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61
나는 자네를 월드컵에 데려갈 생각이야
“강남에도 빌딩이 몇 채나 있고 주식으로도 완전 대박 났대요.”
“그래? 짜식. 어린 녀석이 재주도 좋네. 오면 재태크 비법 좀 물어봐야겠다.”
한국 선수들은 전부 김건우 이야기만 했다.
프로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운동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재테크 잘하는 선수다.
프로 선수는 모두 개인사업자였고 프로 선수의 생명은 매우 짧았다.
유니폼을 벗은 후에도 안정적으로 풍족하게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면 재테크는 필수였다.
그런데 평생 운동만 해온 선수들은 대부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
그래서 이 바닥에는 사기꾼들이 늘 들끓었다.
피치에서는 천재로 추앙받는 축구선수가 사실 밖에서는 어린아이보다 더 속이기 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한국 선수들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공한 김건우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개새끼.’
가명훈은 그래서 더 배알이 꼬였다.
지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토 나오게 고생했다.
때로는 부상을 숨기고 뛰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김건우는 독일에서 편안하게 클럽 경기만 뛰다가 갑자기 막판에 합류했다.
전부터 땀 흘렸던 선수들이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었는데 자기 말고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본인이 방해 공작을 해놓고도 가명훈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억울했다.
그에게는 자기반성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선배님들은 화나지도 않으세요?”
가명훈의 분노가 기침처럼 튀어 나왔다.
한참 웃고 떠들던 드래싱룸이 썰렁해졌다.
“뭐가?”
“건우요. 우리 대표팀에는 리그 핑계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다가 막판에 무슨 슈퍼스타처럼 나타나서 폼 잡는 게 열 받지 않으세요? 분데스리가 2부 뛰는 게 무슨 벼슬인가요?”
“허~ 허허. 명훈이 너… 좀… 희한한 생각을 한다.”
“제가요?”
나선 사람은 바로 유상천이었다.
일본에서의 인연으로 유상천은 김건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김건우는 독일에 가서도 계속 연락을 하며 유상천을 챙겼다.
왜 자꾸 위에 좋다는 독일 약을 보내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유상천은 김건우에게서 진심을 느꼈다.
“건우가 언제 리그 핑계 대며 대표팀 뛰기 싫다고 했어? 그냥 언론에서 만든 개소리였잖아. 건우는 인터뷰에서 본인은 뛰고 싶다고 계속 밝혔어. 우리 감독님이 안 불렀을 뿐이지.”
“맞아. 맞아. 그 인터뷰 나도 봤어.”
“솔직히 이번에 기용하는 방식만 보면 오히려 건우가 기분 나쁠 수 있는 상황이야. 1, 2차전 제끼고 훈련도 안 넣어주고 갑자기 터키전에 뛰라니… 그래도 좋다고 찾아왔잖아. 멋진 독일 미녀까지 데려고. 도대체 뭐가 문제야?”
“…”
가명훈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른 선수들도 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의 삼촌이 누구인지, 그의 고모부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들 느꼈다.
가명훈이 병적으로 김건우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 건우. 발목 좀 괜찮아? 이 멋진 여성은 누구지?”
감독실에 찾아가서 하이팅크에게 인사했다.
그는 역시나 내 부상 사실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하여튼 여우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인츠 직원 클로에라고 합니다. 구단을 대표해서 저희 회장님의 공식 서안을 가져왔어요.”
“호오~ 굉장한 영광이네요.”
하이팅크는 능숙하게 클로에를 상대하며 문서를 읽었다.
그리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건우는 우리 팀의 귀중한 자산이니까요. 미안한테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겠어요? 마인츠 회장님께 안부 전해주고요.”
“예.”
클로에는 나에게 관중석으로 가겠다는 눈짓을 하고 감독실을 나갔다.
그녀가 빠져나가자 실내에는 두 남자와 그녀의 바이올렛 향기만 남았다.
하이팅크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감독실에 애인을 데려오다니. 너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애인이라뇨? 저희 구단 직원이에요. 이름표 보셨잖아요.”
“흥.”
하이팅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카리스마 넘치는지 마피아 영화에 나오는 알 파치노 같았다.
“김건. 나를 물로 보지 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
“정말요?”
“그래.”
“그럼. 저를 여기 이렇게 가만히 두지는 못하실 텐데요.”
“훗. 후후후.”
하이팅크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잠시 뜸을 들였다.
조심해야 한다.
이 남자는 선수들과의 기 싸움에 도가 튼 남자다.
그는 빅클럽 위의 빅클럽, 슈퍼스타들의 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남자다.
비록 금방 짤렸지만.
“김건. 자네… 미움을 받고 있더군.”
“예!?”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자리에 털썩 앉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대한민국 감독으로 부임한 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자네를 배제하려는 축협 내부의 움직임이 있었어.”
“…”
“결론부터 말하지. 나는 자네를 월드컵에 데려갈 생각이야.”
“감독님!”
“하지만 그러려면 나도 위험을 감수해야 해. 결국 축협을 적으로 돌리겠지. 알다시피 나는 축협에 고용된 외국인 감독일 뿐이야. 축협을 적으로 돌리는 건 나로서는 자살 행위에 가까워.”
“감독님. 제가… 어떻게…”
“건우.”
“예. 감독님.”
“오늘 경기에서 나에게 증명해줘. 내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네를 월드컵에 데려가야 하는지.”
“… 알겠습니다.”
하이팅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뽕 맞은 군인처럼 눈앞이 맑아지면서 이 남자를 위해서라면 지뢰밭이라도 통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가지.”
하이팅크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마치 친아들 보듯 나를 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진짜 그에게 영혼이라도 내어주고 싶었다.
이 남자… 매우 위험하다.
“다들 인사해라. 김건우. 알지?”
“예!!”
“건우의 미인 애인을 위해서라도 오늘 터키전 박살을 내버리자!”
“우와~!!”
“가자!!”
“애인 아니라니까~~”
하이팅크는 나를 데려고 드래싱룸에 와서 단번에 분위기를 띄웠다.
한국 선수들은 다들 환호했다.
전생에서 국가대표팀으로 몇 번 뛰어봤지만 드래싱룸 분위기가 이렇게 자유롭고 상쾌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군대 내부반 같은 침울하고 경직된 분위기였다.
그딴 분위기니까 피치에 나가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리가 없지.
“아… 이건…”
내 자리에 놓인 국가대표 유니폼을 발견했다.
곱게 접힌 유니폼은 우리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입었던 바로 그 유니폼이었다.
오늘이 새로운 국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첫 경기였다.
“어라.”
그런데 뒤를 보니 30번이 마킹 되어 있고 이름은 없었다.
30번은 너무하잖아.
“위장 오더야. 오늘 붙는 터키는 월드컵에서도 만날 수 있는 상대거든. 최대한 전력을 숨겨야지.”
“아…”
이 선수들에게 우리와 터키가 3, 4위 전에서 만날 거라고 하면 미쳤다고 하겠지.
내 등 번호 14번과 내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좋았다.
이렇게 한국 선수들과 함께 같은 팀으로 뛴다는 건 가슴 뭉클한 뭔가가 있었다.
나를 친형처럼 따르는 마인츠 어린 녀석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
유니폼을 입고 스터드를 신는데 축축한 살기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돌아보니 가명훈이 있었다.
아 맞다. 이 녀석.
‘잠깐 잊고 있었네.’
놈은 애써 나를 외면했다.
그 꼴을 보니 전보다 더 왜소해 보였다.
“명훈아.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
가명훈은 나의 인사에 대꾸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걸 본 한국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 포지션이 겹치기도 하고 동갑내기라 라이벌 의식을 갖는 건 당연한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너 명훈이한테 무슨 잘못한 거 있냐?”
“글쎄요.”
나는 유상천 선배의 물음에 웃음으로 답했다.
아마도 앞으로 녀석에게 큰 잘못을 할 거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나에게 가명훈은 아무것도 아닌 미물이었다.
***
[한국의 스포츠팬 여러분. 이곳은 대한민국과 터키의 평가전이 벌어지는 독일 보훔입니다. 작년부터 계속된 하이팅크호의 해외 원정 평가전.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이팅크호는 2001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국가들과 수많은 평가전을 벌였습니다.] [사실 평가전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죠?] [그렇습니다. 우선 경기 내용과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잦은 선수 교체도 비판을 받았구요. 빨리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이팅크 감독은 그 비판에도 꿋꿋하게 다양한 선수를 기용하며 실험을 계속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월드컵 개막이 2달하고 보름 정도 남았거든요. 이쯤에서는 베스트 일레븐을 정하고 집중 훈련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하이팅크 감독이 오늘 또 새로운 선수를 불러왔습니다. 덕분에 오늘 경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그렇습니다. 바로 독일 마인츠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건우 선수입니다. 김건우 선수는 작년부터 마인츠에서 뛰며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구요. 얼마 전에는 명문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해트트릭까지 기록했습니다. 한국의 인터넷 축구팬들은 온라인 서명까지 벌이며 김건우 선수의 국가대표 발탁 운동을 벌이기도 했었죠. 그만큼 김건우 선수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과연 김건우 선수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반대하는 쪽에서는 폭력사건이나 개인주의적인 성향 등을 이유로 우려를 표하고 있던데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지금 이 시점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할 수 있는 다른 한국인 선수가 존재하는가? 그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아… 심오한 말씀이네요.] [하이팅크 감독이 왜 지금까지 김건우를 발탁하지 않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아마도 오늘 그 해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아… 한국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오는데요. 어… 김건우 선수가… 점퍼를 입고 벤치에 앉아 있네요.]***
나는 벤치에 앉아 전반전을 지켜보았다.
하이팅크 감독의 지시에 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이게 선수 길들이기 건 보호하기 건 상관없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그의 옆에 딱 붙어 나란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았다.
삐이이익- !!
내가 빠진 채로 하이팅크호의 마지막 해외 평가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