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72
교체는 죽어도 안 해요
“고오오오오올~!!”
[샬케 2 대 2 마인츠]나는 골키퍼 레키의 눈을 똑바로 보며 골대 왼쪽 구석으로 차 넣었다.
그가 나에 대한 분석도 했을 테니까.
내가 슛을 차는 방향이 오른쪽이 70% 왼쪽이 30%니까 레키가 오른쪽으로 다이빙할 거라는 걸 알았다.
“통계는 언제든지 역이용당할 수 있어.”
축구 통계의 맹점이었다.
레키가 통계 분석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만큼 속이기도 쉬웠다.
축구는 직관의 스포츠다.
통계는 어디까지나 참고 수단일 뿐이다.
“휴우~~ 이제 5분 남았나…”
2002년 분데스리가 포칼 결승전.
후반전 5분을 남겨놓고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주장!!”
“건~!! 이 멋진 녀석!!”
“으아앗! 저리 가!”
잠시 방심한 틈에 동료 선수들이 나에게 몰려들어 올라탔다.
몇 번을 말하지만 나는 이런 거 싫어한다.
[김건. 마치 브라질 선수 같았습니다. 오직 개인의 힘으로 샬케 최종 수비라인을 깨트리고 골로 마무리했습니다. 대단하네요.]샬케 팬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져들었고 마인츠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 내내 쉬지 않고 압박을 가하던 마인츠가 후반 5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주도권을 쥐었다.
지난 포칼 챔피언을 상대로.
샬케의 노장 선수들은 경련이 일어나는 허벅지를 붙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 사전에 연장전은 없어! 남은 시간 안에 무조건 넣는다!”
나는 선수들에게 명확한 지시를 내렸다.
남은 5분도 뒷걸음치지 말고 전진하라고.
마인츠 노장 3인방은 비장한 얼굴로 중원을 지켰다.
팀을 위해서라면 폭탄을 안고 불 속에도 뛰어들 각오였다.
삐이이익- !!
“젠장! 카드 줘야지! 언제까지 이걸 놔둘 거야!? 심판!”
“뭐야?”
뮬러는 바하에게 홀딩 반칙을 당해 쓰러지자 벌떡 일어나 심판에게 신경질을 냈다.
주심이 뮬러를 노려보며 포켓에서 카드를 뒤적이자 깜짝 놀란 샬케 선수들이 뮬러를 진정시켰다.
“젠장! 젠장!”
에이스 뮬러가 평정심을 잃자 샬케 동료들도 분위기에 휩쓸렸다.
반면 마인츠 선수들은 영악하게 움직였다.
위험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과격한 몸싸움을 벌이며 상대의 신경을 긁었다.
“좋은 분위기야.”
피치에서 분노에 지배당한 선수는 플레이가 거칠어진다.
지친 상태에 플레이까지 거칠어지면 그것만큼 상대하기 쉬운 선수도 없다.
[바하! 볼을 빼앗습니다! 곧장 김건에게 연결!!]바하가 뮬러에게서 볼을 빼앗아 나에게 보냈다.
샬케 선수들은 내가 볼을 받자 양쪽에서 서둘러 덤벼들었다.
“흥.”
눈을 보면 안다.
이놈이 축구를 하려는지 격투기를 하려는지.
놈들이 보복성으로 나를 담그러 온다는 걸 눈치까고 재빨리 전방에 은쿠파에게 볼을 보냈다.
“뭐야!? 이 자식들!”
샬케 선수 둘이 양쪽에서 진로를 방해하며 볼도 없는 나의 유니폼을 잡아당기고 어깨빵을 시도했다.
이딴 수작에 흔들릴 내 코어 근육이 아니다.
나는 상체를 비틀어 피하며 양팔을 휘둘러 둘을 뿌리쳤다.
“여기야! 여기!”
은쿠파가 페널티 박스 앞에서 등을 지고 볼을 지켰다.
은쿠파는 특유의 스피드로 돌파에도 능했지만 피지컬을 이용한 포스트 플레이가 좋았다.
바일란트와 바비츠가 좌우에서 쇄도했고 중앙으로 내가 달려왔다.
‘좋아! 거기야!’
나와 은쿠파의 눈이 마주쳤다.
그에게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은쿠파는 찰떡같이 내 메시지를 알아듣고는 등을 진 상태에서 왼쪽으로 패스를 찔렀다.
오늘 왼쪽에서 계속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던 바일란트가 뛰어들며 논스톱 슛을 때렸다.
파아아아앙- !!
골키퍼 레키가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뻗어 막아냈다.
오른쪽으로 볼이 튕겨 나갔는데 페널티 박스 안 애매한 위치였다.
중앙에서 쇄도하는 나와 박스 안에 있던 바흐도프의 중간 지점.
‘애매한데…’
나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앞으로 치러야 하는 2002년 월드컵, 빅클럽 이적…
미래의 청사진들이 후루룩- 지나갔다.
바흐도프가 튕겨 나가는 볼을 잡으려 뛰는 게 보였다.
이대로 내가 달려가면 우리 둘은 충돌한다.
허나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아니 줄일 수 없었다.
‘간다!’
나는 축구선수니까.
저 볼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내 모든 신체 에너지를 총동원해 마지막 힘까지 짜냈다.
파아아아앗- !!
순간 미칠듯한 스프린트가 폭발했다.
내 속도에 당황한 바흐도프가 미끄러지며 태클로 전환했다.
그리고 나와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
왼쪽 엄지발가락에 볼이 닿는 순간 내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고 나는 한 바퀴를 돌아 쓰러졌다.
삐이이이익- !!
떨어지며 머리를 땅에 부딪쳤다.
삐이이이- 하는 신호음이 들렸다.
심판의 휘슬 소리가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들렸다.
팬들의 응원 소리가 목욕탕에서처럼 귀를 어지럽게 울렸다.
“주장! 괜찮아!?”
“의료진! 빨리 들어와요!!”
동료들이 걱정스럽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이 빙글빙글 돌았다.
의료진이 들어와 내 눈동자에 플래시를 비추며 뇌진탕 여부를 확인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흐도프는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했다.
놈은 마지막 순간 스터드를 들어 올려 내 왼쪽 발목을 아작내려 했다.
“우우우우우우~!!”
샬케 응원단이 야유를 내뿜었는데 누구를 향한 건지는 모르겠다.
이젠 상관없었다.
패색이 짙어지자 샬케 선수들은 나를 악마 보듯 했다.
“건. 경기 뛸 수 있겠어?”
“당연하죠. 크윽.”
일어서자마자 왼쪽 발목에 찌르르 통증이 왔다.
그뿐 아니라 왼쪽 무릎도 지끈거렸다.
“젠장.”
발목까지는 각오했는데 왼쪽 무릎 통증을 느끼자 소름이 돋았다.
전생에서 나의 축구 인생을 망친 주범이 왼쪽 무릎 부상이다.
왼쪽 무릎 부상을 방치하며 폼이 무너졌고 연쇄적으로 온몸에 부상을 당했다.
그때 잃어버린 신체 밸런스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사이드라인에 서 있는 클롬 감독을 보았다.
그가 교체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교체는 죽어도 안 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미치도록 뛰고 싶다는 거다.
앞으로의 경력, 미래 따위는 전부 잊었다.
대통령이 와도 나를 여기서 몰아낼 수 없다.
나는 여기 이 피치 위에 두 발로 서서 승리의 트럼펫 소리를 들어야겠다.
“바하 주장. 선배가 차요.”
“내가!?”
“지금 이 시점에서 이걸 찰 수 있는 사람은 선배밖에 없어요.”
“…”
나는 페널티킥을 바하에게 양보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볼을 건네받아 위치에 놓았다.
[김건… 전 주장 디모 바하에게 페널티킥을 양보합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본인이 슛을 찰 수 없는 상태일까요?] [움직임을 봐서는 왼쪽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교체하지 않는다는 건… 과연 누구의 고집일까요? 좋은 생각 같지는 않습니다. 김건은 아직 어린 선수거든요. 그의 경력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바하는 침착하게 앞에 놓인 축구공과 샬케 골대를 번갈아 보았다.
골키퍼 레키는 바하의 얼굴에서 정보를 얻으려는 듯 눈을 떼지 않았다.
‘크윽.’
왼쪽 발목과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공중을 돌아 쓰러질 때 무릎이 뒤틀린 걸까.
나는 이를 악물고 서 있었다.
[2대2 동점인 상황! 남은 시간은 3분! 마인츠의 노장 바하 선수! 페널티킥을 찹니다!]바하가 신중하게 도움닫기 해서 오른발을 크게 휘둘렀다.
레키는 볼이 발에 닿는 순간 왼쪽으로 몸을 던졌다.
투욱- 툭- 툭-
놀랍게도 바하가 찬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가 정 중앙으로 굴러 들어갔다.
[고오오오올~!! 역전 골입니다!! 바하 선수! 이런 상황에서 파넨카킥으로 골을 넣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강심장입니다!]마인츠 선수들이 전부 달려들어 바하를 끌어안았다.
레키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멍하니 있었고 다른 샬케 선수들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상대는 2부리그 팀이다.
그런데 너무도 굴욕적인 경기를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이런 골까지 먹어버렸다.
삐이이이이익- ! 삑- !!
[경기 끝났습니다! 2부 리그 팀 마인츠가 샬케를 3대2로 꺾고 분데스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포칼 트로피를 차지합니다!]파넨카킥 결승 골을 얻어맞은 샬케는 주저앉고 말았다.
90분 내내 전방 압박에 시달리며 버티던 그들의 긴장감이 한방에 무너져 내렸다.
“후우~ 끝났구나.”
시합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의료진이 피치로 뛰어 들어와 발목과 무릎에 보호대를 설치하고 아이싱 응급처치를 해줬다.
나는 피치에 누워 베를린 밤하늘에 쏟아지는 불꽃과 종이 가루를 감상했다.
“이게 메이저 우승이구나.”
J리그에는 미안하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단순히 규모의 문제는 아니다.
축구라는 게임을 100년 넘게 즐겨온 나라의 저력이었다.
내가 이끈 팀의 이름이 저 거대한 트로피에 새겨져 영원히 남을 거다.
아주 오래되고 깊은 떨림이 심장을 찌르르 울렸다.
“건!!”
“감독님!”
“고맙다! 정말 고맙다!!”
클롬이 피치로 들어와 가장 먼저 나를 찾았다.
우리는 사나이끼리 포옹을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주장! 우리가 해냈어!!”
이어진 시상식.
나는 우승팀의 주장으로 포칼 트로피를 베를린 밤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파밧- ! 파바밧- !!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지금 이 순간은 분데스리가 역사에 영원히 남을 거다.
나는 포칼 MVP를 차지했고 은쿠파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드레싱룸 축하파티에 참석하지 못하고 바로 베를린 병원으로 가려는데 바하가 쫓아 나왔다.
“고마워. 건. 덕분에 최고의 은퇴경기를 했어.”
“거기서 파넨카를 찰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훗.”
“레키가 통계에 집착한다는 걸 알았잖아. 나도 프로 짬밥을 지금까지 허투루 먹은 건 아니라구.”
“최고의 샷이었어요. 주장.”
“건…”
바하는 마지막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이게 나와 그의 마지막 경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믿기 힘들겠지만 독일 남자들은 좀 여린 면이 있다.
“치료 잘 받고 마인츠에서 보자.”
“그래요. 오늘 밤은 우승했으니까 유부남인 거 잊고 베를린 클럽에서 신나게 노세요.”
“하하하!”
나는 부축을 받으며 구급차에 탔다.
베를린 클럽이 그렇게 물이 좋다던데…
“잘 있거라. 사연 많은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아…”
병원으로 향하며 멀어지는 베를린 경기장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옛날에 뜨거운 심장으로 이곳을 내달렸던 나라 잃은 두 젊은이의 벅찬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렇게 분데스리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