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74
어쩌면 한국을 진짜 16강에 데리고 갈지도 모르겠어
“건우야…”
김승진이 내 손을 꾹 잡았다.
월드컵 나가지 말라더니 막상 이런 상황이 오자 나보다 더 긴장했다.
원래 역사대로 출전했던 선수들 이름이 쭉 호명되었다.
로또 1등 발표보다 더 떨렸다.
“… 차우리, 최진태, 김태홍…”
최종 23명 중 이미 20명을 넘은 것 같은데 나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김건. 나는 반드시 너를 월드컵에 데려갈 거야.”
하이팅크 감독의 말이 어른거렸다.
혹시 부상 때문에 뺐나?
그렇다면 나한테 연락해서 상태라도 체크 했어야지 이런 법이 어디 있어?
“건우야… 아무래도…”
김승진이 말을 흐렸다.
나는 입을 다물고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같은 시각 대한축구협회 전략위원장실]가명훈의 아버지 가진택 전략위원장은 부하 간부들과 초밥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일명 스시밴또.
잠실에서 유명한 초밥집이었는데 특초밥 1인분이 15만 원이었다.
가진택과 고위 간부는 특초밥을 먹었고 하위 간부는 10만 원짜리를 먹었다.
물론 식대는 전부 국민의 세금으로 나간다.
가진택은 미야기 산 고급 사케까지 곁들이며 식도락을 즐겼다.
“그 새끼는 요즘 좀 어때?”
“좀 삐친 거 같던데요. 어느 시점부터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말을 안 하더라구요.”
“병신 새끼.”
가진택은 초밥을 게걸스럽게 먹으며 쩝쩝거렸다.
그는 하이팅크 주변에 여러 종류의 감시자를 심어놓고 일거수일투족을 체크 했다.
“하여튼 유럽 놈들은 싸가지가 없어요. 뭐. 왕년에 자기만 축구했는줄 알아?”
“맞습니다. 저희도 다 선출 아닙니까. 그놈 말하는 거 보면 대놓고 아시아를 무시하더라구요.”
“곧 있으면 재수 없는 얼굴도 이제 볼 일 없겠구만. 크흐흐.”
“이제 딱 한 달 남았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날이… 헉.”
가진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옆에서 열심히 아부 떨던 과장을 흘겨보았다.
“김 과장. 누가 들으면 우리가 일부러 하이팅크를 희생양으로 만든 줄 알겠어.”
“죄! 죄송합니다! 위원장님!”
“앞으로 민감한 시기니까. 다들 입조심 하고 표정 관리 잘하고.”
“알겠습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다들 간빠이 한번 하자.”
“예!”
가진택이 잔을 들자 부하들이 두 손으로 공손하게 잔을 들었다.
조폭보다도 위계질서가 강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월드컵을 실제로 기획하고 성사시킨 대현그룹 출신들이 아닌 축구인 출신 파벌이었다.
한일 월드컵은 유치 경쟁부터 대현그룹의 강력한 푸시로 성사된 작품이었다.
세계적인 기업 대현그룹의 전방위적인 로비가 아니었다면 2002 월드컵은 일본의 단독 개최가 됐을 거다.
대현그룹 출신 축협 간부들은 한국인 특유의 [안 되면 되게 하는] 불도저 정신으로 일본보다 한참 늦게 유치 경쟁에 뛰어들고도 기적적인 월드컵 공동개최를 만들어냈다.
이런 성과에 한국인으로서 함께 기뻐하는 게 정상이지만 축협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축구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니들이 축구에 대해 뭘 알아?”
이렇게 무시하던 비축구인들이 엄청난 대업을 이루자 위기의식을 느꼈다.
철밥통을 차고 대충 일하는 시늉이나 하면서 평생 편안하게 놀고먹을 수 있는 자리가 어느 순간 바늘방석이 되었다.
“축구인 출신 축협 간부들은 도대체 뭘 하는 거냐?”
대중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인터넷이 생긴 이후로는 개돼지 같은 녀석들이 뭉쳐서 자신들을 감시하고 공격했다.
과거에는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외국인 감독을 총알받이로 내세워 생명을 연장해 왔었다.
한번 쓰고 버리면 되니까 그만큼 손쉬운 재물도 없었다.
“여기는 한국이야. 지들이 뭘 알아?”
외국인 감독에게 제한된 정보만 던져 주면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한국 대표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들이 몸서리를 치면서 한국을 떠난 이유가 바로 [정보 통제]였다.
하이팅크도 초기에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추천 선수 명단을 요구하면 자기 쪽 선수들만 명단에 넣었고 배제할 선수들은 리스트 자체에서 빼버렸다.
한국에 없는 선수가 되어버리는 거다.
하이팅크는 어느 시점부터 그걸 간파하더니 직접 선수들을 보러 다녔다.
어쨌든 전략위원회에서 추천하는 선수들을 한 번씩은 불러서 테스트했기 때문에 가진택은 일단 놔두었다.
“건방진 새끼. 16강은커녕 그놈이 1승이라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큭큭큭!”
“한국은 그냥 아시아의 맹주로 남으면 되는 거야. 왜 굳이 힘들게 유럽에 가서 코쟁이들이랑 싸우냐구. 안 그래?”
“맞습니다. 위원장님.”
“선수 명단은 오늘 저녁에 넘기는 거지?”
“예. 지금 준비 중입니다.”
“잘해. 실수하지 말고.”
가진택은 하이팅크에게 며칠 전 이렇게 통보했다.
[월드컵 출전 선수 최종 명단은 우리 전략위원회에서 FIFA에 제출하겠다.]일방적인 통보에 하이팅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반발을 예상했는데 그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가진택은 안심했다.
“그 녀석도 이제야 지 주제를 파악한 거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월드컵에서 개망신 당하고 살아서 한국을 떠나려면 나에게 밑 보여선 안 된다는 걸 깨달은 거지. 큭큭.”
가진택이 FIFA에 제출하는 최종 명단에는 당연히 김건우가 없었다.
대신 그의 아들 가명훈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짓이라 가진택도 대중들이 크게 분노할 걸 예상했다.
그래서 본인과 친한 스포츠 언론을 총동원해 김건우를 모함하며 물타기 할 준비를 이미 끝내놓았다.
어차피 2주만 버티면 월드컵 시작이고 한 달이면 한국이 탈락할 것이고 양은냄비 같은 대중들은 빠르게 잊어버릴 거다.
하이팅크는 공항에서 날달걀을 맞으며 한국을 탈출할 것이고 이번에도 가진택이 최종 승리자가 되는 거다.
쾅- !!
“위원장님!! 큰일 났습니다!”
문을 열고 부하 직원이 뛰어 들어왔다.
가진택과 간부들은 도둑질하다가 들킨 비행 청소년들처럼 깜짝 놀랐다.
대낮부터 일 인당 15만 원짜리 밴또를 처먹고 거기에 최고급 샤케를 곁들이며 저녁에는 역시 세금으로 룸싸롱 갈 궁리를 하다가 갑자기 문이 열리자 속을 들킨 것처럼 민망했던 거다.
“뭐야. 갑자기?”
“하이팅크가… 지금…”
“뭐!? 왜!”
부하가 티비를 켰다.
위원장실 대형 티비로 하이팅크의 긴급 기자회견이 나왔다.
“… 김건우. 이상 23명이 월드컵 최종 멤버입니다.”
***
“휴우~~”
“축하한다! 건우야!”
“저 양반… 끝까지 사람 놀라게 만드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의 이름 석 자는 결국 마지막 스물 하고 세 번째로 불렸다.
일부러 나를 약 올리려고 마지막에 넣은 게 아닌가 매우 의심스러웠다.
어쨌거나 하이팅크는 약속을 지켰다.
이젠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다.
“제 선택은 직진입니다.”
나는 티비를 끄고 일어나 재활실로 걸어갔다.
월드컵 참가가 확정된 지금 망설일 건 아무것도 없었다.
***
그날 저녁.
5월 27일 경주에서 마지막 훈련 캠프가 열리니 참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남은 시간은 대략 일주일.
나는 오성 병원 재활 센터에서 먹고 자며 몸을 만들었다.
마빈 리를 불러들여 개인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는 최근 제자 김진혁과 싸우고 인연을 끊었다고 했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진실을 알겠지만 대략 사업상의 갈등이라고 한다.
지금 그딴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 관심을 차단했다.
실시간으로 미국 NFL 첨단 훈련법과 영양 관리법을 업데이트하는 마빈 리에게 훈련받는 건 최고였지만 틈만 나면 진혁이를 욕하는 걸 들어줘야 해서 힘들었다.
사람 성격 참 이상하다니까.
“하이팅크 감독.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왜요?”
5일 후.
김승진이 축협 지인에게 들은 놀라운 소식을 알려주었다.
[하이팅크 감독 긴급 기자회견의 진실]원래 축협 전략위원회에서 임의로 만든 선수 명단을 FIFA에 보낼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이팅크는 그걸 알고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만든 명단을 언론에 먼저 발표해 버린 거다.
“진짜 무서운 포인트는 이거야.”
사실 하이팅크가 언론에 발표한 명단은 법적으로 아무 효력이 없었다.
반면 FIFA에 대한민국 축협 이름으로 보낸 명단은 법적 효력이 있었다.
만약 이걸 지키지 않으면 몰수패를 당한다.
하지만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축협이 임의대로 다른 명단을 만든 사실이 국민에게 알려지면 무서운 비판을 받게 될 거다.
하이팅크는 그걸 간파하고 허를 찔렀다.
그는 자기 주변에 첩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기자회견을 직전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이팅크 감독은 싸울 줄 아는 사람이야. 어쩌면 한국을 진짜 16강에 데리고 갈지도 모르겠어.”
이런 와중에 또 하나 축하할 일이 생겼다.
역시 하이팅크가 보낸 선물이었다.
“진짜 잘됐어요. 형님.”
“고맙다. 건우야. 전부 니 덕분이야.”
“무슨 소리에요. 제가 형님 덕분에 회복됐는데요.”
국가대표팀 의료진에 있던 의사 하나가 갑자기 사의를 표했고 김승진이 나의 추천으로 월드컵 의료진에 합류하게 되었다.
***
5월 27일 경주로 내려가는 날 아침.
부모님께 전화로 인사를 드렸다.
한국에 와서 친구, 가족,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연락도 안 했다.
오직 재활과 몸을 만드는데 집중한 덕분에 나의 몸은 빠르게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여동생에게 전화해 중요한 미션을 내렸다.
“김지혜. 잘 들어. 지금 당장 동대문 가서 빨간 옷감을 전부 사들여. 그다음 응원용 붉은 티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알겠어? 곧 월드컵이 시작되면 전 국민이 그걸 입고 다니게 될 테니까. 5천만 명의 고객이 생기는 거지.”
“뭐~~? 설마 그러겠어?”
여동생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일단 축구에 관심이 없었고 당시에는 거리 응원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2002년 월드컵 직전까지 한국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였다.
“동대문에서 거래하는 아저씨들이 한국은 3연패하고 개망신당할 거라고 하던데. 물론 나는 오빠가 잘했으면 좋겠지만…”
“아니야. 지혜야.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은 잘할 거야. 월드컵은 전 국민적인 축제가 되고 붉은 티가 엄청 팔릴 거야. 옷감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서 단가를 낮추고 최대한 많이 만들어. 알겠지?”
“아. 알겠어.”
“지혜야. 오빠 믿지?”
“믿지. 당연히.”
“지금 하던 일 월드컵까지 전부 중지하고 당장 시작해. 당장! 지금도 늦었어.”
뭐 이 정도면 오빠로서 할 만큼 했다.
나는 짐을 챙겨 승진과 경주 훈련 캠프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