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4)
* * *
레베카 황비에게는 한 달간의 근신 명령이 떨어졌다.
더불어 황제는 황비가 머무는 세피아 궁전의 예산을 반으로 깎아 버렸다.
표면적으론 이게 전부였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감히 황후의 사가를 따로 감시해?’
황제는 레베카 황비가 처음 변경의 이야기를 꺼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테들러 자작을 너무 풀어 주었군.’
마침 좋은 시기였다.
안 그래도 테들러 자작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조치를 취하려던 참이었다.
황제는 테들러 자작 상단의 세무 조사를 명령했다.
‘테들러 자작은 워낙 꼼꼼한 자라…… 서류상으론 털어서 크게 나올 건 없겠지만, 그래도 경고 정도는 되겠지.’
애초에 테들러 자작에게 많은 혜택을 준 것은, 선황이 죽기 전 그에게 남긴 충고대로 황후의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균형을 맞출 시기가 되었다.
생각에 잠겼던 황제는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들어오라 명령했다.
“폐하. 황태자 전하의 새로운 교육 선생 후보들 목록입니다.”
“그래.”
“말씀하신 대로 너무 무섭지 않은…… 선생으로 추려 보았습니다.”
보좌관은 대체 왜 그런 조건을 붙이신 거냐고 황제에게 묻고 싶었지만, 궁금한 마음을 꾹 참았다.
황제는 보좌관이 내민 서류를 꼼꼼히 넘겨 보았다.
그러다가 왠지 익숙한 이름의 서류 앞에서 멈칫했다.
“피터 그린트라…….”
“아, 그자는 아직 젊긴 하지만 아카데미 수석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학자입니다. 별 볼 일 없는 가문인 게 흠이긴 하지만…… 성품이 올곧다는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그래?”
페르데이아 황제는 얼마 전, 처음 자신을 찾아왔던 라피네의 입에서 이 이름이 나왔던 걸 떠올렸다.
〈여기에 올 때 길을 잃었는데, 피터 그린트라는 분이 저를 데려다주셨어요.〉
〈그래?〉
〈네. 엄청 친절한 분이었어요.〉
그때는 ‘어쩌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라피네가 일부러 그자의 이름을 말한 것 같기도 하다.
‘제르칸의 새로운 교육 선생으로 임명하라는 의도인가?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아니겠지.’
황제는 똘망똘망한 라피네의 눈을 떠올렸다.
‘또래보다 적당히 똘똘한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말이 안 될 정도로 똑똑하고 지혜로운 아이다.’
그림을 핑계로 자신과 황후의 사이를 화해시켜 준 것도 그랬다.
그래서 황제는 묘한 의심을 하기도 했다.
‘중립을 지키려던 에스턴 공작이 제르칸 쪽에 손을 들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그렇게 어린 애를 이용하면서까지 보여 주려 한 것 같진 않고…….
여러 가지 의문으로 혼란스러워진 황제는 에스턴 공작을 불러 독대를 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자는 만만치 않은 자였다.
빙빙 돌려 라피네에 대해 칭찬할 때마다, 입을 쭉 찢어 웃으면서 거만하게 “예, 맞습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딸 자랑을 참을 수 없는 아버지처럼.
‘쯧, 꼴 보기 싫단 말이지.’
황제는 그 얼굴을 떠올리자 괜히 못마땅해졌다.
그러다 아, 하며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피터 그린트, 그자가 제르칸의 교육 선생이 되면 라피네가 제르칸에게 자주 놀러 가겠군. 그러면 핑계 김에…… 좋아.’
황제는 피터 그린트라는 자의 서류를 내밀며 명령했다.
“이자로 하지.”
“알겠습니다, 폐하.”
“아 그리고.”
“예? 아, 옛! 말씀하시지요, 폐하.”
“황후궁에 가서 라피네가 언제 언제 방문하는지 날짜를 확인해 와라, 어서.”
“……예?”
황제의 표정은 꼭 남의 집 딸을 훔쳐 오고 싶어 안달 난 사람 같았다.
“뭣 하느냐? 빨리 움직이지 않고.”
“아, 알겠습니다. 폐하!”
비서관은 잠시 멍하니 황제의 얼굴을 쳐다보다, 허둥지둥하며 집무실을 나섰다.
* * *
“참으로 영특하고, 기특하고, 신기하고…….”
황후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라피네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함께 온 소피아가 민망해할 정도로.
“지금 보니 그날 정령 점을 보았을 때 물의 정령이 나타난 것도 라피네의 덕이 분명하구나.”
황후는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다.
라피네는 열심히 사회생활용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피네, 네겐 큰 빚을 졌구나. 네 해명이 아니었다면 황비로 인해 곤란해질 뻔했어. 고마운 마음의 답례로 내가 큰 선물 하나를 주도록 하마.”
“네?”
어차피 라피네가 나서지 않았어도, 황후가 느꼈을 곤란함은 잠시였을 것이다.
진실은 금방 밝혀졌을 테니까.
하지만 황후가 핑계 김에 라피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눈치라, 라피네는 고민했다.
“그러면요. 황후 폐하가 제르칸 오라버니에게 말을 전해 주세요. 황후 폐하 대신 제 소원을 들어 달라고요.”
“어머.”
“어머나…….”
황후와 소피아가 동시에 놀라며 호호호 웃기 시작했다.
라피네는 어른들의 뜻 모를 미소 뒤로, 음흉하게 웃었다.
‘이제 제르칸의 확답을 들을 차례다.’
* * *
라피네는 황후가 직접 써 준 쪽지를 들고, 시녀와 함께 서궁으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궁정인 1명이 시녀와 라피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 뒤에서 나타난 건…….
“아, 안토니오 황자님!”
시녀가 유령을 본 것처럼 놀라며 라피네를 등 뒤로 숨기려 했다.
그러자 안토니오의 시종이 눈을 치켜뜨며 시녀를 노려보았다.
안토니오는 그런 시종을 만류했다.
“큼, 큼. 할 말이 있어 찾아온 것이다. 지난 일에 대한 사과도 할 겸.”
안토니오는 몹시 민망한 듯 중얼거렸다.
라피네는 시녀에게 괜찮다고 말한 뒤, 안토니오를 향해 한 걸음 걸어갔다.
안토니오는 반가운 기색으로 시종과 시녀에게 말했다.
“너희는 뒤로 물러나 있거라.”
“알겠습니다, 전하.”
“…….”
라피네와 함께 온 시녀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여차하면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러 모을 생각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안토니오는 시종과 시녀가 꽤나 멀어진 걸 확인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라피네가 말했다.
“용건이 뭔데.”
“흠…… 말이 짧구나. 괜찮다. 너는 아직 어린아이니까.”
“…….”
이게 뭐래.
라피네는 당당했다.
황제와 황후의 뒷배도 얻었겠다, 안토니오 따위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라피네는 짜증스럽게 안토니오를 노려보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대체 이 자식은 무슨 생각으로 내가 자기 팔을 꼬집은 범인이라는 걸 말 안 했었지?’
집요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고집스러운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라피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야.”
“……지금 날 부른 거지?”
“그래, 안토니오. 너.”
“허어…….”
안토니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지만, 왠지 나쁘지 않다는 눈빛으로 라피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 왜 사실대로 말 안 했어?”
“뭐를?”
“네 팔 멍들게 꼬집은 거 나라고, 왜 말 안 했냐고.”
“…….”
“네 엄마가 선생님을 때릴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며? 양심도 없냐? 선생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그, 그렇지만…….”
“그 선생님은 무슨 죄냐? 너 같은 거 사람 만들겠다고 그 노력을 하시는 훌륭한 분인데.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무,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아랫사람한테 함부로 하지 마. 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고. 머리가 있으면 좀 사용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자, 안토니오는 당황한 듯했다.
‘아니, 어린애가 무슨 말을 저렇게…….’
안토니오는 진땀을 흘리다 빽 소리쳤다.
“그럼 어떡한단 말이야! 네가 위험해질지도 모르는데!”
“……?”
안토니오는 황비를 닮아 화려한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연보라색 눈을 반짝거렸다.
“널 지켜 주려 그런 것이다.”
“뭐?”
얘가 미쳤나…….
라피네는 갑자기 폼을 잡는 안토니오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내가 그 자리에서 네 이름을 말했으면, 우리 어머니가 널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
“지금도 어머니는 네 욕을…… 아니, 아니다. 우리 어머니는 걱정 말거라. 내가 필사적으로 널 지켜 주마!”
“아니, 이 미친…… 정신 나간 꼬마야. 애초에 네가 내 머리채를 잡지 않았으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만 네가 내 말을 안 듣고 피했잖아!”
“그렇다고 사람 머리채를 잡으면 되는 거야? 넌 누가 그러면 좋겠어?”
라피네는 홧김에 손을 뻗어 안토니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멀리서 그의 시종이 “히익!” 하며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안토니오는…….
“난 괜찮다.”
“……뭐?”
“네가 그러는 거면 난 괜찮다고. 너 같은 귀여운 여동생은 언제나 환영이야.”
“…….”
아니 말이 안 통하네.
라피네는 머리카락을 놓아주며 손을 탈탈 털었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도 내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이 마음에 드는 것이지?”
“뭐라는 거야.”
“나도 네 분홍 머리카락이 너무 탐스럽고 예뻐서 잡은 것이다. 그러니 너도 잡고 싶으면 마음껏 만져라, 자.”
안토니오는 제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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