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2)
라피네는 작은 숨을 내쉬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르칸…….”
엄청난 빛이 쏟아져 그를 쳐다보기 어려웠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자 제르칸의 등 뒤로 하얀 구체가 보였다.
마치 커다란 달이 바로 앞에 있는 듯 내뿜는 광채가 엄청났다.
“늦어서 미안해.”
제르칸이 말했다. 라피네는 그제야 제르칸의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온몸에 힘이 쫙 풀렸다. 가뜩이나 힘이 없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두 다리로 서 있기조차 벅찼다.
기사들이 두 사람을 지나쳐,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구체의 빛이 사라지고, 제르칸은 힘이 빠져 주저앉은 라피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굽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라피네는 제르칸에게 구속구를 보여 주었다.
“정, 정령들이…….”
제르칸을 만나서 그런가, 갑자기 설움이 차올랐다. 다시는 정령들을 만날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
“이게 뭐지?”
제르칸이 물었다. 라피네는 더듬더듬 설명했다.
“그러니까, 게롤 테들러가…… 무슨 방법인진 모르겠지만 이게 내 마력을 차단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령들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
“루비랑 오르파나가…… 두, 둘의 매개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어요.”
라피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르칸은 그런 라피네의 손을 꽉 잡아 주었다.
“다신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죠?”
라피네가 울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 줄게.”
“……어, 어떻게요?”
“어떻게든. 네가 슬퍼하지 않도록.”
제르칸은 품 안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황실의 보물 중 하나로, 먼 과거 위대한 정령사가 만들었다는 보검이었다.
“……그거 되게 귀한 거 아니에요?”
“너보다 귀하진 않아.”
제르칸은 그렇게 말하더니 라피네의 손목을 끌어당겨 바닥에 내려놓았다.
라피네는 눈을 깜빡거렸다. 지금 저 단검으로 구속구를 깨겠다는 건가?
……그러다 내 손목이 잘리는 거 아냐?
“고개 돌리고 눈 감고 있어. 다치지 않을 거야.”
“그, 그렇지만…….”
제르칸은 직접 라피네의 고개를 돌려 주었다. 라피네는 어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았다.
쾅! 쾅! 쾅! 제르칸은 양손에 단검을 쥐고 어마어마한 힘으로 구속구를 찍어 내렸다. 주변의 땅으로 진동이 크게 울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라피네는 진동을 꾹 견뎌 내며, 고개를 돌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한 번, 한 번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라피네는 자신의 손가락이나 팔목이 잘리는 상상을 했다.
쾅! 쾅! 쾅!
그러나 수십 번이나 더 어마어마한 소리가 이어질 동안, 라피네는 조금의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제르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강한 힘으로 계속 내리치는데, 오히려 제르칸이 힘들다거나 다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다 잠시.
“그대로 있어.”
제르칸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진동이 멈추더니 다른 무언가를 하는 듯 주위가 조용해졌다.
라피네는 두려움에 움찔거렸다.
“괜찮아, 금방 될 거야.”
제르칸이 안심시키는 소리와 함께, 라피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다시 쾅쾅, 커다란 소리가 들리며 진동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길 또다시 수십 번.
콰지직!
몇 번 더 제르칸이 단검을 내리꽂았을 때였다.
놀랍게도 구속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라피네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깨, 깨졌다!”
라피네는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양 팔목을 감쌌던 벽돌 모양의 구속구는 거짓말처럼 정확히 네 갈래로 쩍 갈라지고 있었다.
갈라진 절단면은 매우 깨끗했다. 한 치의 오차 없이, 같은 지점만을 수백 번 내리친 결과였다.
쪼개진 구속구 사이로 어두운 빛이 흐르는 게 보였다. 금술 마법인 듯했다.
그러나 라피네가 자세히 볼 틈도 없이, 구속구는 가루처럼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시에 손목의 팔찌가 돌아오고, 품 안에 숨겨 놨던 곰 인형의 감촉이 느껴졌다.
“정령이 돌아왔어요! 정말 다행…….”
다행이라고 말하려던 라피네는 그제야 제르칸의 상태를 발견했다.
“…….”
라피네는 입만 벌린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귀가 먹먹해졌다.
제르칸이 사용한 단검은 황실의 전설이 담긴 보검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보석이 박혔던 손잡이는 빠진 채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무, 무슨…….”
라피네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제르칸을 쳐다봤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손에 감았던 붕대를 풀고 있었다.
구속구를 내려치던 와중 단검의 손잡이가 빠지자, 제르칸은 검날만 남은 단검을 제 손에 고정해 다시 그 일을 반복한 것이다.
이 단검의 진짜 힘은 손잡이가 아니라, 검날에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당연하게도 제르칸의 손바닥은 칼로 난도질되어 엉망이었다.
라피네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이 흐려졌다.
“……울 필요 없어.”
제르칸이 그런 라피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눈물을 닦아 주려다 제 손의 상태를 알아채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안쪽에 걸친 하얀 셔츠를 뜯어내 붕대처럼 손에 감았다.
라피네는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울고만 있었다.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어, 어떻게 해요……. 소, 손이…….”
“난 멀쩡해.”
제르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우기며 라피네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라피네의 울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르칸은 라피네를 당겨 안아 품에 안았다.
라피네는 눈을 질끈 감고 제르칸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러길 한참.
“전하! 내부에서 레베카 황비와 그 하녀, 셀레스티나 성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기사는 부둥켜안은 두 사람을 보고 움찔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제르칸이 묻자, 기사는 ‘아!’ 하며 대답했다.
“게롤 테들러를 발견했는데, 그게 상태가…….”
“왜?”
“이미 숨을 거뒀는데…….”
“…….”
“온몸이 칼로 난도질 되어 있었습니다.”
제르칸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는 곧바로 움직였다.
겨우 울음을 그치고 진정한 라피네는 무언가 중요한 게 생각난 듯, 그의 품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지며 말했다.
“게롤 테들러는 안토니오를 황제로 만들어 테미온 왕국에 제국을 바칠 생각이었어요.”
갑작스러운 말에 제르칸은 대답 없이 라피네를 응시하기만 했다.
“테미온 왕국 놈들이 제국을 집어삼킬 생각이라고요!”
라피네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원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토니오가 나라를 팔아먹은 게 아니라, 그들이 모든 걸 조종한 것이다.
내내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사건의 실마리가 겨우겨우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널 죽이려고 했다고?”
제르칸의 물음에 라피네는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닫고 말했다.
“저들의 목적은 전하를 망가뜨리는 거예요.”
“…….”
“날 죽여서 제르칸 당신을 흔들려고 한 거라고요. 전에는 전하의 약점이 황후 폐하였지만…… 이제는 나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여전히 제르칸은 침묵했다. 라피네는 묘한 기분에 어색하게 덧붙였다.
“차, 착각이겠지만…… 아무튼요.”
“착각이 아니야.”
“…….”
라피네는 눈을 크게 뜨고 제르칸을 바라봤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라피네만 응시하고 있었다.
“저들의 생각은 정확했어. 내게 가장 큰 약점은…… 너야, 라피네.”
“……무슨.”
“저들 계획대로 네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난 미쳤겠지.”
“…….”
“이렇게까지 화가 난 건 처음이야. 정말…… 네가 죽었다면, 난 미쳤을 거야.”
라피네는 당황해서 입만 뻥긋거렸다. 제르칸은 거칠게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대륙에 살아남은 생명이라곤 나 하나뿐이 되었을 때쯤에야 정신을 차렸겠지.”
“…….”
“정말 다행이야. 네가 다치지 않아서, 정말…….”
제르칸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라피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동공에는 두려운 감정이 가득했다.
제르칸의 눈에서 안도의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물을 보며, 라피네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 * *
황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라피네는 정신을 잃었다.
라피네가 며칠 만에 깨어났을 때. 수도는 말 그대로 뒤집힌 상태였다.
느리게 눈을 뜬 라피네는 이곳이 침대 위라는 걸 깨달았다.
「아가야!」
「주인님! 엉엉, 주인님…… 어엉!」
눈을 뜨자마자 루비와 오르파나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다. 라피네는 베개 옆에 놓인 인형과 손목에 찬 팔찌를 확인하고 안도했다.
‘다행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냐? 갑자기 시간이 뚝 멈춰 버렸었다!」
「그러니까요!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흑흑.」
정령들이 흐느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