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51
협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과 같아서 직접 보지 않는 게 좋다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안정민을 동정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안정민 측]은 – 여기서 [안정민 측]이란 당연히 우리 CK 스포츠 에이전시를 뜻한다.
국제 축구선수 협회(FIFPro)를 통해 국제 스포츠 중재 재판소(CAS)에 불공정약관심사 청구를 제소한다.
그와 동시에 피파, 유럽축구연맹, 한국 프로축구 연맹, 대한 축구 협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제 축구선수 협회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1965년에 설립된 국제단체다.
최재성은 직접 싸우는 대신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단체를 내세워 대리 싸움을 벌였다.
한국이 [국제 축구선수 협회] 정회원이 되는 건 앞으로 17년 후의 일이다.
한국은 축구 실력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들의 권익 보호에서도 후진국이었다.
“굉장한 전략이야.”
최재성의 전략은 눈부셨다.
법정으로 가기 전에 먼저 여론전을 벌여 여론을 완전히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렸다.
“선배들이 이런 말씀을 자주 했었지. 일류 변호사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이겨 놓는다구. 법정에서 변론으로 판사를 설득시키려는 놈은 삼류야.”
최재성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말이다.
공정하고 신성한 법정에서 오직 법리와 판사의 양심에 따라 유죄와 무죄가 결정되는 게 법치국가의 원칙인데.
사실은 재판이 열리기 전부터 엄청난 암투가 벌어진다는 뜻이니까.
학연, 지연, 전관예우, 합의, 협박, 협상 등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한다.
결론은 정의와 부정이 아니라 이기느냐 지느냐다.
“고맙다! 건우야! 조만간 런던에서 보자. 형이 시원하게 쏠게.”
최재성은 결국 이겼다.
안정민을 이탈리아에서 만난 후 28일 만에 거둔 마법 같은 승리였다.
부산FC는 한국 축구 발전과 월드컵 선전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안정민을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주기로 했다.
페루자도 안정민의 이적에 동의했다.
한화 약 60억 원의 이적료를 주고 안정민을 3년 계약으로 전격 영입한 팀은 아스날FC였다.
[안정민! 한국인 최초로 EPL 입성! 명문 아스날FC 입단!]대한민국 축구 역사가 바뀌는 날이었다.
안정민이 아스날 유니폼을 입고 아르센 벵커 감독과 악수하는 사진이 한국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EPL 겨울 이적 시장 마감 다음 날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정의가 승리했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재성 형. 나 진짜 형 존경하기로 했어.”
“마음껏 존경해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죠?”
지금 나는 런던에 와 있었다.
CK 스포츠 에이전시 사무실에서 형들과 축배를 들고 있었다.
항상 티격태격하던 케빈 형도 오늘만큼은 최재성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엄청난 일을 해냈다.
최재성은 돔 페리뇽 샴페인을 마시고 나무 상자에서 시가를 꺼내 챔피언처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아주 거만하게 썰을 풀었다.
“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지. 협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과 같아서 직접 보지 않는 게 좋다.”
“예~~?”
“어디 보자~ 정민이가 사무실로 오기 전에 너희들한테만 진실을 알려줄게. 지금부터 잘 들어. 프로가 어떻게 일을 하는지.”
최재성은 괜히 롤렉스 서브마리너 시계를 한번 쓱 보더니 진실을 알려주었다.
“와… 충격이네요.”
지난 28일간 벌어진 안정민 사건의 협상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최재성은 당일 글을 작성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가장 활발할 시간에 떡밥을 던졌다.
그리고 언론사와 방송사에도 지인을 통해 역시 떡밥을 투척했다.
그다음 떡밥이 숙성되는 동안 로펌 시절 인맥을 동원해 축협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해 로비를 시작했다.
“대현그룹 사람들이 타겟이었어. 우리 로펌 고객이라 하나 건너면 다 아는 사이거든.”
현 축협은 회장부터 간부까지 대현그룹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고 이들이 한일 월드컵을 추진한 핵심 세력이었다.
축협은 대현그룹 출신 비 축구인들과 축구선수 출신 간부들로 양대 파벌을 이루고 있었다.
축구선수 파벌의 중심은 K대와 Y대 출신이었는데 가명훈의 아버지 가진택이 축구인 파벌의 핵심 인물이었다.
최재성은 대현그룹 파벌과 손을 잡았다.
비 축구인 파벌과 축구인 파벌로 갈라진 축협 내부의 갈등을 이용하려는 의도였다.
최재성은 그다음 국제축구선수협회와 손잡고 국제 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제소를 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6개월 후에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의 핵심 선수가 국제 분쟁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세계 스포츠 언론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와 협상을 하려면 먼저 고소부터 해놔. 너 고소할 거야! 하는 거보다 당신 내가 어제 고소했어요. 라고 하는 게 상대를 압박하는 효과가 크거든.”
최재성은 안정민 뉴스로 유럽과 한국 언론을 도배한 다음 그때 서야 부산FC, 페루자와 협상을 시작했다.
당연히 두 팀 구단주는 난리가 났다.
특히 심각한 건 부산FC 였는데 졸지에 월드컵을 망친 매국노로 몰리게 생겼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최재성은 부산으로 직접 날아가 합의서를 내밀었다.
“합의서요?”
“그럼. 걔들이 미쳤다고 공짜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내주겠냐? 이 바닥은 그렇게 안 돌아가. 언론에 발표된 걸 그대로 믿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언론에서는 ‘아무 조건 없이 풀어 준다.’고 발표했지만 진실은 달랐다.
최재성은 6억의 합의금을 부산에 지급했다.
그리고 전 에이전트까지 만나서 역시 합의서를 쓰고 돈을 줬다.
안정민이 나중에 더 잘나가게 되면 전 에이전트가 또 어떤 식으로 방해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쪽도 확실하게 해 두었다.
참고로 안정민의 전 에이전트는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축구계에서 벌어먹다가 결국 선수 몸값을 횡령한 게 들통나서 깜빵에 수감 됐다.
애초에 싹수가 노란 인간이었던 거다.
“페루자 구단주 놈은 진짜 돌아이더군. 설득하느라 힘들었어.”
최재성은 부산을 정리하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페루자 구단주와 협상을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이적료를 요구하는 그를 겨우 설득해 10억을 위로금 형식으로 비공식 지급하고 안정민을 런던으로 빼 올 수 있었다.
참고로 페루자 구단주도 이후 횡령과 각종 불법 행위로 수배되고 체포되어 감방을 전전하다가 말년에 비참하게 죽었다.
이 사실만 봐도 당시 안정민이 얼마나 미친놈들과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아스날이 다행히도 안정민을 원했군요.”
“솔직히 말하면 아니야. 내가 원하게 만든 거야.”
“정말요?”
“다음 시즌에 대현자동차가 아스날의 스폰서를 맡기로 했어. 동유럽에 대대적으로 공장을 짓고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거든. 대현자동차에게는 아스날의 역사와 전통의 이미지가 필요하고 아스날에게는 새 구장을 지을 돈이 필요하니까. 서로의 니즈가 딱 맞는 좋은 비즈니스지.”
“그렇다면?”
최재성이 씩 웃었다.
그는 처음 대현그룹 사람들과 로비할 때부터 안정민과 함께 스폰서십 건까지 비즈니스를 만들어 놨던 거다.
“아직 협상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2년간 대략 500억 이상 규모의 지원이 들어갈 거야.”
“와… 대단하다.”
“에이전트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최재성이 슬쩍 케빈을 보며 웃었다.
“쳇. 맨날 놀다가 간만에 밥값 했네.”
“밥값이라니!? 안정민은 우리 회사를 살려줄 빅샷이라구. 너야말로 맨날 답도 안 나오는 애들 보러 다니지 말고 돈이 되는 일을 해!”
“뭐!? 선수 발굴은 우리의 핵심 업무라구!”
“그럼. 돈이 될 만한 애를 찾아 오던가… 런던에 축구 구경 왔냐?”
“이 자식이 진짜!”
케빈과 최재성이 또 싸우자 유찬이가 말렸다.
이젠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케빈은 런던 근교를 다니며 4부 리그 이하 선수들을 보러 다녔다.
그중에서 가능성이 보이는 어린 선수를 발굴해 키우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스카우트 망은 너무도 촘촘해서 흙 속의 진주를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길에서 1등 맞은 로또 용지를 주울 확률이랄까.
그런 걸 누가 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다들 좀 진정하세요. 정민이 형 곧 오잖아요.”
케빈과 최재성의 싸움은 안정민이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끝났다.
그는 형수님과 런던에 임시로 살 집을 계약하고 오는 길이다.
“어이~ 왔어.”
“둘이 뭐해요?”
“그냥. 비즈니스.”
안정민은 지난 협상 과정에서 최재성, 케빈과 친해져 이제는 말을 놓고 편하게 지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지만 최재성이 이번에 너무 마법 같은 재주를 부린 덕분에 이제는 무슨 소리를 해도 믿었다.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가요. 배고프네요.”
“그러자. 메뉴는? 영국식 저녁식사?”
“미쳤어요! 당연히 한식이지.”
“하하하!”
안정민은 런던으로 와서는 다시 한식파로 돌아섰다.
이탈리아의 와인과 요리, 커피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깨닫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여행자가 아니라 축구선수였기 때문이다.
***
3주 전 겨울 한국.
안정민 노예 계약 파문이 한창 시끄러울 당시.
나는 서울에 들어와 있었다.
다른 리그로 옮기고 나면 분데스리가의 꿀 같은 겨울방학이 그리울 거다.
2002년 새해 첫 달부터 기쁜 일과 나쁜 일이 있었다.
나쁜 일부터 말하자면 하이팅크호가 북미로 떠나 골드컵에 참가했는데 나는 이번에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는 거다.
내 기억에 의하면 하이팅크호는 북미 원정에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며 해임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기쁜 일 때문에 기분 나쁠 새가 없었다.
“건우 선수… 아모르 수익률이 완전 대박이에요.”
주영광 미래자산운용 대표는 이제 나에게 공손하게 존댓말을 썼다.
나의 예상대로 1년 전 몰빵 했던 아모르 화장품 주식이 정확히 11.8배 올랐다.
가지고 있던 현금 90억을 몰빵 했으니까 이제 내 자산은 1000억을 돌파했다.
거기에 신사동 꼬마 빌딩도 구입 당시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나는 손정호 회장을 위해 샀던 [컨텐츠뱅크]를 제외한 모든 주식을 팔아 현금으로 만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본격적으로 IT쪽에 투자를…”
“아니요. 아직 때가 아니에요.”
삼성전자에 재투자할까 했는데 2002년 이후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2002년 주식 대박 종목은 하나뿐이다.
“NHN이 상장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거기 몰빵하세요.”
아직 NHN이 상장하기 전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올해 말에 상장을 진행할 거다.
나는 현금을 충분히 준비해놓고 NHN이 상장할 때를 노리기로 했다.
“그래도 돈을 다 묵힐 수는 없으니까.”
내가 지시한 새로운 투자법에 주영광은 깜짝 놀랐다.
“왜 하필… 그런 곳에 투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