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60
슛으로 스탠드 상단을 맞추는 루틴도 있어요?
“김건! 김건! 김건!”
“사인해 줘요!”
리즈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나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원래 원정팀은 버스에서 내리면 뒤도 안 돌아보고 라커룸으로 몸을 피하는 게 유럽의 상식이다.
괜히 꾸물대다가 썩은 달걀이나 썩은 토마토, 맥주병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건. 위험해. 그냥 들어가.”
시어러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그냥 들어갔을 텐데 오기가 생겼다.
“좋아. 사인해 줄게. 종이 줘봐. 니들 이 동네 사니?”
“예!!”
“이름이 뭐야?”
“제이미! 제이미 밀너요.”
나는 리즈 사람들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태연하게 한참 동안 사인을 해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뉴캐슬 고참들이 감탄했다.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야.”
[EPL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03-04시즌 개막전을 시작합니다. 곧 홈팀 리즈와 뉴캐슬의 대결이 펼쳐지겠습니다. 이 경기는 시작 전부터 많은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뉴캐슬은 올 시즌 초반 최고 히트상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최초로 아시아 자본에게 인수된 팀이 과연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다들 기대하고 있습니다.] [EPL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김건 선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지난 챔스에서 바르사에게 빅이어를 선사하고 MVP까지 차지한 김건 선수가 과연 EPL에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다른 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다가 EPL로 온 선수 중에 살아남은 선수가 많지 않거든요. 그만큼 어려운 리그입니다. EPL 특유의 스피드와 터프함을 과연 김건 선수가 견딜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뉴캐슬 감독 위르켄 클롬도 화제입니다. 2년 전에 김건 선수와 분데스리가 포칼을 차지했다고는 하지만 작은 팀의 젊은 감독에 불과하거든요. 지도 경력이 일천한 감독이 과연 새로운 리그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됩니다. 팀을 재정비할 시간도 없었거든요.] [시간도 시간이지만 사실 대단한 선수 보강도 없었습니다. 김건 선수를 빼면 독일에서 뛰던 무명 선수들을 데려온 게 선수 보강의 전부거든요. 연일 엄청난 돈을 뿌려대며 거물급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영입하고 있는 첼시FC의 구단주 로빈 이브라모비치 구단주와는 다른 행보입니다.]리즈의 홈경기였음에도 중계진은 계속 뉴캐슬 이야기만 했다.
그만큼 전 세계 EPL팬들은 뉴캐슬이 어떤 축구를 들고나올지 궁금해했다.
***
“우리는 아직 정상적인 팀이 아니다.”
클롬 감독이 라커룸에서 시즌 첫 연설을 시작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선수단 분위기가 제법 잡혔다.
“변명은 하지 않겠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를 뛰는 건 내가 아니라 여러분이다. 여러분은 나의 부족함을 메워 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선수들이다. 그러니까. 가서 승리를 가져와라. 가자!”
뉴캐슬 고참 선수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영국 감독들은 대부분 선수들을 몰아붙였고 지적했고 혼쭐을 냈다.
그런데 이 젊은 감독은 내 탓이요~ 내 탓이요~를 시전했다.
“자! 가서 리즈 놈들을 박살 내자!”
“우와아아!!”
시어러의 외침에 다들 함성을 지르며 나아갔다.
긴 터널을 지나 피치로 나오니 4만 명이 꽉꽉 들어찬 경기장으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름답군… 그리웠어. 이 느낌이.”
많은 축구 선수들이 유니폼을 끝내 벗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시즌 첫 경기의 떨림.
흥분과 기대.
어둑한 하늘로 노을이 지고 경기장 조명등이 하나둘 켜질 때의 그 느낌.
그건 오직 유니폼을 입고 피치에 서 봐야지 느낄 수 있다.
“흥. 우리 리그에서 제일 비싼 선수의 발모가지는 얼마나 단단하지 한번 시험해 봐야겠군.”
리즈 미드필더 조디 모리슨이 슬쩍 다가와 떠들었다.
나는 씩 웃으며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얼마든지 덤벼.
삐이이익- !!
나의 EPL 데뷔전이 시작되었다.
리즈는 탐색전 없이 빠르게 선공에 들어갔다.
그들은 전형적인 잉글랜드 스타일 4-4-2로 공격을 전개했다.
그리고.
[리즈! 순식간에 볼을 빼앗깁니다! 지금 뭐죠!?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뉴캐슬 선수들의 숫자가 순간적으로 확 늘어난 느낌이었어요.]중원에서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포위된 리즈는 허무하게 볼을 빼앗겼다.
나는 빼앗은 볼을 전방으로 바로 연결했다.
뻐어어어엉- !!
나의 롱패스를 시어러가 발리슛으로 때렸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축구공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골대를 한참 벗어났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대포알 슛이었다.
“이 자식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리즈 선수들은 방금 벌어진 일을 파악하지 못했다.
리즈 감독 베너블즈도 고개를 갸웃하며 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압박해! 압박! 머뭇거리지 마!!”
반면 클롬 감독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술 취한 아재처럼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예전 EPL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또 빼앗깁니다! 앨런 스미슨! 드리블이 길었어요!] [… 드리블이 길다기보다는 뉴캐슬의 협력 수비가 좋았네요. 순간적으로 공간이 사라졌어요…]리즈는 볼을 잡으면 10초 안에 다시 빼앗겼다.
어느 위치에서 볼을 받아도 뉴캐슬 선수들이 귀신같이 사방에서 둘러쌌다.
뉴캐슬은 볼을 빼앗으면 바로 전방으로 보냈고 원, 투 터치 후에 슛으로 마무리했다.
시어러의 슛이 계속 빗나갔지만 어쨌든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며 주도권을 잡았다.
“뭐야… 뉴캐슬 녀석들. 이상한 축구를 하고 있잖아.”
리즈 팬들은 지금 피치에서 벌어지는 일에 호기심을 보였다.
자기 팀이 당하고 있었지만 아직 동점이고 상대가 숙적 맨유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객관적으로 감상할 여유가 있었다.
“왜 저렇게 영점을 못 잡는 거야!?”
우리는 4-3-3 포메이션이었는데 나는 일단 레프트윙 자리에 섰다.
위치만 윙이지 사실 프리롤이었다.
나는 중앙으로 좁혀들며 미드필더들의 압박에 참여했고 롱패스로 시어러에게 연결하는 일을 했다.
근데 이 아저씨가 개막전이라고 흥분했는지 영~ 영점이 안 잡혔다.
“흥분했어요!? 볼이 계속 뜨잖아요. 좀 깔아 차요.”
“잔소리하지 마! 난 EPL에서 가장 골을 많이 넣은 선수야! 나만의 루틴이 있다구.”
“슛으로 스탠드 상단을 맞추는 루틴도 있어요?”
“시끄러워!”
나는 일부러 말을 걸어 시어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중앙으로 내려가 미드필드진 라인 간격을 조절했다.
“개리! 왼쪽으로 더 올라오고 솔다노는 더 중앙으로 이동해! 키어런! 밑에서 뭐 하는 거야? 더 올라와서 자리를 잡으라구. 뒤는 저 독일 촌놈 둘한테 맡겨.”
“쳇.”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게리 스피디, 놀베르토 솔다노, 키어런 다이가 투덜댔지만 어쨌든 말은 들었다.
그들은 지난 며칠 동안 공은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하고 계속 중원에서 간격을 잡는 훈련만 받았다.
경기 내내 간격을 유지해야 사방 압박에 효과가 생긴다.
만약 네 방향 중 한쪽이라도 간격이 벌어지면 사방 압박은 무너진다.
놀랍게도 뉴캐슬 선수들에게는 ‘간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게 당시 영국 축구의 현실이다.
특히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그저 볼을 치고 달리고 때리는 단순하고 호쾌한 축구로 성적도 내고 인기도 얻었다.
그 화끈한 공격 축구가 얼마나 멋졌으면 [엔터테이너]라는 별명으로 불렀겠는가.
클롬은 뉴캐슬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과거 뉴캐슬의 호쾌한 축구를 좋아한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그 축구야말로 축구의 본질에 가까우니까. 하지만. 현대 축구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 변화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적응해야 한다. 그 생존의 핵심에 바로 압박과 전환이 있다.”
“… 압박과 전환?”
클롬은 기존 뉴캐슬 선수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축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강의하며 하나하나 이해시켰다.
평생 축구로 가족을 먹여 살린 선수들도 사실 축구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클롬의 강의 능력이 워낙 좋았고 새로운 지도법과 전술론에 영국 선수들도 호기심을 보였다.
결국 그는 뉴캐슬 선수들에게 압박과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납득 시켰다.
그다음 훈련장으로 나가서 본격적인 압박과 전환 훈련을 실시했다.
다행히 뉴캐슬에는 거칠고 활동량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클롬의 게겐프레싱 전술에 안성맞춤이었다.
[뉴캐슬! 사방에서 압박합니다! 리즈! 또 볼을 빼앗깁니다! 김건! 패스! 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드리블 돌파합니다!]나는 빼앗은 볼을 차며 내달렸다.
EPL 잔디가 스페인 잔디보다 더 미끄러웠다.
그래서 볼이 더 빠르게 굴러갔다.
[김건! 팬텀 드리블!! 성공합니다!]평소보다 1.5배 빠른 속도로 볼을 치고 달렸다.
컨디션이 어찌나 좋은지 몸이 날아갈 듯했고 팬텀 드리블을 칠 때마다 볼이 엄지발가락 안쪽에 쩍쩍 달라붙었다.
“이 새끼야! 나대지 말라고 했지!!”
조디 모리슨이 뒤에서 스파이크를 들고 태클을 걸었다.
파앗- !!
나는 볼을 띄우며 날아올랐다.
“멍청아! 소리치면서 달려들면 타이밍을 들키잖아!”
나는 백태클을 피하며 페널티 박스로 들어갔다.
성난 리즈 수비수들이 몰려들었다.
파앗- !!
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반대편으로 볼을 찔렀다.
시어러가 발을 쭉 뻗으며 나의 패스를 밀어 넣었다.
“고오오오오올~!!”
[리즈 0 대 1 뉴캐슬]나의 EPL 첫 공격포인트였다.
쫙- !!
나는 시어러와 하이파이브했다.
“내 발목을 어쩐다고 했더라?”
나는 하프라인으로 돌아가며 모리슨을 약 올렸다.
리즈 선수들은 패닉에 빠졌다.
골을 먹은 것도 문제지만 골을 먹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나빴다.
‘좀 더 흔들면 곧 무너지겠군.’
이게 사방 압박의 효과였다.
지속적으로 강한 압박을 당하면 상대는 볼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불안해한다.
‘나한테 볼이 오지 않았으면…’
상대 팀 선수가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들면 그 게임은 끝난 거다.
삑! 삑! 삐이이익- !!
[리즈 0 대 4 뉴캐슬]우리는 1R에서 사방 압박 전술로 리즈 유나이티드를 압살했다.
점유율은 7대3이었고 리즈 선수들은 우리 진영으로 넘어오지도 못했다.
나는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시어러는 3골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물론 모두 나의 어시스트였다.
우리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던 사람들은 압도적인 결과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영국 기자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들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