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5
싹 다 가져가세요.
“이놈아! 가족을 믿어야지! 그러다 사기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버지의 이런 반응은 예상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멍청하게 사기꾼을 믿고 알지도 못하는 곳에 투자를 해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돈 관리는 누구한테도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할 거니까. 그분들과의 협력관계는 법적으로 계약서를 써서 진행할 거에요.”
“법!?”
역시나 서민들 입 다물게 만드는 데는 법이 최고다.
부모님은 법! 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겁부터 먹었다.
“제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면 집도 사드리고 차도 사드리고 용돈도 두둑하게 드릴게요. 너무 서운해 하지 마세요. 단지 계약과 돈 관리에는 손을 떼시라는 거에요. 솔직히 두 분 모두 민법, 계약, 재테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
부모님은 크게 당황했다.
운동만 하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재산관리와 법을 들먹이며 사무적으로 나오니까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꼭 필요한 조치였다.
사기꾼들에게서 우리 집안을 지켜야 했기에.
이렇게 월드컵 대표팀 차범진호 승선 포기 사건을 해결하고 나는 방에 들어가 밤새 ‘어떤 작업’을 진행했다.
***
다음 날 아침.
집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엄마가 깜짝 놀랐다.
“이거 다 가져가면 되는 거죠?”
“예.”
“아들! 지금 뭐 하는 거야!?”
“필요 없는 물건 치우는 거에요.”
“필요 없다니!? 이거! 이거! 전부 산지 얼마 안된건데!?”
“어차피 다 싸구려잖아요. 아저씨. 싹 다 가져가세요.”
나는 고물상을 불러 내 방에 가득 차 있던 싸구려 물건들을 전부 치워버렸다.
싸구려 가구들과 잡동사니가 전부 빠져나가자 방이 텅텅 비었다.
“속이 다 시원하네.”
머릿속에 낀 찌꺼기를 말끔히 청소한 기분이었다.
오후에는 새 침대가 배달되었다.
“이게 뭔 침대야?”
기사들이 내 방에 침대를 설치하는데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자 엄마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국 NASA 기술로 만든 특수 메모리폼 침대에요. 잠깐만 자도 신체 회복이 빨리 돼서 운동선수에게는 필수에요.”
“가격이… 얼마야…”
“500만 원.”
“뭐!?”
“엄마 카드로 12개월 할부 긁었어요. 괜찮죠?”
“아들… 아무리 그래도…”
“엄마. 제 몸이 재산이에요. 몸에는 투자를 아끼면 안 돼요. 그리고 이거 보세요.”
엄마는 내가 건넨 쪽지를 보았다.
내가 밤새 기억을 더듬어 만든 식단표였다.
“요일별로 나와 있으니까 앞으로 이렇게 식사를 챙겨주세요. 그리고 붕어즙이나 개구리즙 하여튼 무슨 즙 같은 건 절대 집안에 들이지 마세요.”
“통곡물 시리얼, 완두콩 보리밥, 계란 흰자, 야채 샐러드, 과일주스, 흰살생선, 닭가슴살… 모든 음식에는 소금 최소, 설탕, 고춧가루, 후추 금지? 아니! 운동선수가 매일 이런 걸 먹겠다구!?”
“예.”
이 시절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거다.
심지어 이때는 유럽 프로 축구 선수들도 정크푸드와 맥주를 달고 살았으니까.
훗날 호날두는 철저한 식단 관리로 30대 후반까지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며 돈을 벌었고 메시는 펩 과르디올라의 조언으로 정크푸드와 탄산음료를 끊고 어패류 위주의 식사를 하면서 부상률을 대폭 낮췄다.
내가 지금부터 이런 식생활을 시작하면 다른 선수들보다 최소 10년을 앞서가는 거다.
“머릿속이 깨끗해진 기분이군.”
텅 빈 방에는 새로 들인 침대와 작은 책상과 의자뿐이었다.
책상과 의자도 이태리 최고급품이라 앉아 있으면 몸이 편안했다.
텅 비어있는 공간에 요가 매트를 깔고 물구나무를 섰다.
“이제야 나아갈 길이 보이는군.”
환경은 인간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자기 몸뿐만 아니라 주변도 깔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싸구려 물건들이 가득 찬 방에서 살면 자신의 인생도 싸구려가 된다.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최고급으로 장만하고 빈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 그곳에서 요가를 하며 심신을 단련한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
오후에 오성 병원에 가서 재활 운동을 했다.
김승진은 이제 큰형처럼 편안하게 나를 대했다.
나를 대신해 축협에 전화한 게 본인에게는 꽤 의미 있는 경험이었나 보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지루한 재활 운동이었지만 나는 모든 동작을 집중해서 충실하게 해냈다.
지도사가 감탄할 정도였다.
내 몸이 곧 돈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아끼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훈련을 마치고 강남역으로 넘어갔다.
일어와 영어 수업을 마치고 케빈 킴에게 물었다.
“혹시 강남역 주변에 요가원이 있을까요?”
“역시~ 빨라!”
“왜 그러세요?”
“요가가 축구 선수에게 정말 좋은 운동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
“예. 특히나 저는 유연성과 밸런스, 코어근육이 부족하거든요. 요가만큼 효과적인 운동도 없죠.”
“건우는 진짜 앞서간다. 한국에서 이렇게 앞서가는 축구 선수는 건우밖에 없을 거야.”
“하하하.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아니야. 사실을 말하는 거야. 아주 현명하게 프로선수가 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케빈 킴은 나한테 홀딱 빠졌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감탄하며 내 몸을 쓰다듬었다.
그의 살짝 부담스러운 버릇에 ‘설마? 혹시?’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나에게 일어를 가르쳐주는 사야카 선생님이었다.
배우 히로스에 료코를 꼭 닮은 사야카는 한국 문화를 좋아했고 한국어도 곧잘 했다.
원조 한류 팬이라고나 할까?
재밌게도 케빈과 사야카를 이어준 건 [축구]였다.
둘은 못 말리는 축구광이라 모임에서 만나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커플까지 되었다.
케빈 형이 나를 J리그에 진출할 계획인 축구 선수라고 소개했더니 도와주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건우 상은 잘생겨서 일본에 가면 일본 여자들한테 인기 엄청 많을 거에요.”
“일본 여자 조심해라. 건우야.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케빈 오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에요?”
“아니야! 아무것도!”
그렇게 스마트한 케빈 킴도 사야카에게는 꼼짝 못 했다.
나는 그가 알려준 요가원을 찾아갔다.
그냥 생활체육 수준의 요가원은 이때도 제법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아쉬탕가 요가]였다.
아쉬탕가 요가는 가장 남성적이고 힘들고 격렬한 요가였다.
고급까지 올라가려면 호흡부터 거의 신체 개조 수준의 노력을 해야 했다.
등록하고 첫 수업까지 받고 강남역에서 은평구까지 왔더니 어느새 컴컴한 밤이었다.
“바쁘다. 바빠.”
회귀한 이후 놀랄 사이도 없이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의 바쁨은 행복한 바쁨이다.
축구로 인해 망가진 나와 내 주변을 구해내기 위한 바쁨이라 힘들기는커녕 한순간 한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크로스핏 운동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무릎 상태가 좋아지면 크로스핏 운동도 시작하기로 했다.
98년 당시 한국에는 크로스핏이란 개념은커녕 그런 단어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체육관을 찾기도 쉽진 않을 거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그래. 우리 건우 왔구나.”
내가 찾아간 곳은 은평 시장 분식집 였다.
내 친구 이유찬의 엄마가 하는 분식집이었는데 여동생 현지가 열심히 엄마를 돕다가 인사를 했다.
이 가족도 내가 반드시 구해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안녕하세요. 오빠.”
“그래. 현지 잘 지내지? 오늘도 엄마를 돕고 있네. 완전 효녀야.”
“호호호. 아니에요.”
현지가 멋쩍게 웃었다.
그 웃음을 오랜만에 보니까 가슴이 찌릿했다.
그녀의 비참한 미래를 알고 있기에.
“우리 건우 뉴스가 마침 나오네.”
“오빠! 저거 봐요!”
분식집 구석 기름 묻은 작은 티비에서 정말 내 얼굴이 나왔다.
[고교 축구 천재 김건우 차범진호 승선 거부!]낯부끄러운 타이틀이었는데 묘하게 내가 부상을 핑계로 감독에게 항명이라도 한 것처럼 보도했다.
저놈의 기레기 새끼들.
저놈들은 항상 저런 식이다.
속칭 [야마]를 자극적으로 잡아놓고 사실관계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짜 맞춘다.
그럼 어떤 사람도 나쁜 놈을 만들 수가 있다.
3달 후에 기레기들은 저 지랄로 차범진 감독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까지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다.
“어머. 오빠가 꼭 부상도 아닌데 핑계를 대고 빠지는 것처럼 보도하네요. 왜 저래?”
“기레기니까.”
“기레기요?”
아차.
이 시절에는 그런 단어가 없었을 거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는 언론과 기자의 권위가 꽤 높았으니까.
신문이나 뉴스에 보도되면 다들 일단은 사실이라고 믿던 시절이었다.
“쓰레기 기자를 합쳐서 기레기.”
“호호호! 너무 웃겨요. 오빠가 만든 말이에요?”
“응.”
졸지에 신조어 제조기가 되어버렸다.
그때 마침.
나의 친구 이유찬이 분식집으로 들어왔다.
“어라. 건우야. 여기 있었어?”
“건우 오빠가 와서 한참 기다렸어.”
“학교도 안 오고 하루종일 어디서 뭐 했냐?”
“이제 훈련 끝났냐?”
“응. 감독님이 화가 많이 났는지 오늘따라 엄청 굴리더라. 설마… 너 때문이냐!?”
“몰라. 하여튼 나가자. 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
유찬이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유찬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건우야… 솔직하게 말해줄래.”
“예?”
“… 떡볶이가 좀 맛이 없지?”
“아.”
나는 유찬 엄마가 맛보라고 주신 떡볶이를 거의 손대지 않았다.
“제가 지금 부상 재활 중이라 양념 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가 없어요. 남겨서 죄송합니다.”
“맛은 좀… 어떤 거 같아?”
“학생 애들이 좋아하려면 더 매워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보다 더!?”
“예. 어머니. 떡볶이 얘기는 나중에 저랑 진지하게 따로 하시죠. 오늘은 좀 바빠서.”
“그래! 미안해!”
유찬 엄마는 연신 고개를 굽신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