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6)
곧바로 문이 열리고 황제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흰색과 황금색이 섞인 제복 차림을 한 페르데이아 황제는, 생각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와……. 어, 엄청 잘생겼네.’
라피네는 당황했다.
황제를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못된 놈’이라든가, ‘등신’. ‘호구’로 많이 불렀는데…….
막상 저 얼굴을 보니 ‘얼굴값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라피네의 눈에는 아버지인 에스턴 공작이 최고지만, 황제 역시 젊은 시절에 귀족 여인들을 꽤 울렸을 것 같았다.
에스턴 공작이 다정하고, 남자다운 외모로 매력을 주는 스타일이라면 황제는…….
‘조금 양아치 같은데 멋있어.’
약간 까칠하고 예민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유독 표정이 좋지 못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인상을 팍 쓰고 들어온 황제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와 있는 걸 보고 당황한 눈치였다.
라피네는 황제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이.’ 하고 웃으며 예를 갖추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이 아이는…….”
황제가 턱짓하며 묻자, 시녀 1명이 서둘러 대답했다.
“에스턴 공작가의 막내 아가씨입니다. 폐하.”
“아하, 그 아이로군.”
황제는 흥미로운 눈으로 라피네를 쳐다봤다. 라피네는 갈고닦은 처세술을 마음껏 뽐내며 입가에 경련이 나도록 웃었다.
활짝 웃는 아이의 앞에서 화를 낼 순 없는지, 황제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반갑구나.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
황제는 시녀를 향해 툭 턱짓을 보냈다.
데리고 나가라는 뜻이었다.
시녀는 황후의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라피네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기 직전, 라피네는 고개를 돌려 황후의 얼굴을 쳐다봤다.
황후의 안면에는 짜증, 두려움, 분노 같은 감정이 가득했다.
마음이 아파지는 표정이라 라피네는 황제를 욕했다.
‘똥차 새끼…….’
잘생기면 뭐 해?
라피네는 속으로 툴툴대며 시녀를 따라 같은 층의 다른 응접실로 들어갔다.
“아가씨,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황제 폐하께서 급하게 황후 폐하와 논의할 일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네에.”
논의할 일은 무슨, 시비 걸러 왔겠지.
라피네는 속으로 생각하며 흥 코웃음을 쳤다.
원작에서는 이맘때쯤 벌어진 싸움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크게 틀어지게 된다.
그걸 중재하기 위해서 라피네는 그림을 배우겠다는 핑계로 꾸준히 황성을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 그리기 시작한 첫날에 바로 따지러 올 줄은 몰랐지만.’
아무래도 레베카 황비가 일을 급하게 서두른 모양이었다.
‘오히려 좋아.’
라피네는 속으로 웃으며 시녀가 가져다준 디저트를 냠냠 먹기 시작했다.
시녀는 라피네의 곁에 있어 주다가, 불안한 듯 응접실 문 앞을 서성였다.
“저는 혼자 있을 수 있어요.”
라피네가 그렇게 말하자, 시녀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문 앞의 기사에게 다를 단단히 부탁한 뒤 가 버렸다.
‘황후 폐하가 엄청나게 걱정되는 모양이야.’
라피네는 디저트를 먹던 손을 털고,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응?’ 하며 라피네를 쳐다봤다.
‘오르파나.’
「예, 주인님!」
파앗!
“아악!”
갑자기 천장 어딘가에서 물줄기가 쏟아졌다. 기사는 난데없는 물세례에 두 손으로 눈을 감싸며 당황했다.
‘미안합니다.’
라피네는 앞이 보이지 않아 허둥대는 기사에게 속으로 사과한 뒤, 후다닥 복도를 뛰어갔다.
* * *
시녀와 시종들, 궁정 화가를 모두 내보낸 뒤.
“후우…….”
황제는 답답하게 잠긴 목의 단추를 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후는 냉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황후.”
황제의 부름에, 황후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예. 말씀하시지요.”하고 대답했다.
“하, 이젠 얼굴도 보기 싫다 이건가.”
황제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소파에 털썩 앉았다. 거만한 자세로 앉은 그가 황후를 쏘아붙였다.
“황후 역시 소문은 들으셨겠지요?”
“무슨 소문 말입니까, 아……. 제가 변경백과 연합을 맺었다는 소문이요?”
“잘 아는군.”
“설마 그걸 믿으실 정도로 눈과 귀가 흐려지신 건 아니겠지요.”
황후의 비꼬는 말투에 황제는 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그친 그가 말했다.
“그래요. 아직 그 소문을 믿을 정도로 등신이 된 건 아닙니다.”
“다행이군요.”
“다만, 변경백 그자와 황후가 가까운 사였다는 건 내 아주 잘 알고 있지.”
황제의 말에 황후의 미간이 엉망으로 구겨졌다.
설마…….
황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웨일스 변경백과 내 사이를 의심하는 건가.’
기가 막힌 일이었다. 본인은 다른 여자를 황비로 들여 놓고, 이런 의심을 하다니.
“내 말이 틀린가, 황후?”
황제의 집요한 질문에 그녀는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스러워졌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리자 황제는 답답한 듯 젠장, 하고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변경백, 그자가 과거에 그대와 내 정혼 소식을 듣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대 역시 몹시 아쉬워하지 않았던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기는, 황후는 처음부터 나랑 결혼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지 않나? 내가 그걸 모를 정도로 등신으로 보이는 건 아니겠지.”
“폐하.”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자식과 연락을 해? 그래,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황제가 바람이 났으니 우리도 바람을 피우자, 그런 이야기를 했나?”
“그만하시지요.”
황후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기만 했다. 황제는 울분을 터뜨리듯 소리쳤다.
“황후는 늘 그렇지! 혼자서만 차분하고 이성적이고! 그래서 늘 나만 이렇게……!”
“…….”
“……지긋지긋하군.”
“저 역시 지긋지긋합니다.”
“뭐?”
“저 역시 폐하와의 싸움이 지긋지긋하단 말입니다.”
“다시 말해 보시오, 황후. 내가 지긋지긋해?”
“그래요, 지긋지긋합니다!”
…….
“쯧.”
황제와 황후, 단둘이 남겨진 방 앞으로 오니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한바탕 부부 싸움이 벌어질 걸 알고 궁정인들이 멀리 물러난 모양이었다.
‘곳곳에 숨어 있는 호위 기사들만 있겠지.’
라피네는 안쪽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그리고 몸을 숨기기 위해 자연스럽게 코너를 돌았을 때였다.
“……!”
뜻밖의 얼굴을 마주하고, 라피네는 당황해서 숨을 들이켰다.
“라피네?”
“제, 제르칸 오라버니?”
제르칸이었다.
제르칸은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아가씨!”
그때였다. 오르파나에 의해 물줄기를 맞은 기사가 라피네를 쫓아온 모양이었다.
“앗, 전하.”
그러나 제르칸이 함께 있는 걸 알고, 기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멀리 물러났다.
라피네는 내내 당황해서 제르칸을 쳐다보기만 했다.
“어머니를 만나러 왔는데, 선객이 있는 모양이야.”
“……그렇구나.”
라피네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우물쭈물했다.
민망한 상황이었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큰 고함이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르칸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익숙해 보였다.
제르칸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라피네에게 제안했다.
“여긴 시끄러우니까 함께 산책하지 않을래, 라피네?”
“으응. 좋아.”
라피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냉큼 제르칸이 내민 손을 붙잡았다.
제르칸은 안에서 들리는 큰 소리가 어린 라피네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설마 싸울 때마다 전부 듣고 있던 건가?’
라피네는 황후궁의 정원을 거닐며, 제르칸의 눈치를 살폈다.
제르칸의 표정은 감정을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표정했다.
조금 전의 일로 속상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보일 법한데도 무척이나 의연했다.
의아할 정도로.
‘너무 익숙한 건가, 아니면…….’
라피네는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제르칸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극도의 우울감에 빠진 사람 같았다.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아무 의욕도 없는 표정.
전생의 그녀 역시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기에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제르칸도 우울증인가?’
종종 몇몇 사람들은 우울증이란 심각한 병이 어른에게만 찾아오는 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우울증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소아 우울증의 증상은 다양하지만, 아이답지 않게 무표정한 표정을 많이 짓는 것도 증상 중 하나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드리안과 바이올렛도 전혀 만나지 않았잖아.’
라피네는 불안한 시선으로 제르칸을 살펴보았다.
“어머니와 함께 궁정 화가에게 그림을 배운다고 들었어.”
“응, 맞아.”
“그럼 언제 또 오는 거야?”
“음……. 이틀 뒤에.”
“그때 또 올게. 폐하께서 또 어머니를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응?”
“어른들이 싸우는 소리는 아이에게 좋지 않아.”
“…….”
라피네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제르칸 오라버니는?”
“응?”
“오라버니도 아이잖아. 오라버니는 아무렇지 않아?”
“……나는”
“…….”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아.”
제르칸이 정말 괜찮다는 듯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라피네는 제르칸의 눈가가 살짝 떨리며 일그러지는 걸 분명 목격했다.
“난 그만 가 볼게. 교육 선생이 올 시간이라.”
제르칸은 시녀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라피네를 데려다주었다.
그러고는 안녕, 인사를 건네고 가 버렸는데……. 라피네는 한참이나 멍하니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제르칸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쓸쓸하고 추워 보였다.
봄꽃들이 찬란하게 흩날리는, 따뜻한 계절임에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