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56
누가 보면 탈옥이라도 한 줄 알겠네
“유럽인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어.”
뉴캐슬 외곽에 한국 대현자동차 공장을 짓는 건 옆 동네 선덜랜드와 경쟁을 붙이려는 묘수다.
선덜랜드에는 일본 닛산 자동차 공장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뉴캐슬과 이웃 동네 선덜랜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앙숙이다.
두 축구팀이 맞붙는 타인위어 더비는 격렬하기로 악명이 높다.
손정호는 유럽 사람들이 국가대항전보다 이웃 도시끼리의 경쟁심이 더 강하다는 걸 이용해 비즈니스 판을 짰다.
“우리가 옆 동네 애들보다 잘나가게 도와줄게.”
도시별 지역별로 경쟁의식이 강한 유럽에서 이 유혹은 잘 먹혀들었다.
손정호의 뉴캐슬 인수가 척척 진행되는 동안 나는 꿀맛 같은 휴식을 끝내고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어느 팀에서 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나의 몸은 소중하니까.
미국에서 돌아온 마빈 형과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을 했다.
그는 시즌이 끝나자마자 미국 NFL 마이애미 돌핀스로 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지내며 새로운 훈련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느라 내 결혼식에도 오지 못했다.
“헉! 헉! 헉!”
“그동안 아주 신나게 인생을 즐겼구만! 이제부터는 지옥이 펼쳐질 거야! 각오해! 더 빨리 움직여! 더! 더!”
프로 선수의 훈련은 항상 변해야 한다.
훈련이 몸에 편안하게 느껴지는 순간 효율이 떨어진다.
인간의 뇌와 신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할 때 가장 왕성하게 개발된다.
그래서 마빈 코치는 매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똑바로 못해! 그래서 리그 우승하겠어!? 제대로 하라구!”
“잠깐! 근데 형! 오늘 감정이 많이 섞인 거 같은데!?”
“뭐… 내가 언제 그랬어?”
“어제 형수님이 바르셀로나로 왔다고 했죠? 그것 때문에 그런가 보네.”
“아니야! 그런 거… 잔소리 때문에 좀 피곤하긴 하지만…”
마빈 형이 저기압인 이유는 한국에서 부인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해변에서 즐기던 가짜 총각 행세도 끝장났다.
그냥 이혼을 하던가 하지 참 신기한 인간이다.
“건우! 집중해! 쉬는 동안 체지방률이 얼마나 상승했는 줄 알아!?”
“알겠어요. 그만 좀 갈궈요.”
나는 다시 마빈과 펑셔널 트레이닝을 했다.
이런 가운데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주앙 라포타 FC바르셀로나의 새 회장으로 당선. 진정한 영광의 시대를 만들겠다! 선언!]바르사의 프리시즌은 어수선했다.
모두의 예상대로 라포타가 새 회장이 되자 클럽 하우스에 요상한 공기가 흘렀다.
누가 짤릴 거라는 둥.
누가 새로 올 거라는 둥.
사실 진짜 바르사의 상왕은 요한 크로이프고 그가 뒤에서 모든 걸 조종하고 있다는 둥.
뒤숭숭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 전에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 팀이 맞나 싶었다.
“어이~! 잘 지냈어! 미구엘.”
“건! 결혼 축하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팀 훈련이 끝나면 매일 유소년 훈련장을 찾아갔다.
거기서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더러운 기분이 씻기고 힐링이 되었다.
미구엘 페레즈 유소년 코치는 항상 나를 반겼다.
이 친구는 내가 못 나가던 시절에도 똑같이 나를 대했던 사람이다.
사라고사 출신으로 재능 있는 선수였지만 심각한 부상을 당해 어린 나이에 코치의 길을 택했다.
축구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고 인성도 훌륭해서 유소년 선수들도 믿고 따랐다.
“메쉬는 여전하구만.”
“응. 대단하지. 올 시즌엔 성인 2군 팀으로 올려볼 생각이야. 유소년 레벨에서는 도저히 상대가 없어.”
“그렇겠지.”
“메쉬는 장차 너의 후계자가 될 거야.”
“후계자? 후후.”
미래를 알고 있는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내가 전생에서 죽기 전에 메쉬가 6발롱이던가? 7발롱이었던가?
나와 미구엘은 어린 리오네 메쉬가 뛰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저 녀석과 내가 한팀에서 뛰는 날이 올까.
내가 앞으로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뛴다면 가능할지도.
“기사 보고 놀랐어. 그런 비밀병기를 혼자 쓰고 있었다니.”
“크라이오 테라피? 아직은 시험 단계라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었어. 회사랑 계약 문제도 있었구.”
“이해해. 그래도 너 덕분에 우리가 빅이어를 들어 올렸잖아. 다들 이해할 거야.”
[우리]라는 단어가 참 요상하게 들렸다.이 구단에서 과연 어디까지가 [우리]일까?
***
며칠 후.
언제나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팀 훈련을 하려다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라도미라 얀티치 감독. FC바르셀로나와 계약 해지 합의.]바르셀로나 언론은 구단과 감독이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계약을 끝낸 것으로 보도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원래 얀티치 감독은 시즌 중반에 갑자기 투입되며 이번 시즌까지만 단기계약을 했다.
바르사 구단은 사전 협상 없이 계약 마감일이 다가오자 일방적으로 연장이 불가하다고 통보해 버렸다.
구단에 두 번째 빅이어를 선사한 감독을 바로 내쳐버린 거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어젯밤 늦게 전화로 해고 소식이 전해졌고 얀티치 감독은 예상했다는 듯 오늘 아침 바르셀로나를 떠났다고 한다.
작별 인사도 없이.
클럽하우스는 다시 혼란에 빠졌고 팀 훈련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수장의 목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는데 선수들이 누구의 말을 듣겠는가.
이미 새 감독 인선이 끝났다더라.
하이팅크가 올 거다.
아니다 로널드 쿠맨이 온다더라.
이런 소문이 클럽하우스에 계속 흘러나왔다.
나는 코치에게 이런 분위기에서는 팀 훈련 못 하겠다고 전하고 마빈 코치와 일대일 개인 훈련에 집중했다.
얀티치 감독에겐 미안했지만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다.
역사대로라면 새 감독으로 임명되는 남자는 프랑크 라이카르트다.
그 유명한 네덜란드 오렌지 삼총사의 일원으로 사상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로 뽑히는 레전드다.
헤어스타일과 슈트빨도 진짜 멋지다.
그런 남자와 함께 바르사에서 뛸 수 있다니 호기심이 생겼다.
[프랑크 라이카르트. FC바르셀로나 새 감독으로 선임.]3일 후에 역사대로 그가 바르사의 새 감독이 되었다.
그러자 주앙 라포타가 본격적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나의 마음이 “일단 라이카르트 감독과 한번 뛰어 보자.” 로 기운 상황에서 발생한 예상치 못한 사건이다.
뚜뚜- 뚜뚜- 뚜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보통은 절대 받지 않는다.
기자나 자선단체나 사기꾼이나 대충 그러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건 받아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건. 나에요. 미구엘.”
“아! 그래. 잘 지내죠? 무슨 일이에요?”
“미안해요. 구단에 얘기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어요.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작별 인사!?”
“훗.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미구엘이 들려준 이야기는 황당했다.
감독이 바뀌자 자연스럽게 코치진도 갈려 나갔는데 가스파르 회장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부터 우선적으로 짤렸다고 한다.
미구엘은 사라고사 출신이라 바르셀로나에 인맥도 없었다.
단지 그 시기에 발탁됐다는 정치적 이유로 능력 있는 유소년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거다.
“지금 어디에요?”
“예?”
“그대로 있어요. 내가 찾아갈게요.”
나는 바로 그를 만났다.
그리고 상황을 더 정확하게 파악했다.
해고된 코치와 스태프들은 대부분 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워낙 자주 유소년 훈련장에 놀러 가서 꼬치꼬치 물어보았으니까.
“다들 연락해서 일단 이 도시를 떠나지 말라고 하세요. 체류비는 내가 지불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도대체 무슨…”
“나를 믿고 며칠 만 기다려줘요.”
나는 그날 밤 혼자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김건. 바르셀로나 훈련장 무단이탈. 3일째 팀 훈련 참가 거부.] [새로운 감독에 대한 항명인가?]바르셀로나 언론은 잘 걸렸다는 듯 십자포화를 날렸다.
라이카르트 감독도 불쾌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근데 놀랍게도 바르셀로나의 심각한 분위기가 이곳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프랑크한테 전화 한 통 해주는 게 어때?”
요한 크로이프가 신문기사를 보며 걱정했다.
나는 지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와 있었다.
3일 전, 미구엘을 만나고 바로 비행기를 탔다.
나의 회귀 인생을 바꿀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크로이프를 만나서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아약스 암스테르담의 유소년 시스템도 직접 보고 싶었다.
“라이카르트 감독님께는 미안하지만 이건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와서 직접 보길 잘했네요.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훗. 여기서 모든 게 시작된 거야.”
크로이프는 아약스 유소년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도 여기서 프로 선수로 만들어졌으니까.
바르셀로나가 자랑하는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사실 아약스에서 온 거다.
아약스 출신 크로이프는 바르셀로나에 아약스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시켰다.
훗날 그 시스템에서 성장한 메쉬, 이니에타, 차비, 부스케즈 등이 바르사 영광의 시대를 만들어 간다.
“이게 네덜란드인들의 방식이지. 워낙 가진 자원이 없으니까. 이렇게 키워낼 수밖에 없는 거야. 하하.”
구두쇠로 유명한 민족답게 네덜란드인들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내는 성장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전 세계에서 선발된 축구 천재 소년들이 아약스 시스템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비싼 값으로 팔려나갔다.
비록 3일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나는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축구에 대한 비전.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어떻게 할지 결정은 했어?”
“예.”
“내가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군.”
“덕분에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훗. 다음에 또 다른 도시에서 보자구.”
나는 충동적으로 찾아온 암스테르담에서의 3일을 끝내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
“김건 선수! 암스테르담에서 크로이프를 왜 만난 거죠!?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라이카르트 감독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감독을 무시하는 행동 아닌가요!?”
“자신의 행동이 팀에 악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공항에 내리자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몰려왔다.
하긴 3일을 크로이프와 붙어 있었는데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하지.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겨우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갔다.
나의 바르셀로나 도착 소식이 긴급 뉴스로 나왔다.
“누가 보면 탈옥이라도 한 줄 알겠네.”
뉴스에서 나를 언급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도 너희 도시에 빅이어를 안겨준 사람인데.
케이코가 나의 심기를 파악하고 티비를 껐다.
나는 걱정하는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 방으로 들어갔다.
진짜 무슨 나쁜 스파이 짓을 하는 거 같았다.
뚜뚜- 뚜뚜- 뚜뚜-
신호 3번 만에 손정호 회장이 전화를 받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건우 군. 괜찮아요?”
“예. 회장님.”
“고민이 컸던 모양이군요.”
“이젠 다 정리됐습니다.”
“그래요? 어떤 결정을 내렸죠?”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