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2)
아드리안과 바이올렛의 결혼식 날.
두 사람의 결혼식은 황성의 다이너스티 홀에서 진행되었다.
그런 만큼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결혼식이라 손님들도 상당히 많았다.
수도의 귀족들이 전부 모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라피네는 식이 시작되기 전, 상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익숙한 듯 제르칸에게 팔짱을 끼고 귓속말을 했다.
“너무 배고파요.”
물론 귓속말로 전한 내용은 별거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 굳이 가까이 다가갔을 뿐.
제르칸은 떨떠름해하는 표정이었다. 라피네는 속으로 후후 웃었다. 오늘따라 제르칸의 연기도 좋았다.
라피네는 좋아 죽으려 하지만, 제르칸은 탐탁지 않아 하는 콘셉트.
‘자꾸 하다 보니 제르칸도 연기력이 느는 모양이야.’
라피네는 자신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귀족들의 시선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라피네의 예상과 달리 제르칸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며칠 전, 라피네와 이혼 이야기를 나눈 뒤부터 계속 그랬다.
괜히 짜증 나고 초조하고……. 라피네가 얄밉기도 했다.
사실 니클라스 백작령에 다녀온 뒤, 제르칸은 라피네에게 동지애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함께 신전에 대해 고민하고 ‘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인지 당연하게 라피네를 ‘내 편’으로 여기며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혼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라피네를 보며, 그는 혼란스러웠다.
라피네가 팔짱을 꼈다 뺀 자리는 유독 시렸고, 귓속말을 할 때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모든 게 연기라는 걸 알면서도, 라피네가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눈을 깜빡일 땐 심장이 미친 듯 일렁였다.
완벽한 내 편이라 여겼는데, 결국 자신의 곁을 떠날 거라 생각하니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그때, 라피네가 더욱 팔짱을 세게 끼며 귓속말을 했다.
“저쪽에 안토니오 황자가 우릴 쳐다보고 있어요.”
라피네는 제르칸의 팔에 머릴 기대며 보란 듯이 웃었다. 제르칸 역시 안토니오를 발견했다.
황비와 함께 하객으로 참석한 안토니오는 멀리서 죽일 것 같은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문득 제르칸은 코알라처럼 제 팔에 달라붙은 라피네가 평소에도 이렇게 자신을 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뻐근할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지만 상상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없어지면 곧바로 태도를 바꾸겠지.’
단숨에 팔짱을 빼고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쉴 것이다.
마치 좀 전의 연기가 정말 피곤했다는 것처럼.
제르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연기가 아니라, 라피네가 정말로 자신을 좋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결혼식이 끝난 뒤 피로연.
라피네는 시녀들과 함께 다니며 여러 귀족들과 인사했다.
티파티 때 참여했던 귀부인들은 라피네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초대장을 받지 못했던 귀족들은 이제라도 라피네의 눈에 들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중에는 황비 쪽 귀족들도 있었다.
라피네는 저 멀리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깨무는 황비를 발견했다.
‘그나저나, 제르칸은 어디 갔지?’
아까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사라지더니 여태 보이질 않았다.
라피네는 시녀들을 뒤로하고 높은 계단 쪽으로 올라가 계속 여기저기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 제르칸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라피네의 시야에 테라스 쪽으로 들어가는 청년 귀족들 몇 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분홍색의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 자락 끄트머리도 함께.
‘저 드레스는…….’
라피네는 아까 결혼식 진행 당시, 눈이 마주쳤던 셀레스티나 성녀를 떠올렸다.
오늘따라 하늘하늘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드레스에 달린 레이스가 흔치 않은 모양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라피네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청년 귀족들이 들어간 테라스 쪽으로 걸어갔다.
테라스의 문 앞마다 근위대가 지키고 서 있었지만, 아무도 예비 황태자비를 막을 순 없었다.
라피네는 커튼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왜 발뺌을 하실까. 그 거리에서 마주친 게 뭐가 어떻다고.”
“전 영식을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만.”
빈정거리는 청년의 목소리와 단호한 성녀의 목소리가 잇따라 들렸다.
‘별일 아닌가 보네.’
라피네가 돌아서려 할 때였다.
“앗!”
셀레스티나의 것으로 추정되는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라피네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 커튼을 살짝 들쳐 안쪽을 확인했다.
청년 귀족이 테라스 쪽의 소파로 성녀를 밀친 모양이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무슨 짓이긴요. 궁금해서 그래요. 귀한 성녀님이 왜 암흑가라고 불리는 그 거리를 돌아다녔는지. 남몰래 빚이라도 졌어요?”
그 말에 다른 청년 귀족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평소 행실이 나쁘기로 소문이 난 이들이었다.
“성녀면 솔직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좀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한테 관대하고,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말이에요.”
“맞아요, 우리가 좀 외롭거든요.”
청년 귀족들은 성녀의 옆에 털썩 앉으며 궐련을 입에 물었다.
“성녀님이 좀 어루만져 주면 몸과 마음의 상처가 나을 것 같은데. 어때요?”
그들의 말투에는 대놓고 희롱이 담겨 있었다. 라피네는 성녀의 표정이 구겨지는 걸 확인하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참견하고 싶진 않지만…… 그냥 지나치는 건 더 싫었다.
“비전하?”
가장 먼저 라피네를 발견한 남자가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깜빡였다.
가까이 다가간 라피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퍽! 양손에 힘을 주어 남자를 밀쳤다.
“어어, 어! 아악!”
난간에 기대 있던 남자는 그대로 테라스 밖으로 넘어갔다.
다른 청년 귀족들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라피네는 그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비, 비전하? 지금 무슨……!”
감히 황족이 될 라피네의 몸에 손을 댈 수는 없기에 그들은 점점 뒤로 물러났다. 더 갈 곳이 없었지만.
난간까지 몰린 그들은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라피네를 쳐다봤다.
라피네는 무표정한 얼굴로 태연하게 그들의 어깨를 밀어 버렸다.
“으아아악!”
“아악! 사, 살려! 아악!”
전부 테라스 아래로 추락하고 그 공간엔 라피네와 셀레스티나 성녀 단둘만 남았다.
셀레스티나는 놀라서 입도 다물지 못하고 라피네를 쳐다봤다.
“저런 말은 그냥 듣고 있을 필요 없지 않나요? 신성력도 사용할 수 있으면서.”
“사, 사람을 헤치는 데 사용할 수는…….”
“…….”
도덕책 같은 대답에 라피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셀레스티나는 혹시 그들이 죽은 건 아닌지 고개를 돌려 테라스 아래를 힐끔거렸다.
“어차피 2층이라 죽진 않을 거예요.”
라피네는 그렇게 대답하곤 테라스를 나가 버렸다.
“…….”
고맙단 말도,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셀레스티나는 라피네가 사라진 커튼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어? 저기 있다.’
테라스를 나온 라피네는 저 멀리 서 있는 제르칸을 발견했다.
“전하, 전하!”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제르칸을 따라가자, 조용한 복도에 다다랐다.
뒤늦게 라피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몸을 돌려 라피네를 쳐다봤다.
“휴. 어디 있었어요, 계속?”
라피네가 그의 팔을 스스럼없이 잡으며 물었다.
“계속 찾았…….”
하지만 라피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제르칸이 팔을 뒤로 젖혀 라피네의 팔을 떼어 냈다.
“…….”
라피네는 당황해서 눈만 깜빡였다. 그냥 제 손을 피했을 뿐인데, 꼭 세게 밀쳐진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왜지?
제르칸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이 없으니까.”
“아…….”
라피네는 그제야 말뜻을 알아채고 어색하게 손을 내렸다.
사람들이 없으니 쓸데없는 스킨십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계속 찾아다녀서 그런가, 반가움에 나도 모르게…….
라피네는 뻘쭘해서 손을 쥐었다 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디 가셨었어요?”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을 만나고 왔어.”
“그러셨구나.”
“그래.”
제르칸은 다시 걸어가려다가 멈칫했다. 복도 너머로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귓가에 말했다.
“당분간은 사람들 앞에서도 스킨십은 자제했으면 좋겠어.”
“네?”
“불편해서.”
그 말을 끝으로 제르칸은 성큼성큼 가 버렸다. 라피네는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제르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반대쪽 복도 끝.
두 사람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제 입술을 깨물었다.
‘저딴 취급을 받을 거면서 왜……!’
안토니오였다.
그는 제 형에게 겨우 저딴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라피네가 답답하고 화가 났다.
자신과 결혼했다면, 결코 저런 취급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수군거린다.
황태자가 얼마나 황태자비에게 차가운지, 금지옥엽이었던 에스턴 라피네가 얼마나 안쓰러운 신세가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토니오는 쌤통이다 싶으면서도 속이 문드러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