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5)
라피네는 무엇보다 레베카 황비가 그 하녀를 변호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레베카 황비는 뭐든 아랫사람 탓하는 게 기본 아니었나?’
아마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하녀만 아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지도.
그게 아니면 안토니오 황자를 위해서라거나…….
‘어휴, 모르겠다.’
라피네는 더 복잡한 생각을 하길 포기했다.
어차피 아무리 혐의를 부인해도, 레베카 황비가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본인은 그렇게 믿지 않는 것 같지만.’
라피네는 황성의 법정을 빠져나와 사파이어 궁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최근 제르칸을 보는 횟수가 무척이나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라피네는 대충 상황을 눈치챘다.
제국은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명분이었고, 제국에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다.
지금 끝내 놓지 않으면 테미온 왕국은 점점 더 깊게 제국으로 파고들 것이다.
황제는 결정을 내렸고, 제르칸이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관을 맡았다.
사실 규모만 따지면 제르칸이 직접 나설 규모의 전쟁은 아니었다.
테미온 왕국이 부강하긴 하나, 제국에 비해선 작은 왕국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전투 민족인 우크메린족과 연합한 상태였다.
‘게다가 변이시킨 마수도 데리고 있지…….’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패배할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있으나, 빨리 끝난다고는 확신하지 못하는 전쟁이었다.
라피네는 한숨을 내쉬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가 봤자 제르칸이 없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사파이어 궁에 가기 싫지…….’
라피네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사파이어 궁으로 돌아가기 싫은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 * *
“라피네!”
사파이어 궁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라피네는 계단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루카 에스턴이었다.
“라피네! 누가 나갔다 오래. 어? 오라버니가 말했지 허락받고 갔다 오라고!”
“…….”
“겁도 없이……! 라피네 너 분명히 네 손으로 서명했어, 안 했어! 사파이어 궁 안에서 우리 가족은 전처럼 지내게 될 거라고 서명했잖아!”
“알겠어, 알겠다고…….”
엄청난 잔소리 폭격에 라피네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라피네가 깨어난 이후.
가족들은 꼭 반란을 일으키는 군대처럼 다 같이 찾아왔다.
〈라피네 에스턴, 네게 통보하러 왔다.〉
〈그래, 통보하러 왔다.〉
웬일인지 엄마, 아빠보다 앞에 서 있던 루카와 로이스가 대표로 말했다.
〈자, 서명해.〉
그러고는 1장의 서류를 내밀었는데……. 라피네는 어리둥절해 눈만 깜빡였다.
〈……이게 뭔데?〉
〈우리가 그동안 너에게 끊임없이 주장했지. 넌 에스턴 저택에서 지내며 황성으로 출퇴근을 해야 한다고.〉
〈…….〉
〈넌 그걸 끝까지 거절했고 말이야. 그래서 결정했다. 우리 에스턴 가족은 오늘부터 이곳으로 출퇴근한다.〉
〈출퇴근한다.〉
루카의 말에 로이스가 끝마디만 따라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이게 무슨 개소리야, 오라버니…….
라피네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았다.
루카, 로이스의 등 뒤로 울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걱정하셨을지 안 봐도 뻔했다. 막내딸이 납치되어 죽을 뻔했다는데, 멀쩡할 부모는 없었다.
라피네는 엄마 아빠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자, 서명하라고.〉
〈서명하라고.〉
로이스는 라피네에게 펜을 내밀며 강요했다.
라피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계약서를 쳐다봤다. 이 와중에도 라피네는 함부로 서명하지 않고 계약서를 꼼꼼히 읽었다.
루카와 로이스는 그런 라피네를 보며 움찔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류를 읽던 라피네가 멈칫했다.
〈잠깐, 오라버니. 이거 뭐야? 사파이어 궁에서는 결혼 전처럼 지낸다?〉
〈그건, 그러니까…… 우리가 너를 황태자비 전하가 아니라 ‘라피네에.’ 하고 다정하게 부르겠다는 의미지.〉
〈…….〉
라피네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로이스를 노려봤다.
〈오라버니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 이렇게 걱정시켜 놓고!〉
〈맞아!〉
〈…….〉
루카와 로이스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흐윽, 라피네…….〉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그런 두 사람의 뒤로 엄마와 아빠가 흐느꼈다.
라피네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뭐 크게 달라질 게 있나,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다.
계약서에 쓰여 있던 그 문구는…… 라피네를 엄격하게 통제하며 틈만 나면 잔소리를 퍼붓겠다는 뜻이었다.
라피네는 그제야 에스턴 저택에서의 삶이 어땠는지 깨달았다.
외출할 때마다 호위는 기본이고, 통금 시간도 엄격했다.
심지어 유일하게 유들유들한 엄마에게만 통보하고 성물을 찾는 여행을 떠났을 때.
‘제르칸을 부추겨서 수배령을 내린 게 바로 루카와 로이스,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이었지…….’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른 채 감정에 휘둘려 서류에 서명한 결과.
라피네는 루카와 로이스의 엄청난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도 잠깐 사파이어 궁 밖을 나갔다 왔다고 이렇게 난리였다.
“라피네, 그러게 오라버니들과 함께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잖니.”
심지어는 엄마 역시 이제 라피네의 편이 아니었다.
“네, 죄송해요. 엄마.”
근데 엄마…….
왜 자꾸 근위대 옷을 입고 계시는 거예요……?
라피네는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는 엄마를 빤히 쳐다봤다.
마치 호위 기사처럼 엄마는 주변을 힐끔거리며 라피네에게 방으로 가라고 턱짓했다.
“……휴.”
라피네는 한숨을 쉬고 터덜터덜 침실로 걸어갔다.
시무룩하게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였다. 누군가를 발견한 라피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바이올렛 언니!”
“라피네!”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바이올렛이 밝게 웃으며 라피네에게 다가왔다.
“이제 난 보이지도 않나 보네.”
그 뒤로 아드리안 역시 어깨를 으쓱거리며 가까이 왔다.
라피네는 두 사람과 진한 포옹을 한 뒤 물었다.
“설마…… 두 사람도 여기서 지내려고 온 건 아니지?”
“음……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한데.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야.”
바이올렛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라피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린 곧 떠나, 라피네.”
아드리안이 말했다.
“뭐?”
안도의 숨을 다 내쉬기도 전이었다. 뜬금없는 말에 라피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딜 떠난다는 거야?”
질문하는 라피네의 목소리가 떨렸다. 바이올렛은 아드리안을 째려보더니 그의 옆구리를 퍽, 때렸다.
“그렇게 말하면 라피네가 겁먹잖아!”
“윽…….”
아드리안은 옆구리를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바이올렛은 라피네를 소파로 데려가 앉히더니 옆에 앉아 다정히 말했다.
“우리, 전쟁하러 가.”
“뭐?”
라피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자 아드리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말해서 더 겁먹는 거 아냐?”
“……큼.”
바이올렛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고 나서 설명했다.
“너도 들었겠지만, 테미온 왕국과의 전쟁에 우리 둘도 참여하게 되었어. 그들이 마수를 숨겨 놓는 바람에 꽤 전쟁이 커질 것 같거든.”
“…….”
“알다시피, 마수와의 전쟁에 우리 둘이 빠질 수는 없지. 사실 아드리안은 몰라도…… 난 정령사잖아?”
바이올렛이 잘난 척하듯 말하자, 아드리안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라피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이올렛이 말을 이어 갔다.
“제르칸 역시 총사령관으로 함께 가게 될 거야.”
“…….”
“루카와 로이스도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극구 말렸어.”
그 말에 라피네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음……. 안 좋은 상황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면, 루카와 로이스라도 네 곁에 있어 주었으면 싶어서.”
“그런 말을 왜…….”
순식간에 라피네의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라피네가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하자, 아드리안은 왜 그런 말을 하냐며 바이올렛의 옆구리를 찔렀다.
“혹시 몰라서 솔직하게 말해 주는 거야. 전쟁은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바이올렛은 그렇게 말하곤 라피네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라피네, 그렇지만 우리는 네 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노력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잘 지내고 있어.”
“…….”
“제국민들을 지켜야 하잖아.”
바이올렛이 젖은 라피네의 뺨을 닦아 주며 다정히 속삭였다.
라피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바이올렛을 안고 한참을 놓아주지 않았다.
늘 바이올렛의 품에만 안겨 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처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