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7)
* * *
이틀 뒤, 라피네는 혼자가 아닌 엄마와 함께 황성을 찾았다.
‘오늘은 그림을 그리지 않을 거야.’
오늘은 제르칸을 찾아가 함께 놀 생각이었다.
원래는 아드리안, 바이올렛과 함께 오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같은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는 중이라 바빴다.
‘오늘은 엄마랑 함께 왔으니, 황제도 부부 싸움을 하러 오진 못하겠지.’
라피네야 어린아이이니 잠시 내보내도 상관없지만, 공작 부인에게 황제 부부의 싸우는 모습을 전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 저는 제르칸 오라버니한테 갔다 올게요. 오라버니가 보고 싶어요!”
라피네의 말에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시녀에게 손짓했다.
소피아 역시 황성에 오기 전, 미리 라피네와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다녀오렴.” 하고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라피네는 시녀의 손을 잡고 황태자가 머무는 서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초대 황제의 동상을 보며 속으로 인사했다.
‘아저씨 하이.’
처음에는 이 동상을 보고 엄청 겁을 먹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꽤 자주 찾아온 만큼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시녀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연락을 받은 궁정인들이 응접실로 안내해 주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교육 중이실 거예요. 조금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어요. 괜찮으세요?”
시종의 말에 황후의 시녀는 미리 예상하긴 했지만,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라피네가 시녀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기다릴래요.”
“알겠습니다.”
응접실에 들어온 라피네는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곧 시종이 차를 내왔고, 시녀는 능숙하게 차를 우려냈다.
라피네는 디저트를 열심히 먹어 치우다가 말했다.
“저 황태자 전하가 수업받는 걸 구경하고 싶어요. 조용히 하고 멀리서 보면 안 될까요?”
“어머, 그렇게 황태자 전하가 보고 싶으세요?”
시녀의 말에 라피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엽다며 호호 웃던 시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를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시녀는 라피네의 손을 잡고 하인들에게 물어 도서관 앞에 도착했다.
‘도서관에서 수업하는구나. 하긴 참고할 도서가 많을 테니까.’
라피네는 시녀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저 혼자 들어갈래요. 언니는 망을 봐주세요.”
“어머, 알겠어요. 아가씨. 힘내세요!”
시녀는 정체 모를 응원을 해 주며 라피네를 격려했다.
라피네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살금살금 햇볕이 내리쬐는 중앙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뚝, 걸음이 멈춰졌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피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책장 사이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어가 중앙 책상이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황후 폐하께서 얼마나, 얼마나 실망이 크시겠어요! 고작 이 문제 하나 풀지 못하셔서야……!”
고개를 빼꼼 내밀자, 목소리로 예상한 것처럼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마른 꼬챙이 같은 몸에서 저렇게 큰 목소리가 나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두꺼운 안경을 쓴 노인이 바로 제르칸의 교육 선생인 모양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아드리안과 바이올렛도 그렇고, 저 나이쯤 되면 귀족들은 슬슬 과외 선생을 붙여 자식들을 교육한다.
제르칸이야 말할 것도 없다. 황태자인 만큼 가장 훌륭한 선생을 붙여 주었다.
‘황비가 보낸 교육 선생이라 문제지만.’
원작에서 황후와 황비는 서로의 자식을 견제하느라 난리였다.
특히 교육 선생을 선택하는 데 있어 큰 문제가 일어났었다. 마치 대결 구도처럼 선생을 고르는 상황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크게 화를 내며 서로 교육 선생을 보내 주라 제안했다.
그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다.
‘뭐, 표면적으로 해결이 되긴 했지.’
대놓고 안 좋은 선생을 보내면 티가 날 테니, 두 사람은 무척 고민했다.
그리고 황비는 울며 겨자 먹기로 훌륭한 선생을 선별해 보냈다.
바로 저 할아버지였다.
‘오래전부터 제국의 역사서를 편찬한 학자라고 했지.’
하지만 어찌나 꼬장꼬장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지, 선대 황제와도 큰 소리로 싸운 적이 있다고 했다.
‘황비는 저 교육 선생을 제 손으로 보내고 배가 아파 죽으려고 했지만…….’
예상과 달리 제르칸을 망치는 데 성공했다.
‘원작에서는 제르칸이 깐깐한 교육 선생을 만나 강박증이 생겼다고 했어, 그렇지만…….’
이제 보니 단순히 강박증뿐만 아니라 제르칸의 성격을 파탄 나게 만든 원흉 중 하나가 바로 저 노인이었다.
가만히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말끝마다 저 노인은 이 말들을 반복했다.
“황후 폐하, 황제 폐하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
“귀족들은 전하의 생각보다 더욱 교활하고 똑똑한 자들입니다. 긴장, 또 긴장하십시오.”
“지금이야 황태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2황자에게 이 자리를 빼앗길지 모릅니다.”
“겨우 이 정도 수준이라니……. 휴우…….”
하며 한숨도 내쉬었다.
라피네의 이마에 줄이 팍 그어졌다.
‘저 할아버지, 자꾸 제르칸의 불안감을 높이는 말만 하네.’
말끝마다 제르칸을 후려치고 또 후려치는 내용뿐이었다.
간혹 칭찬을 하더라도.
“흠, 이건 꽤 괜찮군요.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됩니다. 절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이런 칭찬 같지 않은 칭찬이었다.
라피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 나이대에 교육을 시작한 귀족 아이들은, 거의 하루의 반 이상을 교육 선생과 보낸다.
교육 선생은 예절부터 역사까지 모든 걸 가르친다.
저자는 황태자의 교육 선생이니, 아마 제왕학을 비롯해 각종 경제, 정치, 문화사까지 가르칠 것이다.
‘그만큼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하겠지.’
제르칸이 저 나이에 우울증 증상이 생긴 원인을 알고도 남겠다.
‘부모는 매일같이 싸워 대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교육 선생은 저딴 말만 하지…….’
자신이 제르칸이었다면, 언젠가 이 나라를 직접 멸망시키고도 남았다.
* * *
제르칸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렝치스트 남작의 말을 들으며, 글자가 쓰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저런 소리를 들으면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어머니에게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황후는 또 크게 한숨을 내쉬며 실망한 기색을 표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선생을 자른다면, 황비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참다 보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제 손에 죽을 노인네의 헛소리 따위, 아무 영향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인의 입에서 “황후 폐하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라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굳게 다짐했던 마음이 와장창, 무너졌다.
마치 비밀스럽게 숨겨 둔 상처를 가느다란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었다.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무게추가 하나씩 마음에 더해졌다.
‘그래, 내가 견뎌야 해.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 돼.’
제르칸의 눈에 지금의 어머니는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내가 무너지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더 미워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어머니는 슬퍼할 거고, 그 여자는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게 뻔했다.
‘단단해져야 돼.’
하지만 그렇게 다짐할 때마다, 오히려 더 마음이 나약해지곤 했다.
나약한 마음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언젠가 아버지가 그를 다그치며 했던 말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과연 네가 내 뒤를 이을 수 있겠느냐? 형편없는 놈 같으니라고! 네가 그러고도 제국의 황태자라고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작은 실수를 할 때마다 황제는 그렇게 다그쳤다.
〈황제가 되지 못하면 넌 쓸모가 없어질 거다. 늘 긴장하고 스스로 채찍질을 해야 해!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 알겠느냐?〉
황제는 지금보다 더 어린 제르칸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어린 제르칸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 황제가 되어야 해.
황제가 되지 못하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날 떠날 거야.
혼자가 되지 않으려면 잘 해내야 해. 그래야만…….
그 순간이었다.
“할아버지 시끄러워요!”
노인의 꼬장꼬장한 목소리가 퍼지는 도서관에,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의 외침이 울렸다.
상념에 휩싸였던 제르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도서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은 벌 받아야 해!”
라피네가 우다다 달려오더니, 렝치스트 남작의 수염을 붙잡아 있는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이, 이 무슨……! 이 신성한 교육장에! 아악! 아아악! 이거 놔라, 어디 계집애가 도서관을 들어오는 것이냐! 대체 넌 누군……. 아아악!”
“차별주의자 꼰대는 벌 받아야 해!”
라피네는 있는 힘껏 수염을 당겨 무게를 실었다. 전부 뽑아 버릴 기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