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51
경기에 출전하셔도 됩니다
“김건우! 김건우! 김건우!”
내가 들것에 실려 나가자 한국 응원단이 모두 일어나 내 이름을 외쳤다.
우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들것에 누워 독일 하늘을 보았다.
저 높은 곳 어딘가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운명의 여신에게 쌍욕을 날렸다.
삑! 삑! 삐이이이익- !!
[경기 끝났습니다! 한국이 프랑스를 2대1로 물리치고 16강 진출을 확정합니다!! 한국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원정 16강입니다!]나의 엄포 때문이었는지 한국 선수들은 온몸을 던져 프랑스의 막판 총공세를 막아냈다.
우리 선수들의 헌신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 인정하기 싫지만. 오늘 한국팀은 이길 자격이 있었습니다. 우리 프랑스 선수들은 과연 저들만큼 승리를 갈망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프랑스 중계진도 한국팀의 투혼에 찬사를 보냈다.
나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어 정밀진단을 받았다.
왼쪽 발목뼈에 실금이 갔다고 한다.
최소 일주일 이상의 치료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운명의 여신이 또 장난을 쳤다.
***
5일 후.
한국과 스위스의 마지막 예선전이 펼쳐졌다.
[이곳은 스위스와의 경기가 벌어지는 독일 하노버 스타디움입니다. 한국 응원단이 열심히 이름을 외치고 있지만… 김건우 선수는 경기장에 보이지 않습니다. 선발 명단은 물론이고 교체 선수 명단에서도 사라졌습니다.]나는 하노버 스포츠 재활 병원 VIP 병실에서 티비로 스위스와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내 옆에는 잉글랜드에서 급히 날아온 마빈 코치와 케이코가 있었다.
나는 경기 출전을 포기하고 둘에게 SOS를 쳤다.
“케이. 보고 싶어. 와줄 수 있겠어?”
“당연하죠! 지금 갈게요!”
케이코는 아이를 지인에게 맡기고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하노버로 날아왔다.
마빈 코치도 내가 부상 당하는 걸 보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미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나는 병원에 재활 캠프를 차려놓고 정신적 회복과 육체적 회복 모두에 신경 썼다.
케이코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마빈 코치와 재활 운동을 했다.
“아~~!! 저걸 놓치나!? 주형이 저놈! 나사가 하나 빠졌다니까! 집중해야지!”
“아니야. 스위스 수비가 좋았어.”
나와 함께 병실에서 한국 대 스위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유찬이와 최재성, 케빈도 와 있었다.
지들끼리 맥주도 홀짝이며 완전 친구 모임 분위기였다.
분위기는 좋은데 경기는 한국의 열세였다.
“심판이 문제야! 저 새끼 돈 먹은 거 아니야!?”
“토토 하는 놈이겠지. 딱 보니까 스위스에 쎄게 걸었네.”
“저 양반도 밥 빌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어. 현 FIFA 회장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생각 좀 하고 살자. 그런 걸 다 극복해야 최고가 될 수 있는 거라구.”
다들 투덜대는데 최재성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현 피파 회장은 스위스인이었다.
그 사실이 스위스전 편파판정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진실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다.
***
5일 전.
부상 결과가 나오자마자 나는 박항선 감독과 단둘이 선수단 운영을 상의했다.
나는 이미 결론이 나왔다.
“스위스전을 버리죠. 최대한 후보선수들로 스쿼드를 짜세요. 교체도 전부 쓰구요.”
“우리는 스위스와 비기기만 해도 조 1위를 차지할 수 있어. 16강 토너먼트에서 그게 얼마나 유리한 건지 알지?”
“…”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한참 애썼다.
그때 한국이 탈락하고 열 받아서 이후 경기를 제대로 안 봤기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프랑스가 조 2위로 16강에 올라가서 결국 결승까지 꾸역꾸역 올라간 건 확실히 기억한다.
그런데 스위스는 어땠지?
조 1위로 올라가서 어떤 팀이랑 붙었는데 바로 떨어졌을 거다.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8강 이상은 올라가지 못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프랑스는 8강에서 브라질과 붙었다.
모두가 지난 대회 우승팀 브라질이 노쇠한 프랑스를 이길 거라고 예상했는데 결국 승자는 프랑스였다.
당시에 엄청난 이변이었다.
“우리는 조 2위로 올라가는 게 더 좋아요.”
“뭐? 도대체 무슨 근거로!?”
브라질과 꼭 다시 붙어보고 싶어서라고 말하면 아무리 박항선이라고 해도 내 뜻을 따르지 않을 거다.
뭔가 그럴듯한 핑계가 필요한데.
나는 책상에서 토너먼트 일정표를 보았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걸 보세요. 우리가 G조 2위를 하면 16강전을 이동 없이 여기 하노버에서 그대로 치를 수 있어요.”
“정말!?”
박항선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제 다 넘어왔어.
“선수단 이동이 컨디션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잘 아시잖아요. 같은 경기장에서 연속해서 경기를 치르면 선수들도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거에요.”
“그건 그렇지.”
“감독님. 우리 우승할 거잖아요. 길게 봐야죠. 저만 믿으세요.”
이렇게 해서 우리는 스위스전을 버렸다.
그동안 1분도 출전하지 못했던 박주형, 이훈, 김영대, 조원의, 백지운 등이 선발로 나왔다.
결과는.
[대한민국! 스위스에 90분 내내 끌려다니며 2대0으로 패배합니다! 하지만 2승 1패의 성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합니다!] [박항선 감독.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과감한 용단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조 1위를 내어주었지만 대신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차범진은 박항선을 두둔했다.
나는 공짜로 평가전을 한 거라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덕분에 컨디션이 올라온 후보군 선수들을 실전 테스트할 수 있었고 토너먼트에서 써먹을 수 있었다.
[독일 월드컵 16강 대진표]예전 전이 모두 끝나고 16강 대진이 발표되자 한국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조 1위 스위스는 16강에서 약체 우크라이나를 만났다.
스위스가 속한 시드는 호주, 멕시코, 에콰도르 같은 비교적 약체팀이 많았다.
반면 한국이 속한 시드는 강팀이 우글거렸다.
일단 첫 경기 상대가 스페인이다.
스페인을 이긴다고 해도 다음에 만날 팀은.
[대한민국. 스페인 이겨도 8강에서 브라질을 만나는 최악의 대진. 태업에 예고된 참사.] [어리석은 로테이션에 꼬여버린 한국의 월드컵 우승.]한국 언론은 브라질을 만난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식으로 밑밥을 뿌려놓은 다음 한국이 패배하면 “내가 뭐라고 했냐!? 감독 사퇴해라!” 하며 분탕질을 할 거다.
“병신들. 지들이 경기 뛰나? 왜 지들이 혼자 오줌 지리고 난리야?”
“그게 기레기들 종특이지 뭐.”
“월드컵 우승을 노리는 팀이 상대를 가린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내 말이.”
병실에는 박준표 기자가 있었다.
나는 부상당한 후에 그를 하노버 병원으로 불러들였다.
월드컵 취재 중이던 그는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단숨에 달려왔다.
나는 그에게 실제로 재활 병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취재를 허락했다.
그는 내가 프랑스전에서 쓰러졌을 때부터 16강전 스페인전에 출전할 때까지 축구선수의 일상에서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글로 기록했다.
“우리끼리 하는 쌍욕이나 야한 농담 같은 것도 거르지 말고 그대로 적으세요. 프로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반인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으니까.”
“알았어. 지금 이 말도 글로 옮길게.”
“하하하!”
박준표가 취재했던 뉴캐슬과 나의 여정을 다룬 [김건우의 유럽 축구 이야기]는 스포츠 도서 역사상 최다 판매를 기록하며 종합 베스트 1위까지 찍었다.
솔직히 이렇게 많이 팔릴 줄은 나도 몰랐다.
덕분에 나는 축협 간부들을 상대할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박준표는 그 인기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프로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로 자기계발 강연을 했다.
공기관, 공기업, 사기업, 지자체, 학교 등에서 강연 문의가 빗발쳤다.
돈도 시원하게 벌었다.
유찬이가 찍은 영상도 인터넷에 공개되며 큰 화제가 되었다.
특히 시어러의 마지막 경기는 한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선사했다.
덕분에 뉴캐슬 유니폼 판매량은 지난 시즌 대비 아시아에서 8배 폭등했고 팬클럽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트로피 + 상징성에 스토리까지 들어가자 뉴캐슬 유나이티드라는 컨텐츠는 핵폭발을 일으켰다.
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유럽 축구단이 되었다.
***
16강 토너먼트가 시작되었다.
독일과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이탈리아, 브라질 같은 전통의 강자들이 가볍게 8강에 진출했다.
지난 한일 월드컵 대비 확실히 유럽 팀들의 컨디션이 좋았다.
[스위스! 0대0 승부차기 끝에 우크라이나에 패배. 8강 진출 좌절! 탈락!]언론이 부럽다고 난리를 치던 스위스는 졸전 끝에 탈락했다.
우리는 16강 8개 경기 중 가장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독일 월드컵 16강 스페인 대 한국]하노버 스타디움은 4만 3천 석이 가득 찼다.
역시 이곳은 유럽이었다.
스페인 응원단이 절반 넘게 관중석을 차지하고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도박사들은 압도적으로 스페인의 승리를 예상했다.
[스페인은 H조에서 3전 전승을 기록하고 올라온 강팀입니다. 그들은 4년 전 한국에서 당했던 패배를 갚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팀이 단합이 안 되는 약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다릅니다. 다들 복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게다가 주심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그가 지난 한일 월드컵 16강전 한국 대 이탈리아의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지난 월드컵에서 당했던 유럽인들이 독일에서 똘똘 뭉쳐 한국을 보내버리려는 분위기였다.
“완벽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경기에 출전하셔도 됩니다.”
담당 의사에게 출격 명령을 받았다.
의사가 나의 회복력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건강한 식생활과 과학적인 훈련법으로 신체 회복력을 최상으로 유지한 덕분이었다.
쉬운 생활은 아니었지만 적금처럼 꾸준히 노력한 보답을 결정적일 때 받았다.
“주장! 잘 돌아왔어!”
내가 돌아오자 대한민국팀의 사기는 최고조를 찍었다.
스위스전에 체력을 아꼈고 이동 없이 계속 하노버에 머물며 훈련한 탓에 팀 조직력이 더 올라왔다.
하지만.
[오늘 한국팀이 상대하는 스페인 선수들의 이름은 참으로 화려합니다. 카시야즈, 차비, 라울, 푸욜, 비야, 토레즈, 이니에타, 라모스, 알론조… 컴퓨터 게임에서나 가능할 유럽 올스타팀입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선수를 두 축으로 발탁한 게 인상적이네요. 리그에서는 영원한 적이지만 스페인 국대 유니폼을 입은 지금만큼은 한 팀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이 저렇게 뭉칠 수 있는 건 공동의 적.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입니다.]“효~~옹!”
경기장 출입을 앞두고 통로에 서 있는데 익숙한 한국어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