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269
안방으로 쏘주랑 마른오징어 좀 갖다 주세요
“그러죠… 뭐.”
원주에서 전 축구 선수가 아들과 올라온다면?
지금이 2006년이니까.
설마.
“그분 아드님 이름이 어떻게 되죠?”
“현민이. 손현민. 올해 14살인데 이미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그렇군요.”
여기서 그를 만나게 되는구나.
훗날 독일과 잉글랜드 리그를 평정하는 대한민국의 자랑 손현민이 나를 만나러 오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한국 축구의 역사가 또 한 번 바뀌는 순간이었으니까.
부우우우웅- !!
2시간 후.
낡은 중고차를 타고 손현민 부자가 등장했다.
그의 형도 함께였는데 셋이 한 팀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손현민 아버지가 차범진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버지가 이러니 아들들은 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솔선수범하는 교육.
“반갑습니다. 선배님.”
“허허. 선배님은 무슨. 난 그냥 학부 형이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한국 축구계 선배님이시잖아요.”
나는 손현민 아버지와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손현민은 나를 우러러보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절대 나대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김건우 선수의 팬이에요. 꼭 만나고 싶어해서 이렇게 달려왔어요.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당연히 기다려야죠.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될 선수인데.”
‘!’
흠칫 놀랐다.
손현민 아버지가 갑자기 급정색했다.
“후배님. 우리 현민이한테 절대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어린애가 자만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현민이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먼 풋내기에요. 칭찬은 나중에 해주셔도 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역시나 천재를 키운 아버지다웠다.
물론 그의 지도법을 내가 전부 찬성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일관되게 지도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법은 없다.
나는 현민이와 함께 공을 차며 놀았다.
녀석은 꿈을 꾸는 듯 기뻐했다.
몇 가지 나쁜 습관을 지적하고 고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배님은 언제 유럽으로 돌아가세요?”
“형이라고 하라니까.”
“예. 형.”
손현민이 슬쩍 아버지 눈치를 보았다.
“곧 돌아가게 되겠지. 나의 축구는 유럽에 있으니까.”
“저도 꼭 언젠가는 유럽에서 뛰어보고 싶어요.”
“넌 할 수 있어. 내가 장담할게. 다만 서둘지 마. 기본기를 철저하게 닦을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유일하거든. 유럽 진출은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저희 아버지랑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게 맞으니까. 후후.”
나는 현민이가 흔들리지 않게 잘 이야기해 주었다.
솔직히 시간만 있다면 내가 현민이를 데리고 다니며 직접 가르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과연 어떤 선수로 성장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시간이 없었고 그에게는 유능한 아버지가 있었다.
지금은 아버지를 믿고 따르는 게 그에게 좋다.
어쩌면 현민이와 나중에 감독과 선수로 유럽 팀에서 만날지도.
“그때가 되면 내 방식대로 현민이를 지도할 수 있겠지.”
나는 현민이에게 사인한 축구공과 축구 장비를 듬뿍 안겨 주었다.
떠나려는데 녀석이 쑥스러워하며 뭔가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기… 이거…”
“젠장.”
[월드컵의 가장 빛나는 별. 김건우 위인전]또 이거였다.
나는 여기도 사인을 해주고 서울로 돌아갔다.
은평구 부모님 집에 도착하니 기분이 묘했다.
파타고니아까지 거쳐서 이게 몇 년 만의 귀환인가.
내가 불쑥 들어오자 엄마가 당황했다.
아버지는 식탁에 있었는데 밖에서 나쁜 짓 하다 걸린 애처럼 내 눈치를 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손현민의 아버지 같았다면 어땠을까.
나도 유럽에 진출해서 성공했을까.
“아버지.”
“미안하다. 아들. 그 사람들이 하도 간절하게 부탁을 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 너한테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니가 전화를 오랫동안 꺼놨었잖아. 어디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지. 그리고 위인전이 나쁜 건 아니잖아. 내가 읽어보니까 꽤 재밌던데.”
“… 아버지.”
“그래~ 알아. 다 내 잘못이다.”
“요즘 일은 좀 어때요?”
“뭐? 일?”
아버지의 표정이 밝아졌다.
엄마 눈치를 살짝 보며 ‘내가 뭐랬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겠는가 나의 아버지는 이 남자인데.
내가 가진 축구 재능의 어떤 부분은 이 남자에게서 나왔을 거다.
뭐. 아니면 또 어떤가.
그래도 내 아버지인데.
전생에 우리 집안이 망가진 건 아버지 탓도 있지만 내가 어른으로 행세하지 못한 탓이 더 컸다.
이젠 문제없었다.
나는 내가 인생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을 누구에게도 미루지 않으니까.
본인이 판단하고 책임지는 게 어른이다.
“안 좋아. 사람들이 점점 무식해져서 신문을 안 본다니까.”
제가 앞으로 인터넷 시대가 와서 아무도 종이 신문을 읽지 않을 거라고 말했잖아요!
라고 외칠 이유도 없었다.
우리 집에 돈은 넘칠 만큼 많았기에 아버지는 평생 취미로 신문 일을 하면 된다.
신문을 돌리건 골프를 치건 그건 본인 몫이다.
“그래도 제 기사는 스크랩 다 해두셨죠?”
“당연하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모아놨어!”
“고맙습니다. 아버지. 구경 좀 해도 될까요?”
“물론이지!”
“엄마. 안방으로 쏘주랑 마른오징어 좀 갖다 주세요.”
그날 밤.
나는 아버지와 오랜만에 단둘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지가 그동안 모은 나의 신문 기사를 보았다.
마라도나도 만나봤고 펠레도 만나봤지만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 세상 어떤 그 누가 오직 나를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정성껏 오려진 신문 종이 쪼가리에 나의 인생 여정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신문 스크랩 컬렉션은 내가 축구를 처음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고교 시절, J리그, 분데스리가, 라리가, 프리미어리그를 거쳐 월드컵 우승까지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나중에 꼭 김건우 박물관을 만들 거야.”
아버지가 웃었다.
***
다음 날 아침.
부모님 집에서 몇 년 만에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먹었다.
“이제 진짜 선수는 관두는 거야?”
엄마가 이렇게 물어본 이유가 있었다.
내가 그동안 철저히 지켜온 건강식 대신 한식을 차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들깨 미역국에 흰쌀밥, 계란말이, 소시지 부침, 오뎅 볶음, 오징어무침, 갈치젓, 구운김…
완전 백반집 스타일이었다.
“아직 몰라요. 하지만 곧 결정할 거에요.”
“이제 돈은 벌 만큼 벌었잖니.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마. 그 이탈리아 녀석이랑 쓰러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
“예.”
건성으로 대답하고 밥을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지혜 요즘 집에 안 들어와요? 방을 그렇게 깨끗하게 쓰는 애가 아닌데.”
“…”
엄마가 살짝 망설이다가 털어놓았다.
“사실은 지혜가 말이야…”
나는 놀라운 소식을 듣자마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성수동에 있는 여동생 회사로 뛰쳐나갔다.
그걸로 평화로운 아침은 끝이었다.
“김지혜 대표 어디 있어요?”
“꺄아아아악- !!”
내가 회사로 들어와 여동생을 찾자 여직원들이 괴성을 질렀다.
지혜의 회사는 그때보다 더 커져 있었다.
이제는 빌딩을 통째로 사서 전체를 다 사용하고 있었다.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쇼핑몰답게 여직원들의 스타일도 끝내줬다.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사인 좀 해주세요! 팬이에요!”
“나중에 해줄게요. 김 대표 어디 있어요?”
“오빠. 여기야.”
나는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끝내주는 전망이었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지?”
“응. 엄마가 걱정돼서 전화했어. 오빠가 미친 사람처럼 뛰쳐 나갔다구.”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 좀 들어볼까?”
나는 팔짱을 끼고 지혜를 빤히 보았다.
전생의 나쁜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뭘. 어떻게 이야기해.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렇게 된 거지.”
“내가 말했지. 자나 깨나 남자 조심하라구. 넌 팔자가 사나워서 특별히 남자를 더 조심해야 한다구.”
“서로 사랑하는데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잘못했지!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검사받고 결혼식 올리고 하면 되잖아! 뭐가 그렇게 급해서 벌써! 젠장!”
“오빠도 케이코 언니랑 원나잇으로 시작했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이 자식이 진짜!”
솔직히 할 말은 없었다.
만약 다음 날 신문 기사에 나지 않았다면 내가 케이코를 다시 만나러 갔을까.
포커로 치면 뒷장을 보지 않고 인생을 올인한 도박에 가까웠다.
까보니까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라 다행이었지만.
“뭐 하는 놈이야? 당장 데려와.”
“사실 이미 와 있어. 회사가 옆이거든.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어.”
사무실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비쩍 마른 체구 아디다스 츄리닝에 비니를 쓰고 있었다.
지혜보다 어려 보였다.
“이민호라고 합니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너는…”
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딱 기억이 떠올랐다.
이 남자는.
“오빠. 민호 씨를 알아?”
“아니. 몰라.”
“민호는 온라인 신발 쇼핑몰 대표야. 이 바닥에서는 엄청 유명해.”
“아닙니다. 저는 그 정도까지는…”
“그렇구나.”
나는 전생에 티비에서 이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훗날 유니콘 기업의 신화라 불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 쇼핑몰 대표로 성장한다.
사회적으로도 기부를 많이 해서 평판이 높았다.
지혜의 남편감으로는 S급이라 할 수 있다.
“남녀가 사랑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오빠… 갑자기 왜 그래?”
“이 친구를 보니까 적어도 너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하지는 않을 거 같구나. 일단 두고 보겠어.”
“감사합니다! 형님! 지혜 씨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민호는 고개를 조아렸다.
“출산일은 언제니?”
“앞으로 7개월 후야…”
“관리 잘하고 절대 무리하지 마. 식은 언제 올릴 거니?”
“지혜 씨의 건강과 스케줄에 최대한 맞추려구요.”
“당연히 그래야지. 날짜 잡히면 연락해. 꼭 참석할 테니까. 난 간다. 지혜야. 몸조리 잘해라.”
“오빠? 진짜 그냥 가는 거야?”
“응.”
지혜가 저 정도 신랑감을 찾았다면 이제부터 인생은 본인의 몫이었다.
나는 안심하고 강남으로 넘어갔다.
신사동 나의 빌딩에서 나의 자산 관리인 주영광을 만났다.
그는 이제 나를 왕처럼 모셨다.
예전에 나름 맞서려던 모습도 완전히 사라졌다.
실력의 차이를 깨달았고 무엇보다 내가 그를 한국 최고의 자산 관리인으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막대한 자산을 관리한다는 소문 덕분에 그의 투자회사로 돈을 싸 들고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2006년 하반기를 맞아 나의 자산은 1조 원을 돌파했다.
나조차도 상상이 안 되는 금액이다.
그동안 연봉과 로열티, 초상권, 주류 유통으로 번 돈은 전부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되었다.
투자금이 서서히 불다가 임계점을 넘어가자 복리의 마법을 부리며 폭발적으로 커졌다.
이젠 돈이 하나의 생물처럼 알아서 증식했다.
“올해가 끝나기 전에 제가 가진 주식을 전부 처분해주세요.”
주영광은 나의 명령에 기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