브로티와 대결을 벌였다.
그는 나의 마크맨처럼 움직이며 내가 왼쪽에서 플레이메이킹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 방해라는 게 아주 교묘했는데 유니폼을 붙잡고 팔을 휘두르는 건 기본이고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한 타격을 노리기도 했다.
“젠장! 심판은 뭐 하는 거야!?”
내가 노골적으로 당하는데도 심판은 카드 한 장 꺼내지 않았다.
설마 이때부터 유벤투스가 심판을 매수했던 거 아닌가.
삐이이익- !!
나는 계속 왼쪽에서 당했고 심판은 계속 휘슬만 불었다.
다비즈와 잠브로티는 교대로 나를 담그며 왼쪽을 봉쇄했다.
내가 왼쪽에서 막히자 바르사는 다시 중앙에서 빌드업했다.
하지만.
[이니에타! 볼 빼앗깁니다! 드리블이 너무 길어요!]이니에타는 고립되자 나쁜 습관이 나왔다.
무리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다가 위험한 위치에서 볼을 빼앗겼다.
네드베트가 불타는 금발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바르사 진영으로 쇄도했다.
그가 다시 중거리슛을 때리려 왼발을 드는데.
“안 돼! 페인트야!”
내가 델 피에르의 움직임을 보며 소리쳤지만 늦었다.
네드베트는 페인트로 푸얄을 가볍게 제치고 로빙 패스를 띄웠다.
델 피에르는 부드럽게 수비라인을 깨고 들어가 몸을 던지며 시저스킥을 때렸다.
“고오오오올~!!”
[유벤투스 1 대 0 바르셀로나]델 피에르는 일어나서 가볍게 유니폼을 털더니 나를 돌아보며 손가락 하나를 까닥까닥 흔들었다.
‘졸라 멋지다…’
화가 나야 하는데 그냥 저 남자가 하는 행동이 너무 멋있어서 감탄하고 말았다.
뭐랄까.
초딩 시절 동경하던 동네 멋쟁이 형 같은 느낌이랄까.
“정신 차려. 김건우.”
나는 이성을 되찾고 센터서클로 선수들을 모았다.
다들 경기장 상태와 분위기에 혼란스러워했다.
“주장. 리칼메의 위치가 지금 너무 높아요. 중앙으로 내려와서 빌드업에 참여시키는 게 좋겠어요.”
“그래. 건의 말이 맞아.”
엔리켈 주장이 리칼메에게 위치를 재지정 해주었다.
우리는 오른쪽 사이드를 완전히 비우고 중앙으로 촘촘하게 모여들었다.
“나름 대책을 세웠나 봐?”
“이제부터 놀라게 될 거다.”
나와 잠브로티는 볼이 없을 때는 입으로 싸웠다.
이탈리아에 와서 이탈리아 팀을 상대하며 깨달았다.
2002년 월드컵 때 만났던 이탈리아 국대팀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 상대하는 이탈리아 팀은 정말로 강했다.
내가 이렇게 완전 막히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김건. 리칼메가 전부 중앙으로 모여듭니다.]우리는 중앙에서 다이아몬드 대형으로 좁게 섰다.
다비즈와 잠브로티는 노련하게 공간을 차단하며 나를 압박했다.
“온다!”
엔리켈이 나에게 패스하자 다비즈와 잠브로티가 또 양쪽에서 덤볐다.
후다다닥- !! 파아아앗- !!
나는 뒤로 돌아서며 원터치 패스를 날렸다.
볼이 날아간 곳은 왼쪽 사이드다.
[파블로 소렌! 무서운 스피드로 오버래핑!]소렌은 내가 만든 공간을 파고들어 왼쪽을 갈랐다.
푹푹 빠지는 땅에서도 폭발적인 드리블을 자랑했다.
하지만.
파아아앙- !
[아! 크로스로 연결하지 못하고 튀랭에게 막힙니다! 유벤투스 다시 역습 기회!]유벤투스 골대 앞에는 철의 수비수 튀랭이 있었다.
소렌은 뭔가 해보지도 못하고 힘에 튕겨 나갔다.
볼을 빼앗은 유벤투스는 다시 돌격대장 네드베트를 앞세우고 몰려왔다.
[네드베트! 이번에는 사이드에서 크로스! 잠브로티 헤딩! 아! 아깝게 벗어납니다!]군더더기 없이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잠브로티는 바르사가 볼을 가졌을 때는 나를 못살게 굴다가 볼의 소유권을 찾으면 적극적으로 공격에 참여했다.
유벤투스의 모든 선수가 포지션에 상관없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모두 성실한 수비수이자 과감한 공격수였다.
“이게 이탈리아식 토털 풋볼인가?”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팀 중에서 공수의 밸런스가 가장 완벽했다.
“너희 유벤투스는 대단한 팀이야. 인정해. 하지만 오늘 우리가 그걸 넘어서는 팀이 될 거야.”
“흥. 그러려면 우선 나를 넘어야 할 거다.”
나는 왼쪽에서 중앙을 가로질러 오른쪽 사이드로 올라갔다.
잠브로티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고 중앙 미드필더 다비즈가 나를 마크했다.
“주장! 여기로!”
엔리켈이 나에게 패스하자 다비즈가 덤벼들었다.
작은 황소가 돌진하는 듯한 위압감.
[김건! 팬텀 드리블 성공! 오늘 처음으로 다비즈를 제칩니다!]드디어 피치 상태에 대한 나의 감각이 수정되었다.
나는 다비즈를 제치고 중앙으로 내려간 리칼메에게 볼을 건넸다.
그리고 전방으로 내달렸다.
이런 패턴을 연습한 적이 없지만 분명 내가 아는 리칼메라면.
[리칼메! 오늘 처음으로 볼을 만집니다! 어려운 볼을 잡아 그대로 리턴 패스!]역시 마라도나의 후계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리칼메는 내가 보낸 볼을 받고 나의 메시지를 알아들었다.
내가 왜 땅볼 패스가 아니라 허리 아래로 날아오는 빠른 패스를 날렸는지.
“피치 상태가 엉망이라면 볼을 띄우면 되지.”
바르사의 축구는 매끄러운 잔디에서 빠르게 볼을 굴리는 축구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축구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볼을 땅 위로 띄우면 된다.
공중에 뜬 볼은 피치 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패스의 높이가 어정쩡합니다! 아! 김건!]나는 총알처럼 날아오는 볼을 점프하며 가슴으로 받았다.
그리고 착지하며 떨어지는 볼을 그대로 후려쳤다.
뻐어어어엉- !! 텅- !!!
오른발 중거리 발리슛이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아무도 예상 못 한 위치에서 아무도 예상 못 한 슛을 때렸는데 그걸 예상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푸폰 골키퍼! 슈퍼 세이브! 엄청난 슛을 막아냅니다!!]푸폰이 다이빙 펀칭으로 쳐낸 볼이 골대에 맞고 밖으로 날아갔다.
“쳇. 아까비~”
유벤투스 응원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중국놈 어쩌구 하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김건. 한순간에 경기장 분위기를 바꿔버렸습니다. 대단합니다.] [경기 초반 유벤투스의 더블 마크에 막혀 힘을 쓰지 못했는데 점점 해답을 찾아가고 있네요.]“역시 네 놈은 막을 가치가 있어.”
“꺼져. 이제 나를 막기 힘들 거다.”
왼쪽으로 돌아오니 잠브로티가 나를 반겨주었다.
놈은 나를 찍어누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김건! 다시 마크를 뿌리칩니다! 더블 마크를 무너트릴 방법을 찾은 것 같네요!]전반 28분.
1대0으로 지고 있었지만 나는 해법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