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31)
「헉 끔찍하다뇨! 주인님도 참……. 저를 그렇게까지 고평가해 주시다니! 하아……. 조금 짜릿하네요.」
물론 저 음침한 정령과 계약하기 전에 루비와 계약하는 게 먼저였다.
「난 준비가 되었단다, 아가.」
라피네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일단 계약은 하겠는데, 그렇다고 바로 현신하면 안 돼. 내 방이 다 부서질 테니까. 현신은 나중에 내가 허락할 때. 알지?”
「알았다. 내 멋진 모습은 나중에 보여 주도록 하지. 그건 특약 계약서로 추가하자꾸나.」
「멋진 모습은 개뿔……. 곰탱이 주제에.」
오르파나가 얄밉게 이죽거렸으나, 루비는 능숙하게 무시했다.
라피네는 곰 인형을 앞에 앉혀 놓고 준비를 마쳤다.
정령과 계약하게 되면, 그 정령은 언제든지 현신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정령이 최초로 현신하는 순간, 계약자의 손등에는 지워지지 않는 소환 인이 새겨진다.
그 소환 인이 새겨지면 정령사가 되었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라피네는 두 정령이 현신하는 걸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손등에 바로 인이 새겨지면 여기저기 설명하기 귀찮아질 테니까…….”
「아가, 손을 내밀거라.」
라피네가 손을 내밀자, 갑자기 곰 인형의 몸에서 작은 빛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허공에 정체 모를 문자가 새겨진 종이 1장이 두둥실 떠올랐다.
「정령과의 계약서란다. 잘 읽어 보고 서명하렴.」
“아니, 뭔 소린지 알아야 읽든 말든 하지.”
고대어인가?
꼬부랑글자라 애초에 무슨 모양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고대어가 아닌 제국어고, 내 필체란다.」
“…….”
곰, 곰 발바닥으로 쓴 건가?
그렇다면…… 이 악필을 인정할 수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직접 알려 줘야겠는데?”
「아, 그래. 넌 아직 아가라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겠구나.」
아니. 어른이 와도 이따위 글씨는 읽을 수 없다.
라피네는 그 점을 지적하려다가 꾹 참고 루비의 설명을 기다렸다.
「‘‘계약자’ 이하 ‘갑’이라 한다. 와 ‘정령’ 이하 ‘을’이라 한다. 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를 배려하며 계약 사항을 지킬 것이다.
제1조. 을은 갑의 요구에 따라…….’」
“아니, 뭐 이렇게 복잡해?”
살짝 졸린 상태라 그런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루비는 평소와 달리 다다다 말을 쏘아 대며 빠르게 중얼거렸다. 라피네는 멍하니 그 말을 들으며 크게 하품했다.
「‘계약한 날로부터 3일 이내 조건 없이 계약 철회 가능. 단, 계약일로부터 최대 30일 이내…….’」
“아, 알겠어. 알겠어! 일단 서명부터 하자.”
막바지에 이르자, 라피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럼 특약 계약서는…….」
“졸려 죽겠어.”
「그래, 뭐……. 걱정할 것 없다, 아가. 날 믿으렴. 그리고 나는 표준 계약서를 준수한단다. 이제 여기에 지장을 찍으면 된다.」
라피네는 엄지를 들어 마지막 페이지 서명란에 꾹 하고 지장을 찍었다.
그러자 손등에 화악 하고 붉은 문양이 잠시 생겼다가 사라졌다. 계약이 완료된 것이다.
“다음.”
라피네는 손목에 찬 팔찌를 곰 인형 옆에다 내려놓았다.
「후우……. 드디어 저의 차례군요.」
똑같이 손을 내밀자, 팔찌에서 가느다란 빛이 흘러나오며 비슷한 계약서가 눈앞에 둥둥 떠올랐다.
그래도 오르파나의 필체는 꽤 정상이었다.
「우아하죠? 곰탱이랑은 비교가 안 되죠?」
“너도 표준 계약서지? 바로 서명하자.”
「역시 화끈하셔요. 주인님!」
「잠깐, 아가야! 저놈은 특약 계약서 먼저 작성을…….」
아 맞다.
오르파나는 교활한 녀석이었다. 우선 특약 계약서부터 작성하는 것이 옳았다.
루비는 딱히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지만, 오르파나는 절대 믿을 수 없다.
“고마워, 루비.”
라피네는 루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오르파나를 향해 특약 계약서를 달라고 손을 까딱거렸다.
「……쳇.」
오르파나는 조금 떨떠름해했지만, 이내 특약 계약서를 보여 주었다.
특약 계약서에 대한 내용은 간단했다.
라피네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현신하지 않을 것.
「그런데 아가야, 왜 현신을 미루는 것이냐?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황후가 널 신뢰하기도 쉬울 텐데?」
루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황후는 이미 내게 빚을 졌어. 안나라는 여자 때문에 내가 다칠 뻔했잖아? 자기 남동생인 로렐리안 경 탓이라 생각할 테니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거야.”
「하긴, 그렇겠구나.」
“그런 상대의 신임을 얻는 건 쉬우니까 이 카드를 미리 깔 필요는 없어.”
소환 인을 세상에 숨기는 이유는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서였다.
자고로 적에게는 전력을 미리 공개하면 안 되는 법.
정령사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신중하게 공개할 타이밍을 결정해야 한다.
원작에서도 바이올렛과 제르칸이 정령사가 되는 건 아카데미에 간 이후였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제국 소속이었다.
그렇기에 정령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다른 귀족들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제르칸이 수도로 돌아오기 전, 성인이 된 바이올렛에게 정략결혼을 제안한 이유가 그래서이기도 하고…….
2황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제르칸이 바이올렛을 선택한 건 아주 좋은 전략이었다.
다만, 결과가 끔찍해져서 문제였지.
아무튼, 자신이 정령사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여기저기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난리를 피울 것이 분명했다.
‘미리부터 날 이용하려는 놈들을 상대하느라 괜히 기운 뺄 필요 없지.’
차라리 황후가 수세에 몰렸을 때, 극적인 카드로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자신이 정령사인 사실을 밝히면서 황후의 편에 서면, 분위기가 황후 쪽으로 반전될 테니까.
「좋은 방법이구나.」
「주인님, 주인님. 있지요. 제 생각도 들어 보세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면요…….」
“자, 이제 잡시다.”
모든 계약을 마친 라피네는 곰 인형을 안고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일찍 자야 빨리 크지. 내일 황성에 가야 되기도 하고. 제르칸에게 프러포즈하려면 힘을 비축해야 해.
「주인ㄴ…….」
「닥쳐. 아가 잔다.」
「……」
* * *
다음 날.
라피네는 아침을 먹은 뒤 엄마와 함께 황성으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황후가 직접 보내 준 호화스러운 마차였다.
창밖으로 황성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라피네는 오르파나에게 경고했다.
‘오르파나, 복창해.’
「네…….」
‘자, 첫째. 나대지 않겠습니다.’
「첫째. 나대지 않겠습니다.」
‘둘째, 조용히 하겠습니다.’
「조용히 하겠습니다…….」
‘셋째. 말을 잘 듣겠습니다.’
「말을 잘 듣겠……. 아니, 주인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저는 물의 대정령이라고요! 저는! 대정령! 저와 계약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런 거로 내게 으스댈 생각하지 마. 난 어차피 네가 필요 없어. 넌 원래 제르칸에게 가는 게 맞는 거니까.’
「칫.」
‘3일 이내에 계약 철회가 가능하다는 사실 잊지 마시고.’
「…….」
이쪽에서는 아쉬울 게 하나 없었다.
「너무해요, 주인님. 주인님은 너무……. 너무 단호해요. 냉정해! 그래서……. 하아, 그래서 더 멋져! 하아아…….」
「…….」
‘…….’
라피네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았다.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지?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금방 황성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라피네는 엄마의 품에 안겼다. 지난번의 일 때문인지, 소피아는 라피네를 품 안에 안고서도 주변을 경계했다.
기사들이 지키고 있긴 하지만, 이미 엄마에게 황성은 딸에겐 위험한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무사히 황후궁의 응접실에 도착하고 나서야 소피아는 라피네를 내려 주었다.
“다시 이곳에 와서 혹시 무섭진 않니?”
다정한 엄마의 말에 라피네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아요.”
“용감하기도 하지. 나를 닮았나?”
소피아는 라피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때, 시녀가 들어와 허브차를 먼저 내어 주었고 머지않아 황후가 들어왔다.
“와 주어서 고맙군. 오는 길이 불편하진 않았나?”
“폐하의 배려로 편하게 왔습니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지.”
황후는 소피아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러고는 라피네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라피네?”
“예, 폐하.”
라피네가 씩씩하게 대답하자, 황후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녀는 잠시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의 일은 내가 직접 사과하지. 로렐리안의 어리석은 판단으로 공작가에서 겨우 되찾은 귀한 아이가 크게 다칠 뻔했어.”
“……예, 폐하.”
“많이 놀라고 속상했겠지만, 마음 풀게. 나도 자식을 가진 부모로서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
“그 여자는 재판을 받는 중이네. 밝혀진 죄목이 상당해서 아마 사형을 면치 못할 거야.”
“알겠습니다.”
“참, 사과의 표시로 내가 따로 선물을 준비했는데…….”
황후가 손짓하자, 뒤에 있던 시녀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