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lder Brother, I Will Seduce the Male Lead RAW novel - Chapter (66)
밤이 되자 토벌대는 임시 거처를 마련한 뒤 야영을 시작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간 제르칸은 검집을 내려놓고 방어구를 벗었다.
‘짜증 나네.’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 제르칸은 아드리안에게 시달리고 왔다.
〈편지를 보니까, 라피네가 엄청 예쁘게 자랐다더군. 아무리 그래도 정말 내 동생을 넘볼 생각은 아니지, 제르칸?〉
〈제르칸, 바이올렛은 어릴 때 집사와 결혼하겠다고 했대. 라피네도 그런 거잖아?〉
〈사실은 나도 어릴 땐 유모와 결혼하려고 했어.〉
〈라피네는 안 돼, 우리 라피네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돼.〉
아직도 환청이 들리는 기분이다.
제르칸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자꾸만 라피네의 이름을 들으니, 그 얼굴이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궁금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라피네는 제르칸에게 있어서 고마운 상대였다.
라피네 덕분에 부모님의 사이가 좋아졌던 일, 교육 선생이 바뀌었던 일, 그리고 그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해 주었던 것까지.
‘펜던트도 마찬가지고…….’
몇 년 전, 마수 떼와의 전투에서 그는 이 펜던트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이게 없더라도 죽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한 군데는 크게 다쳤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펜던트를 통해 제르칸은 빛의 정령을 깨어나게 할 수 있었다.
「근데 라피네가 대체 누구지? 죽여야 할 대상인가? 그렇다면 이 어둠의 힘으로…….」
그때, 마침 깨어난 어둠의 정령이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나 죽어, 너나 인마. 넌 걔가 누군지 모르지? 난 알아. 걔가 가지고 있던 펜던트가 마음에 들어서 내가 그곳에 깃든 거거든.」
수다 떨길 좋아하는 빛의 정령 역시 입을 열었다.
제르칸은 평소와 달리 마력을 차단하지 않고, 두 정령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후우, 새로운 적인가? 강한 영혼이 느껴지는 이름이군. 그 이름 똑똑히 기억해 두지…….」
「난 그 애가 마음에 들어. 그래도 마력의 재질은 별로였어. 왜냐면 파장이 나랑은 별로 맞지 않더라고. 그리고 아직 어려서 그런가? 좀 약했어. 난 마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좋거든. 미래의 가능성도 좋지만 난 당장의 능력이 우선이야.」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대화일 줄 알았더니.
제르칸은 쓸데없는 대화라 판단하고 곧장 마력을 차단했다.
홀로 남은 천막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전쟁터로 오게 된 뒤, 그에게는 꽤 익숙한 적막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때마다 라피네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오라버니, 하고 부르던 그 상냥하고 간지러운 목소리가.
‘이젠 어렸을 때처럼 그렇게 귀엽게 굴진 않겠지.’
라피네도 이제 성년식을 치를 나이였다.
어쩌면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신의 존재도 잊어버렸을 확률도 높았다.
‘결혼하자고 조르던 것도 다 까먹었겠지, 분명.’
그런 생각을 하자 괜히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먹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제르칸에게 라피네는 그저 어린 시절 귀여웠던 친구의 동생, 그뿐이었으니까.
종종 그 얼굴이 그립긴 했지만 말이다.
* * *
드디어 성년식의 무도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라피네는 이번 드레스를 맡아 줄 전담 디자이너에게 한참을 시달리다가 풀려났다.
‘힘들어…….’
녹초가 되어 침대에 드러눕자, 머리가 핑핑 도는 듯했다.
졸업 논문과 시험을 끝내자마자 이제는 드레스 준비에 시달려야 한다니…….
그래도 라피네는 성년 무도회가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그날 치러지는 성년 무도회는, 수도의 귀족 대부분이 참여하게 되는데 주인공은 그 해에 성년이 되는 젊은 귀족들이었다.
라피네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무도회가 기다려지는 건 아니었다.
무도회가 열리기 전에 그리운 아드리안이 드디어 수도로 돌아온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어떻게 변했을까.’
라피네는 원작 속에서의 세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바이올렛은 여자 주인공답게 무척이나 아름다웠는데, 늘 당당하고 정의로운 게 그녀의 매력이었다.
아드리안이야 뭐, 최애였던 만큼 다정다감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제르칸은…… 피폐물이긴 했지만, 화려한 외모로 여자들을 홀리는 인물이었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오로지 황위를 얻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원작처럼 흑화하진 않아야 할 텐데.’
그의 트라우마가 되는 황후의 죽음은 거의 막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원작에서 황후가 죽는 시점은 제르칸과 바이올렛이 결혼한 뒤였다.
그래서 절대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일단은 황제와 황후의 사이가 좋고 황비가 돌아오지 않았으니, 큰 장애물 하나는 넘은 셈이다.
찜찜한 게 하나 있다면, 바로 어둠의 정령의 존재였다.
‘원작에서 흑화하게 된 건 그 이유도 있겠지.’
오르파나는 어둠의 정령이 계약자의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했다.
라피네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오고 있다니 다행이다. 빨리 보고 싶다, 다들.’
* * *
드디어 고대하던 날의 아침이 밝았다.
라피네는 아침 일찍부터 가족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토벌대의 귀환식을 구경했다.
모처럼 환영 행렬 행사이니, 평범한 사람들처럼 거리에서 구경을 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토벌대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 황제였으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아드리안을 만나려면 어쩔 수 없기도 했다.
행렬 행사가 벌어지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었다.
“저기, 저기 아드리안이 있어요. 여보!”
“아드리안!”
로브를 뒤집어쓴 엄마, 아빠는 완벽하게 이 거리에 적응했다.
마치 평민들처럼, 저 멀리 보이는 아드리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라피네는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다가 그 너머의 아드리안을 보자 코끝이 뭉클해졌다.
그 주변으로는 바이올렛과, 제르칸의 옆모습도 보였다.
그때, 옆에 선 루카와 로이스가 투덜거렸다.
“아니, 엄마 아빠는 왜 하필이면 거리에 나와서 참……. 그냥 집에서 기다리거나 황성으로 가도 되잖아. 아빠는 어차피 황성에 가야 하면서…….”
“황성에 가 봤자 바로 볼 수도 없잖아. 폐하께서 1명 1명 공을 치하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겠냐?”
“그래도…… 모처럼 휴가를 낸 건데. 쳇.”
두 사람은 투덜거리면서도 멀리 보이는 아드리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인파 속에 섞여 아드리안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가족들은 아빠를 제외하고 곧장 저택으로 돌아갔다.
토벌대의 귀환 첫날은 황제의 접견만 이루어진다.
즉, 행사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토벌대가 돌아오는 시점이 성년 무도회와 맞물려서, 이번에는 두 행사를 동시에 기념하는 무도회가 열리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작년 성년 무도회보다 훨씬 큰 규모로 진행될 거라고 한다.
연회 날짜는 12번째 달의 마지막 날이었다.
무도회가 어찌 되었건, 라피네는 아드리안이 어서 황성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에스턴 공작가의 저택에는 피츠 백작가의 가족들도 함께 모였다.
두 가족이 함께 바이올렛과 아드리안의 귀환을 기념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아빠였다. 황성에서 이루어진 귀환 행사에 참여했다가 오신 것이다.
라피네는 기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엄마 아빠와 백작 부부를 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런 라피네의 옆에 루카와 로이스도 비슷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형이 우리 선물은 안 가져왔을까?”
“난 마수의 이빨을 가져다 달라고 편지 쓴 적이 있어. 형을 믿어.”
라피네는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무슨…… 놀러 간 줄 알아? 아드리안 오빠는 목숨을 걸고 싸우러 갔던 거야. 여행을 간 것도 아닌데 기념품을 바라는 거야?”
“알겠으니까 잔소리하지 마, 동생아.”
“흥. 라피네 네 선물은 없을까 봐 그러는 거지?”
“…….”
라피네는 그냥 말을 말기로 했다.
“왔습니다, 왔어요!”
그렇게 늦은 오후.
집사가 외치는 소리에 가족들은 모두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문을 통과한 마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가족들은 벌써 눈물 바람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백작 부부는 거의 오열하고 있었다.
이윽고 건물 앞에 멈춘 마차 안에서 아드리안과 바이올렛이 나왔다.
“어머니, 아버지…….”
아드리안은 가슴 벅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드리안!”
아드리안은 곧장 달려와 부모님의 품에 안겼다.
바이올렛 역시 울면서 부모님에게 안겼고, 라피네도 쌍둥이 오빠들과 함께 아드리안에게 다가갔다.
“루카, 로이스, 라피네…….”
아드리안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형아……!”
“흐윽, 혀엉…….”
좀 전까지 까불거리던 루카와 로이스는, 꼭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라피네 역시 저렇게 울고 싶진 않았지만……. 막상 아드리안을 보니 두 사람처럼 엉엉 울게 되었다.
오