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49)
* * *
제르칸은 라피네를 황후궁까지 데려다주었다.
황후는 비에 젖은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 시녀들에게 수건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소피아는 다정하게 라피네의 물기를 닦아 주었고, 제르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온 시녀들이 제르칸의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 주려 할 때였다.
“이리 오렴, 제르칸.”
황후가 제르칸에게 말하며 시녀에게 손을 뻗었다. 시녀는 곧장 수건을 황후에게 건네주었다.
제르칸은 어색하게 다가가, 젖은 머리를 닦아 주는 황후를 멍하니 쳐다봤다.
황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체 어쩌다 이런 꼴이……. 어느 상황에서든 품위를 잃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거늘.”
가만히 듣던 라피네는 속으로 생각했다.
‘윽. 또 잔소리 시작.’
라피네가 말했다.
“엄마. 내가 길을 잃어버렸는데, 제르칸 오라버니가 날 찾으러 왔어. 그래서 비를 맞아 버린 거야.”
엄마한테 말하듯 큰 소리로 중얼거리자, 황후는 입을 꾹 닫고 제르칸의 물기를 털어 주는 데 집중했다.
잠시 후.
두 아이는 담요를 둘러싸고 벽난로 앞에 쪼그려 앉았다.
〈시녀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오기 전까지 이러고 있거라.〉
황후가 두 아이에게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라피네는 저쪽에서 대화하는 황후와 엄마를 힐끔거리며 생각했다.
‘일을 좀 빨리 진행해야겠다.’
그다음엔 고개를 돌려, 바로 옆의 제르칸을 쳐다봤다.
불을 쬐며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제르칸은 꼭 귀여운 고양이 같았다.
사실 라피네는 제르칸을 시한폭탄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제르칸은 시한폭탄이 아니었다.
제르칸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이 있었을 뿐.
* * *
며칠 후.
라피네는 스케치북을 달랑달랑 흔들며 황성에 찾아왔다.
그리고 엄마와 황후가 대화를 하는 사이, 제르칸을 만나러 가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오늘은 저쪽 길로 가 볼래요.”
“서궁으로 가는 길은 저쪽이에요, 아가씨.”
“그렇지만 저쪽으로 가 보고 싶어요. 산책하고 가요, 네?”
라피네가 조르자, 시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회랑을 산책하며 정원의 예쁜 풍경을 감상했다.
라피네는 속으로 사과했다.
‘예쁜 시녀 언니, 미안합니다.’
오르파나, 지금이야!
바로 옆에 있던 작은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파앗! 하고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꺄악!”
시녀는 갑작스럽게 바로 앞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자 뒷걸음질 치며 소리쳤다.
“헉, 괜찮으십니까!”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기사가 달려와 당황해하는 시녀를 부축했다.
‘이때다.’
라피네는 몸을 숙이고 두 사람의 시선을 피해 한쪽으로 와다다 달려갔다.
* * *
정신없게 달려가던 라피네가 코너를 돌 때였다.
퍽!
누군가와 부딪혀 라피네는 나동그라졌다.
아니, 나동그라질 뻔했다.
“괜찮나요?”
누군가가 라피네를 잡아 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라피네는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잡아 준 사람을 빤히 쳐다봤다.
웬 젊은 남자 귀족이었는데, 키가 엄청 크고 잘생긴 외모였다.
“조심하셔야지요. 이곳은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태양궁이라 뛰어다니면 안 됩니다.”
남자는 무릎을 살짝 숙여 라피네와 시선을 맞추고 상냥하게 설명했다.
그러고는 떨어진 서류를 차곡차곡 주웠다. 라피네 역시 따라서 서류를 주워 주었다.
“고맙습니다. 상냥한 아가씨군요.”
그는 다정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꼬마 아가씨는 누구…….”
“저는 라피네 에스턴이에요. 황제 폐하를 뵈러 왔어요!”
“헉 그럼 에스턴 공작가의……. 근데 뭐라고 하셨죠? 폐하를요?”
“네!”
“……혹시 황제 폐하와 약속이 되어 있는 겁니까?”
그 말에 라피네는 연달아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흠……. 그럼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 저는 피터 그린트라고 합니다.”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라피네를 황제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에스턴 공작가의 영애가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순진한 거야, 바보인 거야?’
라피네는 힐끔 남자를 쳐다봤다. 올곧은 표정에는 의심 한 점 없었다.
‘어, 그러고 보니.’
라피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작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봤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 기억났다!’
2황자가 황제가 된 이후, 충언을 올리다가 죽은 사람!
안토니오가 황제가 된 뒤 가장 먼저 처형한 사람이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입바른 말만 줄줄이 내뱉어서 안토니오를 빡치게 했지.’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남자는 문 앞에 대기 중인 시종과 비서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 폐하께서 요 꼬마 아가씨와 약속을 잡았다고요?”
비서관은 지금 장난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당황해하며 라피네를 쳐다봤다. 해명해 달라는 눈치였다.
라피네가 입을 열었다.
“맞아요. 황후 폐하의 궁전에서 황제 폐하를 만났을 때, 황제 폐하와 약속했어요.”
“흠…….”
황후를 들먹거리자, 비서관은 긴가민가하는 눈치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짜인지 확인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약속을 하긴 했지.’
라피네는 당당했다.
곧, 비서관이 나오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라피네를 들여보내 주었다.
‘역시. 황제는 호기심을 못 참는 사람이니까, 내가 왔다고 하면 의아해하면서 들여보내 줄 줄 알았지.’
만약 안 들여보내 줬으면 이곳에 드러누웠을지도 모른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소파에 앉은 황제와 비서관들이 보였다.
“……정말이군. 난 비서관이 농담을 하는 줄 알았는데.”
황제는 라피네를 보자마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곤한 기색이 만연한 얼굴이었다.
“다들 나가 있도록.”
“예, 폐하.”
그 말에 비서관들이 ‘살았다.’ 하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하나같이 라피네를 은인처럼 쳐다보면서.
라피네는 커다란 테이블에 잔뜩 쌓인 서류와 커피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고는 소파에 앉아 황제를 쳐다봤다.
“그래, 나와 약속을 했다고? 대체 언제 그런 약속을 했지? 에스턴 공작이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던가?”
역시 황제는 성격이 급하고 호기심도 많았다.
아이를 상대로 저렇게 질문을 연달아 퍼부을 정도로.
라피네는 당당하게 말했다.
“황후 폐하의 궁에서 뵈었을 때, 폐하께서 말씀하셨어요. ‘다음에 다시 보자.’ 이렇게.”
“뭐?”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본인의 입으로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반갑구나. 다음에 또 보도록 하자.〉
누가 봐도 빈말이었는데.
황제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 라피네를 보며 생각했다.
어린아이 앞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한다더니……. 빈말을 빈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짜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제 입으로 뱉은 말은 사실이었기에 황제는 헛기침을 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귀족 아이, 게다가 에스턴 공작의 딸이 자신을 찾아오다니.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졸려서 곤란했는데 잘되었다는 듯, 황제는 아이를 보며 물었다.
“그래, 날 만나러 온 용건이 무엇이냐?”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 드리려고요. 궁정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어요.”
“그래, 그 이야긴 들었다만…….”
황제는 스케치북을 펼치는 라피네를 좀 얼떨떨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얜 내가 무섭지도 않나?’
황태자인 제르칸은 이맘때쯤 어땠더라……. 아마 시선도 못 마주쳤던 것 같다.
2황자 안토니오 역시 그를 두려워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인상 때문인지, 아이들이 좋아하고 편하게 느끼는 외모는 아니었다.
게다가 황제 본인 역시 이만큼 어릴 때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줄 알았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으냐?”
그런 생각을 하던 황제가 충동적으로 물었다.
라피네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황제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잘생긴 사람은 안 무서워요.”
그 말에 황제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황제의 반응을 살피며, 라피네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안 무섭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렇지만 사회생활 만렙 스킬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황제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이윽고 황제는 라피네가 펼친 스케치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 폐하한테 자랑하려고 열심히 그렸어요!”
라피네의 말에 황제는 진지하게 그림을 살폈다.
그림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정말 아이가 그렸나 싶을 정도로. 어설픈 구석이 있긴 했지만, 꽤 훌륭했다.
‘루비야, 고맙다.’
황제의 반응을 보며, 라피네는 속으로 루비에게 말했다.
이 그림은 루비의 도움을 받아 그린 거였다.
아기 곰 인형이 이젤 앞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동안, 라피네는 망을 봤다.
“흐음, 제법이구나. 이건 네 아버지와 어머니인 것이냐?”
황제가 그림 속 인물을 턱짓하며 물었다.
그림 속에는 젊은 남녀로 보이는 사람이 어느 강 앞에 서 있었다.
라피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황제 폐하고, 이건 황후 폐하예요.”
“뭐?”
“황후 폐하께서 그러셨어요. 예전에 황제 폐하랑 렌 강을 산책한 적이 있는데, 날씨가 엄청 엄청 좋았다구요.”
“……황후가 그런 말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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