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67
저 친구는 프로가 될 태도를 지니고 있어
“건우야!”
“케빈 형!”
여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잡혀있는데 사무실로 케빈 킴이 들어왔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처럼 서로 얼싸안았다.
“이게 얼마 만이냐!”
“그러니까요. 형. 진작에 시간 좀 내지! 맨날 바쁜 척이야!”
그동안 최재성과는 자주 만나고 통화도 거의 매일 했었다.
그와 함께 진행하는 기업 비즈니스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케빈 킴은 선수 발굴과 관리를 맡고 있어서 나와 엮일 일이 없었다.
가끔 런던에 와도 매번 출장 중이라 얼굴 보기 힘들었다.
“미안하다. 건우야. 근데 사실 나 지금 또 나가봐야 해.”
“예?”
“오늘 꼭 봐야 하는 선수가 있거든.”
“그래요? 그럼 같이 보러 가요.”
“정말!?”
이렇게 해서 나는 케빈 킴과 차를 타고 런던을 떠나 사우스앤드 온시로 향했다.
한국으로 치면 동해안 포항쯤 되는 위치다.
간만에 바다를 보며 드라이브하니까 가슴이 탁 트였다.
“아~ 강도 좋지만 역시 바다가 최고야.”
도착한 곳은 바닷가 휴양지였다.
여유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잠시 바다 구경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곧장 축구장을 찾아갔다.
“좋았어! 길! 계속 달려!”
“패스해! 패스!”
바닷가 축구장에서 10대 후반 유소년 선수들이 열심히 뛰고 있었다.
금발에 잘생긴 등 번호 7번 소년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유독 볼을 예쁘게 찼다.
케빈은 그를 흐뭇하게 보고는 감독과 인사했다.
서로 친분이 있는지 가벼운 농담까지 했다.
케빈 형은 이런 식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직접 돌아다녔다.
어떤 선수가 괜찮다는 소리가 들리면 어디든 즉시 찾아갔다.
이젠 부하 직원을 시켜도 되는데 본인 스스로가 이 일을 너무 좋아했다.
집착에 가까운 몰두랄까.
부인 사야카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한다.
“설마… 김건 선수!?”
유소년 감독이 나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무슨 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번이나 내 얼굴을 확인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김건 선수!? 뉴캐슬의 김건 맞죠!?”
“진짜야! 진짜 김건이 여길 찾아 왔어!”
연습 경기하던 선수들이 나를 보고는 전부 달려왔다.
그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부모부터 축구팀 직원들까지전부 몰려왔다.
“어라…”
결국 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한참 동안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줘야 했다.
소동이 겨우 끝난 후 케빈 형이 미안해했다.
“슈퍼스타의 사정을 내가 간과했구나.”
“아니에요. 즐거웠어요.”
“앞으로 더 유명해질 텐데… 너처럼 살면 힘들겠어.”
“뭐. 슈퍼스타니까. 어쩔 수 없죠.”
“하하하! 저 자신감은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우리는 돌아오는 차에서 수다를 떨었다.
“오늘 그 친구 어땠어?”
“길 에반스? 음… 뭐랄까. 볼은 예쁘게 차더라구요. 어릴 때 저처럼요.”
“딱 마음에 들진 않았구나.”
“예. EPL에서 직접 뛰어보니까 알겠어요. 이 리그는 다른 유럽 리그와 달라요. 더 빠르고 더 터프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케빈이 보러 온 선수는 이 지역 출신 길 에반스였다.
나이는 18세.
육각형 미드필더가 될 자질이 보이는 선수이긴 했다.
“육각형은 육각형인데 그게 큰 육각형이 될지 작은 육각형이 될지 모르겠어. 정신력이 더 강했으면 좋겠는데 에반스는 너무 순하거든.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해요. 형의 일이잖아요.”
“그냥 한번 물어본 거야. 우리 슈퍼스타께서 과연 유망주 육성에도 능력이 있는지.”
“유망주라면 바르셀로나 라 마시아에 잔뜩 있죠.”
“걔들은 비싸잖아. S급은 팔지도 않을 것이고.”
리오네 메쉬가 성인 무대에 데뷔할 시기가 오고 있었다.
호날드는 올해 데뷔했으니까.
‘앞으로의 유럽축구 10년을 메쉬와 호날드가 끌고 갈 거라는 걸 아직은 나밖에 모르겠지?’
나의 등장으로 과연 유럽축구 역사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다.
삼파전이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흐름이 벌어질까.
“잠깐… 잉글랜드인 유망주라… 누군가 떠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왜? 누구 아는 선수 있어?”
“…”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잉글랜드 출신 어떤 선수의 기구한 이야기가 확 떠올랐다.
8부리그 팀을 전전하며 낮에는 공장을 다니고 밤에만 축구를 해야 했던 선수.
꼬일 대로 꼬인 축구 선수 경력을 겨우 이어가다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 1군 무대에 데뷔할 수 있었던 선수.
그 어렵게 잡은 기회를 기어이 살려서 돈 잔치가 된 EPL에서 축구 동화를 쓴 남자.
레스터시티의 영웅.
“형. 셰필드가 여기서 멀어요?”
“셰필드!? 엄청 멀지.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야 해.”
“지금 가요.”
“거길 가자고!?”
“예. 당장 가요. 엄청난 선수를 만나야 하니까.”
“도대체 누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봐야 모를 테니까.
사실 그 친구가 셰필드에 있는 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전생의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그곳 출신이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거기에서부터 추적해야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런던으로 돌아오다가 4시간 차를 달려 북쪽으로 향했다.
셰필드는 바닷가 휴양도시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도시였다.
우리는 한밤중에 도착해 고택을 개조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근처 펍에서 맥주를 한 잔 때리고 밀린 수다를 떨었다.
당연히 주제는 축구였다.
케빈 형이 영국 전역을 떠돌며 겪은 일들만 책으로 써도 몇 권이 나올 분량이었다.
“제이미 버디라는 유소년 선수를 찾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셰필드 축구 협회를 찾아갔다.
“제이미 버디? 셰필드 유소년팀 중에는 그런 이름이 없는데요.”
“그럴 리가 없어요. 다시 찾아보세요.”
내가 찾는 선수는 스트라이커 제이미 버디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17세 정도 됐을 거다.
이 친구를 뉴캐슬로 데려와 지금부터 제대로 훈련을 시키면 20세 전에 1군 데뷔를 할 수 있을 거다.
그럼 그가 EPL 잉글랜드인 공격수 계보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원래 역사보다 10년 빨리 1부리그 데뷔를 하는 셈이니까.
“셰필드 어느 유소년팀에도 제이미 버디라는 선수는 없습니다.”
“… 그럴 리가 없는데. 미안한데 딱 한 번만 다시 검색해 보세요.”
내가 직원들을 닦달하자 케빈 형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그 선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전에 셰필드 출신 동료한테 들었어요. 자기네 동네에 제이미 버디라는 소년이 있는데 엄청난 공격수가 될 천재라구요.”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즉석에서 말을 지어내는 걸 보면 내가 거짓말에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 사무실로 청소하는 할아버지가 들어왔다.
딱 봐도 여기서 반백 년 일한 티가 났다.
“할아버지. 말씀 좀 물을게요. 혹시 제이미 버디라는 소년을 아세요?”
“으응. 뉴캐슬의 김건 선수!? 반가워요.”
“아. 네네.”
“손 회장은 왜 하필 뉴캐슬을 샀답니까? 우리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사지. 우리 셰필드가 얼마나 살기 좋은 도시인데… 뉴캐슬은 북동쪽에 붙어있어서 겨울에 엄청 춥다구요.”
“아. 그렇군요.”
할아버지의 엉뚱한 소리에 직원들이 웃었다.
“근데 아까 누구라고 했죠?”
“제이미 버디요. 나이는 17살쯤 됐을 겁니다.”
“버디라면 내가 잘 알죠.”
“정말요!? 지금 어디 있어요?”
“스톡스 브리지 파크 스틸즈라는 팀에서 뛰고 있어요. 셰필드에서 작년에 이적했죠.”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바로 뛰쳐나가려는데 할아버지가 내 팔을 잡았다.
“우리 손자가 당신 팬이에요. 그러니까 사인을 좀.”
“아. 물론이죠.”
나는 할아버지 손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사인을 해줬다.
그리고 차를 몰고 더 북쪽으로 올라갔다.
스톡스 브리지는 셰필드 윗동네였다.
파크 스틸즈 구단에 가서 제이미 버디를 찾았다.
“제이미는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저녁에 다시 오세요.”
애가 탔지만 하는 수 없었다.
우리는 구단 훈련장 근처 바에서 죽치고 앉아 기다렸다.
음식은 형편없었지만 그나마 맥주는 맛있었다.
“그만 마셔. 선수 만나기도 전에 잔뜩 취하겠어.”
“딱히 할 게 없잖아요.”
“그건 그러네…”
하품이 나올 정도로 심심한 동네였다.
주변에 갈 곳도 없었고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결국 할 일 없이 맥주를 홀짝이던 우리 둘은 바 구석에서 낮잠에 빠져들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컴컴한 하늘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젠장 할 영국 날씨!”
“설마. 오늘 훈련 취소된 거 아니야!?”
우리는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클럽 훈련장으로 갔다.
“어라…”
훈련장에서 어린 선수들이 나왔다.
다들 사복 차림이다.
안 좋은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비 때문에 오늘 훈련 취소됐어요.”
“뭐라구!?”
나와 케빈은 당황했다.
이 지루한 동네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한다구?
“건우야. 그 버디라는 친구가 그렇게 대단해?”
“직접 보면 알아요.”
“어떻게 하지? 그 애 집에 찾아갈까? 아니면 내일 다시 여기로 와?”
“아니요. 버디는 곧 이리 올 거에요.”
“훈련 취소됐다잖아.”
“그래도 올 거에요. 내가 아는 제이미 버디라면 반드시 옵니다.”
“…”
케빈 형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의 뜻에 따랐다.
언제나 결국은 내 말이 맞는다는 걸 아니까.
30분 후.
한 여드름투성이 소년이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비쩍 마른 평범한 잉글랜드 소년이었다.
“저 선수야?”
“쉿. 조용히 해요. 일단 말 걸지 말고 어떻게 하는지 멀리서 지켜봐요.”
제이미 버디는 훈련장에 도착해서 팀 훈련이 취소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잠시 실망했지만 곧 축구화를 갈아신고 훈련장에 나갔다.
그다음 비를 맞으며 혼자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가난한 구단이라 라이트도 켜지 않아 온통 컴컴했다.
제이미는 전혀 개의치 않고 혼자 훈련에 몰두했다.
러닝을 마친 후에는 혼자 콘을 설치하고 볼을 차며 이리저리 뛰었다.
한참 지켜보던 케빈 형이 나를 돌아보았다.
“볼 터치가 완전 엉망이잖아.”
“하하하. 그건 그렇네요.”
“킥력도 형편없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케빈 형이 찾아낸 길 에반스에 비하면 제이미 버디는 완성되지 않은 선수였다.
“하지만… 니가 왜 저 녀석을 찍었는지 알겠어.”
“그래요?”
“태도. 태도가 달라. 저 친구는 프로 선수가 될 태도를 지니고 있어. 훈련하는 표정만 봐도 알겠어. 강한 의지와 근성이 느껴져. 저런 친구는 고난이 닥치면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지.”
“돗자리 깔아도 되겠어요.”
나는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열심히 훈련하는 버디를 흐뭇하게 보았다.
“이제 제가 등장할 차례네요.”
나는 컴컴한 훈련장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