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128)
* * *
연이어 이어진 승리 소식은 수도의 귀족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별안간 들려온 소식에 사교계는 뒤집어졌다.
안토니오 황자가 스스로 지위를 포기하고 제국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심지어는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는 말까지 들려왔다.
소식은 빠르게 퍼져, 지겨운 재판을 이어 가며 감옥에서 버티던 레베카 황비에게까지 전해졌다.
“…….”
레베카 황비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며칠 동안이나 멍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지도 않고,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정말로 망가진 인형처럼 그렇게 가만히 굳어 멈춰 있었다.
덕분에 일주일이나 재판이 미뤄졌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레베카 황비가 재판에 참석했다.
소식을 들은 라피네는 지난번처럼 모습을 감추고 재판에 참석했다.
객석에는 늘 그렇듯 귀족들이 가득했다.
“레베카 테들러, 아직도 혐의를 부인할 셈입니까. 비전하를 비롯해 기사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당신이 피 묻은 칼을 들고 비전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요!”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레베카 황비는 전보다 더 초췌한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뼈만 남은 행색에, 사람들은 묘하게 안쓰러운 눈길로 혀를 찼다.
화려하고 풍성했던 붉은 머리카락은 마른 뺨에 축 달라붙어 있었다.
분노와 뒤섞여, 늘 뜨겁게 불타오르던 보라색 눈동자 역시 생기를 잃은 채 어둡게 가라앉았다.
“안토니오 황자의 소식을 듣고 넋을 놔 버렸다더니…….”
“이제는 황자도 아니지요.”
“그렇긴 하지만요. 어쨌든 보기 좀 그렇네요…….”
“이 지경에 와서도 혐의를 부인하다니, 쯧쯧쯧.”
귀족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레베카 황비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는 그녀가 뻔뻔하다며 떠들어 댔다.
그때, 레베카가 숨이 넘어갈 듯이 기침을 시작하자 사법관이 눈살을 찌푸리며 턱짓했다.
하인 하나가 나무로 만든 뭉툭한 잔에 물을 담아 건넸다.
겨우 기침을 멈춘 레베카 황비는 왜인지 물을 마시지 않고 한참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순간 레베카가 돌연 객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귀족들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레베카는 어느 한곳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라피네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에는 로브를 입은 여인 1명이 느리게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임신을 한 듯 배가 만삭처럼 부풀어 오른 여인이었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많아 크게 눈에 띄진 않았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라피네는 무언가 직감한 듯 레베카 황비에게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레베카 황비는 웃고 있었다.
“이제 대답하십시오, 레베카 황비! 게롤 테들러를 난도질해 죽인 것만으로도 당신은 흉악한 범죄자입니다!”
사법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레베카 황비는 나무 잔에 담긴 물을 전부 들이켰다. 그러고는 개운한 한숨을 내쉬었다.
퍼석하게 마른 그녀의 뺨 위로, 투명한 눈물이 1방울 떨어졌다.
턱을 치켜든 레베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죄가 없다!”
갑작스러운 외침에 사람들은 흠칫하며 레베카 황비를 바라보았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는 다시 생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내게 죄를 물을 수 없어!”
“아니……!”
레베카를 다그치던 사법관마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베카 황비는 사법관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외쳤다.
“게롤 테들러는 사지가 찢겨 죽을 만한 놈이야! 그래서 그렇게 사람답지 못하게 죽은 것이지!”
“…….”
사법관은 미친 사람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황비의 눈동자를 피해 버렸다.
또 난동을 부릴 거라 예상한 병사들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황비는 이윽고 크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라피네의 예상대로 그녀의 입가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라피네는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레베카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콜록, 콜록…….”
바닥에 쓰러진 레베카 황비는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 내더니,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숨이 거둬지는 그 순간까지 레베카는 두 눈을 감지 않고 부릅뜨고 있었다. 지옥으로 가서 남은 복수를 할 차례였다.
“의원을 불러와!”
“이게 무슨……!”
귀족들은 놀라 웅성거렸고, 사법관과 병사들 역시 당황해서 우왕좌왕했다.
라피네는 정신없는 틈을 노려, 빠르게 밖으로 빠져나간 여자를 따라갔다.
만삭의 여자는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라피네보다 걸음이 느렸다.
“잠깐만요.”
“…….”
조용한 복도. 라피네의 목소리에 만삭의 여자가 느리게 몸을 돌려세웠다.
로브에 가려져 있던 얼굴은 라피네가 예상한 대로였다.
“카밀라. 당신의 이름이죠?”
라피네가 다가가며 묻자, 카밀라는 느리게 눈을 깜빡거렸다.
“나를 고발해 봤자 증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역시나 레베카 황비가 먹을 물에 독을 탄 건 저 여자였다.
라피네는 그녀의 앞까지 다다라 멈춰 섰다. 느리게 한숨을 내쉬자, 카밀라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발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
라피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무언가를 묻고 싶긴 한데, 머릿속이 굳어 버린 것처럼 멍했다.
그런 라피네를 바라보던 카밀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영원히 레베카 테들러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
“나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럼 왜…….”
왜 그렇게까지 레베카를 위해 충성하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라피네의 뜻을 눈치챘는지, 카밀라는 허탈한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다만…….”
카밀라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듯 미간을 찌푸렸다.
“다만 나는…… 사람답게 죽어서는 안 될, 짐승 같은 놈에게서 날 구해 주었던…… 탐스러운 붉은 머리에, 불꽃처럼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를 가진 한 소녀를 기억할 뿐입니다.”
“…….”
카밀라의 기억 너머에는, 불꽃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라피네는 그녀의 말을 머리에 새기듯 그 자리에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러길 한참, 라피네는 이윽고 걸음을 옮겨 카밀라를 지나쳐 갔다.
* * *
선발대가 전쟁을 떠난 지 반년이 지난날의 일이었다.
말에 깃발을 꽂은 채, 먼 길을 달려온 파발 대여섯 명이 수도를 통과했다.
그중 1명이 일행과 달리 행선지를 틀었다. 그가 향한 곳은 황성이 아닌 에스턴 저택이었다.
“누가 왔다고?”
뜬금없는 소식에 공작 부인은 당황하여 계단을 내려왔다.
마침 황성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에스턴 공작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에스턴 공작은 고개를 갸웃하며 제 손에 들린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전쟁터에서 온 파발이 왜 자신의 집 앞에 있나 의아해했는데, 기사는 웬 상자를 그에게 건네주곤 황성으로 가 버렸다.
“기사에게는 물어봤나요?”
“다들 다친 데 없이 무사하다고 하긴 했답니다.”
에스턴 공작이 다정하게 대답하며 단단히 포장된 상자를 열었다.
하인들 역시 내용물이 궁금한지 가까이 다가왔다.
“엄마야!”
“꺄악!”
상자 안에는 웬 머리카락이 한 줌 담겨 있었는데, 분홍색에 가까운 색이었다.
하녀 1명은 그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아드리안 도련님의 머리카락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에스턴 공작과 공작 부인 역시 놀라 심장을 움켜쥐었다.
“펴, 편지가…….”
에스턴 공작은 당황해하며 편지를 열어 보았다.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공작 부인 역시 그에게 바짝 다가가 함께 편지를 읽었다.
“……이럴 수가.”
“…….”
편지를 끝까지 읽어 내려간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작 부인은 편지를 끌어안은 채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세요. 마님!”
하인들은 놀라 공작 부인을 부축했다. 이토록 서글프게 울 만한 편지 내용은 뻔했다.
“도련님께서 설마…….”
“마, 말도 안 돼!”
하인들의 안색이 창백해져 갔다. 겨우 정신을 차린 에스턴 공작이 주저앉은 아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보…….”
에스턴 공작은 집사에게 편지를 넘기고 아내의 앞에 꿇어앉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안고 울기 시작했다.
집사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하인들도 가까이 다가와 함께 읽었다.
에스턴 공작과 공작 부인에게.
우선 기다리고 계실 소식부터 전합니다.
아드리안과 바이올렛은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지난 19일 벌어진 전투에서 테미온 국왕의 수하 중 하나인 여자를 붙잡았습니다.
기억에 남아 있으실진 모르겠으나, 로잘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입니다.
라피네를 바꿔치기해 베릴 자작가에 팔아넘겼던 범죄자이며, 금지된 술법으로 약을 제조한 전범입니다.
그녀는 오늘 낮, 처형당했습니다.
두 분의 오랜 상처가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며 증표를 보냅니다.
– 제르칸 페르데이아 –
내용을 확인한 하인들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에스턴 공작 부부는 한참 동안이나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꼈다.
오랫동안 묵혀 사라지지 않던 한스러움이 비로소 조금씩 해소되는 눈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