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52
이 멍청이들아!
“안드레스. 잘 지냈냐?”
나는 이니에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 녀석은 여전히 한국어는 “효~옹.” 한 단어밖에 몰랐다.
일본어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
차비와 푸욜 등 바르사 전 동료들은 눈짓만 까딱했다.
눈빛에 강한 경계심이 드러났다.
“효~옹. 부상당했을 때 걱정했어. 이젠 괜찮은 거지?”
“응. 오늘 각오해. 내 컨디션이 최고니까.”
우리 둘이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녀석이 우리 사이로 쓱 들어와 멈춰 섰다.
흑인처럼 위압적인 피지컬은 아닌데 투우용 황소처럼 단단한 몸이었다.
“선배. 경기 직전인데 우리 팀 집중력 좀 망치지 말아줄래요?”
“아. 내가 그랬나?”
“그랬어요. 사적인 이야기는 경기 끝나고 하세요.”
“미안해. 라모스. 효~옹. 그럼 있다 봐요.”
우리를 막아선 놈은 세르히요 라모스.
훗날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가 될 수비수다.
이번 독일 월드컵은 막 성인이 된 그의 첫 번째 국제대회였다.
녀석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오늘 또 병원 신세 지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셔~”
라모스의 도발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나는 이렇게 받아쳤다.
“누구세요~?”
스페인 선수 중 몇몇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지금까지 유럽에서 쌓은 경력과 비교하면 라모스는 아직 듣보잡 애송이에 불과했다.
라모스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툭- 툭-
나는 녀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확인사살 했다.
“나중에 챔피언스 리그에서 보자. 니가 거기까지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라모스는 분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한 마디도 받아치지 못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으로 입장하는데 한국 선수들이 물었다.
“도대체 뭐라고 한 거야?”
“니가 한방 먹인 거 같던데!? 걔 얼굴이 시뻘개지더만.”
“그냥 듣보잡이 깝치길래 교육 좀 시켜줬어요.”
우리가 피치로 나오자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본선 토너먼트의 열기는 예선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월드컵이다.
이제 내일은 없다.
오늘 반드시 한팀은 떨어져서 짐을 싸야 한다.
“우리는 오늘 적군이군.”
경기장을 가득 채운 건 붉은 유니폼이었다.
한국의 밝은 붉은색이 아닌 스페인 투우 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핏빛 붉은색이었다.
“대~ 한민국! 대~ 한민국!”
그래도 우리 한국인들은 일당백이었다.
숫자는 적었지만 꽹과리와 북을 열심히 두들기며 응원했다.
[한국과 스페인의 16강전이 시작됩니다. 경기 전 최고의 이슈는 김건우의 출전 여부였습니다. 다행히 그가 돌아왔습니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상대할 대한민국의 캡틴입니다!] [이번 대회 스페인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스페인 국대팀의 고질적인 문제인 지역 파벌을 해소하고 원팀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우승까지 가능한 팀입니다.]전반전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4-3-2-1 크리스마스 트리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원톱 라울이 내려와서 볼을 받으면 2선의 토레즈와 비야가 뒷공간으로 침투했다.
이 전술이 가능한 이유는 3선에 차비 – 알론조 – 파브레가스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은 절대 볼을 빼앗기지 않았고 언제나 정확한 패스를 찔러주는 스페인이 자랑하는 미드필더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시작부터 불꽃이 튀었다.
한국 선수들이 일제히 전진하며 사방 압박을 시도했다.
[한국 선수들! 어! 어! 계속 전진합니다!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압박!]우리가 노린 압박 타겟은 2선이 아닌 3선이었다.
패스를 공급하는 발사대를 박살 내야 스페인 무적함대를 침몰시킬 수 있다.
세계 최강의 볼 간수 능력을 지닌 스페인 미드필더지만 순간 압도적인 숫자로 포위하자 흔들렸다.
또 한국 선수들은 빨랐다.
천하의 알론조가 김남인에게 볼을 빼앗겼다.
반칙에 가까운 태클이었지만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건우!!”
한국 선수들은 볼을 빼앗으면 주변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왼쪽으로 밀었다.
그동안 죽도록 반복 훈련한 역습 패턴이다.
[김건우! 왼쪽에서 패스 받아 전진합니다! 번개 같은 드리블!!]예선전까지는 중원에서 패스플레이로 볼을 소유하는 걸 반복 훈련했다.
16강 토너먼트가 확정된 후에는 훈련 프로그램을 바꾸었다.
[한 박자 빠른 역습]이 전술 하나에 모든 걸 걸었다.
“16강부터 만날 팀 중에 우리보다 전력이 약한 팀은 없다. 우리가 전력이 가장 약팀이다. 하지만 축구에서 전력이 강한 팀이 항상 승리하는 건 아니다. 약팀도 적절한 전술을 이용하면 강팀을 쓰러트릴 수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약자의 싸움을 시작한다.”
하노버 훈련장에서 우리는 5일 동안 오직 한가지 훈련만 반복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압박해서 볼 탈취 후 사이드 역습]사방 압박을 실시하면 좌우에서 미리 뛴다.
볼을 탈취한 선수는 즉각 사이드로 패스한다.
나와 박항선 감독은 스페인이 크리스마스 트리 포메이션으로 나올 걸 예상했다.
이 대형의 약점은 양 사이드다.
우리는 그 공간을 파고들었다.
[김건우! 질주합니다! 저렇게 빠른 선수였나요!?]컨디션 최상이다.
잔디에 박히는 스터드의 감각이 고스란히 다리를 타고 골반을 지나 척추로 전달되었다.
모든 에너지를 한순간 폭발시킬 수 있었다.
“이 새끼야!!”
라이트백 라모스가 스페인어로 쌍욕을 하며 슬라이딩 태클을 걸었다.
[위험해요! 김건우 선수!!]훌쩍-
나는 달려오던 속도를 이용해 점프하며 태클을 피했다.
당황한 녀석이 벌떡 일어나 찰거머리처럼 뒤쫓아왔다.
미친 운동신경이다.
앞에서는 센터백 푸욜이 머리를 찰랑거리며 덤벼들었다.
처억- 휘릭-
나는 최고속도로 달리다가 오른발을 축으로 해서 직각으로 회전했다.
크루이프 턴을 내 방식대로 응용한 기술이다.
날카로운 방향전환에 양쪽에서 달려들던 라모스와 푸욜이 충돌했다.
투욱- !!
카시야즈 골키퍼가 뛰쳐나오는 걸 보고 그의 머리 위로 볼을 차올렸다.
축구공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 골대로 굴러 들어갔다.
[고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 김건우의 원더골! 대한민국의 캡틴이 돌아왔습니다!] [대단합니다. 한국 선수가 월드컵에서 저런 감각적인 골을 넣을 수 있다니… 선배로서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한국 1 대 0 스페인]전반전 6분.
내가 집어넣은 골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훗날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이 될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넣은 골이었다.
“건우야!! 너란 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선배들은 나를 끌어안고 말을 잇지 못했다.
다들 힘든 훈련에도 나를 믿고 끝까지 따라와 주었다.
안정민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최대 속력을 유지하며 회전하는 격렬한 동작에도 왼쪽 발목에 통증이 없다는 게 기뻤다.
[대한민국! 선취점을 얻은 후에도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합니다!]우리는 전방 압박 후 사이드 역습 전술로 계속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스페인은 토레즈와 비야의 스피드를 이용해 우리의 뒷공간을 노렸지만 소용없었다.
우리 스리백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점유율을 포기했다.
방패를 이중삼중으로 설치하고 중요할 때만 역습하며 골을 노렸다.
삑! 삑! 삐이이이익- !
결국 스페인은 70%에 가까운 점유율을 기록했지만 별다른 찬스도 잡지 못하고 전반전을 보냈다.
후반전에서도 이런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헉. 헉. 헉. 헉.”
후반전 25분.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지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라모스다.
그는 경기 내내 나를 쫓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수비수는 이렇게 거친 맛이 있어야 한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장기 계약만 아니면 내가 뉴캐슬로 데려가고 싶을 정도다.
“벌써 지쳤냐? 풋내기?”
“시끄러워! 헉. 헉.”
“아직 멀었어! 이 녀석아!”
나는 오늘 레프트윙으로 출전해 스페인의 오른쪽을 계속 휘저었다.
한국 팀의 유일한 공격 루트였다.
라모스와 짝을 이루었던 푸욜은 이바네즈와 자리를 바꾸었다.
둘 다 파이터 기질이 강해 나에게 덤벼들다가 동시에 벗겨지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김건우가 일찍 첫 골을 집어넣은 게 대한민국에는 행운입니다. 스페인의 패스 축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체력을 아끼고 있거든요.] [그나저나… 관중들은 많이 지루해하네요.]“우우우우우우우우~!!”
“뭐 하는 거야!? 계속 볼만 돌리고! 이 멍청이들아!”
놀랍게도 욕을 하는 쪽은 스페인 관중들이었다.
그들은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쏟아냈다.
스페인 선수들은 한국이 전부 내려앉아 뒷공간을 내주지 않자 의미 없이 볼만 돌리며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내가 스페인 감독이면 이니에타를 내보낼 텐데.”
지금 스페인은 좁은 공간을 혼자 부수고 들어갈 수 있는 다비드 실바나 이니에타 같은 선수가 필요했다.
차비 – 알론조 – 파브레가스 모두 최고의 미드필더지만 패스에 방점이 찍혀 있었고 전진성이 부족했다.
감독은 무슨 고집인지 끝까지 이니에타를 쓰지 않았다.
대신 어울리지도 않는 롱볼 작전을 썼다.
라울의 머리로 패스를 날리면 토레즈와 비야가 받아먹는 전술이었다.
허나 한국 수비진의 격렬한 방어를 뚫지 못했다.
사이드백 이인표와 송정국이 내려와 파이브백을 만들었고 그 앞은 김남인과 박지승이 지켰다.
내가 뚫으려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삼중 수비벽이다.
삑! 삑! 삐이이이익- !!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침몰시키고 월드컵 8강에 진출합니다!!]우리는 첫 골을 끝까지 지키며 1대0으로 승리했다.
스페인 선수들은 고개를 떨구고 쫓기듯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전술로 스페인을 압도했다.
“한국은 남아있는 8팀 중에서 가장 약한 팀입니다. 하지만 축구는 개인 경기가 아닙니다. 단체 경기입니다. 단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원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남아있는 8팀 중 가장 원팀에 가까운 팀입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반드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할 겁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우리의 다음 상대가 당대 최고의 개인들을 모은 팀이었기 때문이다.
[독일 월드컵 8강 브라질 대 한국]브라질은 우승을 차지한 지난 월드컵보다 더 무시무시한 전력을 자랑하며 8강까지 쾌속 질주를 벌였다.
황제 로나우도와 외계인 로나우딩요가 건재한 가운데 카카, 아드리아누, 호비뉴, 주니뉴…
새로운 괴물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판타스틱 포, 황금의 4중주…]그들을 칭송하는 단어도 많았다.
2006년 7월 2일 늦은 오후.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
기온 26도, 날씨 맑음, 습도 39%, 풍속 4.4m/s
“축구 차기 딱 좋은 날씨로구나~”
4년 전 복수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