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6
이렇게 나의 기나긴 출정식이 끝났다
“그래도 도둑질은 좀…”
유찬이가 이런 놈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 답답한 놈아! 자! 받아. 가서 엄마 드려.”
“고맙다.”
“뭐가 고마워? 너는 나를 위해 일을 했고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은 거야.”
“알았다구. 쫌… 그만 갈궈.”
둘이 티격태격하며 은평 시장에 도착했다.
유찬 엄마 분식집 [현지네]로 가니 모녀가 마감 정리 중이었다.
판에 안 팔린 떡볶이가 잔뜩 남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 그래. 건우 왔구나.”
“마감하시나 봐요.”
“으응.”
유찬 엄마는 다 버리게 생긴 음식들이 창피한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현지도 죄지은 사람처럼 나를 피했다.
“어머니. 제가 얼마 전에 홍대에서 엄청나게 매운 떡볶이를 먹었거든요. 정말 이런 걸 왜 돈 주고 먹나 싶을 정도로 매웠어요. 그런데 그걸 먹으려고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까지 찾아오더라구요.”
“… 정말?”
“예. 사람들이 50미터는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그걸 먹겠다구.”
“그냥 떡볶이인데?”
“그냥 떡볶이가 아니죠.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무지막지하게 매운 떡볶이죠. 거기서 밖에 만들지 않으니까 다들 찾아오는 거에요. 그럼 그게 또 소문을 타구요.”
“… 그럴 수가 있나.”
이제보니 유찬이가 엄마를 닮았구나.
답답해서 속이 터지려고 하는데 여동생 현지가 끼어들었다.
“맞아요! 우리 반에도 매운 떡볶이만 찾아다니는 애들이 있어요. 어디 분식집 떡볶이가 맵다고 하면 막 천호동이나 안양까지 찾아가더라구요.”
“바로 그거야! 현지야. 너 제대로 캐치했구나.”
“제가요?”
나의 칭찬에 현지가 얼굴을 붉혔다.
어라.
복숭아처럼 달아오른 두 볼을 보니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차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어머니. 당장 내일부터 청양고추랑 캡사이신 팍팍 뿌려서 엄청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보세요. 그리고 현지.”
“예!?”
“너는 그 매운맛 매니아 친구들을 데려와서 시식을 시켜. 그리고 걔네들한테 의견을 들고 매운맛을 조정해.”
“알겠어요.”
“걔들이 만족하고 소문을 내고 다니면 작전 성공이야.”
“건우야. 그런데… 그렇게 되면 매운맛을 싫어하는 애들은 우리 가게를 안 찾게 되지 않을까?”
유찬 엄마의 말씀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칠 뻔했다.
이게 바로 장사 못 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구나.
“매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른 분식집을 가겠죠. 분식집은 여기 말고도 주변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키려고 하니까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나온 거에요. 소수의 손님이라도 계속 다시 오게 만드는 게 음식 장사의 기본이에요. 어머니. 저를 믿고 한번 시도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 방식으로는 답이 안 나오잖아요.”
“알겠어. 건우야. 고맙다.”
전생에서 한식 자격증을 따고 식당 창업 교육을 받으러 다닌 시기가 있었다.
거기서 매운 떡볶이로 대박을 낸 사장님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그분이 창업한 게 딱 이맘때였으니까 지금부터 시작하면 세기말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매운맛 대유행에 올라탈 수 있다.
99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매운맛 열풍은 향후 20년간 계속되며 유튜브에서 외국인들까지 도전하는 한국의 대표 맛이 된다.
요리 실력도 평범하고 자본도 기술도 없는 유찬 엄마가 당장 승부를 걸 아이템은 매운맛뿐이다.
“현지야. 오빠랑 먼저 집에 좀 갈래? 너희 엄마랑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
“알겠어요. 오빠. 일본 가서 잘하세요. 응원할게요.”
“고마워. 현지야. 너도 잘 지내. 공부 열심히 하구.”
“… 예.”
현지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바로 그 문제 때문에 유찬 엄마와 담판을 지으려는 거다.
나는 둘을 보내고 유찬 엄마와 단둘이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고운 얼굴에 미인이셨는데 몇 년 사이 정말 폭삭 늙으셨다.
“유찬이 아버지는 아직 연락 없으시구요?”
“응.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사람도 참…”
“분명히 잘 계실 거에요. 빚 문제만 잘 해결되면 다시 모든 게 잘…”
“고마워. 건우야. 우리 유찬이를 거두어줘서.”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퉁퉁 부은 손.
“거두다뇨. 하하하. 유찬이와 저는 동업자 관계에요. 서로 분업해서 맡은 일을 하는 거죠. 제가 끝까지 믿을 수 있는 친구는 유찬이뿐이거든요.”
“…”
“그리고 유찬이 공부 엄청 잘하는 거 아세요? 같이 다니는 어학원 선생님이 놀랄 정도에요. 타고난 머리가 정말 좋은 거 같아요.”
“… 그럴 거야. 유찬이가 어릴 때는 항상 전교 1등이었으니까. 그런데 애 아빠가 자기 욕심에 축구를 시키겠다고 억지로 축구부에 넣고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쳤지.”
“그랬군요.”
“유찬이가 처음 몇 년은 매일 관두겠다고 울었거든. 그런데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관둔다는 얘기가 쏙 들어갔어.”
“그래요?”
“바로 건우 네가 전학 오고 나서부터야.”
“아아…”
“네가 축구 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는지 그때부터 너를 따라서 열심히 하더라구.”
“그랬군요…”
“하지만 타고난 재능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잖아. 결국…”
“유찬이는 이제서야 제 길을 찾은 거에요. 앞으로 잘 될 거니까 기대하세요.”
“고마워. 건우야.”
“그래서 말인데요. 어머니.”
나는 이제야 진짜 본론을 꺼냈다.
“현지. 상고 보내지 말고 인문계 학교로 보내세요.”
“뭐?”
“현지도 오빠처럼 공부 머리가 좋고 성적도 좋았잖아요. 그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요.”
“그랬지… 하지만.”
“현지는 수능 봐서 좋은 대학 들어가 출세할 아이에요. 상고에 보내는 건 재능 낭비에요.”
“하지만 집안 사정이…”
“제가 현지의 교육비를 댈게요. 이건 저와 어머니 둘만의 비밀로 해두세요. 유찬이한테도 비밀입니다. 이거 받으세요.”
“건우야!”
“일단 3천만 원 넣어놨어요. 이걸로 학비, 학원비 공부에 필요한 뭐든 쓰게 하세요. 그리고. 현지한테 더 이상 분식집 일 돕지 말라고 하세요. 만약 알바생이 필요하면 제가 그 비용을 댈게요.”
“…”
“현지에게 앞으로 3년은 정말 중요해요. 평생의 계급이 결정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죠.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어느 대학 나오고 어느 직장에 다니고 어느 집에 사느냐로 계급이 갈리잖아요.”
“그렇지.”
“당장 엄마 일을 돕는 효녀도 좋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평생 분식집에 인생이 묶일 거에요. 현지가 그렇게 되길 바라세요?”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럼. 마음 독하게 먹으세요. 어머니. 유찬이와 현지. 이렇게 셋이서 3년만 고생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에요. 저도 옆에서 도울게요.”
“건우야…”
나는 유찬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한참 있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이걸로 이 집안의 비참한 운명을 막을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거다.
이제 나에게는 돈과 힘이 있으니까.
전생에서 엄마 분식집을 도우며 상고에 다니던 현지는 졸업 후 조그만 기업에 경리로 들어가 월 120만 원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회식 자리에서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바로 항의했지만 회사 놈들은 도와주기는커녕 조직적으로 그녀를 왕따시키고 괴롭혔다.
현지는 엄마와 오빠가 걱정할까 봐 이 사실을 숨기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사실이 밝혀져서 손을 쓰려고 했을 때는 너무 상태가 나빠진 후였다.
“그 사장 새끼! 고소해서 콩밥 먹이면 되잖아!”
분해서 이렇게 외쳤지만 당시 내 주머니에는 소송을 할 돈도 없었고 법에 대한 지식도 없었으며 믿고 맡길 인맥도 없었다.
***
“다시는…그런 약한 남자가 되지 않을 거야.”
울컥한 마음을 누르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지혜는 자요?”
“응.”
“쳇. 하여튼 시크 하다니까. 아버지는요?”
“안에 계셔.”
안방으로 들어가니 아버지가 방구석에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랐다.
옆에는 마른오징어와 빈 소주병이 몇 병이 있었는데 손에는 파일철이 들려 있었다.
이 남자.
정글 같은 세상의 피라미드.
거의 밑부분에서 하루하루 땀을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비전도 지성도 없고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남자.
이 남자가 나를 지금까지 키워주신 나의 아버지다.
“그거 보셨던 거에요?”
“아니야. 그냥. 잠이 안 와서.”
“저도 좀 보여주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살짝 민망해하며 파일철을 내민다.
사실은 보여주고 싶었으면서.
내가 너를 이렇게 아끼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었으면서.
[천재 축구 소년 등장? 대통령배 우승! 10살 김건우의 신들린 플레이!] [명성중 김건우! 백호기 MVP 수상!] [이 선수를 주목하라! 2000년대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영 트로이카 3인방! 이동균 김건우 가명훈.] [미래의 판타지스타! 고교 천재 김건우.]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신문에 나왔던 모든 기사를 스크랩한 파일철이다.
이게 여러 권 있었다.
아버지가 신문보급소를 했으니까.
아마 나에 대한 기록으로는 국내 최고일 거다.
“앞으로 파일철이 진짜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일본은 스포츠신문 1면에 축구 기사가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 그거 참 아쉽네…”
아버지가 머리를 긁적였다.
붉게 달아오른 두 볼과 지친 주름.
평생 어디 가서 큰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살아온 이 남자에게 나는 자랑스러운 훈장이었을 거다.
그걸 아는 지영만 같은 여우가 들러붙어 아부를 떨며 피를 빨아먹었고 단물이 빠지자 뱉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저도 한 잔 주세요. 아버지.”
“소주를? 너 밥도 따로 차려 먹잖아.”
“괜찮아요. 한 잔인데요. 뭘.”
아버지가 살짝 민망해하다가 잔을 건넨다.
그래도 아들이랑 한 잔 하니까 좋으신가 보다.
나는 두 손으로 넘치는 잔을 받아 단번에 비웠다.
그리고 오징어 다리를 하나 물고 아버지에게 잔을 건넸다.
“한 잔 받으세요. 아버지.”
“오냐. 아들.”
아버지는 내가 가득 따른 잔을 역시 단번에 비운다.
그리고 오징어 다리를 물고 씽긋 웃는다.
“역시 아들이 따라주는 술이 세상에서 제일 달구나.”
이렇게 나의 기나긴 출정식이 끝났다.
내일이 오면 아버지와 나는 각자의 전쟁터로 떠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