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0)
* * *
두 사람은 인근을 수색하기 위해 며칠 더 백작 성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신전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안전할 거라 판단해서, 증거 수집은 오르파나에게 온전히 맡겨 두었다.
우리가 이곳에서만 머물고 있으니 신전은 분명 안심하고 상황을 무마하려 할 것이다.
‘어림없지.’
라피네는 오르파나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렸다.
생체 실험 증거를 발견하면, 물을 이용해 마치 영상물처럼 다시 볼 수 있도록 저장해 오라고 말이다.
평범한 물에 오르파나의 마력이 담기면 신비로운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전생의 CCTV처럼 순간의 상황이나 꿈이나 기억까지 기록하는 것도 가능했다.
성물을 얻은 뒤 사용할 수 있게 된 소소한 능력 중 하나인데,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라피네는 그렇게 느긋하게 신전의 반응을 지켜봤다.
그리고 백작 성의 기사들과 함께 수색해 본 결과, 더 이상의 마수는 발견되지 않았다.
제르칸은 혼란이 이어지지 않도록, 빠르게 수도 황성에 보고했다.
발견된 마수는 1마리였으며,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덕분에 수도의 떠들썩했던 분위기도 일단락된 듯했다.
라피네와 제르칸은 그렇게 며칠간 영지민들을 안심시키고 수도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오르파나가 아직 연락이 없는데 이대로 떠나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라피네의 말에 제르칸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오르파나가 연락이 없는 건 저들의 움직임이 없다는 소리겠지. 우리가 아예 떠난 뒤 증거를 처리하려고 할 생각일 거야. 그편이 안전하니까.”
“흠……. 그건 맞아요.”
제르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라피네는 고갤 끄덕이고 제르칸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약혼식 이후 며칠 만에 떠나온 거라 그런가, 신혼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기분이 이런 건가.’
왠지 아쉽지만, 돌아간 뒤 펼쳐질 새로운 일상이 기대되기도 하는 그런 기분.
그때, 라피네는 제르칸과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시선을 피해 버렸다.
지난번에 감정이 북받쳐서……. 울고불고 이런저런 말을 해 버리는 바람에 그 후로 제르칸의 눈을 마주치는 게 더 어려웠다.
“어차피 가져온 짐이 없어서 챙길 것도 없네요.”
라피네는 말을 돌리며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예상외로 챙길 게 꽤 많았다.
니클라스 백작은 고맙게도 마차를 준비해주었다.
라피네는 저택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마차를 보고 백작에게 정중히 말했다.
“배려는 감사하지만 길을 서둘러야 해서 그냥 말을 타고 가겠습니다.”
“예, 그러시지요. 이 마차는 두 분을 알아서 뒤따라갈 겁니다.”
“네?”
“그게……. 전하께서 수도로 돌아가신다는 이야기에 영지민들이 이것저것 챙겨 준 것들이 많아서요. 제가 준비한 것도 있고…….”
백작은 머쓱한 듯 웃었다.
라피네는 눈을 깜빡이며 마차 내부를 살펴보고 경악했다.
마차 안에는 별별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직접 추수한 농작물부터, 다양한 과일, 백작령에서만 나는 특이한 꽃까지.
제르칸을 향한 영지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곳은 균열이 열렸던 전쟁터와 아주 가깝진 않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위치였다.
그런 탓에 전장에 자원한 병사들도 많았고, 피해자도 많았다.
라피네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마차 문을 닫았다.
제르칸 역시 마차를 확인한 것 같았으나 부러 내색하진 않았다.
그렇게 백작 부부의 따뜻한 인사 속에서 두 사람은 수도로 귀환했다.
라피네는 백작 영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지나며 소망했다.
등 뒤를 따라오는 마차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 부디 제르칸이 짊어진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어 주길.
* * *
수도 황성.
“수고했다. 귀족들의 반응은 너무 심려 말거라.”
니클라스 백작령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받은 황제가 제르칸을 치하했다.
수도로 돌아오는 길, 라피네와 제르칸은 신전에 관한 일은 비밀로 하기로 정했다.
증거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그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하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제에게도 그 사실은 쏙 빼고 보고했다.
마수 1마리가 인근 동굴에 숨어서 살아남았었고, 그걸 붙잡았으며, 다른 마수의 흔적은 없었다고 말이다.
제르칸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럼 전 이만.”
“잠깐!”
황제는 노여운 표정으로 제르칸을 붙잡았다.
“물어볼 게 하나 있다.”
“말씀하십시오.”
“근데 그곳에 라피네는 왜 데려간 거지?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대체…… 왜! 왜! 데려갔냐는 말이다! 에스턴 공작이 얼마나 짐을 괴롭혔는지 아느냐?”
황제의 표정엔 짜증이 역력했다. 에스턴 공작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얼굴만 봐도 느껴졌다.
“…….”
사실대로 대답하려던 제르칸은 잠시 머뭇했다.
그냥 단순히 라피네가 따라간다고 졸랐다고 하는 건 조금…… 약하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제르칸은 입을 열었다.
“라피네가 한순간도 저와 떨어지기 싫다고 했습니다. 저와 떨어질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그래. 됐다.”
황제의 미간이 좁혀졌다. 괜히 물어봤다는 듯 표정이 떫게 변했다.
항간에 나도는 소문은 황제 역시 알고 있었다.
라피네가 그동안 그렇게나 제르칸을 좋아했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혼할 이유가 없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저 정도일 줄이야.’
제르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다. 게다가 어쩐지 아들의 모습이 조금 건방지고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 보거라.”
“예, 폐하.”
제르칸은 고개를 숙이고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사파이어 궁으로 가는 발걸음이 왠지 가벼웠다.
사파이어 궁의 정원에는 화사한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이곳에도 비가 왔었는지, 꽃과 나무들이 물을 먹어 싱그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들어서 계단을 오르던 제르칸은 돌연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사파이어 궁에서 전과 다른 미묘함이 느껴졌다.
확실히 달라졌다. 이 황성이.
실내 장식이나 조명, 가구 등이 달라졌다거나, 궁정인들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제르칸은 예리한 눈초리로 주변을 훑으며 침실로 걸어갔다.
사실 제르칸에게 있어 황성은 태어나고 자란 집이긴 하나, 남들이 ‘집’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며칠 만에 돌아온 황성은 묘하게 따뜻하고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남들이 생각하는 ‘집’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라피네의 존재 때문일 것이다.
제르칸은 계단을 마저 올라 커다란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대기하던 궁정인들이 의문 섞인 시선으로 제르칸을 바라보았다.
침실 안에는 라피네가 있을 것이다.
제르칸은 라피네가 이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스스로가 의아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불안해졌다.
자신은 라피네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지만, 라피네는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이전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외로운 공간이라 느낀다면?
가족들이 기다리는 에스턴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섣불리 라피네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계약 결혼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이유를 들먹여서라도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졌다.
“전하?”
궁정인들이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불렀다.
생각에서 깨어난 제르칸은 직접 문고리를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응접실에는 라피네가 없었다. 제르칸은 저도 모르게 라피네를 찾아 이곳저곳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향한 곳은 침실이었다.
만약 정말로 라피네가 이곳을 불편해하고 외롭게 여긴다면. 그는 라피네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
“…….”
제르칸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라피네를 발견하고 한숨 같은 웃음을 내쉬었다.
라피네는 편안한 슈미즈 드레스 차림으로 누워 잠든 채였다.
제르칸이 황제에게 보고하는 사이, 라피네는 황후를 찾아가 인사하고 곧바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꽤나 피곤했는지 대자로 뻗어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깊이 잠든 라피네의 모습에서는 외로움이나 불안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제르칸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침대로 다가가 라피네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뺨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손을 쉽게 뻗진 못했다.
자신은 그저 계약 결혼 상대일 뿐인데, 자고 있는 얼굴을 만져도 되는 건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한 사이이니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제르칸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이내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바닥에 닿은 건 라피네의 보드라운 뺨이 아닌 이불이었다.
그는 라피네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신이 이 황성을 이제 따스한 집으로 여기는 것처럼, 라피네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