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1)
원작의 흐름대로 정확히 6년 후.
예레나드 아카데미가 있는 대륙 북부 인근에서 정체불명의 검은색 기둥이 나타났다.
그곳에서는 불규칙적으로 마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시간이 흐를수록 마수의 숫자는 많아졌다.
중앙에서 파견된 마법사들은 그 검은색의 틈을 막아 보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어느 방법도 성공하지 못했다.
빛을 흡수하는 차원의 틈. 사람들은 그것을 ‘종말의 균열’이라고 불렀다.
* * *
균열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예레나드 아카데미.
아카데미의 학장은 큰 결단을 내렸다.
저학년 학생들은 집으로 보내고, 고학년들에게는 선택권을 던져 주었다.
남아서 싸울 것인지, 가족들에게 돌아갈 것인지.
대부분의 고학년 학생들이 잔류를 택했고, 바이올렛과 아드리안, 제르칸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절망했지만, 라피네는 담담했다.
그저 먼 곳에서 그들을 응원하는 수밖에.
라피네는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꼈다.
개개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이 세계를 통과하는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원작대로 바이올렛이 불과 바람, 땅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 * *
마수와의 전쟁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지형이 험한 북부의 어느 산맥.
만년설이 내리던 북부의 산은 어느샌가 활화산으로 변해 버렸다.
검은 재가 된 땅을 달리는 흑색 말 위에, 하얀색 로브를 입은 사내가 있었다.
그의 목적은 마수들과의 전투에서 사라진 기사를 찾는 것이었다.
한편, 연합군의 주둔지.
병사들 사이를 헤치고 달려간 아드리안이 한 천막 안으로 거칠게 들어갔다.
“바이올렛! 제르칸이 돌아오지 않았어.”
“뭐?”
회복의 정령수를 만들던 바이올렛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곧장 로브를 들고 천막 밖으로 나섰다.
“홀로 페릴 경을 찾으러 간 모양이야.”
“젠장. 혼자 가다니, 무모하게…….”
바이올렛은 평평한 땅에 손을 올려 소환 진을 그려 냈다.
신비로운 노란빛이 허공 위로 떠오르자, 그녀는 땅의 정령에게 명령했다.
“제르칸을 찾아야 해. 지금 당장.”
* * *
흑색 말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거친 산맥을 타고 넘어가자, 어느새 넓은 평원이 보였다.
언젠가는 하얀 눈이 자욱했을 테지만, 지금은 검은 재와 붉은 불씨만 남아 있는 공간이었다.
그 순간, 말에서 내린 하얀 로브를 입은 사내가 멈칫했다.
두두두두두.
“젠장…….”
후드를 벗어 내린 제르칸은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곧장 등 뒤에서 검을 뽑아냈다.
사방에서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함정이었군.’
예상대로 나타난 마수들은 점점 그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숫자가 너무 많았다.
어둠의 정령을 이용해야 하는 건가 생각하던 순간.
수천 마리의 마수 떼가 한 번에 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 *
“저쪽인가?”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은 정예군을 데리고 추적을 따라 이동했다.
땅의 정령이 바닥 위로 노란빛을 그려 내며 길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서둘러 말을 몰던 어느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엄청난 진동에 대지가 울렸다.
동시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빛이 눈앞으로 쏟아졌다.
“엎드려!”
“으윽! 이게 뭐지?”
잠시 후.
빛의 잔상이 사라지자, 바이올렛은 눈을 가늘게 뜨며 숲 너머를 응시했다.
빛의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땅의 정령이 가리키는 노란빛이 향하고 있었다.
“제르칸이 위험해, 어서 가야 돼!”
* * *
“하아…… 하아…….”
빛의 폭발이 일어난 지점.
제르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깜빡였다.
조금 전, 그를 덮쳤던 수천 마리의 마수들은 모두 재가 되어 흩어졌다.
마수들의 사체도 남지 않은 넓은 평원 한복판.
홀로 선 제르칸의 앞에, 그의 목에서 흘러내린 펜던트가 떨어져 있었다.
푸른색의 펜던트는 한 줄기의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제르칸이 그 위로 손을 올리자 빛이 그의 손을 통과해 손등 위로 나타났다.
“……이게 무슨.”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펜던트는 라피네가 준 물건이었다.
‘에스턴 공작의 보호 마법이 이렇게 강했나?’
의문을 품던 그 순간이었다.
손등 위를 통과한 하얀빛이 구름처럼 일그러지며 정체 모를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환 진이었다.
“이건…….”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던,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빛의 정령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 * *
또다시 1년이 지난 후.
어느샌가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좋은 소식들뿐이었다.
황태자가 이끄는 기사단이 이번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더라, 마수 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더라. 등등.
제국민 모두를 기쁘게 하는 소식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테들러 자작은 쾅, 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이럴 때가 아니다.’
며칠 뒤, 그는 안토니오 황자를 찾아가 말했다.
“전하, 황제 폐하께 직접 청해야 합니다. 외곽 전쟁 지역으로 보내 달라고요.”
“하지만…….”
“매일같이 황태자의 승전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요! 거리의 제국민들이 온통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불처럼 화를 내는 자작을 보며, 안토니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마수와의 전쟁을 틈타, 야만족들이 제국 외곽을 침입하고 있어요. 그곳으로 자원을 청하십시오.”
“…….”
“제가 직접 폐하께 청할 테니, 전하는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십시오. 아셨습니까?”
레베카 황비가 수도원으로 떠난 뒤, 안토니오에게 의지할 곳은 외가인 테들러 자작가 뿐이었다.
수년간 세뇌당한 안토니오는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기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자작.”
안토니오가 얌전히 고개를 떨구자, 테들러 자작은 안도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 * *
라피네 역시 매일같이 들려오는 승전 소식에 한껏 도취해 있었다.
‘와, 이러다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내고 돌아오는 거 아냐?’
이제 마력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라피네는 원할 때만 정령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대화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처럼.
라피네가 마력막을 해제하고 정령들에게 물었다.
“그러지 말고 너희들이 가서 도와주는 건 어때?”
루비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글쎄. 어차피 우리가 간다고 전쟁이 더 빨리 끝날 것 같진 않구나.”
그리고 오르파나는 완강했다.
“절대! 절대 싫어요! 절대요! 저를 보내시려거든 그냥 절 죽이세요!”
아니, 뭘 저렇게까지……?
라피네는 의문스러웠으나 딱히 강요하진 않았다.
어차피 라피네 역시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황후를 지키려면 정령들이 필요했으니까.
“그나저나 제르칸은 원작처럼 어둠의 힘을 얻었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그 ‘어둠의 힘’이란 것 말이다. 그게 대체 뭐냐, 아가?”
라피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원작에서는 제르칸이 종말의 균열에서 나온 마수들과 싸우다가 특이 체질로 변해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흠. 그런 경우도 생기는 거구나.”
그때였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오르파나가 손톱을 깨물며 라피네와 루비를 쳐다봤다.
“그건 단순한 어둠의 힘이 아니에요…….”
“뭐?”
“제르칸이 불러낸 것이 그게 맞다면, 그 끔찍한…….”
라피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오르파나 쪽으로 걸어갔다.
“너, 뭘 알고 있는 거지?”
오르파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훌쩍거렸다. 몇 번 더 다그치자, 오르파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사실 저는 어둠의 정령을 두려워해요. 그 녀석이 오래전, 저를 정말 무참히 괴롭혔었거든요.”
“어둠의 정령? 그럼 제르칸이 어둠의 힘을 이용하는 게 정령 때문인 거였어?”
라피네는 놀라 눈을 깜빡였다.
원작에서 제르칸이 다루는 정령은 오르파나 하나였다.
근데 그가 사용하는 어둠의 힘이 사실 정령의 힘이었을 줄이야……
‘그럼 원작에서 제르칸이 어둠의 힘을 다루게 된 후, 오르파나가 얌전해진 것도 그거 때문이었나?’
그냥 단순히 어둠의 정령이 무서워서?
아니, 오르파나……. 세상 당당한 척해 놓고 완전 쫄보잖아?
계속 북부로 지원을 하러 가 달라고 했을 때, 극구 거부한 것도 그 이유인 듯했다.
‘오…… 좋아, 오르파나의 약점 하나 얻었다.’
라피네가 악당 같은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오르파나는 순진하게 중얼거렸다.
“네 맞아요. 어둠의 정령은 무지막지한 놈이에요. 아마 제르칸 그 녀석도 오래 버티지 못할걸요?”
“그건 또 뭔 소리야?”
“어둠의 정령은…… 정령사의 영혼을 갉아먹거든요. 스스로 파멸하게 만들 거예요.”
“…….”
라피네는 눈을 깜빡였다. 이내 그녀의 미간이 왈칵 구겨졌다.
‘잠깐! 그럼 제르칸이 흑화한 원인이…… 황후의 죽음뿐만이 아니었던 거야?’
* * *
라피네의 추측대로, 어둠의 정령은 끝도 없이 제르칸의 영혼을 추락시키려 하고 있었다.
「제르칸, 모든 걸 파괴해야 세상의 균형이 잡힌다. 그러니 너는 내 말을 듣고 이 어둠의 힘으로써 불결한 모든 것들을…….」
「뭔 개소리야. 야! 좀 닥쳐.」
「…….」
그러나 얼마 전 깨어난 빛의 정령이 사사건건 어둠의 정령의 말을 막고 있었다.
제르칸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력으로 정령들의 목소리를 차단한 뒤, 그는 마법사들의 회의가 이루어지는 천막으로 향했다.
전쟁은 매일같이 승리하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마수를 쏟아 내는 ‘종말의 균열’을 영원히 봉쇄시키는 것.
제르칸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그것만은 꼭 봉인할 생각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