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03
이건 너를 위한 골이야
“너는 팀을 잘못 골랐어. 이 팀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시끄러워. 건.”
나는 호베르투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녀석이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어!”
코너킥이 날아오자 녀석이 순간 사라졌다.
골대 앞에 가득한 거구들 틈에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등으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당했다.
“고오오오오올~!!”
[교체해 들어온 호베르투가 혼전 중에 골을 밀어 넣습니다!! 호베르투! 첼시를 구원합니다!] [첼시 1 대 1 뉴캐슬]절대 우연이 아니다.
녀석의 악마 같은 집요함에 볼이 달라붙은 거다.
호베르투는 첼시 응원단으로 달려가 별거 아니라는 듯 뻐겼다.
필립 롬이 미안해했다.
“필립. 괜찮아. 니 잘못이 아니야. 저놈은 원래 저래.”
“최선을 다해서 막아볼게요.”
“아니. 아니. 그런 상대가 아니야. 상대는 축구 선수가 아니라 도둑고양이라구. 아니지. 작은 악마라고 할까?”
“예??”
정직하고 바른 성품인 필립은 나의 표현에 충격을 먹었다.
“둘이 친구라고 하지 않았어요?”
“친구 맞아. 내 이야기는 선수로서의 특성을 말하는 건데…”
“그래도 어떻게 그런 표현을…”
이대로는 안 된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도둑고양이에게 승점을 도둑맞는다.
나는 클롬 감독에게 물어볼 틈도 없이 급히 아우베즈를 불렀다.
주심이 센터서클로 돌아오라고 난리였다.
“다니. 필립과 포지션을 바꿔. 니가 왼쪽에서 뛰면서 호베르투를 마크해.”
“알겠어요.”
“필립. 너는 오른쪽에서 뛰어. 다니가 수비에 집중하는 동안 니가 공격을 주도하는 거야.”
“해볼게요.”
풀백의 좌우를 바꾸는 초유의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처음 보는 광경에 웅성거렸다.
[뉴캐슬. 좌우 풀백의 위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뭐죠? 이런 게 가능한가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필립 롬과 다니 아우베즈라면 가능합니다. 필립은 원래 독일에서 라이트백으로 뛰던 선수거든요. 지난 시즌에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했구요. 호베르투의 마크맨으로 필립보다는 같은 브라질인인 아우베즈가 낫다고 판단한 거 같습니다.]유럽 최정상 무대에서 살아남은 브라질인 공격수들은 모두 한가지 특성을 필수로 가지고 있다.
브라질 축구에서는 상대를 영악하게 속이는 게 재능이자 미덕이다.
호베르투는 피지컬은 물론이고 주력이나 드리블에서도 월드클래스급은 아니다.
본능적인 영악함으로 수비수를 속이고 악마 같은 침착함으로 피니시를 하는 골잡이였다.
독일의 정직하고 성실한 청년 필립 롬과는 최악의 상성이었다.
선수 경력이 쌓이면 대처법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의 필립은 너무 어렸다.
같은 브라질인 아우베즈라면 호베르투의 속임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거다.
[호베르투! 볼 잡았습니다! 오른쪽에서 돌파 시도!! 아! 실패합니다!]효과는 바로 나왔다.
아우베즈는 호베르투의 화려한 페인팅에 속지 않고 기다렸다가 마지막 순간 볼을 빼앗았다.
호베르투가 다이빙하며 쓰러져 발목을 붙잡고 호들갑을 떨자 아우베즈가 손짓했다.
“엄살떨지 말고 일어나! 꼬마야!”
“뭐라고!? 이 애늙은이 자식이!”
“너 지금 애늙은이라고 했어!?”
“그래! 마이콘한테도 주전 자리나 빼앗기는 애늙은이야. 감독님이 니 얼굴 보고 노인인 줄 알고 안 뽑은 걸 거야.”
“국대 후보에도 못 드는 한심한 녀석이 쯧쯧. 넌 여기서 평생 교체 선수나 해. 그게 딱이야.”
“방금 누가 동점 골을 넣었는지 잊어버렸냐? 애늙은이라 벌써 치매가 왔어?”
아우베즈와 호베르투가 피 튀기는 트래쉬 토크를 주고받았다.
브라질 억양 포르투갈어가 뭔가 만담처럼 웃겼다.
둘 다 아직 브라질 국대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기에 서로 놀려댔다.
[오늘 경기는 마치 체스 게임을 보는 거 같습니다. 양 팀의 전술 변화가 놀랍네요. 서로 절묘한 수를 주고받으며 장군 멍군하는 패턴으로 경기가 흘러가고 있습니다.]후반전 30분 경.
여전히 1대1의 균형은 깨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가빠 오는 호흡을 조절하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독일은 11명의 팀 조직을 중심으로 축구를 생각한다.
11명이 하나의 기계처럼 각자 역할을 나누고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스페인은 공을 중심으로 축구를 생각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공을 소유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이탈리아는 이들과 달랐다.
그들은 피치를 중심으로 축구를 생각했다.
경기장을 하나의 체스판으로 보고 선수들을 장기 말로 생각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떻게 하면 장기 말을 움직여 체스판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11명이 완벽하게 공간을 통제하는 [압박 축구]가 괜히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나는 도서관에 처박혀 공간 통제에 대한 논문을 읽고 또 읽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정교한 이론이 많았다.
그중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만 뽑아서 내 노트에 정리했다.
노트에 정리했다고 곧장 나의 지식이 되는 건 아니다.
극진가라데 최배달 총재가 말씀하셨듯이 모든 축구 지식은 피치 안에서 결과로 증명되어야 했다.
오늘 이 게임은 첫 번째 실험이다.
“고오오오오올~!!”
[첼시 2 대 1 뉴캐슬]후반 36분.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프랭크 랜퍼드! 28미터 중거리 슛을 꽂아 넣습니다! 첼시 응원단이 환호합니다! 그림 같은 골이었어요!]첼시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미들라이커.
어마어마한 득점력을 자랑하는 미드필더 랜퍼드가 푸른 깃발이 휘날리는 응원단 앞에서 런던의 왕처럼 포효했다.
그는 호베르투와 드록파를 맨투맨 마크하다가 생긴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주장…”
“다들 진정해. 아직 10분이나 남았어. 두 골을 넣기엔 충분한 시간이야.”
“두 골!?”
“뭐야? 잊었어? 내가 말했잖아. 우리가 우승하려면 오늘 첼시한테 반드시 승점 3점을 빼앗아야 한다구.”
“…”
이 상황에서도 나는 무승부가 아니라 승리를 노렸다.
혼란에 빠졌던 팀이 곧 안정되었다.
어린 선수들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린 도전자가 아니라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우승을 노리는 챔피언이라는 걸.
[필립 롬! 오른쪽 사이드를 돌파합니다! 폭풍 드리블! 이 시간대에도 저런 스프린트를 하다니 대단해요!]필립은 오른쪽에서 더 날카로운 오버래핑을 뽐냈다.
피지컬이 좋은 첼시 선수들을 가로지르며 송곳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마케렐라! 막아섭니다! 아! 패스!!]마케렐라가 덤벼드는 순간.
필립이 나에게 패스를 찔렀다.
볼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걸 깨달은 마케렐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뜻은 바로.
투욱- !
나는 골대를 등지고 침투하는 밀러에게 스루패스를 밀어주었다.
밀러는 달려들며 그대로 볼을 때렸다.
뻐어어어엉- !!
“고오오오오올~!!”
[첼시 2 대 2 뉴캐슬]강한 발목 힘이 실린 캐논 슛이 체흐를 무너트리고 골망을 갈랐다.
역전 골을 먹고 3분 만에 성공한 동점 골이다.
밀러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펄쩍펄쩍 뛰며 돌쇠 세리머니를 했다.
[뉴캐슬 대단합니다. 방금까지 절망적인 분위기였거든요. 단 3분 만에 동점을 만듭니다. 이런 게 강팀이죠.] [밀러의 슛도 대단했지만 진짜 대단한 건 김건의 플레이입니다. 최전선에서 순간적으로 내려오며 첼시 센터백을 끌어 당겼구요. 그 공간으로 침투하는 밀러의 오른발에 딱 걸리게 정확한 패스를 보냈습니다. 타이밍, 속도, 각도 모든 게 완벽했어요.]후반 40분.
양 팀 선수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맞부딪쳤다.
챔피언을 노리는 팀들의 대결다웠다.
과열된 상황에서 양쪽 선수들이 거친 몸싸움을 벌이고 주심에게 항의를 거듭하고 관중석에서는 야유를 쏟아내며 스탠퍼드 브리지는 광란에 빠져들었다.
“후우우~~”
나는 호흡으로 흥분을 내 몸에서 빼냈다.
이 시간에 필요한 건 얼음처럼 차가운 냉철함이다.
차분히 숨을 고르며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헤헤.’
호베르투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녀석도 분명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대략 5분.
반드시 승점 3점을 빼앗아야 첼시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
[호베르투! 중앙으로 쇄도합니다!]호베르투는 작정한 듯 윙어 자리를 버리고 중앙에서 스트라이커처럼 움직였다.
명백히 드록파와 포지션이 겹쳤다.
“위험해!”
그는 전술이고 뭐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골을 우겨 넣으려 했다.
아우베즈가 열심히 막았지만 변칙적인 움직임에 그만 역동작에 걸리고 말았다.
[호베르투! 기어이 돌파합니다! 뉴캐슬 위기에요! 아! 이건!?]파아아아앗- !!
호베르투가 아우베즈를 제치고 페널티박스로 들어오는 순간.
마스체라도가 튀어나와 태클을 걸었다.
[심판! 휘슬 불지 않습니다! 마스체라도! 전방으로 패스!!]마스체라도의 순간적인 판단이 팀을 살렸다.
그는 호베르투가 드록파에게 패스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예측하고 드록파를 프리로 놔두고 승부를 걸었다.
[제임스 밀러! 패스를 받아! 어! 원터치로 연결합니다!]사람들은 밀러의 돌쇠 외모를 보고 그를 투박한 파이터형 미드필더로 오해한다.
하지만 그는 패스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다.
무엇보다 축구 지능이 높았다.
전술 이해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멀티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거다.
“김건을 막아!”
짐 테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나는 원터치로 날아오는 볼을 축구화 오른쪽 날로 살며시 튕겼다.
볼이 핑그르르 튀어 오르며 내 머리를 넘어갔다.
그다음 몸을 360도 회전하며 돌진하는 짐 테리를 벗겨냈다.
내 눈앞으로 축구공이 떨어졌다.
뻐어어어어엉- !!
왼발을 크게 돌렸다.
허리의 회전이 그대로 실린 볼이 발등에서 발사되어 대포알처럼 날아가 골망을 뚫었다.
천하의 체흐도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고오오오오오올~!!”
스탠퍼드 브리지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리곤.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구석에 박혀 있던 ‘북쪽의 촌놈들’ 뉴캐슬 응원단이 내는 소리였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골이 터졌습니다! 김건! 환상의 왼발 발리슛! 제가 단언하건데 스탠퍼드 브리지가 개장한 이후로 가장 멋있는 골일 겁니다!]나조차도 나의 골에 감동해서 잠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초감각도 열리지 않았다.
그냥 무의식중에 나의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아차!’
그때 서야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역대급 골을 넣어놓고 역대급 멍청이가 될 뻔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카메라가 있는 곳을 찾았다.
그리곤 달려가서 유니폼을 들어 올렸다.
[사랑해. 케이~ 이건 너를 위한 골이야.]언더셔츠에 적어온 문구가 잘 보이게 카메라를 향했다.
삑! 삑! 삐이이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뉴캐슬이 첼시를 3대2로 물리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