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36
니가 차붐의 나라에서 왔다구!?
“이 친구는 우리 구단과 협상 중인 선수야. 이름은 김건! 다들 인사해.”
“…”
“뭐야!? 멀리 한국에서 찾아왔는데 이런 식으로 썰렁하게 굴 거야? 다들 인사하라구.”
“안녕. 꼬마야.”
“크하하하!”
금발 대머리 녀석이 나를 꼬마라고 불렀다.
그리곤 독일어로 지껄였는데 뭔 소리를 했는지 지들끼리 낄낄거렸다.
클롬은 싸늘한 반응에 발끈해서 화를 내려고 하다가 순간 뭔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맞다! 이 친구 선배가 차붐이야. 김건은 차붐의 직계 후계자라구.”
“차붐!!!?”
[차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폭탄이 터진 듯 분위기가 뒤바뀌었다.하긴 차붐은 분데스리가의 전설이니까 이런 하위리그 녀석들에게는 신과도 같은 존재다.
“정말이야!? 니가 차붐의 나라에서 왔다구!?”
“너. 차붐 하고 만나봤어? 이야기도 해봤어?”
“당연하죠.”
“우와! 그거 대단한걸!? 잘 계시지? 지난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너무 심하게 당해서 우리 독일 사람들이 정말 안타까워 했다구.”
이 자식들이.
차붐 이야기가 나오자 대머리건 빡빡이건 축구소년으로 돌아가 신나게 떠들어대기 바빴다.
클롬은 분위기를 쓱 보더니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 전기 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리니까. 끝나고 같이 맥주나 한잔 하자. 독일식 환영식을 보여줄게. 차붐의 후계자가 왔는데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안 그러냐 얘들아?”
“당연하지!!”
괜히 이놈들을 게르만 전사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맥주 얘기가 나오자 다들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다들 훈련장에서 뭐 하는 거야!?”
호통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늙은 신사가 인상을 팍 쓰고 있었다.
현 감독 크라우친이다.
클롬은 재빨리 달려가 나에 대해 신나게 설명했다.
하지만 노감독은 나를 한번 쓱 보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훈련장을 나왔다.
“저 감독은 너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건우야…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야. 괜히 입단했다가 시즌 내내 벤치에서 썩을 거야. 감독의 신임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맞아. 블루샤크에서도 네가 빛났던 건 마르코 감독이 너를 중심으로 팀을 짰기 때문이야.”
타당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크라우친 감독은 곧 짤리게 될 것이고 클롬이 임시 감독으로 임명되어 마인츠의 후기 리그를 이끌게 된다.
하도 옆에서 걱정해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진짜 지루한 경기였어…”
“건우야… 너 정말 이런 한심한 팀에서 뛸 거야?”
우리는 저녁을 든든히 먹고 브루흐베크 경기장에 가서 [마인츠05 대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의 전기 리그 마지막 게임을 보았다.
추운 날씨에 썰렁한 경기장에서 썰렁한 경기를 펼친 끝에 결과는 0대0 무승부.
무기력한 경기력에 하품이 절로 났다.
클롬은 후보 선수로 벤치에 앉아 소리만 질러대고 아무것도 못 했다.
마인츠05는 다 좋은데 두 가지가 안 됐다.
하나는 공격, 또 하나는 수비.
포백도 아니고 스리백도 아닌 어정쩡한 전술을 쓰며 공수 모두에서 답답한 축구를 했다.
“미안해. 김건. 오늘 팀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서 맥주파티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어.”
“그래요.”
경기 끝나고 클롬이 찾아와서 미안해했다.
마인츠는 오늘 무승부로 리그 16위로 강등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휴식기에 들어갔다.
처참한 경기 내용에 노감독은 선수 탓을 하며 길길이 날뛰었고 선수들은 억울한 표정으로 짐을 싸서 돌아갔다.
경기장을 지키던 마인츠 서포터들도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돌아갔다.
“뭐가 문제인 거 같아요?”
“우리 팀?”
“예.”
“… 믿음이 부족해.”
“무슨 믿음이요?”
“우리 축구에 대한 믿음.”
“마인츠의 축구요? 그게 도대체 뭔데요?”
“… 하하하! 모르겠어! 나도!”
클롬은 호탕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더 이야기하면 감독에 대한 항명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크라우친 감독과 마인츠 구단은 현재 팀 전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마인츠는 분데스리가에서 최초로 포백 시스템을 도입한 구단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스위퍼 시스템을 써왔기 때문에 마인츠의 실험은 성공 여부를 떠나 어쨌든 신선했다.
문제는 포백 시스템을 제대로 구현해줄 감독이 독일 내에 별로 없었다는 거다.
크라우친은 계속 옛날 스위퍼 축구를 고수하려 했고 구단은 포백 축구를 강요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내부 이야기를 아직 이방인에 불과한 나에게 다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또 보자! 김건! 어쩐지 우리는 잘 맞을 거 같아.”
위르겐 클롬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 최종 회의에 들어갔다.
형들은 마지막까지 다른 팀을 알아보자고 설득했지만 내 뜻이 워낙 확고했기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알겠어. 우린 에이전트 일에만 집중할게.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거야.”
“예.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세요.”
다음 날 아침.
케빈은 하이덴 단장에게 전화해 미팅 약속을 잡았다.
오후에 마인츠 구단 사무실로 가서 최종 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 기간 2년, 연봉은 한화로 약 10억 원.
언제나처럼 계약 기간 내에 팀 승격 시 10억 보너스 옵션을 걸었다.
일본에서보다 대폭 줄어든 연봉이다.
또 광고 같은 부가 수입도 일절 없었다.
속이 쓰렸지만 미래의 대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축하합니다. 우리 팀 최고액 연봉 수령자가 되었습니다.”
“그런가요?”
우리 구단 가난하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본에서 1년에 얼마를 벌었는지 알아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는 마인츠05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하이덴 단장과 악수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어. 2년은 그 촌 동네에 박혀있어야 하는 거야.”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케빈 형이 1등 로또 용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어지간히 이번 계약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웃게 해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독일 2부 리그에서 2년이나 썩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
“뭐야?”
“1년 안에 팀을 승격시키고 이적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린 다음에 빅리그로 입성할 거에요.”
“너… 마인츠가 지금 몇 등인 줄 알아?”
“16등이요.”
“그럼. 마인츠가 2부 리그에 머문 기간은?”
“한 90년 넘지 않았어요?”
“…”
형들은 나를 미친놈 보듯 했다.
하긴 이들은 미래를 모르니까.
사실 나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J리그에서 통했던 게 과연 분데스리가에서도 똑같이 통할까?
내가 J리그를 씹어먹을 수 있었던 건 일본 선수들보다 신체 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점을 바탕으로 나는 마음껏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은 다르다.
더 이상 피지컬에서는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마빈 코치의 체육관을 찾았다.
“유럽 리그에서 동양인으로 살아남으려면 확실히 다른 전략이 필요하지.”
“어떤 전략이요?”
“건우는 동양인이잖아. 동양인은 결코 흑인과 백인의 힘을 따라올 수 없어. 그들과 힘으로 맞붙으려 하면 안 돼.”
“그럼요?”
“상대의 힘을 분산시키고 회피할 수 있는 동양인 특유의 부들부들하고 질긴 근육을 만들어야 해.”
나는 체육관에서 보름 동안 빡센 훈련을 받았다.
기존의 몸에서 유럽 환경에 맞게 근육을 튜닝 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아쉬탕가 요가도 병행했는데 스승님께 그동안 수련을 열심히 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보통 고급 과정에 들어가는데 10년이 걸리는데 나는 그걸 3년 만에 해냈다.
나의 자산관리인 주영광 대표와도 미팅을 했다.
현재 내 자산은 130억까지 불어났다.
“가용 가능한 현금으로 전부 아모르 주식을 사주세요.”
“아모르요?”
주영광은 크게 당황했다.
나에게 IT기업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모르 그룹. 화장품 만드는 회사. 아시죠?”
“알죠. 아는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굳이 화장품 회사에 몰빵을…”
“어떤 투자의 귀재한테 들었어요. 올해 아모르가 정말 좋다구요.”
“투자의 귀재라면… 설마. 손 회장님?”
“전부 사 두세요.”
주영광은 손정호 회장과의 만남 이후 나에게 존댓말을 썼다.
뭐 오해를 하게 그냥 놔두기로 했다.
그래야 다루기 쉬우니까.
전생에서 경제 퀴즈 방송을 봤던 게 불현듯 떠오를 줄이야.
[2001년에 가장 많이 오른 주식은?]이런 질문에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이 예시로 나왔다.
다들 당연히 그쪽이 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답은 화장품 회사 아모르였다.
워낙 의외여서 기억에 박혔나 보다.
‘1년 만에 한 12배쯤 오른다고 했던가?’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어쨌든 10배 이상이었다.
그럼 1년 후에 내 재산은 1000억을 돌파한다.
“기분이 삼삼하군.”
모든 신변을 정리하고 부모님과 밖에서 식사를 했다.
룸으로 된 한식집을 빌렸는데 두 분 다 윤택한 생활 덕분에 얼굴이 좋아 보였다.
부모님은 내 재산 규모나 계약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집을 사드리고 매달 생활비를 넉넉히 드리는 걸로 자식의 의무를 다했다.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듣기 좋은 덕담만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전생에서는 가족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모호했기 때문에 계약과 투자 사기 문제를 가지고 온 가족이 서로를 원망했었다.
“외국 가서 서양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떻게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어딜 가나 똑같은 음식을 먹으니까요.”
“하긴…”
한국으로 돌아와 비시즌을 보내며 나는 1주일간 자유롭게 먹고 마시며 백수 생활을 만끽했다.
그리고 치팅 데이 다음날부터 다시 엄격한 식단 관리에 들어갔다.
지난 2주간 정말 미친놈처럼 운동에만 매진한 덕분에 몸 상태가 최고로 올라와 빨리 독일 가서 축구 하고 싶었다.
부모님을 만나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오성 병원 재활센터였다.
아우베스는 그날 이후로 하루 10시간씩 재활 운동에 매진했다.
간호사가 놀라서 말릴 정도로 의욕이 대단했다.
“내가 브라질 선수를 오해하고 있었나 봐.”
“왜요?”
“성실하지 않다는 선입견이 있었거든. 아우베스는 프로 의식이 장난 아니야. 재활을 넘어서 이번 기회에 신체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기를 원하더라구. 유럽에 가서도 통할 몸이 필요하다구. 그래서 마빈 코치를 붙여줬어.”
“잘하셨어요.”
김승진 덕분에 마음 편하게 한국을 뜰 수 있었다.
아우베스가 떠나는 나에게 말했다.
“곧 따라갈게. 유럽에서 만나자.”
“그래. 기다릴게.”
나는 그날 밤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