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4)
라피네는 홍차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제국에 홍차를 처음 유통시킨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요.”
라피네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대답했다. 더 이상 길바닥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큼, 영애!”
그녀가 마차로 향하려 하자, 페릴은 급한 마음에 라피네의 손목을 붙잡았다.
“…….”
라피네가 차가운 시선으로 손목을 내려다보자, 그는 그제야 아차차 하며 손을 떼어 냈다.
“서, 성년식 이후, 나는 영애에게 청혼서를 보낼 생각입니다. 그대가 원한다면 이 브랜드의 프리미엄 라인 찻잔을 사 줄 수…….”
“몇 세트를 살 수 있죠?”
“예?”
“참고로 나는 이 브랜드의 생산 라인 전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라피네의 말에 그는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게, 이 브랜드는 찻잔 하나만 해도 금액이 어마어마할 정도로 비쌌다.
아무리 부유한 에스턴 공작가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브랜드의 일부 라인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딱 1세트만 만든다든가 하는 한정판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라피네는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쳇,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사람을 무시하다니…….’
성격이 좋다던 사교계 평판은 순 거짓임이 분명했다. 이토록 속물적이고 가식적인 여자일 줄이야.
그는 불쾌한 듯 미간을 구기며 대놓고 들리라는 듯 중얼거렸다.
“하여간, 홍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찻잔만 좋아하는 영애들이란……. 에스턴 공작 부부가 저렇게 가르쳤나? 싸가지 하곤…….”
페릴을 지나치려던 라피네가 멈칫했다.
이게 봐주려고 했더니…….
“잠시만요. 그런데…… 이 브랜드의 찻잔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거짓이죠?”
대뜸 라피네가 묻자, 그는 펄쩍 뛰었다.
“지금 사람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흠, 그쪽 가문에 물건을 유통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서요. 분명 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판매한 적이 없을 텐데.”
너처럼 급 낮은 놈한테는 말이야.
라피네의 말뜻을 알아챈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쯧. 라피네는 세상 한심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마치 철퇴에 맞은 듯한 대미지를 입히는 시선이었다.
때로는 노려보는 시선보다, 벌레 보듯 쳐다보는 시선이 더욱 큰 상처를 줄 때도 있었다.
그 시선 하나만으로도 페릴에게는 엄청난 비수로 돌아와 박혔다.
라피네는 그런 그를 두고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출발하고 창밖을 내다보자, 계속 그 자리에 굳어 있는 페릴이 점점 작아져 갔다.
찻잔을 사 주겠다고? 참나. 기가 막히네.
‘이 브랜드의 모기업이 통째로 다 내 건데?’
그의 제안은 마치 계열사 총수에게 하위 브랜드의 물건을 사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 * *
마차가 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무언가 머리를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오르파나의 신호였다.
라피네가 마력으로 정령들의 목소리를 차단할 때마다, 오르파나와 루비는 이런 식으로 신호를 보내곤 했다.
차단막을 거두며 라피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뭔데 또, 뭔데.’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하는 오르파나 때문에 아주 골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러자 눈앞에 팡, 하고 오르파나가 나타났다. 마차의 맞은편에 앉은 오르파나가 호들갑을 떨어 댔다.
“돌아왔대요! 돌아왔대요, 주인님!”
“누가! 오빠가?”
라피네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벌써 돌아왔다고? 아직 여름인데?’
“아뇨? 안토니오 황자요.”
“…….”
이걸…… 죽여?
라피네는 그대로 기운이 쫙 빠져 소파에 늘어졌다.
분노에 찬 시선으로 오르파나를 노려보자, 오르파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 별로 안 궁금하시구나.”
“궁금하겠냐?”
“헤헤. 상단 회의 갔다가 들었거든요. 주인님한테 가장 먼저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 고맙다.”
“별말씀을요.”
오르파나는 그렇게 다시 사라졌다.
라피네는 분노로 몸을 떨며 집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라피네는 어제 확인한 찻잔 세트를 황후 앞에 내밀었다.
황후에게는 브랜드의 장인과 친분이 있어 특별히 미리 구할 수 있게 해 주는 거라고 말을 해 두었다.
황후는 몹시 기뻐하며 좋아했다.
“정말 아름답구나…….”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황후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황제와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종종 싸우긴 하지만…….’
아마 아예 안 싸우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다.
두 사람 다 워낙 불같은 성격이라 그런 듯했다.
그래도 사이가 좋을 땐, 또 너무 낯간지러워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좋았다.
여러모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부부였지만, 라피네는 황제 부부를 보고 있으면 늘 즐거웠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라피네 네 덕분에 공개되기 전부터 갖게 될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별말씀을요, 폐하.”
라피네는 정말 기뻐하는 황후를 보며, 아빠에게도 한 세트 가져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찻잔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엄마에 비해, 아빠는 화려한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세요?”
라피네가 묻자, 황후는 인자하게 웃으며 라피네의 뺨을 쓰다듬었다.
“내 건강을 챙기는 건 늘 너뿐이지. 걱정하지 말렴. 어제도 주치의가 다녀갔단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 황후는 무척이나 건강했다.
원작처럼 불치병의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루비, 한번 스캔해 봐.’
라피네가 속으로 명령을 내리자, 루비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황후가 머무는 이 공간에 혹시 모를 위협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라피네가 황성을 찾아올 때마다 꼭 거치는 과정이었다.
혹시 누가 독을 숨겨 두었거나, 자객을 심어 두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도 깨끗하단다.」
‘좋아, 수고했어.’
라피네는 오늘도 안도하며 한참 동안 황후와 수다를 떨다가 황후궁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마차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잠시 멈추거라.”
별안간 누군가 라피네의 앞을 가로막았다. 라피네를 마차까지 데려다주기로 한 궁정인들은 당황해했다.
앞을 가로막은 건 녹색 기사복 차림의 남자였다. 그는 무척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너머로, 몇몇 기사들이 보였는데, 누군가 그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저런, 놀랐나 보군.”
어느새 어른이 된 안토니오였다.
라피네는 전혀 놀라지 않았지만, 함께 온 궁정인들에게 돌아가도 좋다고 작게 속삭였다.
궁정인들이 돌아가자, 기사들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반면, 안토니오는 한 걸음 앞으로 라피네를 향해 다가왔다.
라피네는 생소한 기분으로 안토니오를 쳐다봤다.
‘쫌…… 컸네?’
전에는 자신과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하긴…… 루카, 로이스와 동갑이니 이 녀석도 이미 21살 성년이 되었겠지.’
싸가지 없고 철없어 보이는 건 여전했지만, 어린 시절만 기억하고 있으니 낯선 게 당연했다.
“오랜만이야, 라피네.”
“어, 뭐. 그렇네요. 돌아오셨단 소식은 들었어요.”
“그래? 그럼 왜 먼저 찾아오지 않았어?”
“……?”
라피네는 어리둥절했다.
엥? 내가 널 왜 찾아가?
“제가 황자 전하를 왜 찾아가나요?”
눈을 깜빡거리며 묻자, 안토니오는 낮게 혀를 찼다. 그러더니 말했다.
“기억해? 내가 떠나기 전에 했던 말.”
“…….”
“내 편지 말이야.”
“아.”
그 말에 라피네는 몇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안토니오는 외곽 지역으로 떠나기 전, 라피네에게 편지를 보냈었다.
굉장히 당황스러운 편지였는데 대충 기억하기로는,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라피네는 솔직히 안토니오가 자신에게 친한 척 구는 게 몹시 당황스럽고 의아했다.
서로 머리채를 쥐고 싸웠던 사이인데, 이게 친구처럼 굴 일인가?
“기억은 나나 보군.”
“예, 뭐.”
라피네가 성의 없이 대답하자, 안토니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라피네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아무 말 없는 안토니오가 짜증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멍하니 그를 째려보는데, 솔직히 의외였다.
‘꽤 잘 컸네.’
라피네는 못마땅한 눈으로 안토니오를 훑었다.
얼굴 하나는 흡잡을 데 없었던 레베카 황비의 유전자 버프 덕분일까, 어른이 된 안토니오는 굉장한 미남이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보라색 눈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했다.
‘조금 얍삽한 느낌이긴 하지만, 잘 컸네.’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1분이나 넘게 아무 말 없는 걸 보면,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저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황자 전하.”
라피네가 무뚝뚝하게 선을 긋고 가 버리자, 안토니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젠장…….”
한참 동안 라피네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가 이내 입술을 거칠게 깨물었다.
뒤에 서 있던 기사들은 안토니오 황자의 귓가가 붉어지는 것을 전부 목격했다.
* * *
“와아……!”
라피네는 찻잔을 받아 들고 어린 소년처럼 좋아하는 아빠를 보며 웃었다.
“여보, 이거 봐요! 이 금빛 물결!”
아빠의 찬양에도 엄마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우리 딸이! 이 아버지를 위해!”
에스턴 공작은 당장 밖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할 기세였다.
라피네는 행복해하는 아빠를 구경하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아니, 잠깐.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의아했다.
‘안토니오가 수도로 돌아왔는데. 왜 레베카 황비는 안 오는 거지? 2년 전에도 돌아올 수 있었잖아.’
곧 돌아올 거라는 소식은 듣긴 했지만, 안토니오가 돌아왔는데도 오지 않는 게 의문스러웠다.
* * *
라피네가 그런 의문을 품은 그 시각.
레베카 황비는 신전에서 떠들썩하게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성녀와 함께 수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빈민가를 돌며 신의 은총을 내렸다는 찬사와 함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