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53
우리는 도전자 록키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다음 날 아침.
나는 캐스퍼를 훈련장으로 데리고 갔다.
녀석은 예전과 달리 엄청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다들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캐스퍼의 태도에 놀랐다.
항상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는 거 같았는데 누가 나사를 꽉 조여줬는지 스마트하게 행동했다.
“오~ 캐스퍼. 저 녀석. 맘 잡고 하니까 제법인데?”
캐스퍼는 골키퍼로서 경험이 부족했지만 볼에 반응하는 반사 신경만큼은 놀라웠다.
클롬 감독이 흡족한 표정으로 골키퍼 훈련을 지켜보다가 나를 불렀다.
“캐스퍼랑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왜요?”
“애가 갑자기 성실해져서.”
“제가 치료를 해줬어요.”
“무슨 치료?”
“오리엔탈 마사지라고 해 두죠.”
“오리엔탈 마사지? 그게 뭐야!?”
“비밀이에요. 훗.”
때로는 백 번의 충고보다 한 번의 귀싸대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캐스퍼의 증상은 외로움이었다.
어린 나이에 타지에 홀로 나와 생활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그래서 독일 친구들을 사귀었다.
문제는 그 친구라는 놈들이 기생충이었다는 거다.
또래 독일 애들에 비하면 캐스퍼는 집도 있고 돈도 많았기 때문에 온 동네 불량 청소년들이 캐스퍼에게 들러붙었고 캐스퍼는 물주이자 호구가 되었다.
성격이 너무 착해서 불량 청소년의 아지트가 된 집에서 애들을 쫓아내지도 못하고 같이 살고 있었다.
나는 구단 사무실에 연락해 캐스퍼의 집을 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당분간 녀석을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형. 고마워.”
“그래. 고마워해라. 인마.”
팀에서는 나이가 많던 적던 서로 이름을 불렀는데 캐스퍼는 유독 나를 형이라고 불렀다.
캐스퍼는 집안의 막내로 위로 형제가 4명이나 있는 대가족 출신이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걸 더 힘들어했는지도.
“캐스퍼. 거실 청소 좀 해라.”
“알겠어요. 형.”
덕분에 부려 먹을 녀석이 생겨 나도 생활이 편해졌다.
유찬이가 이제는 런던에서 본격적으로 에이전트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잡일을 시킬 녀석이 없었는데 다행이었다.
***
D – 데이.
우리는 분데스리가의 FA컵 포칼 8강전이 열리는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7만 5천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은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알프스산맥을 연상케 하는 순백의 지붕은 독일의 미학을 보여주는 예술 작품이었다.
“알리안츠 아레나는 아직 없었구나.”
그 유명한 알리안츠 아레나가 개장하는 건 앞으로 4년 후 독일 월드컵 때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들어갔다.
7만 5천 석을 가득 채운 바이언 팬들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무시무시한 함성을 질렀다.
우리는 콜로세움에 끌려온 죄수들처럼 드레싱룸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쿵- ! 쿵- ! 쿵- ! 쿵- !
바이언 팬들이 발 구르는 소리가 드레싱룸 벽과 천장을 울렸다.
명백히 우리를 겁주고 있었다.
100년 가까이 1부 리그에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팀의 선수들답게 우리는 바짝 쫄았다.
심지어 나조차도.
“젠장. 더럽게 후달리네.”
J리그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나인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흥분과 긴장에 다리가 덜덜덜 떨렸다.
바이에른 뮌헨은 전생을 통틀어 내가 겪은 팀 중 가장 최상위에 있는 팀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 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팀, 가장 많은 우승컵과 가장 많은 기록과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팀.
지금까지 상대했던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축구 세계의 꼭대기에서 노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이 저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리냐…”
회귀 이후 처음으로 느끼는 두려움.
과연 내가 월드 클래스에서도 통할까 하는 의문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회귀 이후에 나는 앞으로 10년 후에나 활용될 최첨단 훈련법을 활용해서 다른 선수들보다 월등히 좋은 신체 능력으로 게임을 지배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J리그였고 어디까지나 분데스리가 2부 리그였다.
오늘 상대할 녀석들은 클래스가 다르다.
“뭐야? 다들 표정이 왜 그래!?”
그때 클롬 감독이 싱글벙글 웃으며 드레싱룸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보니까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췄다.
“설마. 다들 벌써부터 불알이 쪼그라든 건 아니지?”
“클로포! 누가 쫄았다고 그래!?”
“푸하하! 너잖아. 미하일.”
클롬의 말에 고참 선수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허세를 부렸다.
방금까지 장례식 분위기였으면서.
클롬이 등장하자 얼어있던 팀 분위기가 점점 녹아내렸다.
그리고 심지어.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이언은 강자다. 세상 모두가 아는 강팀이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록키4]로 치면 챔피언 드라고라고 할 수 있어. 드라고는 무시무시하게 강하지. 크고 강력하고 무자비해. 우리는 도전자 록키다. 우린 작고 약하지만 더 빠르고 더 조직적이고 더 끈질기다.”
클롬은 말을 잠시 멈추고 선수들에게 하나하나 눈동자를 맞췄다.
최면을 거는 것처럼.
“전후반 90분 동안 우리는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도전한다. 도전자 록키처럼. 알겠나!?”
“예!”
“가자! 가서 우리의 축구를 보여주자! 우리의 축구가 이곳에서도 통한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자! 우린 록키다!!”
“우와아아아!!”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피치로 나아갔다.
클롬이 우리의 감독이라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었고 긴장은 약간의 흥분으로 변했다.
뮌헨 사람들에게 우리의 축구를 당장이라도 보여주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
“오랜만이군. 요한.”
“뭘 이런 시시한 경기에 불렀어. 프란츠.”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 VIP석에서 두 남자가 만났다.
축구의 전설이라 불리는 두 영웅.
현 FC바이에른 뮌헨 회장 ‘황제’ 프란츠 베킨바워와 ‘토털풋볼의 화신’ 요한 크로이프.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는 둘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매우 친한 사이였다.
축구로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재밌는 축구를 하는 친구가 등장했거든.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어서.”
“위르겐 클롬인가 하는 애송이 말이지?”
“그래. 맞아.”
베킨바워는 놀랍게도 클롬 감독의 새로운 축구에 흥미를 느꼈고 이번 기회에 크로이프를 초청했다.
그의 냉정한 평가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친구가 독일 축구를 완전히 바꾸어 놀지도 몰라.”
“바이언 회장님이 할 소리는 아닌데?”
“하하하!”
크로이프는 언제나처럼 괴팍한 농담을 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
뮌헨 경기장을 찾은 거물은 이 둘뿐만이 아니었다.
미노 라이올란과 다른 거물 에이전트들, 유럽 빅클럽 스카우트들도 관중 속에 숨어 경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뮌헨에서 첫선을 보이는 마인츠05는 랜덤 박스 선물상자처럼 흥미를 끄는 아이템이었다.
“좋아. 김건. 네가 여기서도 통하는지 한번 보자.”
김건우에게 여전히 미련을 갖고 있는 라이올란은 핫도그를 한입 씹고 맥주를 홀짝이며 피치를 노려보았다.
***
“왜 귀가 가렵지? 누가 내 욕을 하나?”
나는 피치로 나와 몸을 풀었다.
경기장을 꽉꽉 채운 7만 5천 명의 관중들이 이제는 부담되지 않았다.
빨리 이들을 놀라게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캐스퍼! 인마! 긴장하지 말고 집중해!”
“알겠어. 형. 헉!”
틈만 나면 어리버리한 캐스퍼에게 기합을 넣고 있는데 녀석이 사자를 발견한 사슴처럼 얼어붙었다.
“뭐야? 또? 헉~!!”
녀석을 혼내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나조차도 얼어붙고 말았다.
눈앞에 진짜 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킨… 직접 보니까 박력이 장난 아니구나.”
바이언의 수문장 올리버 킨이 눈앞에 있었다.
2002년 기준 세계 최고의 골키퍼.
온몸으로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는데 진짜 사자 같았다.
“정신 차려. 김건우.”
양 볼을 두드리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데 다른 바이언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다들 실제로 보니까. 포스가 장난 아니구나.”
독일 전차군단의 미드필더 슈테판 에펜베르.
프랑스 전설의 레프트백 리자라준.
독일 폭격기 카르스턴 얀크.
브라질 특급 조반니 에우베루.
이탈리안 킬러 피사로.
과거에 내가 존경했던 선수들이 눈앞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록키다… 록키…”
나는 계속 중얼거리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러다 도저히 진정이 안 돼서 주장 바하에게 갔다.
“주장! 다 같이 모여서 소리 한번 지르죠.”
“좋아. 다들 모여봐!”
우리는 아마추어팀처럼 동그랗게 모여 머리를 맞댔다.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감독님 말씀 들었지? 우리가 누구라고?”
“록키!”
“잘 안 들린다! 우리가 누구라고!?”
“록키!!!!”
“좋았어! 기억해라! 우리는 도전자 록키다!!”
“우와아아!!!”
[지금부터 분데스리가 포칼 8강전을 시작합니다. 마인츠05의 외침이 좀 독특하네요. 해설자님도 방금 들으셨죠?] [그렇습니다. 록키라고 한 거 같은데요? 우리가 아는 그 록키 발보아가 맞나 모르겠습니다.] [초보 감독 클롬이 이끄는 마인츠는 올해 포칼 대회의 최고 화제의 팀입니다. 독특한 팀컬러와 공격적인 전술로 승승장구하며 16강에서 1부 리그 팀도 물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인츠는 포칼 8강에 오른 8팀 중에서도 가장 개성이 넘치는 팀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포칼에서 마인츠를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 같네요.] [아. 해설자님은 역시 바이언을 꺾기는 어렵다고 보시는군요.] [냉정하게 보면 그렇습니다. 마인츠와 바이언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선수단 규모나 구성에서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는 다윗이 이기지 않았습니까?] [오늘 하는 건 돌팔매가 아니라 축구거든요. 안타깝지만 마인츠로서는 내년에 겪게 될 1부 리그의 매운맛을 미리 체험하는 기회로 삼아야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전반전을 시작했습니다. 아! 마인츠!]전반전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우리는 모두 바이언 진영으로 돌진했다.
물러서서 수비할 줄 알았던 바이언 선수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막아! 젠장!”
상대는 분데스리가 최강팀이었다.
선수들 개개인의 클래스가 달랐다.
기습 전진 압박에 당황은 했지만 결코 볼을 빼앗기지 않았고 수비수에게 볼을 돌려 롱패스로 오히려 우리의 뒷공간을 노리고 들어왔다.
[마인츠! 시작부터 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