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1
뭐든 첫 경험이란 강렬한 법이니까
“어쩌냐? 이제부터 시작인데?”
축구는 강팀이 항상 이기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우연에 지배되기도 한다.
허나 오늘 경기에서 우연히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명백하게 시스템의 레벨이 다른 팀이 약한 팀을 압살하고 있었다.
[블루샤크 선수들! 좁은 공간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줍니다. 악착같이 볼을 탈취하고 있어요!] [저런 점은… 칭찬할 수밖에 없네요.]3대3, 5대5로 실시했던 미니게임이 효과를 보았다.
그 훈련의 목적은 좁은 공간에서 반사적으로 수적 우위를 만드는 것이었다.
80년대 말 아리고 사키 감독에 의해 유행한 압박축구.
1999년에 압박은 축구 전술의 상식이었지만 이렇게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압박은 일본 축구에서는 낯선 경험이었다.
도쿄 선수들은 볼을 소유하는 순간 최소 2~3명이 계속 달라붙자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피터 야스퍼스! 볼을 몰고 직접 올라옵니다.]센터백 피터는 틈만 나면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도쿄 선수들이 허둥대며 막으려 하면 스나이퍼처럼 정확한 롱패스를 뿌렸다.
“나이스 패스!”
나는 피터가 날린 패스를 받아 왼쪽에서 돌파를 시도했다.
[김건 선수! 피터가 날린 강한 패스를 정말 부드럽게 받아냅니다. 볼 터치가 예술이에요! 그야말로 매직 터치!] [어린 선수치고는 제법이네요. 흠흠.]나가이 해설가는 경기가 예상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자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도쿄 선수들은 내가 아우베스와 포지션을 계속 바꾸어가며 공격하자 혼란에 휩싸였다.
삐이이익- !!
혼돈과 무기력에 빠진 도쿄 선수들이 거친 반칙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향한 차징과 태클이 날아들었는데 그래 봐야 K리그에 비하면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페널티 박스 오른쪽에서 내가 얻어낸 프리킥을 피터에게 양보했다.
그가 볼을 차는 걸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터는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프리킥의 달인이었다.
파아아아앙- !!
“고오오오오올~!!”
[하카타 3 대 0 도쿄]오른발에 정확하게 걸린 볼이 수비벽을 뚫고 날아가 골망에 꽂혔다.
그의 네덜란드 선배 로널트 쿠만이 떠오르는 호쾌한 캐논 슛이었다.
피터는 골을 넣고도 별 좋아하는 기색 없이 좀비처럼 터덜터덜 수비진영으로 내려갔다.
그런 쿨한 태도 때문일까?
응원단은 더 흥분해서 승리의 노래를 불렀고 도쿄 선수들은 기세가 꺾여 계속 전광판만 바라보았다.
“철저히 압박해! 정신이 무너지도록!”
후반전에도 블루샤크의 고강도 압박은 계속되었다.
하프타임 때 작전을 바꾸었는지 도쿄는 백패스와 롱패스를 섞어가며 나름 압박에 대응하려 했다.
후반전 30분이 넘어가며 체력이 빠지자 블루샤크의 압박이 급격히 약해졌다.
도쿄 선수들은 기다렸다는 듯 포위망을 무너트리며 역습을 감행했다.
[저거 보세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90분 내내 압박을 지속할 수는 없다고 했잖아요. 이제 블루샤크는 역공을 막아내야 합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김건! 돌파해 들어오는 나카야마 선수를 막아냅니다! 공격수가 언제 저기까지 내려간 거죠?]나는 후반전 중반부터 수비진영으로 내려와 움직였다.
우리 체력이 많이 떨어진 이유도 있었고 상대가 우리 압박 시스템에 익숙해진 이유도 있었다.
나는 미드필더진과 수비진 사이 공간에서 움직이며 수비형 미드필더 롤을 수행했다.
[김건 선수. 아마도 감독에게 프리롤을 부여받은 것 같습니다. 경기 내내 공격과 수비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움직이고 있거든요. 혼자 공수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19살 신인에게 프리롤이라… 대단하네요.] [그만큼 감독이 김건 선수의 축구 지능을 믿는다는 뜻입니다.]수비진영에서 볼을 탈취하면 나는 공격속도를 늦추며 우리 선수들이 쉴 시간을 확보했고 때로는 롱패스 한 방으로 역습을 시도했다.
내가 볼 간수를 안정적으로 했기 때문에 흔들리던 팀이 곧 안정을 되찾았다.
“헉. 헉. 헉. 저런 어린놈에게 당하다니…”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도쿄 선수들은 절망했다.
겨우 압박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했더니 출구에 내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도저히 이길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삑! 삑! 삐이이익-!!
최종 스코어 5대0.
개막전에 어울리는 화끈한 점수 차였다.
나는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아우베스는 2골, 피터가 1골을 넣었다.
“블루샤크! 블루샤크! 김건! 김건!”
하타카 팬들은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나의 이름을 연호하며 스타디움을 떠나질 않았다.
나도 경기장을 몇 바퀴나 돌며 그들의 환호에 감사를 표했다.
나의 오늘 활약은 저들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거다.
뭐든 첫 경험이란 강렬한 법이니까.
‘저 안에 어제 만났던 애들도 있겠지?’
꼭 경기를 보러 오겠다고 했으니까.
***
“원래 자신은 있었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좀 놀랍네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맨 오브 매치에 선정되어 마르코 감독과 함께 언론을 상대해야 했다.
질문은 대부분 전방압박 전술에 관한 게 많았고 나의 프리롤 사용에 대한 것도 있었다.
마르코가 딱딱하게 단답형으로 대답한 것에 비해 나는 최대한 통역을 거치지 않고 친근하게 이야기를 해나갔다.
“프로는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는 것도 중요해. 그래야 치질약 광고라도 하나 찍지.”
물론 100억을 줘도 치질약 광고를 찍을 생각은 없다.
무좀약 광고도 마찬가지고.
[블루샤크의 구세주 등장! 19세의 에이스 김건! 도쿄 폭격!]다음날 규슈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한 건 바로 나였다.
1부 리그도 같은 시기에 개막했는데 감히 2부 리그의 한국 용병이 1면을 차지한 거다.
그만큼 블루샤크의 화끈한 전술과 나의 화려한 플레이는 단번에 사람들 관심을 끌었다.
J1리그고 J2리그고 대부분의 팀이 비슷비슷한 패스 축구를 구사하는 게 당시 J리그의 분위기였는데 어디서 떼강도단처럼 거친 놈들이 등장한 거다.
나는 나의 첫 1면 등장 신문을 모두 모아서 아버지에게 국제특급 소포로 보냈다.
이런 귀찮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
블루샤크는 그 후로 7연승을 달렸다.
우리의 축구가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축구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여기저기 나와서 대담을 벌였다.
일본은 대담을 참 좋아하는 나라다.
[신선하긴 합니다만… 결국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과거에도 많았습니다. 리그 초반 참신한 전술로 반짝하다가 결국 가라앉는 팀이요. 중반까지는 선전할지 몰라도 결국 여름을 기점으로 힘들어질 겁니다. 일본의 여름은 정말 덥거든요. 그렇게 체력을 갈아 넣는 전술로는 리그 전 경기를 소화할 수 없습니다.] [다른 팀도 바보가 아니거든요. 결국 모든 전술은 분석되고 해결책이 나오게 됩니다.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그게 바로 일본 분석 축구의 힘입니다. 마르코 감독은 아직 일본 축구를 몰라요.]이딴 소리를 지껄이는 자칭 축구 전문가들에게 빅엿을 꼭 먹이고 싶었다.
신기하게도 후쿠오카를 넘어 규슈 전 지역에서 일반인들에게 블루샤크의 축구가 인기를 끌자 긍정적인 평가를 하던 축구 전문가들도 죄다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바보 녀석들. 지들이 축구에 대해서 뭘 안다구.”
“맞아. 이놈들 개망신당하는 꼴을 보기 위해서라도 꼭 우승해야지.”
“… 우리가 우승?”
마츠다와 카와모토, 모리타가 축구 방송을 보다가 꺼버렸다.
셋은 블루샤크의 미드필드진을 책임지는 3인방이자 이번 동계캠프에서 가장 급성장한 선수들이다.
“요즘 내 몸의 변화를 보면 점점 더 자신감이 생겨.”
“맞아. 나도 그래. 김건이 알려준 식단을 유지하면서 마빈 코치에게 펑셔널 트레이닝을 받으니까 몸이 몰라보게 빨라졌어. 축구가 재밌을 정도라니까.”
“그래. 모리타. 너는 돈코츠 라멘 국물에 밥 말아 먹는 짓만 끊으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카와모토! 너나 술 끊어. 어젯밤에도 너 나카스 야타이에서 오뎅에 고구마 소주 마신 거 다 알고 있어.”
“내가 학생도 아닌데 훈련 끝나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뭐!”
카와모토와 모리타가 싸우고 있는데 마츠다는 뭔가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생각해? 마츠다.”
“어쩌면 내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무슨 꿈?”
“바보냐!! 우리가 중학생 때 축구 시작하면서부터 목표했던 거 있잖아.”
“설마… 국가대표?”
“그래! 이대로 2부 리그 우승하고 1부 리그 승격하면 국가대표 감독의 눈에 들어갈지도 몰라. 그럼… 어쩌면…”
셋은 후쿠오카에서 초등학생 취미반부터 함께 축구를 해온 사이다.
나름 잘나갔던 시절도 있지만 결국 고향 2부 리그 팀을 벗어나지 못하고 30살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여기까지가 내 한계구나…’ 포기하고 있을 때.
마르코와 김건우라는 귀인을 만났다.
“너희들은 인생 즐기면서 살아. 나는 이번에 무슨 수가 있어도 기회를 잡을 거야. 내 인생 마지막 기회를.”
그날 이후로 모리타와 카와모토는 돈코츠 라멘과 소주를 끊었다고 한다.
[하카타 블루샤크! 압도적 기세로 전반기 1위 등극!]블루샤크는 전반기 21경기에서 19승 2무를 기록하며 무패가도를 달렸다.
2부 리그지만 팀 전력이 평준화되어 있는 J리그에서 이 정도의 압도적 퍼포먼스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21경기에서 28골 24도움으로 이미 20-20을 달성했다.
아우베스도 28골로 나와 함께 득점 공동 1위였다.
“축구 전문가 자식들. 요즘은 뭐라고 안 떠드나?”
“하하하.”
블루샤크의 팀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