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6)
“네?”
라피네는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깜빡였다.
“저는 당신의 그 아름다운 분홍색 머리카락과, 푸른 하늘 같은 눈동자를 똑똑히 기억합니다.”
“…….”
“수면침에 맞고 물속에 빠졌던 날 구해 주었던 인어가 바로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라피네의 눈살이 가늘어졌다.
어, 설마…….
그러고 보니 루비의 성물을 찾으러 갔을 때, 강에 빠졌던 남자가 꼭 저렇게 생겼던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이 없어서 그냥 배 위에 올려 구해 준 다음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수배 전단을 보고 당신이 누군지 알아챘죠.”
“……아.”
라피네가 민망한 듯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제르칸이 내렸던 수배지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안타깝게도 하나 남았던 수배 전단까지 제국의 기사들이 모두 수거해 갔지만요.”
“…….”
“그래도 덕분에 다시 당신을 만났습니다. 목숨을 구해 주었던 은혜에 이제야 감사 인사를 드리는군요.”
그 말이 끝나자, 왕자의 등 뒤에 서 있던 호위 기사와 시녀가 한 걸음 나와 라피네의 앞에 허리를 깊게 숙였다.
“저희 왕자님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저는 그저…….”
라피네가 손을 저으며 웃자, 살라딘 왕자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때, 마침 누군가 테라스 안쪽으로 들어왔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제르칸이었다. 제르칸은 미간을 찌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라피네의 손을 잡으려던 살라딘은 손을 뒤로해 뒷짐을 지고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제 목숨을 구해 주셨던 일이 있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하기에 적절한 장소와 시간은 아닌 듯하군.”
그 말에 살라딘은 피식 웃었다.
“제가 무례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의 사과에도 제르칸의 표정은 무시무시했다. 누가 봐도 꺼지라는 눈빛이었다.
살라딘은 라피네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인사하며 테라스를 나갔다.
“나중에 다시 인사를 드리지요.”
그가 나가자, 제르칸과 함께 왔던 시종들도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테라스에 라피네와 제르칸 두 사람만이 남게 되자, 제르칸은 곧장 물었다.
“목숨을 구해 주다니, 무슨 소리지?”
“아. 지난번에 렌체스트 영지에 갔을 때 물에 빠진 걸 구해 준 적이 있거든요.”
“…….”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제르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라피네는 그런 제르칸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딱 한 번만 더 해 봤으면.’
라피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르고, 제르칸은 속이 타들어 갔다.
어렸을 때의 라피네는 유독 이상한 왕자가 나오는 동화책을 좋아했다.
그걸 보고 자신에게 청혼했을 만큼.
제르칸의 눈에 살라딘 왕자는 동화책 속의 쓰레기 왕자처럼 보였다.
라피네의 재혼 상대 후보로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운 좋게 들었다 하더라도 사형시킬 이유가 너무 많았고.
“바빌레니아 왕국 사람과는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아.”
저도 모르게 짜증스럽게 목소리가 나왔다. 제르칸은 스스로의 말투에 약간 당황하며 라피네를 쳐다봤다.
라피네는 어쩐지 살짝 넋이 나가 있었는데, 그 표정이 굉장히 귀여웠다.
“크흠.”
정신을 차린 라피네가 헛기침을 하더니 “왜요?” 하고 물었다. 제르칸은 사실대로 말하려다가 멈칫했다.
“……테미온 왕국과 가까이 지낸다는 이야기가 있어.”
“테미온 왕국이요?”
“그래.”
라피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테미온 왕국이 최근 야만족 세력인 우크메린 족과 가까이 지낸다고 들었다.
그리고…….
‘테미온 왕국은 원작에서 안토니오가 제국을 팔아먹었던 나라이기도 하지.’
작다고 무시했던 왕국 하나가, 결국에는 제국을 통째로 차지하게 된다.
여전히 부강한 현재의 제국과 달리, 원작에서는 제국이 처참히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야가 흐려져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제르칸. 그리고 제르칸의 죽음.
그 뒤로 능력이라곤 쥐뿔 없는 안토니오가 황위에 올랐고, 여인과 향락에 빠져 제대로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렇게 제국이 넘어갔다.
주인공들이 모두 죽은 이후의 이야기는 어차피 자세히 그려지지도 않았고, 흥미를 잃어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물론 제국이 넘어간 데에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요인이 많았을 것이다.
‘테미온 왕국 놈들이 제국 고위 귀족들 사이에 세작을 잔뜩 심어 놨었겠지.’
지금이라고 방심할 순 없었다.
이미 제국 곳곳에 그들의 세작이 숨어 있을 것이다.
‘꽤 수상한 것들이 많기도 하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라피네를 보고 제르칸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기분이 상한 듯한 말투였다.
“혹시 그 쓰레기 왕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건…….”
“테미온 왕국에서는 이번에 누가 참석…….”
두 사람의 말이 동시에 나왔다.
테미온 왕국에 대해 물어보려던 라피네는 눈을 깜빡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은데……?”
“너야말로 무슨 말을 했지? 테미온 왕국?”
제르칸이 묻자, 라피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테미온 왕국에서는 이번 결혼식 때 누가 사절단으로 왔어요?”
“국왕의 남동생이 왔어.”
“그럼 왕자인가요?”
라피네의 물음에 제르칸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녀의 물음처럼 왕자는 아니었지만, 대공이니 그 지위는 왕자나 다름없었다. 아니, 왜 죄다 왕자들뿐인 거지?
“대공 작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요? 지금 연회장에 있겠죠?”
“왜? 인사를 하려고?”
제르칸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라피네는 왜 이렇게 왕자를 좋아하는 걸까. 자신으로는 부족한 건가?
“아뇨, 그건 아니고…….”
라피네가 손을 까딱였다. 가까이 와 보라는 신호였다. 제르칸이 고개를 숙이자, 라피네가 귓속말을 했다.
“누구와 접촉하는지 보려고요. 아무래도 수상해서.”
“…….”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제르칸은 라피네를 빤히 응시했고, 라피네의 시선은 그의 입술로 향했다.
“크흠.”
“……흠.”
동시에 두 사람이 멀리 떨어졌다.
“저, 저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좀 지켜봐야겠어요.”
“……그래.”
그렇게 라피네는 먼저 테라스를 나섰다. 제르칸은 화끈거리는 뺨을 진정시키려 조금 더 머물렀다.
라피네는 시종을 통해 테미온의 사절단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먼 곳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호남형인 그자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중에는 황비 쪽 귀족들도 있었고, 테들러 자작 쪽 귀족도 있었다.
그러나 라피네가 그를 오래 지켜볼 틈은 없었다.
연회의 주인공인 라피네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올리비아와 크리스틴이 대부분 막아 주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파도처럼 밀려오는 귀족들에게 정신없이 인사를 할 때, 누군가 라피네의 앞으로 걸어왔다.
라피네가 조금 전까지 몰래 지켜보던 테미온의 왕족이었다.
“반갑습니다.”
라피네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가 팔을 구부리며 허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황태자비 전하. 저는 테미온 왕국의 사절단으로 온 가스톤 대공입니다. 제국 황성은 정말이지, 너무나 아름답군요.”
그는 느물거리며 웃었다. 원작을 알고 있어서 그런가, 제국 황성이 아름답다는 말이 평범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요. 제국 황성은 정말 아름답지요.”
“예, 사절단으로 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라피네는 그와 태연하게 인사를 나누며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그리고 그 틈에서 묘한 미소를 띤 자들을 목격했다.
테들러 자작의 수하로 알고 있는 한 남자 귀족, 그리고 구석에 서 있는 신관 하나.
두 사람은 눈앞의 가스톤 대공과 묘하게 비슷한 눈빛과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라피네는 세 사람의 눈빛만 보이는 듯했다.
남의 것을 훔치고 싶어 안달 난 약탈자의 눈빛이었다.
* * *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셀레스티나는 예리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사실 그동안 그녀는 제르칸과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참이나 누군가를 찾아 돌아다니던 셀레스티나는, 비로소 저 멀리에 있는 제르칸을 발견하고 근처로 다가갔다.
소매 아래에는 작은 약병이 숨겨져 있었다.
오래전, 황비가 황제에게 사용해 그 마음을 사로잡았던 비밀스러운 약이 담긴 병이었다.
오늘 밤, 셀리스티나는 제르칸을 유혹해야만 했다.
무려 결혼식 날 그런 일이 벌어지면, 황태자 부부 사이는 처참하게 망가지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귀족 사회에서 제르칸의 평판과 이미지는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안토니오 황자의 이미지는 좋아질 테니 성공만 한다면 물 흐르듯 흘러갈 기회였다.
그래서 반드시 오늘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셀레스티나는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괜히 그때 도움을 받아서…….’
얼마 전, 연회장에서 곤란에 처했던 자신을 구해 주었던 라피네가 떠올랐다.
파렴치한 귀족들을 테라스 아래로 밀어 버리던 그 손짓.
망설임 하나 없이 움직이던 그 행동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정신 차려야 해, 흔들릴 이유가 없어. 그분을 위해서라도 나는…….’
셀레스티나는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아드리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 * *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쪽으로 갔던 라피네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눈을 깜빡였다.
‘저 여자, 지금 뭘 넣은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