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2
모두에게 기대받고 있구나
“이건 몰랐을 거다.”
축구 전문가들이 걱정하던 급격한 체력 저하나 전술 노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몰랐다.
우리 선수들이 10년 후에나 알려지게 될 철저한 식단관리로 영양을 보충하고 있으며 역시 10년 후에나 축구계에 이식될 첨단 트레이닝 프로그램으로 관리받고 있다는 걸.
마빈 코치는 휴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사람이라 선수들의 운동과 휴식 사이클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마빈 코치의 허락 없이 몰래 개인 훈련을 하다가는 혼쭐이 날 정도였다.
효과는 바로 나왔다.
리그를 진행하며 선수들의 체력이 유지되었고 부상 선수 비율도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마르코 감독은 철저한 로테이션으로 선수들의 체력과 부상을 관리했고 무한 경쟁을 통해 위닝 스피릿을 만들었다.
물론 나와 아우베스, 피터는 붙박이였지만.
우리의 압박 전술이 철저하게 분석되어 대응법까지 나오긴 했다.
하지만 그 전술을 지탱하는 키플레이어가 나였기 때문에 압박을 무너트려도 결국은 나를 상대해야 했다.
간혹 내가 놓친 건 저승사자 피터가 처리했으니 상대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규슈에서 불어오는 새로운 축구의 바람! 하카타 블루샤크!]무더운 일본의 여름을 지나며 블루샤크가 연승행진을 이어가자 이제는 일본의 중앙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나는 정말 많은 인터뷰를 해야 했다.
나중에는 하도 여기저기서 떠들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원래 그런 법이지. 승리라는 건. 한번 맛보면 마약처럼 계속 더 맛보고 싶어지거든.”
일본 열도는 블루샤크가 만들어내는 연승의 맛에 취해갔다.
그 돌풍을 이끄는 핵심이 네덜란드 감독과 한국인 십대 소년이라는 살짝 불편한 사실을 오히려 더 낭만적으로 즐겼다.
가끔 극소수의 극우 꼴통들이 “일본의 축구 혼이 외세에 세뇌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말도 안 되는 개소리고.
“일본 축구가 발전하려면 외국의 선진 축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대다수 상식 있는 일본인들은 이렇게 반겼다.
***
일본 전체가 주목하는 가운데 우리는 리그 33번째 경기를 치르러 홋카이도 삿포로로 떠났다.
“정말 멀다. 멀어.”
“차라리 하와이를 가는 게 더 빠르겠어.”
“그건 오버지! 마츠다.”
일본 최남단 규슈에서 최북단 홋카이도로 가는 건 비행기를 타고 가도 한참 걸렸다.
이 경기가 중요한 이유는 리그 우승이 걸렸기 때문이다.
J2리그는 한 시즌 총 42경기를 하는데 하카타는 지금까지 28승 4무를 기록하며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2위 삿포로와 승점 차를 계산할 때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앞으로 나머지 9경기를 모두 패해도 하카타의 우승이 확정된다.
“이왕이면 고향에서 우승을 확정 짓고 싶었는데…”
“지금 대충하겠다는 거에요? 마츠다 선배?”
“아니야! 김건!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좀… 너무 먼 곳에 가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우승보다 더 중요한 건 연승이에요.”
“건우 말이 맞아. 우리에게 중요한 건 이제 우승이 아니라 무패 우승이라구.”
“앞으로 5년만 지나도 J2리그 우승팀 따위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무패 우승을 기록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100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억할 거에요. J리그의 역사를 우리가 쓰는 거죠.”
“…”
나의 말에 선수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으며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리마인드 할 수 있었다.
“건우야!!”
“케빈 형님~! 사야카 누나!”
삿포로 호텔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빈 킴과 사야카, 김승진 형이 일본으로 찾아왔다.
“야~ 건우 너. 체격이 더 좋아졌다.”
“그래요?”
“몸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나 봐.”
“형이 소개해준 마빈 코치님이 잘 주고 계세요.”
“그~ 래?”
마빈 코치를 소개해준 사람이 케빈 킴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이치고는 둘은 묘하게 서로 데면데면했다.
분명히 체육관에서 트레이닝을 하다가 뭔가 다툼이 있었을 거다.
둘 다 한 성깔에 한 고집 하니까.
여튼 나의 은인들을 오랜만에 타국에서 만나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재성이 형은요?”
“급한 재판이 잡혔나 봐. 비행기 표까지 사놨는데 못 가게 돼서 짜증난다고 아주 지랄지랄 하더라. 회사 관둔다고 하는 걸 겨우 말렸어.”
“잘하셨어요. 아무리 짜증나도 거긴 관두면 안 되죠.”
최재성이 다니는 박앤최 로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 1위다. 1위!
뭐 S대 법학과 출신에 사법고시 패스한 사람이 거기 아니라고 밥을 굶겠냐만은.
“근데 너 진짜 인기 좋구나. 한국에서는 이 정도인지 몰랐어.”
“그러니까. 공항에서부터 신문, 잡지, 여기저기에 니 얼굴이 있어서 당황했어.”
인터넷이 아직 대중화되기 전이라 사람들이 해외 스포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9시 뉴스가 끝나고 10분 정도 하는 스포츠뉴스가 전부였다.
아니면 스포츠신문.
허나 국내 스포츠 신문에서 해외로 기자를 내보내 직접 취재하는 선수는 박찬호 정도뿐이었다.
“가끔 토막 기사가 실리긴 했지만… 너 일본에서 완전 영웅이 됐구나.”
“영웅은 무슨… 왜 그래요. 쑥스럽게.”
“건우! 나랑 사진 찍자. 크게 확대해서 우리 어학원에 걸어놓을 거야. 학생 중에 J리그 좋아하는 애들 많거든.”
“그래요. 누나.”
“케빈… 뭐해요? 어서 사진이나 찍어 줘요.”
“… 알겠어.”
케빈 형은 함께 사진을 찍으려다가 찍사로 쫓겨났다.
사진은 나와 사야카 누나의 투샷으로.
못 보던 사이 케빈 형은 사야카에게 더 잡혀 살고 있었다.
“자~ 하나! 둘! 빅토리~~!”
찰칵-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삿포로 경기장입니다. 오늘 밤 J2리그 우승을 눈앞에 둔 돌풍의 팀 하타카 블루샤크와 콘사돌레 삿포로가 시즌 2번째 맞대결을 벌입니다. 경기장에는 벌써 수많은 관중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J1리그보다 더 많은 관중이 찾아오셨는데요. 저는 여기가 삿포로가 아니라 후쿠오카인 줄 알았습니다. 블루샤크의 푸른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정말 많이 찾아오셨네요.] [블루샤크의 연승행진 덕분에 후쿠오카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팬들이 생겨났거든요. 그분들이 비행기, 신칸센, 자동차, 오토바이 등 모든 교통수단을 동원해서 이곳 열도의 최북단 도시 삿포로를 찾아주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J1리그 구단 관계자들, 유럽 축구 거물 에이전트, 대기업 마케팅 관계자, 스포츠 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늘 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블루샤크의 축구가 매력적이라는 뜻이죠.] [물론 블루샤크의 축구는 놀랍습니다. 하지만 스타일 하나만으로 이런 인기를 불러일으킬 순 없죠. 본질은 항상 승리하는 팀이라는 겁니다. 블루샤크가 내뿜는 강력한 위닝 스피릿에 모두가 빠져들고 있습니다.] [바로 그 돌풍을 이끄는 마법사가 한국인 김건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르코 감독의 극단적인 압박 전술은 김건이 존재해야 비로써 완성됩니다. 그만큼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하죠. 19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노련함으로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있기에 아우베스의 공격력도 위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상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삿포로는 블루샤크와 지난 대결에서 2대2 무승부를 기록했거든요.] [삿포로 구로다 감독의 맞불 작전이 빛을 발했던 경기였죠. 다른 팀처럼 물러서다가 당하느니 맞서자! 해서 똑같이 라인을 올리고 거칠게 부딪쳤는데요. 결과는 무승부였습니다.] [삿포로 선수들은 절대 홈그라운드에서 다른 팀의 우승 파티를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필사적으로 저항하겠죠.] [마르코 감독은 이 일격을 조심해야 합니다.]미팅을 마치고 피치로 들어서니 삿포로 경기장의 웅장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거의 50대50 비율.
여기가 도쿄 같은 빅시티도 아니고 찾아오기 힘든 북쪽 도시인데 이렇게나 많이 오시다니 대단했다.
“김건! 김건! 김건! 김건!”
팀을 응원하는 목소리보다 나를 응원하는 소리가 더 컸다.
그만큼 나는 지금.
“모두에게 기대받고 있구나.”
전생에서도 이런 때가 있었다.
K리그 첫 데뷔전.
무릎이 완전 망가졌다더라, 이미 폐인이라더라, 허리 디스크가 심하다더라… 이런 우려도 많았지만.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반짝했던 천재 소년을 그때까지 기억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몸은 프로 경기를 소화할 상태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부상과 재활 없이 강행했던 경기 출장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축구 센스는 있었지만 그걸 실현할 몸뚱이가 없었다.
첫 경기부터 팬들의 “혹시?” 하는 기대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욕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결국 나는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몇 시즌을 보내다가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다.
그때는 정말.
이 세상 그 누구 하나도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나라를 위해! 우리 중학교를 위해! 우리 고등학교를 위해! 우리 대학교를 위해! 몸뚱이가 부서져라 뛰라고 재촉하더니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되어 보니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느꼈던 씁쓸함.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와아아아아!!!”
내가 일렁이는 푸른 물결을 향해 손을 흔들자 함성이 폭발했다.
이 사람들도 내가 계속 패배하고 쓰러지면 결국에는 등을 돌리겠지?
상관없었다.
이제 나는 절대 패배하지도 쓰러지지도 않을 거니까.
삿포로 선수들이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대략 어떤 작전인지 알겠군.”
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삿포로의 계략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