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59
목발을 짚고라도 출전할 겁니다
“이리 오시죠!”
담당자 뮬러가 나를 보더니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차고로 데려갔다.
독일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이런 표정을 짓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
길에서 그러면 처맞는다.
“뭐지?”
우리는 그동안 통화만 했고 오늘 얼굴을 처음 보는데 어쩐 일인지 뮬러는 동네 슈퍼에서 마이클 잭슨이라도 만난 것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비싼 차가 좋구나.”
내 전용으로 만든 마이바흐를 본 첫 소감은 이랬다.
흰색과 검은색 투톤 외장에 내장은 브라운과 크림색으로 꾸몄는데 파트 하나하나의 색감이 예술이었다.
고급스러운 색감도 감동이었지만 직접 만져보면 촉감은 기가 막혔다.
5억이 아깝지 않았다.
한참 차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뮬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속삭였다.
참고로 이 남자는 모델처럼 큰 키에 휴고보스 슈트를 차려입고 머리는 금발이라 록스타 데이빗 보위 같은 느낌이었다.
“뮌헨 경기. 정말 최고였습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건 선수.”
“제 경기 보셨어요?”
“당연하죠. 재수 없는 바이언 놈들을 혼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인츠의 영웅이 제 첫 번째 마이바흐 고객이라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훗.”
나는 뮬러에게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독일 패션모델 같은 미남자가 아이처럼 싱글벙글 좋아하는 모습이 참 웃겼다.
역시 축구는 재밌는 스포츠다.
뮬러에게 타고 다니던 벤츠의 처분을 맡기고 나는 직접 마이바흐를 몰고 마인츠로 돌아갔다.
“아~~ 죽이네.”
세상에 비싼 건 다 이유가 있다.
미끄러지며 쭉 달려가는데 정말 저세상 승차감이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독일의 국도를 타고 일부러 느긋하게 마인츠로 돌아왔다.
중간에 괜찮은 식당이나 카페가 있으면 차를 세우고 남부 독일의 풍광을 즐기다가 다시 운전하고 하는 식이었다.
지나가는 독일인들이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내 차를 구경했다.
그들에게도 마이바흐는 전설 속의 차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독일인들은 마이바흐가 다시 나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음번에 뮌헨이랑 또 붙으면 이 차를 직접 끌고 가야지. 후후.”
벤츠의 본고장이 슈투트가르트라면 라이벌 BMW의 본고장은 뮌헨이었다.
두 도시는 남부 독일의 오랜 앙숙 관계로 유명했다.
마이바흐 담당자 뮬러가 뮌헨이 패배한 일에 특별히 더 고소해했던 게 바로 그 이유였다.
***
뮌헨 전 이후 벌어진 2부 리그 경기에서 마인츠는 패배를 거듭했다.
뮌헨 전이 워낙 격렬한 경기였기에 벌어진 일시적인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순식간에 시즌 첫 3연패에 빠져 버렸다.
포칼 8강 뮌헨 전 승리를 빼면 후기리그 4경기에서 1무 3패를 기록했다.
클롬의 축구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뮌헨 전 이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일제히 몰려들어 클롬의 축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대로 두면 지난 시즌처럼 또 막판에 무너지며 승격에 실패할 거라는 우려가 마인츠에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클롬과 나는 무얼 하고 있었냐?
바로.
“체크메이트!”
“…”
체스를 두고 있었다.
나는 클롬 감독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에 놀러 왔다.
그의 집은 그의 성미답게 소박하지만 독일식으로 잘 꾸며져 포근했다.
여기 있으니 빨리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솔솔 들었다.
“한 번만 물리자. 내가 실수했어.”
“싫은데요. 낙장불입 몰라요? 남자의 승부에서 무르는 게 어디 있어요.”
“… 젠장! 이 매정한 녀석! 넌 체스도 어쩜 이렇게 얄밉게 하냐!?”
“그냥 감독님이 너무 못하는 거에요. 도대체가 뒤를 안 보고 공격만 주구장창 하니까 뒷 공간을 한방에 털리잖아요.”
“난 공격이 좋은 걸 어떻게 해. 체스를 두는 것도 공격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구.”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클롬의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공격이 승리보다 더 좋아요?”
“…”
클롬은 체스판 위에 쓰러진 자신의 킹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체스 전략도 온통 공격에만 치우쳐 있었다.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수비가 형편없어서 독일에 와서 체스를 처음 배운 나보다도 약했다.
우리는 얼마 전부터 휴식일 날 이렇게 둘이 체스를 두며 축구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물론 체스는 대부분 내가 승리했다.
“공격과 승리는 양자택일이 아니야. 반드시 공존할 수 있어. 단지 정확한 방법을 아직 모르는 것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감독님. 힘내세요.”
그날 축구에 관한 대화는 그것뿐이었다.
나는 형수님이 만들어준 독일식 저녁 식사를 푸짐하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패 탈출에 포효하는 클로포!! 마인츠05 반등에 성공하며 4대1로 파더보른 맹폭격! 선두 탈환!]우리는 연패에도 흔들리지 않고 클롬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를 했다.
라인을 끝까지 올리고 상대를 쉬지 않고 압박했으며 볼을 빼앗으면 재빨리 속공을 시도했다.
우리의 경기력은 차츰 돌아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리그 초반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연패를 끊은 비결이 뭡니까?”
“글쎄요. 저희 팀이 위기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많던데 그분들이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클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농담을 할 정도로 자신감을 되찾았다.
우리도 정말 이유를 몰랐다.
연패를 당하면서도 감독을 믿고 계속 성실히 훈련 루틴을 유지했기 때문일까?
이런 것만 봐도 축구는 꼭 원인과 결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이상한 게임이다.
***
한일 월드컵을 3달 앞둔 3월 9일 서울.
하이팅크호는 마지막 유럽 원정을 떠나며 28명의 국가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공격수 김건우]박준표 기자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내가 대표팀에 뽑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긴 독일이니까 한국 뉴스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
“건우야! 축하한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축하해!!”
이어서 마인츠 구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부모님과 CK에이전시 형들한테도 연락이 왔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어땠냐면.
“거~ 참~~”
이상했다.
축구 때문에 비참한 인생을 살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던 나는.
회귀해서 지금까지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회귀한 첫날부터 목표로 삼았던 건 2002년 영광의 월드컵 하이팅크호에 승선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최대의 성과를 올린 후 유럽에 진출해 단순히 동양인 선수로서가 아니라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경력을 쌓는 게 내 목표였다.
리그 우승, FA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같은 트레블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 발롱도르까지 목표하는 위대한 축구 경력.
신이 나에게 주신 두 번째 축구 인생으로 세상 끝까지 가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매일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에서는 모든 걸 던지며 여기까지 왔다.
“내가 국가대표…”
전생에서 나는 불과 19살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었다.
그때는 정말 축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타고난 재능에 의지해 잡다한 기술이나 부리는 얼치기 선수에 불과했다.
게다가 나이도 어려서 팀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그냥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 가서 뛰었던 경험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된 게 아니라 축구 인생을 망치는 결정타가 되었다.
그때부터 왼쪽 무릎을 시작으로 온몸이 망가졌으니까.
문제는 몸뿐만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이었다.
[월드컵에 출전한 10대 천재 축구 소년]이란 타이틀은 내 마음에 교만의 씨앗을 심었다.언론과 방송에 노출되며 나는 소위 [스타병]에 걸려 버렸다.
어딘가 붕 뜬 느낌으로 축구를 하다 보니 금방 문제가 생겼고 나의 축구는 거기서 더 크지 못하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말라 죽어버렸다.
“이젠 아니야.”
지금 나에겐 강함과 유연함, 순발력과 밸런스를 갖춘 육체가 있었고 여러 리그를 겪으며 쌓은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
전생에서는 몸이 망가져 은퇴하고 나서야 축구에 대한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축구 기술, 전술, 전략, 역사부터 축구선수의 훈련법, 영양섭취법, 신체 관리법.
스포츠 과학, 스포츠 생리학, 스포츠 마케팅…
한풀이하듯 읽어댔던 그 지식이 회귀한 지금 나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나의 축구 경력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반드시 월드컵 최종명단에 뽑히고 말 테다.
***
다음날 마인츠 구단 사무실에서 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하이팅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튀지니와 스페인으로 올 필요 없음. 리그 경기 충실히 하고 기다렸다가 26일에 보쿰으로 와서 팀에 합류하면 된다.]황당했다.
이번 유럽 전지훈련은 총 3경기로 진행되며 각각 튀지지, 스페인, 독일에서 한다.
그런데 나는 1, 2차전은 빠지고 독일 보쿰에서 하는 터키전에만 참가하라는 거다.
당연히 3차전 모두 참가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김이 빠졌다.
그것도 경기 당일 날 오라니.
“이것도 선수 길들이기인가? 그래도 너무 하잖아.”
원래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크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줬다가 뺏는 느낌이면 몹시 불쾌하다.
“두고 봅시다. 하이팅크 감독.”
단 한 경기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라는 하이팅크의 도발 같았다.
***
역사의 관성.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 무서운 힘이다.
어쩌면 나는 작은 요트를 타고 역사의 관성이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려는 무모한 짓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김건 선수. 레겐스부르크 전에서 부상으로 아웃! 마인츠05 다시 위기!]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럽 평가전 터키 경기를 6일 앞두고 나는 경기중 왼쪽 발목에 부상을 당했다.
내가 바이언을 꺾은 후부터 2부 리그 팀들의 거친 마크가 더 심해졌다.
나는 최소 더블 마크, 심지어 트리플 마크까지 당하며 경기 내내 괴롭힘을 당했다.
덕분에 온몸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고 그래서 플레이 스타일까지 바꿔야 했다.
드리블을 최소로 줄이고 원터치 패스를 주로 이용했다.
“망할 역사의 관성.”
그랬는데도 불구하고 깊은 태클을 당해 왼쪽 발목을 다치고 말았다.
나는 마인츠 구단에 국가대표팀 참가 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지정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목발을 짚고라도 출전할 겁니다.”
나에게는 대표팀 승선을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마인츠 구단도 그동안 나의 노고를 알기에 치료에 최선을 다했다.
심지어 베를린에서 용하다는 중국인 침술사까지 데려와 침술 치료까지 받게 했다.
무지하게 아프고 시커먼 피가 흘러나와 기겁했지만 그 덕분인지 퉁퉁 부었던 발목의 붓기가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유럽 평가전 3차 터키전 당일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