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57)
‘타이밍을 잘 노려야 하는데…….’
그때였다.
“아드리안! 라피네!”
마침 저 멀리서 바이올렛이 반갑게 다가왔다. 라피네의 곁에 서 있던 아드리안의 안색이 밝아졌다.
“왔어?”
“응. 일찍 도착했네?”
바이올렛은 집사와 함께 온 듯했다. 가족들이 인사를 나누는 걸 보며, 라피네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럼 저희는 그림 숙제를 하러 갈게요.”
바이올렛이 그렇게 말하자, 아드리안은 그림 도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챙겼다.
두 사람을 가르치는 교육 선생이 그림 숙제를 내준 모양이었다.
하긴,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니 그런 숙제를 내주기 딱 좋은 장소이긴 했다.
“나도 따라갈래!”
“라피네도?”
“응, 나도 그림 배워.”
라피네의 말에 바이올렛은 “좋아!” 하고 대답하며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말에 엄마와 아빠의 표정에 잠시 걱정이 스쳐 갔다. 최근 라피네의 일로 시끄러웠던 터라 혹시 모를 불안감이 든 모양이었다.
“제가 함께 갈 테니 염려 놓으시지요.”
바이올렛과 함께 온 피츠 백작가의 집사가 인자하게 말했다.
에스턴 공작 부부는 허락하는 대신, 렌델 경을 함께 가도록 했다.
그렇게 라피네는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의 손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좋은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라피네는 등 뒤에서 따라오는 집사와 렌델 경을 의식하며 열심히 타이밍을 노렸다.
“여기서 그릴까?”
“너무 어렵지 않아?”
“그렇긴 한데…… 저쪽의 조각상을 그리는 것보단 나무를 그리는 편이 쉽잖아.”
“그건 그래. 그럼 여기서 그리자.”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은 회의 끝에 그림을 그릴 장소를 결정했고, 집사가 돗자리를 펴 주었다.
라피네는 두 사람의 그림을 구경하며, 집사가 챙겨 준 쿠키를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렌델 경과 피츠 가의 집사도 진지하게 그림을 지켜봤다.
“와, 바이올렛 아가씨 정말 그림을 잘 그리시네요.”
렌델 경이 감탄하며 바이올렛의 그림을 칭찬했다.
“그렇지요? 후후후. 아드리안 도련님께서도 아주 훌륭하시군요.”
“뭐, 우리 도련님이야 당연하지요. 못 하는 게 없으시니까.”
집사와 렌델 경은 서로서로 칭찬을 해 주며 뿌듯해했다.
라피네는 그들이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의 그림에 푹 빠져 있을 때를 노렸다.
마침 옆에 작은 풀숲이 있어서 빠져나가기도 좋았다.
라피네는 살금살금 뒤로 빠져 우다다 숲으로 달려갔다.
‘오르파나, 뒤를 부탁해.’
라피네는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이쪽은 산책길이 없어서인지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라피네는 후다닥 가방을 열어, 내내 답답하게 갇혀 있던 루비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자, 루비. 빨리!’
오늘 나들이를 핑계로 밖에 나온 이유는 다름 아닌 루비의 현신 때문이었다.
오르파나는 지난번에 핑계 김에 현신을 시켜 주었지만…… 루비는 아직이었다.
한동안 집 안에서만 지내느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왜냐면 루비는 현신하게 되면…….’
라피네의 손등에 새겨진 오르파나의 인장 위로, 또 하나의 인이 덧그려지기 시작했다.
생명력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인장이 완성되자, 쿠궁!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땅이 울렸다.
귀여운 아기 곰 인형은 사라지고,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곰이 눈앞에 나타났다.
‘새, 생각보다 더 큰데?’
저택 안에서 현신했으면, 정말로 집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루비의 본모습은 정말 흉악하게 생겼다. 마치 전투를 위해 태어난 곰처럼.
“고맙다, 아가야.”
사랑스러운 분홍색 털을 가진, 흉악한 얼굴의 거대 곰이 말했다.
라피네는 조금 쫄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라피네는 두 번째 정령을 현신시킨 정령사가 되었다.
* * *
다행히 타이밍을 잘 맞춰 돌아올 수 있었다.
라피네가 자리로 돌아오자, 오르파나는 물방울로 만들었던 라피네의 환상을 없앴다.
덕분에 들키지 않고 미션을 완료할 수 있었다.
‘휴, 다행이다.’
저택의 정원에서 현신시킬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꾹 참고 여기까지 오길 잘한 것 같았다.
에스턴 공작가의 정원에는 큰 나무 위주의 숲이 없어서 루비의 본모습이 전부 드러났을 것이다.
마음의 짐처럼 여겨졌던 루비의 현신을 완료해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라피네는 흐뭇한 얼굴로 사이좋은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을 지켜보았다.
더불어 티 가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는 티켓 값을 새기도 했다.
‘이제 난 부자다.’
아무도 내가 부자인 걸 모르는데, 사실 난 부자야.
이처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티 가든’ 사업은 라피네가 구상한 홍차 사업의 거의 마지막 장이나 다름없었다.
가족 단위의 야외 사교 문화, 귀부인들 중심의 티 파티 문화, 신사들의 사교장 문화까지 꽉 잡고 있으니 이젠 걱정할 것이 없었다.
앞으로는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잘 모으기만 하면 된다.
테들러 자작 가문에서도 뒤늦게 커피 사업을 개편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글쎄…….
‘세무 조사 때문에 정신없을 테지.’
라피네는 지금쯤 분노로 떨고 있을 테들러 자작을 떠올리며 악당처럼 웃었다.
* * *
비슷한 시각 테들러 자작가의 저택.
테들러 자작은 라피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분노에 휩싸인 상태였다.
“젠장, 쓸모없는 계집!”
자작은 유리잔을 벽으로 집어 던지며 이를 갈았다.
레베카를 황비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큰돈을 들였는데, 제대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딸이 한심하기만 했다.
‘세무 조사라니……!’
늘 너그러웠던 황제가 이리 나오니 자작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현 황제는 맹수 같은 성품으로, 모든 대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늘 테들러 자작에겐 관대한 편이었다.
테들러 자작은 그 이유가 황제가 황비를 아끼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런데 최근,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달라지며 판도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늘 온화했던 황제가 싸늘하게 태도를 바꾼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난데없이 자작의 사업에 철퇴를 가하기까지 했다. 테들러 자작은 이 모든 상황이 얼떨떨해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혹시 모를 세무 조사를 위해 늘 철저하게 사업을 관리했기에 망정이지…….
하지만 분위기상, 이대로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몇몇 사업을 철수하라 명령을 내린 걸 보면, 테들러 자작가의 덩치가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는 것이다.
“이게 전부 레베카 그 멍청한 것 때문에…….”
황제의 마음을 잘 달래고 붙들라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게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정령사라는 어린 계집도 거슬렸다.
듣기로는 그 아이 덕분에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던데.
그때였다.
똑똑,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출입을 허락하자 비서관이 급한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자작님, 큰일입니다. 설탕 무역 사업의 대외용 서류가…….”
“뭐?”
자작의 미간이 구겨졌다. 사탕수수 수입 사업은 자작가의 핵심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수로 대외용 서류와 실제 서류가 뒤바뀌어서…… 황성에서 나온 행정 조사관들이 모두 가져갔다고 합니다.”
“이런 젠장!”
자작은 쾅! 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세무 조사를 완벽하게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틈이 벌어졌다.
자작은 눈이 벌게져 당장 집무실을 나섰다. 그 사업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었다.
서둘러 황성으로 향해 황제에게 독대를 청했지만, 황제는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황제를 만나는데 실패한 테들러 자작은 곧장 레베카 황비의 거처인 세피아 궁전으로 찾아갔다.
“비켜! 이 쓸모없는 머저리들!”
마치 주인인 양 들어온 테들러 자작은 하인들을 밀치고 발길질하며 거칠게 걸어갔다.
그가 노크도 없이 레베카의 침실 문을 쾅, 열고 들어가자 하인들은 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했다.
“아버지? 이게 대체 무슨 예의…….”
“예의? 네까짓 게 감히 내게 예의를 들먹이는 것이냐?”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레베카는 깜짝 놀라 미간을 찌푸렸다.
지척까지 다가온 자작은 레베카의 손에 들린 찻잔을 빼앗아 벽으로 던져 버렸다.
와장창.
귀한 찻잔이 깨지는 소리에 레베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레베카가 분노에 찬 눈으로 쏘아보자 테들러 자작은 익숙하게 손을 올려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짜악!
거친 소리와 함께 레베카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작을 쳐다봤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은 익숙했지만, 황비가 된 이후에 손찌검을 당하는 건 처음이었다.
레베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히 황비인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다니…….
“레베카, 명심하거라.”
자작은 두꺼운 손으로 레베카의 뺨을 잡고 자신을 쳐다보게 했다.
그가 형형한 눈으로 쏘아보자, 레베카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네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그걸 잊으니 그리 오만하고 멍청하게 행동하는 것 아니냐. 응?”
얼핏 다정한 말투였으나,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 멍청한 머리로 어떻게 황후를 상대하겠다고 그리 날뛰는 것이야. 이 아비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는 황제의 마음을 붙들기만 하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
자작의 말대로, 레베카는 황비 자리에 올랐으나 실상 자작의 뒷배 없인 아무것도 못 하는 신세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