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68
그를 나의 기사로 삼고 싶다
“두 레전드의 공개 지지 선언은 투표 결과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유럽 대 비유럽의 구도를 만들어야 이길 수 있다는 건 아시잖아요?”
물론 나는 펠레, 마라도나와 정명준에 대해 이야기 한적이 없다.
뭐 나중에 내가 노력은 해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피파 회장 선거는 내년에나 열린다.
시간은 많다.
“끄응…”
정명준이 입맛을 다셨다.
나는 매우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게 맞다.
자기가 앉힌 사람을 자기 손으로 자르라는 요구니까.
게다가 그들은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성과를 냈다.
하지만 정명준은 야심가다.
평생 꿈꾸던 피파 회장 자리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거다.
“좋아. 거래를 받아들이지. 그런데 현 집행부를 교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거야. 월드컵 우승한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그런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는 건…”
“회장님.”
여기서 기다려주면 아마추어다.
그의 마음이 기울어졌을 때 뽕을 뽑아야 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시간이 없어요. 지금부터 개혁을 시작해도 될까 말까입니다.”
“도대체 무슨 핑계로 월드컵 우승한 집행부를 교체하냐구!”
“그것까지 제가 알려드려야 하나요? 협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잖아요. 몇 군데만 잡아서 툭툭 털면 먼지가 쏟아질 겁니다. 전 집행부가 그랬듯이.”
“…”
“그럼. 전 거래가 된 줄 알고 가보겠습니다.”
나는 먼저 일어나 호텔을 나왔다.
정명준은 나의 제안을 절대로 거부할 수 없을 거다.
그의 찬란한 인생은 피파 회장 앞에 막혀 있었다.
피파 회장을 차지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대통령을 노릴 거다.
그게 야심가의 인생이다.
“누굴 만난 거야?”
“알면 다쳐.”
유찬이에게도 이번 미팅은 비밀로 했다.
나와 정명준의 거래가 밝혀지면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힐 거다.
일개 축구 선수가 대한민국 축구계의 끝판왕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움직여 집행부를 교체하고 자기 사람을 꽂아 넣는 거니까.
순진한 대중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거다.
거기에 피파 회장 지지 선언을 거래의 조건으로 걸었다는 것까지 밝혀지면 나는 물론이고 정명준까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거다.
허나 원래 세상 꼭대기는 다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뒷거래가 없는 정치 최전선은 없다.
“흥. 순진한 생각이지.”
“뭐라고?”
“아니야. 넌 그냥 운전이나 해.”
유찬이에게 운전을 시키고 물끄러미 서울 거리 풍경을 보았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까 가끔 한국에 돌아오면 나라의 발전과 변화가 확확 느껴진다.
내가 일본으로 떠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한국은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다.
일본, 독일, 스페인, 영국과 비교하면 변화의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정작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못 느끼는 것 같지만.
“아직 멀었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뭐라고?”
“아니야. 넌 운전이나 해. 인마.”
한국 축구가 앞으로 더 발전하려면 시스템을 더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합리적.’
합리적이란 단어는 사실 무서운 단어다.
조직의 비전과 맞지 않는 건 모두 제거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를 합리적으로 만든다는 건 내부에 똬리 틀고 있는 잉여 인간들의 밥그릇을 빼앗고 내쫓아낸다는 뜻이다.
혁명적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나는 뒷거래를 해야 했다.
독일을 통일했던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 조약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소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대중들이 보지 않는 게 좋다.”
나의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때론 뒷거래도 해야 하고 비열한 술책도 써야 한다.
나는 선비가 아니기에 이런 일에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한국 축구 시스템을 더 합리적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건우야! 왔구나!”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차범진 축구 재단이었다.
오늘도 현장에서 직접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던 차범진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참 순수한 분이다.
그에게 나와 정명준의 뒷거래를 알릴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 일대가 신도시 재개발 열풍으로 땅값이 폭등했다는 사실도.
나는 미래를 알고 있기에 굳이 이곳에 재단과 훈련장 부지를 마련했던 거다.
결국 돈도 벌고 재단도 키우고 선수들도 육성할 수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선배님.”
“건우. 너 얼굴 좋아 보인다. 무릎은 좀 어때?”
차범진은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모르고 있었다.
다시 대한민국 축구의 중심부로 들어갈 날.
“이젠 괜찮아요. 그보다 애들이 더 많아졌네요. 시설도 더 좋아졌구.”
“계속 발전해 나가고 있어.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거든. 물론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차범진이 말끝을 흐렸다.
축구 재단이 발전하자 전국의 축구 유망주들이 소속 학교를 버리고 대거 이곳으로 입단했다.
이는 한국 유소년 축구계의 큰 사건이었다.
상식적으로 누가 전문성도 없는 무식한 감독한테 맞으면서 혹사당하고 싶겠는가?
차범진 축구 재단에 입단하면 유럽 최고의 유소년 지도자들에게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고 자매 계약을 맺은 유럽 구단으로 진출할 통로도 열린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다.
[차범진 축구 재단의 횡포. 이러다 대한민국 학원 축구가 멸종한다.] [차범진 축구 재단의 독점. 축구 인재 해외 유출 심화로 K리그 구단들까지 우려 표명.]기존의 국내 축구인들은 기묘한 논리로 우리를 공격했다.
언론도 신나게 받아썼다.
기자들에게 룸싸롱에서 거하게 쐈나 보다.
그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예전처럼 애들 패고 부모한테 뇌물 받고 K리그 구단에 뒷돈 받고 감독님 코치님 소리 들으며 재미나게 살 수 있는데 이제 그런 세상이 끝나고 있었다.
대기업들은 정기적으로 차범진 축구 재단에 거액을 기부했다.
비영리 어린이 축구 교실에 불과했던 단체가 폭발적인 성장을 거쳐 지금은 한국 축구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유소년 단체로 커졌다.
그 영향력은 여기저기서 드러났다.
전통적으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벌이던 토너먼트 대회보다 차범진 재단에서 자체적으로 벌이는 리그 전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확실히 애들이 공차는 게 다르네.”
“한국 애들이 벌써부터 유럽식 축구를 해.”
“저런 개인기를 학원팀에서 썼으면 감독한테 바로 귀싸대기 맞았지.”
어린 한국 선수들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축구를 구사하자 일부러 경기를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한국에 유소년 축구 붐이 일어났다.
물론 이런 붐이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김건우 선배님~!!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선배님! 저두요! 저도 이 책 있어요!”
나다.
훈련하던 어린 선수들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 그걸 소중하게 들고 나한테 달려왔다.
[월드컵의 가장 빛나는 별. 김건우 위인전]“이게 뭐야!?”
아동용으로 나온 만화 위인전이었다.
내가 볼 차는 모습이 표지에 그려져 있었다.
너무 놀라서 책을 빼앗아 펼쳐 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 일화부터 일본 진출, 유럽 데뷔, 월드컵 우승까지 일들이 만화로 그려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의 주식, 부동산, 주류 유통 등 다양한 투자 에피소드까지 깨알같이 그려져 있었다.
“이 새끼들이…”
나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이런 걸 만들다니.
만화도 질이 팍 떨어지는 게 뭔가 급하게 그려낸 티가 확 났다.
월드컵 우승하고 미친 듯이 그려서 급하게 찍은 티가 팍팍 났다.
근데.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알렉스 퍼거슨 : 김건우가 맨유에 있었다면 우리가 더블 트레블을 달성했을 거다. 그는 동방의 신비다.] [주제 무리뉴 : 김건우와의 대결은 언제나 축구의 신을 상대하는 듯 버거웠다. 내 인생의 단 한 가지 소원은 그를 내 팀에서 뛰게 하는 거다.] [데이비드 베컴 :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건 김건우와 한 팀에서 뛸 수 없다는 점이다.] [아르센 벵거 : 아스널 구단을 팔아서라도 사고 싶은 단 한 명의 선수. 그가 바로 김건우다.] [호나우두 :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김건우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유명 축구인들을 그려놓고 그들이 한 적도 없을 말을 마음대로 적어놓았다.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잖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당장 출판사로 쳐들어가 책을 전부 불태우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진짜는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영국 여왕 : 축구를 모르는 나도 김건우는 안다. 그를 나의 기사로 삼고 싶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아니고 그냥 졸라 성의 없게 영국 여왕이라니.
그분이 나한테 이랬다구?
그럴 리가 없잖아!
“선배님! 사진 좀 해주세요! 예~~!”
당장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짜증을 겨우 참으며 사인을 해주고 있는데 한 소년이 물었다.
“여기 위인전에 나오는 거 다 진짜죠!?”
“응. 아니야.”
나는 아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사인에만 집중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판사를 찾아가야지.
감히 나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이딴 책을 마음대로 내다니.
애들이 왜곡된 내용을 보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면 어쩌려구.
‘응?’
어떤 직감이 강하게 발동했다.
오랜만에 작동한 감각이다.
나는 30분간 사인을 마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월드컵 우승 후 집에 처음 거는 전화였는데 나는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버지 계세요?”
“아들. 한국 들어왔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잘 지냈어요. 아버지 바꿔줘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죠.”
나는 나의 위인전을 꼭 쥐고 이렇게 물었다.
“칠성 출판사에서 나온 내 아동용 위인전 있잖아요. 그거 아버지가 허락하셨죠?”
“…”
“엄마. 빨리 말해요. 당장 출판사로 쳐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으응. 출판사 사람들이 몇 번이나 찾아왔었어. 워낙 간절하게 부탁을 해서 너의 아빠가 허락을…”
“알겠어요.”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요가 호흡법으로 화를 누르고 생각을 정리했다.
“후~~~ 그래. 이 정도는 귀여운 거지.”
전생에서 겪었던 끔찍한 일들을 떠올리니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차범진이 나의 반응을 보고 껄껄 웃었다.
“일종의 세금이라고 생각해. 유명세. 나도 처음에는 화도 내고 항의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해.”
그도 과거에 비슷한 일을 당했다고 한다.
차범진과 나는 한국 위인전에 올라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선배님.”
“잠깐만 좀 기다려주겠어? 원주에서 건우를 만나고 싶어서 올라오는 친구가 있거든.”
“원주에서요?”
“내 후배인데 그 친구 아들도 축구를 하거든. 방금 자네가 여기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출발했대. 그 친구가 성격이 워낙 급하거든.”
그 성격 급한 남자의 아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