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7
에이전트
“안녕하세요. 저 케빈 형님 소개 받고 왔습니다.”
나와 유찬이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여기 분위기가 사람을 저절로 공손하게 만들었다.
“케빈? 하하하. 그 자식 이름 세탁을 하고 있어. 누가 보면 재미교포인 줄 알겠네.”
“그런 거 아니었어요?”
“전혀! 완전 한국 토박이야. 어학원 하니까 괜히 있어 보이려고 가명 쓰는 거지.”
“본명이 어떻게 되는데요?”
최재성은 나쁜 장난 치듯 손을 가리더니 속삭였다.
“성기.”
“예!?”
“성기라고 이름이. 김성기. 아주 살벌한 이름이지?”
“아… 그랬군요.”
케빈 형이 가명을 쓰는 게 이해가 갔다.
최재성은 누가 봐도 성공한 변호사 냄새를 팍팍 풍겼다.
최고급 맞춤 양복에 고급 이태리 구두, 깔끔한 헤어스타일.
하지만 입에서는 거친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우리한테도 바로 반말을 깠으며 태도는 당당하다 못해 좀 건방졌다.
‘이런 게 성공한 사람의 기운이구나.’
나만 그걸 느낀 게 아니다.
유찬이도 최재성이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었다.
“그럼. 선생님도 S대 축구부였던 건가요?”
“선생님은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예. 형님.”
“맞아. 승진이나 성기. 아니 케빈이랑 다 같은 팀이었지. 그래도 실력은 내가 제일 좋았다구. 그래 봐야 맨날 깨졌지만. 큭큭큭.”
S대 중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있는 법학과 출신다운 여유였다.
S대 법학과인데 축구 좀 지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스포츠 에이전트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이 친구야?”
“이유찬이라고 합니다.”
“흠…”
최재성은 팔짱을 끼더니 유찬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가 업무적인 표정을 지으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의 마음속까지 스캔하는 느낌.
지영만 같은 놈이 이 형님을 만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릴 거다.
“일단 탈은 좋네.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관상이야.”
“관상이요?”
“이런 일엔 관상이 중요해. 큰돈이 오가는 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강한 신뢰를 주지 못하면 일을 받지도 못해.”
“그렇군요.”
최재성은 로비에 있던 여직원을 불러 메모지를 가져오게 하더니 리스트를 쭉 적었다.
사람을 부리는 행동도 무척 자연스러웠다.
“한국에는 아직 스포츠 에이전트 문화가 없어. 에이전트는 프로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필수거든. 한국도 2000년이 넘어가면 분명히 이쪽 분야가 조금씩 열릴 거야. 지금부터 준비하면 남보다 앞서갈 수 있지. 유찬이는 여기 적어준 책을 구해서 전부 읽도록 해. 다음에 나를 찾아올 때는 이걸 마스터하고 있어야 해.”
“알겠습니다!”
이유찬은 책 리스트를 보물 지도처럼 소중하게 받아 챙겼다.
대략 10권 정도였는데 법률, 축구, 매니지먼트, 마케팅 분야 도서였다.
최재성은 일 얘기가 끝나자 또 태도를 바꾸었다.
이제는 동네 형 모드가 되어 편안하게 말을 했다.
“솔직하게 말해봐. 너 차범진호 이번 월드컵에서 어떻게 될 거 같니?”
“어떻게 되다니요?”
“지금 언론에서 난리잖아. 멕시코랑 벨기에는 충분히 잡을 수 있고 네덜란드하고도 붙어볼 만하다. 이런 개소리들 하면서.”
“그렇죠.”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정말 우리가 1승이라도 할 수 있다고 보니?”
최재성은 지금 나의 축구 보는 눈을 시험하고 있었다.
여기서 실력을 증명해야 이 남자와 함께 갈 수 있다.
“불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시아예선에서 역대 최고로 잘 나갔잖아.”
“월드컵 상대는 아시아가 아니라 세계니까요.”
“그래?”
“요즘 축구 선진국 팀들은 대부분 중앙에 미드필더 3명을 배치해서 강력한 압박을 구사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지금 차범진호는 너무 윙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렸어요. 중원을 지킬 선수가 보이질 않아요. 전력이 한국보다 약하거나 비슷한 팀이라면 이런 전술로도 승부를 걸 수 있겠지만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멕시코, 벨기에는 우리보다 전력이 강한 팀이에요. 중원 싸움에서 밀리면 뭘 해보기도 전에 무너질 거에요. 잘못하면 대패를 당할 수도…”
짝- 짝- 짝-
최재성이 박수를 쳤다.
그의 박수 소리에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우리를 쳐다봐서 창피했다.
“너 진짜 대단한 애구나. 아니지. 미안. 예의를 갖춰야지. 너 대단한 축구 선수구나. 공만 잘 차는 줄 알았는데 축구 보는 눈이 굉장히 날카로운 걸?”
“아닙니다. 아직 멀었어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최재성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한국 축구, 한국 언론은 정말 후졌어. 세계 축구의 흐름을 전혀 몰라. 완전 우물 안 개구리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축구 선진국들의 노하우를 익히고 따라가기도 바쁜데 딱 눈 감고 정신 승리만 하고 있다니까. 쯧쯧.”
“그렇죠.”
“내가 볼 때는 이번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은 개망신을 당할 거야. 도저히 이길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고 있기에.
“설마… 너 그래서 일부러 빠진 거니?”
“예? 아니요. 제가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무릎 재활은 잘 하고 있는 거지?”
“예.”
“내 친구라서가 아니라 승진이는 진짜 능력 있는 의사야.”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진이, 성기, 나 모두 어릴 때는 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던 놈들이야. 붉은 국가대표 유니폼을 폼 나게 입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자신을 꿈꿨었지. 하지만 축구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다들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끊을 수 없었지. 그래서 승진이도 나도 축구에 관련된 일을 하려고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는 거야.”
“말씀 들었습니다.”
김승진은 스포츠 전문의가 되려고 준비 중이고 최재성은 운동선수의 매니지먼트와 법률 대리를 하는 스포츠 에이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어쩌면 건우 네가 나의 첫 번째 고객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감사하죠.”
“하하하. 잘 부탁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최재성과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이유찬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성이 형. 진짜 멋지더라.”
“그러니까. 성공한 티가 팍팍 나지.”
“너도 말 잘하던데? 차범진호에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나는 전혀 몰랐어.”
“그러니까 축구 선수를 그만두라고 한 거야. 인마.”
“잘났다! 쳇.”
“너 오늘부터 진짜 열심히 공부해라. 형님이 적어준 책 전부 다 읽고.”
“당연하지. 나도 축구 선수를 그만두면서 각오했다구.”
“그래. 잘해라. 매니저.”
“하하하!”
***
3개월 후.
나는 꾸준한 재활과 요가에 크로스핏 운동까지 더해 신체력을 대폭 상승시켰다.
양질의 수면, 양질의 영양섭취, 양질의 운동.
세 가지를 바꾸자 성과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역시 19살 몸이 좋구나.”
효과가 바로바로 나오니까 더 신이 나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상을 핑계로 축구부 훈련을 빠졌다.
무의미하고 지루하고 효과도 미미한 단체 훈련 대신 내가 택한 훈련법은 바로 [카디오 훈련법]이다.
흔히 호날두 운동법으로도 불리는 카디오 운동은 심장과 심혈관을 튼튼하게 만드는 운동으로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한 고강도 트레이닝이다.
2010년 이후에 유럽 축구계를 선도하는 최신 훈련법인데 98년 한국에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훈련법이었다.
전생에서 축구 잡지로 봤던 지식을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을 줄이야.
“헉. 헉. 헉.”
한 세트가 30분인데 전력으로 하고 나면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심장이 피를 쭉쭉 빨아들여 손끝 발끝까지 전신으로 뿌려대는 느낌이 제대로였다.
그저 횟수를 채우기 위해 단체로 운동장을 도는 것과는 운동 효과가 차원이 달랐다.
“79킬로. 오케이.”
나는 체중계에서 몸무게를 확인하고 만족했다.
원래 74킬로에서 지방을 태워버리고 근육으로만 79킬로를 만들었다.
근육의 양보다 더 중요한 게 질이다.
보디빌더들의 딱딱하고 경직된 근육이 아니라 발레리노나 댄서들처럼 부드럽고 질기며 유연한 근육을 만들어야 했다.
이런 양질의 근육은 질 좋은 영양분과 효과적인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건우야. 너 몸 진짜 좋아졌다.”
“그래?”
“요즘 혼자 무슨 운동 하니?”
“그냥. 이것저것.”
축구부 동기들은 라커룸에서 근육질로 변한 나의 몸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그들이 더 놀라게 된 건 바로 나의 운동 수행 능력이었다.
자체 연습 경기에서 나를 수비하던 선수들이 가장 먼저 알아챘다.
코어근육 단련으로 버티는 힘이 상승했고 밸런스가 좋아져 잘 넘어지지 않았다.
유연성, 급가속력, 방향전환력 등 축구에 필요한 다양한 움직임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단 3개월 만에 이 정도로 발전했다는 사실에 내가 가장 놀랐다.
전생에서 내가 이런 훈련법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축구 선수도 아니었고 몸은 장애 등급을 받은 상태였다.
그저 상상 속에서 그렸던 트레이닝 이미지가 이렇게 현실이 되니까.
“너무 좋다. 진짜… 이게 내 몸이라니.”
지영만 감독도 나의 놀라운 발전에 감탄했다.
최근 여러 가지로 속 쓰린 일이 많았는데 나의 올라온 폼을 보고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싱글벙글 웃고 다녔다.
“선진대에서 돈을 더 뜯을 생각에 행복한가 보지?”
지영만이 생각하는 건 뻔했다.
추계연맹전에서 나를 앞세워 우승을 하고 나의 몸값을 더 올려 받으려는 속셈.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지영만은 그런 줄도 모르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다.
[5대0! 한국! 네덜란드에 굴욕 패배!] [차범진! 짐 싸!! 축협에서 해고 통보]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진호가 침몰했다.
1무 2패.
과거 역사 그대로 차범진은 네덜란드전 직후 축협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고 혼자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팀은 감독 없이 벨기에전을 겨우 무승부로 끝내고 죄인처럼 돌아왔다.
“건우야. 너 진짜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