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3)
“이게 무슨……!”
황제는 당황했고, 기사들은 긴장하여 황제와 황후의 곁을 호위했다.
갑자기 방 안에 뿌연 안개가 흩뿌려지더니, 그 사이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나타나 톡 터졌다.
그리고 고대 정령서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 오르파나의 실제 모습이 나타났다.
물이 조각상을 만들어 낸 듯, 신비롭게 물결치는 모습이었다.
오르파나는 정체 모를 고대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그 신비로운 모습에 홀려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오르파나는 주변의 모든 물방울과 안개를 흡수하며 사라졌다.
가는 물줄기가 소용돌이치며 라피네의 손등 위로 사라졌다.
“…….”
사람들은 커다래진 눈으로 라피네를 쳐다보았다. 일부 시종들은 너무 놀라 자리에 주저앉을 정도였다.
라피네는 우물쭈물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정령과 계약을 했는데……. 황자님이 제 머리채를 잡아 가지고……. 제 정령이 화가 나서…….”
“하, 하하…… 정령사라니! 이게 몇백 년 만에 나타난 정령사인가! 게다가 이런 어린아이가……!”
황제는 기가 막힌다는 듯, 그러나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항간에서는 계속 정령사가 나타나지 않는 게, 황제가 덕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선황제의 제위 시절에도 정령사는 없었지만, 선황제는 정복 전쟁으로 워낙 제국을 부유하게 해 주었기에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현 황제는 알게 모르게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정말 자신이 덕이 없어 정령사가 나타나지 않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 정령사가 나타나다니!
“…….”
황후 역시 놀란 듯하였으나 밝은 표정이었다. 누구보다 물의 정령 점을 즐기던 황후였으니, 물의 정령의 현신이 기쁠 수밖에.
황제가 안토니오에게 말했다.
“안토니오, 당장 네 입으로 말하라. 네 상처를 그리 만든 게 라피네가 맞느냐.”
“……네, 맞습니다. 폐하.”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안토니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무, 무슨……!”
레베카 황비는 당황하여 주저앉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피네는 곧장 그쪽으로 다가가, 레베카 황비의 뒤쪽에 서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안토니오의 교육 선생이었다.
“저 때문에 오해를 받아 곤란하셨지요. 죄송합니다.”
라피네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교육 선생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라피네는 그런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르파나, 뭐 해. 치료해 줘.’
「엥? 저는 치유력이 없는데용?」
「휴…… 내가 해 주마, 아가.」
아직 루비는 현신 전이지만, 오르파나의 현신 덕에 루비까지 아주 약간이지만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사라락…….
라피네의 손등에서 나온 작은 빛이 빨갛게 멍든 여자의 뺨 위로 올라갔다.
레베카 황비에게 맞았던 상처가 흔적도 없이 금방 사라졌다.
시종들은 신기한 듯 눈을 빛내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라피네는 탐탁지 않지만, 안토니오에게도 다가가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안토니오 황자님, 사람의 머리채를 함부로 잡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상처를 내서 죄송합니다.”
3:1로 싸운 건 미안하다…….
치유해 준 뒤 손을 놓자, 안토니오는 우물쭈물하면서 본인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황비는 진정하고 궁으로 돌아가 자숙하라. 감히 황후를 모함한 죄는 따로 묻도록 하지. 뭣들 하느냐, 황비를 모시지 않고!”
황제의 명령에 시종들은 황비와 안토니오를 데리고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황비는 내내 충격으로 넋이 빠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가자, 황제는 기쁜 듯 라피네를 붙잡고 말했다.
“제국의 경사다. 에스턴 공작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장 에스턴 공작을 불러와라!”
“축하드립니다, 폐하.”
황후가 말하자, 황제는 시선을 돌려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이게 다 황후의 덕 아니겠는가. 변경의 백성들을 따스하게 감싸 준 황후의 마음에 감동하여 하늘이 내린 선물이나 다름없지.”
“……폐하.”
라피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달달한 분위기를 풍기는 황제 부부를 쳐다봤다.
‘그나저나 엄마랑 아빠가 알면…….’
황제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았다며 가족들이 또 난리를 피울 게 분명했다.
‘큰일 났다.’
라피네는 피곤한 듯 이마를 짚었다.
* * *
머지않아 놀란 엄마 아빠가 찾아왔다.
엄마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전, 황제는 라피네와 독대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굉장히 탐탁지 않아 했지만, 라피네는 흔쾌히 수락했다.
“고맙다.”
황제는 라피네의 손을 덥석 잡더니 말했다. 그러고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머뭇거렸다.
한참이나 머뭇거린 끝에 한 말은 이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황후와 화해한 것도 네 덕분이구나.”
“우리 엄마 아빠는 안 싸워요.”
“……큼.”
황제는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라피네는 이어서 말했다.
“두 분이 싸우면 제르칸 오라버니가 슬퍼해요.”
“……뭐?”
“이야기책에서 봤는데,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불안해진대요.”
“…….”
“제르칸 오라버니도 아직 어린이니까요.”
그 말에 황제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르칸은 괜찮을 거다.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단단해져야 하거든.”
황제가 제르칸에게 유독 냉담하게 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황제 역시 어린 시절, 선황제의 차별과 냉담함을 견디고 이겨 내 황제 자리에 올랐다.
그 모진 시간들 속에서 그는 더욱더 단단하게 권력욕을 다질 수 있었다.
라피네가 물었다.
“검처럼요?”
“응?”
황제는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해하다가, 이내 똑똑하다는 듯 라피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검처럼 말이다.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뜨거운 불길과 단단한 망치의 충격을 견뎌 내야 하지.”
“그렇지만 제르칸 오라버니는 철광석이 아니에요. 저랑 똑같은 어린이예요.”
“…….”
허를 찌르는 말에 황제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사람은 검이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부러져요.”
“…….”
“부러지면 죽어요.”
라피네는 황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르칸한테 그만 좀 못되게 굴어, 이 아저씨야!’
눈빛으로 협박하듯 속으로 외쳤다.
황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린 황태자 시절, 그 역시 엄한 아버지를 보며 늘 불만이 많았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에게 혼이 나면, 그는 다정한 어머니를 찾아가 ‘어머니, 아버지는 너무해요.’ 하고 울며 치마폭에 안겼다.
어머니는 늘 그런 그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며 다정한 말을 속삭여 주었다.
‘하지만 제르칸에겐…….’
황후는 그의 모후와 같은 다정하고 유한 성품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단호하고 냉정한 성격이었다.
그제야 제르칸의 상황이 보였다.
어느 곳에서도 따뜻한 애정과 위로를 받지 못하는 어린 아들.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라피네의 말에 그는 머리 1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훌륭한 검 1자루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검이 실패작으로 사라진다.
제르칸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아이는 탄탄대로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아무 흠집 없이, 무사하게.
황제는 여태까지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훌륭한 검을 만드는 장인들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검을 마냥 세게 두드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 때로는 어르고 달래야 한다.’라고.
마치 어린 시절 자신이, 아버지에게 상처받고 어머니에게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황제는 이제라도 방법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짐했다.
어린 시절 모후가 해 주었던 역할을 지금 황후가 할 수 없다면……. 자신이 해야겠다고.
깨달음을 얻은 그는 라피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내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는구나. 좋다, 답례로 상을 주마.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거라.”
“……정말요? 아무거나요?”
“그래, 무엇이든 들어주마.”
“그럼…….”
라피네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제르칸 오라버니의 교육 선생님을 바꿔 주세요! 자주 놀러 가고 싶은데 그 할아버지는 너무 무서워요.”
“흠, 그래. 그는 너무 깐깐한 자이지. 근데 겨우 그게 네 소원인 것이냐?”
“네. 그리고…… 앞으로 또 제 그림을 보고 싶으시면 황후 폐하께 말씀하세요.”
“응?”
“저는 앞으로도 계속 황후 폐하와 함께 그림을 배울 거라서요.”
천진난만한 말에 황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알았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황제 폐하!”
“그래. 또 보자.”
라피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시종이 문을 열어 주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아빠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라피네는 깜짝 놀라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니, 설마 엿듣고 있던 거야?’
옆에 선 황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고 있었다.
내내 나란히 문 앞에 귀를 대고 있는 공작 부부를 보며, 황후는 얼마나 웃음을 참았는지 몰랐다.
‘아니, 엄마 아빠 주책도 참…….’
라피네는 상황을 모두 파악한 뒤, 창피하다는 듯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빠르게 황성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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