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09)
기분은 좋지 않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황비와 라피네가 자리에 앉자, 궁정인들은 분주히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내 궁의 요리사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지. 어서 먹어 보게.”
“네.”
라피네는 수프와 샐러드를 먹어 보았다. 황비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확실히 맛이 깔끔했다.
특히 훈제 오리가 들어간 샐러드는 드레싱이 예술이었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고소했다.
요리사의 영혼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모시는 사람이 어찌나 예민한지, 음식의 맛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할까?
라피네는 아무 걱정 없이 편하게 식사를 이어갔다.
어차피 라피네만 꼬집어 초대된 식사 자리이니 약 같은 건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레베카 황비는 그런 라피네를 의외라는 듯 지켜보다 말했다.
“들리는 소문들이 많아서 내 마음이 쓰였는데, 막상 직접 보니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
“무슨 소문 말씀이신가요?”
라피네가 묻자 레베카 황비는 무척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황태자와 사이가 안 좋다지?”
“아…….”
“황태자는 관심이 없는데 황태자비 혼자 안달을 낸다고 어찌나 사람들이 떠들어 대던지……. 쯧쯧. 하지만 너무 걱정 말게. 어차피 소문 아닌가.”
황비는 상냥하게 웃고 있으나, 뱀처럼 교활한 미소였다.
‘대놓고 갈구네.’
라피네는 속으로 픽 비웃음을 흘리며 겉으로는 당황한 척 입술을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레베카 황비는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기색을 숨기며 자애롭게 말했다.
“너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본래 남자들이란 그렇지. 먼저 다가가면 부담스럽다고 도망가고, 또 도망가면 눈이 돌아 잡으러 오고.”
“…….”
가만히 황비의 말을 듣던 라피네의 머릿속에 갑자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수배령을 내리고 렌체스트 영지까지 자신을 쫓아왔던 제르칸.
‘눈이 돌…… 았던가? 아무튼 엄청 무서운 눈빛이긴 했지.’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때는 지금 이런 고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아, 그나저나. 내가 수도원에 가 있는 동안 우리 안토니오와 절친하게 지냈다고 들었는데…….”
“네? 제가요?”
라피네는 깜짝 놀라 물었다. 누구랑 누가 절친하다고?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에 레베카 황비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안토니오는 에스턴가 영애와 자신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하기도 했었지.”
“허…….”
라피네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레베카는 턱을 치켜들고 그런 라피네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며 경고했다.
“황실 어른으로서 내가 경고 하나 하지.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다. 멀쩡한 형제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지.”
“……네?”
“안토니오 황자에게 쓸데없이 접근하지 말라는 소리다.”
라피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건가 했더니…….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뭐?”
“저는 안토니오 황자와 절친하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서로 좋아한다니…….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시다뇨!”
“끔찍하다고?”
“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황태자 전하만을 마음 깊이 흠모해 왔는걸요? 수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잖아요.”
라피네는 순수한 척 눈을 깜빡거렸다. 레베카는 얄미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바로 어제 안토니오에게 그런 약을 먹여 놓고, 태연한 척 구는 라피네가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라피네가 “아!” 하며 또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멀쩡한 형제 사이란 말은 좀 이상하네요……. 황태자 전하와 안토니오 황자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잖아요?”
“……!”
“그러니 형제 사이가 갈라져도 저 때문은 아니지요. 이미 갈라져 있었으니까요.”
“이…….”
레베카는 나이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그녀가 무서운 눈으로 돌변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네가 내 아들에게 이상한 약을 먹인 걸 알고 있다. 어떻게 감히……!”
라피네는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얄밉게 대꾸했다.
“어, 이상하다? 그 약은 제가 먹인 게 아니라 안토니오 황자가 직접 먹었는데요? 그리고 약을 준비한 건 셀레스티나 성녀잖아요. 물론 그쪽이 직접 시켰을 거고.”
“그, 그쪽? 지금 나더러 그쪽이라고 한 것이냐?”
라피네의 단어 선택에 황비의 눈이 커다래졌다. 내내 얌전한 척 굴던 라피네가 갑자기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네. 무슨 이유로 저를 부르셨나 했더니……. 그냥 화풀이를 할 생각이셨나 봐요.”
“이, 이……!”
레베카가 이를 악물었다. 사실 라피네를 부른 건 기세를 꺾고 혼내 주기 위해서였다.
제까짓 게 아무리 황태자비라 해도 이제 겨우 성년을 넘은 애송이였다.
무섭게 굴면 금방 겁을 먹고 숨어 버릴 어린애. 그런데 이런 본색을 숨겨 놓고 있었나?
라피네는 당황한 레베카를 보더니 살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마세요. 솔직히 누구보다 친어머니인 그쪽이 제일 잘 알잖아요? 안토니오 황자에겐 아무 재능도, 자질도 없다는 걸.”
“이 건방진 계집이!”
레베카 황비는 벌떡 일어나 라피네의 뺨을 내리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대신 테이블의 음식을 와장창 밀어 버렸다.
그러고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그녀는 라피네를 향해 삿대질하며 윽박질렀다.
“네가 황태자비라고 황후라도 된 것 같으냐? 너 역시 어차피 황후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제르칸도 황제와 똑같이 후비를 들여 너를 고통스럽게……!”
씩씩거리던 황비는 자신이 순간 선을 넘었다는 걸 인지하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는 숨을 거칠게 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어차피 이곳에는 2명의 시종만 있을 뿐, 다른 듣는 귀는 없었다.
게다가 저 시종들은 누구보다 황비에게 충성스러운 이들인 데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라피네는 현관에 붙어 있는 마도구 탐지 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테들러 자작의 세작들이 정보를 물어 갈까 무서워, 최근 거금을 들여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그러니 라피네 역시 녹음 마도구 같은 건 당연히 소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즉, 이 대화가 밖으로 새어 갈 일은 없었다.
“당장 나가, 내 궁에서 꺼져!”
상황 판단을 끝낸 황비가 라피네에게 소리쳤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싶지만, 적어도 이 궁 안에서 라피네는 털끝도 다쳐선 안 된다.
황비는 몸을 돌려 식당을 나가 버렸다.
원래는 라피네가 돌아간 뒤, 몸져누운 척하며 쓰러질 예정이었다.
라피네가 황비를 무시하는 건 사교계에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황비가 직접 초대한 저녁 식사에 황태자비가 다녀간 이후, 황비가 쓰러졌다면?
사교계 사람들은 분명 라피네의 건방짐이 과하다는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무시하는 건 그렇다 쳐도, 식사에 초대한 사람에게 어떻게 굴었길래 쓰러지냐는 식으로.
그런데 그런 척을 할 것도 없이 정말 몸져눕게 생겼다.
방으로 돌아온 황비는 씩씩거리며 시종들이 정리해 놓은 물건들을 부숴 댔다.
한편, 식당에 남은 라피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헝클어진 테이블 위 음식들을 자신의 드레스에 툭툭 떨어뜨렸다.
남은 시종들이 의아하게 그녀를 쳐다봤지만, 라피네는 태연하게 움직였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더 욱하네.’
살짝 찌르면 화낼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멘탈이 저렇게까지 개복치일 줄은 몰랐다.
‘하긴, 궁지에 몰린 상황이긴 하지.’
여러모로 곤란할 것이다.
성녀의 실수, 그리고 그 실수로 인해 별안간 성녀만 찾고 있을 안토니오.
나날이 위협적으로 세력을 키워 가며 안토니오에게 접근하는 테들러 자작.
수세에 몰린 사람은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럴수록 폭발하기가 쉽고.
특히나 황비는 애초에 예민하고 화가 많은 성격이니 이렇게 금방 터져 버릴 줄 알았다.
‘게다가 지켜보는 사람도 자기 수하들뿐이니, 안심하고 화를 냈겠지. 내가 소문을 낸다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니까.’
의외로 황비는 사교계에서 평판이 좋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온화하고 상냥한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한텐 비밀 무기가 있지.’
라피네는 속으로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피아 궁전을 빠져나왔다.
이후 레베카 황비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히 보였다.
‘내가 레베카 황비를 무시하고 있다는 소문을 부풀리려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연기하겠지.’
라피네는 세피아 궁전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픽, 하고 쓰러졌다.
“어어……. 비, 비전하!”
“비전하!”
계단 아래서 대기하고 있던 궁정인들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라피네는 스르륵 눈을 감으며 팔에 힘을 쭉 뺐다. 툭, 하고 가느다란 손목이 떨어졌다.
“비전하!”
안타깝지만, 레베카 황비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연기는 이쪽 전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