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98
나한테 까불면 혼난다
“대표팀이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정명준은 지금 애가 탔다.
2002년 월드컵 준우승의 인기로 대통령 후보에까지 올랐던 짜릿함을 잊지 못했다.
만약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놀라운 성과를 낸다면 아쉽게 좌절된 대통령의 꿈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 수도 있었다.
그에게는 내가 반드시 필요했다.
“회장님. 본프라레 같은 3류 감독은 도대체 왜 뽑은 겁니까?”
“뭐라고!?”
“그가 월드컵 준우승을 했던 팀에 어울리는 감독이라고 생각하세요?”
수행원들이 나를 제지하려고 하자 정명준이 손을 들어 막았다.
지들이 조폭이야 뭐야.
“감독이 문제라는 거지? 그럼 감독을 교체하면 대표팀에 들어올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감독은 결과일 뿐이에요. 문제는 더 본질적인 곳에 있습니다.”
“그게 뭔데?”
“3류 감독을 데려온 사람들이죠.”
“…”
정명준의 얼굴이 구겨졌다.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하이팅크 감독 같은 일류를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정명준의 돈과 영향력 덕분이었다.
그는 FIFA 차기 회장을 노리며 유럽 축구계에 지속적인 로비를 하고 있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무조건 성과를 내야 했기에 거액을 베팅할 수 있었다.
만약 그의 강력한 푸시가 없었다면 하이팅크는 굳이 리스크를 안고 한국 팀을 맡지 않았을 거다.
반대로 이번 본프라레 감독 선임은 정명준이 신경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왜 굳이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 같은 데나 어슬렁대던 3류 감독을 데려왔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래야 자기들이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이팅크나 코넬류 같은 거물급 감독을 앉혀놓고 보니 자기들이 해먹을 게 없었을 테니까요.”
정명준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아무리 유럽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지만 축협 간부들이 볼 때는 그저 선수 하나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축협에 대항해 살아남은 선수는 없었다.
그 차범진도 마음만 먹으면 언론을 이용해 생매장 시킬 수 있는 게 축협이다.
나는 그 하늘 같은 축협의 수장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하하하! 아주 재밌군. 재밌는 친구야. 손 회장이 왜 자네를 아끼는지 알겠어.”
정명준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고 삭막한 공기가 풀리진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현 축협 전략위원회에 소속된 모든 간부를 해고해 주세요. 당연히 위원장도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차범진을 새 위원장에 앉히고 그에게 간부 선발권과 감독선발권 등 전권을 넘겨주시면 됩니다. 이것만 해주시면 바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죠.”
정명준은 충격을 먹고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내 캐릭터를 아니까 파격적인 요구를 할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차범진을 축협 핵심 자리에 앉히고 니가 뒤에서 상왕 노릇을 하겠다. 뭐 그런 건가?”
“그럴지도 모르죠.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라면요.”
정명준이 움찔했다.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단어가 나의 입에서 나오니까 어쩐지 설득력 있게 들렸다.
[대한민국의 독일 월드컵 우승.]“너 정말 우리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쉽진 않겠지만 저라면 가능할 수도 있죠. 상상해보세요. 독일 베를린 스타디움에서 우리가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저는 이미 그 경기장에서 한번 포칼 우승컵을 들어 올렸었거든요. 불가능은 없습니다.”
“…”
정명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그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된다면 그는 FIFA 회장 선출은 물론이고 어쩌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도…
“감독을 바꿔 줄게. 니가 원하는 감독을 말해 봐. 내 개인 돈을 써서라도 반드시 데려올 테니까.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아니면 너의 팀 클롬 감독이라도 니가 원하기만 하면 다 데려올 수 있어.”
“아니요. 축협의 근본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감독을 데려와도 큰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제 요구사항을 수정할 생각은 없어요.”
“그딴 요구를 들어줄 단체가 세상에 어디 있어!?”
“회장님. 월드컵 우승이 장난입니까?”
“…”
“그것도 유럽에서 벌어지는 원정 대회에요. 우리는 단 한 번도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미치지 않으면 결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요.”
“…”
“회장님이 2002년 월드컵에서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수준의 희생을 바라는 겁니다.”
나는 정명준을 놔두고 호텔을 나왔다.
그는 끝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당장 결단을 내리기엔 너무나 엄청난 일이었기에 그를 이해했다.
자기 손으로 자신의 팔다리를 다 잘라내라는 얘기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내가 지금까지 한국 언론과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건 바로 축협의 수장 정명준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내가 어떤 카드를 갖고 있는지 모르게 만드는 게 그를 가장 애타게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어이~ 시스터!”
“오! 오빠!! 어서 와!”
출국 전날.
여동생 지혜를 만나러 동대문에 갔다.
그녀는 대형 창고 건물 하나를 통째로 구입해서 온라인 패션몰 사무실 겸 창고 겸 스튜디오로 쓰고 있었다.
직원 숫자가 50명이 넘었다.
한쪽에서는 계속 옷을 포장해서 배송을 준비했고 한쪽에서는 신상 옷을 촬영하고 있었으며 사무실에서는 고객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한 마디로.
“완전 난장판이네.”
“난장판이라니요~ 오라버니~ 완벽한 분업 시스템이라구요.”
지혜는 이제 젊은 사장님 포스가 넘쳤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에도 계속 직원들이 찾아와 결재를 받았다.
온라인 쇼핑몰 특성상 계속 돌발상황이 발생했는데 지혜가 그런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해서 참 기특했다.
이런 잠재력을 가진 아이였는데 부모님은 딸의 재능을 전혀 몰랐고.
그 망할 놈을 만나서 인생을 망쳤었다.
“오빠. 이 티셔츠 완전 대박이야.”
“그럼. 나한테 판매액에 5% 떼어줘.”
“와! 완전 도둑이다! 5%는 너무 많아! 3%.”
“농담이야. 인마. 내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지혜가 말한 건 내가 밀월전에서 관중석에 난입해 훌리건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프린트한 티셔츠였다.
일종의 을용타 같은 짤로 인터넷에서 유명했다.
사진 밑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나한테 까불면 혼난다.]지혜한테 티셔츠로 만들어도 되냐고 연락을 받았을 땐 “설마 그런 게 팔리겠어?” 했는데 컬트적인 인기를 얻어 불티나게 팔렸다.
인터넷에 착용 샷이 넘쳐났고 외국에서도 인기였다.
“미안해. 오빠. 한국에 왔는데도 출국하기 전날 딱 한 번 보네.”
“서로 바쁜 게 좋은 거야. 맨날 봐서 뭐 할래.”
“치이. 그래도.”
“오빠는 니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나야 말로야. 다음 시즌에는 제발 성질 좀 죽여.”
“생각해볼게.”
“엄마랑 아빠랑 생방송으로 경기 보다가 심장마비 걸릴 뻔하셨다구. 칼 맞았으면 어쩔 뻔했어.”
“알았다니까. 그 얘기 벌써 10번 들었어.”
우리는 곧 여느 오누이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계속 여기저기서 그녀를 찾았다.
“가볼게. 지혜야.”
“벌써!?”
“응. 일에 집중해. 지금은 그럴 때야.”
“알았어… 미안해. 오빠.”
나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한마디 했다.
“항상 남자 조심해라.”
“으이구! 또 그 얘기야! 연애할 시간도 없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
“내가 나중에 괜찮은 놈 소개해 줄 테니까. 자나 깨나 남자 조심해. 넌 남자 보는 눈이 없다는 걸 항상 명심해라.”
“오빠!!”
“나 간다~~ 나오지 마.”
나는 그녀를 두고 회사를 나왔다.
다행히 일이 바빠 정말 만나는 놈은 없는 것 같았다.
“좋아. 내가 지혜 남편감을 찾아줘야지.”
생각해보니 간단한 문제였다.
지혜가 남자 보는 눈이 없으면 내가 인증할 수 있는 괜찮은 남자를 붙여주면 된다.
걔가 어떤 취향인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
***
다음 날 아침.
나는 케이코와 뉴캐슬행 비행기를 탔다.
그 스튜어디스를 만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지루한 비행 끝에 뉴캐슬 공항에 도착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작은 공항이 기자들로 넘쳐났다.
내가 한국에서 완전히 잊고 있는 동안 이곳에서는 내가 저지른 사고의 여파가 계속 진행 중이었다.
“김건 선수. FA의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소하실 겁니까?”
“아직도 자신의 폭력 행위가 정당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시하고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기자를 돌아보았다.
“내 팀원을 공격하는 놈은 누구든 나한테 처맞을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그게 팀이니까요. 그리고 재소는 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계획이 있거든요.”
공항을 빠져나와 집이 아니라 뉴캐슬 클럽 하우스로 갔다.
클롬은 아직 독일에 머물고 있었다.
나를 마중 나온 건 고든 스미스 단장이다.
“김건! 군사교육 잘 받았어요? 군인처럼 더 늠름해졌네요.”
“설마. 고작 4주 훈련받은 건데요. 괜히 오바하다가 정식 군 복무한 한국 청년들한테 혼나요.”
“아. 죄송해요. 그렇군요.”
고든 단장은 괜히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척했다가 당황했다.
우리는 마크 스탠리 디렉터의 사무실로 함께 들어갔다.
[마크 스탠리 스포츠 디렉터]손정호 회장이 미국에서 영입해 뉴캐슬에 투입한 핵심 인재였다.
그는 미국 프로 스포츠계의 거물로 뉴캐슬 구단의 글로벌화를 이끌 책임자였다.
“오~ 김건! 반가워요.”
그는 작은 키에 벗겨진 머리, 볼록 나온 배,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묘한 박력이 넘쳤다.
미국 비즈니스맨답게 저돌적이고 무자비한 면이 있었다.
천상 영국 귀족 샌님 같은 고든 단장과는 꺼꾸리와 장다리처럼 잘 어울렸다.
“보스턴에 있는 내 조카들이 선물 정말 고맙다고 전해달래요.”
“뭐. 별것도 아닌데요.”
지혜가 디자인한 [나한테 까불면 혼난다.] 티셔츠는 미국에서도 인기였다.
스탠리의 조카들이 꼭 갖고 싶다고 해서 나는 지혜를 통해 미국으로 보내줬다.
“6개월의 휴가를 어떻게 보낼 셈이죠?”
“휴. 휴가요?”
스탠리의 말에 고든이 당황했다.
고든 같은 사람이 볼 때는 6개월의 출장 정지는 구단 최악의 위기였다.
팀의 에이스가 경기에서 제외되는 거니까.
하지만 스포츠 디렉터가 보는 눈은 달랐다.
그는 더 큰 걸 봤다.
“내 생각에는 우리 스포츠 그룹 소속 축구단을 쭉 돌면서 자선 대회를 열었으면 해요. 김건 선수의 글로벌 이미지도 좋아질 것이고 이야기도 만들어지니까요. 사람들은 속죄의 스토리를 좋아하죠.”
“마케팅 적으로 좋은 아이디어네요. 근데 저한테는 다른 계획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